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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조우커의 정치비평

조회 수 1861 추천 수 0 2006.02.21 02:10:00
자 카이만씨는 상병이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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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 인물 안에서는 통합적인 행위라 할지라도, 진중권의 정치비평과 문화비평은 나누어서 고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흔한 세론처럼 양자의 차이를 지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지적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 진중권의 정치비평에 대해서만 말하겠다. 독자들은 강준만에 대한 나의 코멘트들의 연속선상에서 이 글을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진중권의 정치비평은 안타깝게도 ‘시대와의 불화’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이문열 따위가 말하는 불화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진중권의 불화를 한 장면의 그림으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킹이 없는 곳에서 방황하는 조우커’.

조우커의 칼날은 이미 모든 ‘적’을 쳐부수어 버렸다.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에서 이미(!) 조갑제, 이문열, 이인화의 대표적인 텍스트들은 완벽하게 논파되었다. 이인화를 구출하려는 김탁환의 시도조차 진중권은 부수어 버렸다. 2000년엔 중앙일보에 이문열이 총선시민연대를 우회적으로 비난한 “홍위병을 돌아보며”를 기고하자 바로 며칠 후 같은 지면에서 “이문열과 젖소부인”이라는 패러디물로 바수어 버렸다. 이 ‘사건’은 당시 중앙일보 주요 필진이었던 권영빈이 ‘무승부!’라는 의미를 가진 칼럼을 따로 기고하며 교통정리를 할 정도로 파장이 컸는데, 이문열과 진중권의 네임벨류의 차이를 고려한다면 진중권의 완승을 인정한 것이나 진배없었다.

조갑제? 이문열? 이인화? 그들은 적어도 2000년부터는 좀비다.

한편 우리 사회에는 수구세력의 문제뿐만 아니라 화석화된 진보진영의 문제도 있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의 비난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들을 비판하고 견인하는 것이 또한 한국 사회의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진중권은 그것도 이미 (텍스트상으로는) 끝냈다. 1999년 당대비평에 발표된 <지배의 언어, 탈주의 언어>에서 이미 NL과 PD는 논파되어 버렸다. NL진영에서는 최진석이 말지를 통해 반론을 하는 수고를 했고, PD의 대표격으로 까인 이진경은 무반응이었으나 논리적으로는 진중권의 완승이었다.

이진경도 내가 보기에는 적어도 2000년부터는 좀비다.

도대체 이제 조우커가 대항해야 할 ‘권력’이 없다. 이 조우커는 지성세계의 거주민인데, 이 왕국에는 왕이 없단 말이다.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인가. 그래서 이 조우커는 수고스럽게도 대중의 무지함과 직접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언밸런스다. 조우커는 왕에게 개기면서 그 효능을 다한다. 대중들은 평소에는 조우커를 ‘미친 놈’ 취급하다가 왕을 갈아치우고 싶을 때는 그의 행동에 무한히 창조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이 조우커와 대중 사이의 행복한 교통관계다. 그러나 왕이 없는 사회에서 조우커는 직접 대중에게 성질을 부리기 시작했으니, 이 어찌 참담한 일이 아닐까.

조우커의 검은 권력을 찌르기 위한 것이다. 대중은 거대한 바위와 같아서, 검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중을 억누르는 건 해체의 검이 아니라 권력의 방망이다. 권력이 대중을 억누르고, 조우커는 그 권력을 상대해야 그림이 나온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선 지식권력이 없으므로, 조우커는 그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한때 조우커는 강준만과 함께 지식권력을 구축하는 일에 참여한 바 있다. 지식인의 연대성이 실현되던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은 이유야 어찌됐든 끝나버렸다. 강준만의 독선적 성향과 조우커의 탈선적 성향이 그제서야 불거진 탓이다.

유시민 정도가 권력이 되어 대중의 입을 자처하고 대중을 짓누르기 시작하면 조우커도 살만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쉽게 생길 것 같지는 않다. 어떻게든 그 자신이 권력자가 되는 것이 조우커의 살 길이겠지만 그건 조우커의 성격상 쉽게 되지 않는다. 조우커는 여기서도 저기서도, 패를 다 던지고 뛰쳐나오기를 반복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심지어 마냥 뛰쳐나올 수도 없다. 세기말의 진중권을 추억하자면, 그는 정말로 날라다니는 것처럼 보였고, 아무리 삐딱한 눈으로 쳐다봐도 그 뒤에 숨어있는 물적인 이해관계가 투시되지 않았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볼 때는 대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나 인정되는 사치로, 진중권이 독일 유학에서 귀국한 2-3년간 얼마나 대책없이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증표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진중권은 독일에서 유학 중인 아내와 자식에게 매달 꼬박꼬박 송금을 보내야 하는 가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진중권이 김훈이 위악적인 척하며 말하듯 밥벌이를 위해 글쓰기를 할 위인은 아니지만,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건 확실하다.

'진중권이 교수가 되면 괜찮을 텐데'라는 실없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러면 모든 문제까지는 아니라도 상당수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대학에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게 되고, ‘대중’들도 그제야 조우커를 하나의 권력으로 인정하게 된다. 그러면 지금처럼 공허한 칼질을 거듭하는 답답한 상황은 오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노력으로 성취할 수 없는 일을 '대안'이라고 제시할 수는 없는 법. 조우커의 앞날엔 언제나 풍랑이 가득할 것 같다. 본인이 그걸 즐긴다면, 그것도 괜찮을 지도 모르지만.


또우너

2007.12.17 18:14:56
*.235.45.66

"비밀글입니다."

:

하뉴녕

2007.12.17 18:19:45
*.176.49.134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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