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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열 아홉 살의 나

조회 수 1130 추천 수 0 2006.02.28 16:52:00
카이만, 군인, 상병이었다. 스물 네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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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아홉 살 무렵의 나를 돌이켜본다면, 흔해 빠진 이야기지만, 다른 이들이 나를 이해할 만큼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 사실을 싫어했다. 그래서 의식적인 레벨에서는 내가 타인의 관심에 초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러나 무의식적인 레벨에서는 타인의 관심을 끌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나는 그 무렵 어떤 사건으로 인해 꽤 타인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내가 그 관심을 상실했을 때 어떻게 변할지 걱정하곤 했다. 반면 나는 내의식의 당연한 귀결로 내가 그렇게 되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양쪽 모두 틀렸다. 나는 타인의 관심을 따라 나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하기에는 너무 오만했다. 종종 상황을 돌이켜보면서 ‘그렇게까지 거부할 것은 아니었는데.’라고 생각하며 미소지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나는 타인의 관심을 상실한 상황에 대해서 감정적으로는 꽤 괴로워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나는 내가 아는 많은 불나방들보다는 꽤 주체적이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로 내가 형이상학적인 강박을 가진 남성으로써 수틀리면 보편의 세계로 도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둘째로는 의외로-그렇다. 정말 의외였다.- 내가 욕망을 찍어누르는 데서 그럭저럭 쾌감을 느끼는 메저키즘적 주체였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기특하게도 그때부터 이미 나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나의 취향이 소수자의 것에, 경우에 따라서는 극소수의 것에 속한다는 것과 내가 특별하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왜냐하면 나는 이른바 ‘매니아’들의 세계에서도 그 언저리에서, 소수자들끼리도 서로 그렇게 비슷비슷하며, 획일적이라는 사실을 관찰해 왔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거기서 구별된다는 추론을 하는 것은 뭔가 무리한 것이었고 적절한 근거도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배움이 나 자신의 문제에 대해 해답을 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길 좋아했다. 만일 내가 특별하다면, 배움은 나 자신의 문제에 대해 어떤 해답도 주지 않을 터였다. 바로 그렇게 믿으면서 배움을 통해 자신을 파악하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나는 다른 방식으로 오만한 이로써 그런 초보적인 오만함을 우습게 어겼다. 만에 하나 내가 특별하더라도, 나 자신이 그렇게 믿는다면 나는 더 이상 인간에 대한 탐구가 내게 쓸모가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비트겐슈타인적인 어법으로,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그렇게 믿지 않는다면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다른 이들과 대화도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한 메타의식이 아무리 기특하다 할지라도, 나는 실제 생활에서 많이 모자랐다. 나는 술자리에서 동석한 이들을 우스갯소리의 소재로 삼으면서 분위기를 주도하려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그때의 나에겐 ‘혼자서 여럿을 바보로 만들 수 있는’ 재능이 있었고, -이런 건 자랑거리가 아니지만 자랑하자면 지금도 ‘혼자서 혼자를 바보로 만들 수 있는’ 재능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십분 활용했다. 신병교육대에서, 나는 우연히 그때의 나와 비슷한 유형의 인간을 만났다. 그때의 나보다도 훨씬 말을 잘하는 유형의 인간이었고, 사회에서 레크레이션 강사를 하다가 온 사람이었는데, 같이 경계근무를 설 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 그놈 말 참 싸가지 없게 하네.’라고 생각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나를 돌이켜보면서 윤리적인 죄책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여하간 쓸데없는 짓이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사실.

‘내 성질머리를 주체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되었을 나’로 보이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다. 흔해 빠진 이야기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을 혐오하면서 동시에 애착을 가진다. 다행히도 나는 거세본능을 강하게 자극하는 아버지로부터 탄압을 받았고, 감히 내 성질머리 그대로 살아보겠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한 채 텍스트의 세계로, 보편성의 세계로 도망갔다. 그래서 ‘열 아홉 살 때의 나’가 아무리 오만했다 하더라도 이미 지금의 나를 품고 있다. 겨우 철학사 책 몇 권 깨작깨작 본 주제에 고등학교 때 가장 좋아하던 훗설을 벗어나 플라톤의 무게에 짓눌리기 시작했고, 내가 쓰는 글의 결론을 반대로 바꿔도 여전히 내가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사실에 한참동안 괴로워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참으로 내가 싫어하는 종류의 인간이 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리 되지는 않았고 그 사실에 나는 그럭저럭 만족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 역시 흔해빠진 이야기다. 원래 사람은 자신의 숨겨진 결점을 구현하는 듯한 위인을 보면 죽이고 싶도록 미워지기 마련이니까.

흔해 빠진 이야기지만, 가끔 나는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세상 그 무엇도 무섭지 않았던 그때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렇게 될 수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또한 나는 그때를 파스텔톤으로 추억하지도 않는다. 추억함이란 행위는 어떤 거짓된 단절을 표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녀석과 단절되지 않았고, 여전히 내 안에 봉인된 그 녀석을 감추려고 노력할 때가 있다.


xenogan

2007.12.12 23:02:59
*.168.180.151

융, 그림자. 역시 융은 대단해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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