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카이만, 군인, 상병이었다. 포상휴가 나와서 본 영화일게다.
------------------------------------------------------------------------

연산군이 웃었기 때문에 모든 얘기가 시작된다. 광대들은 죽거나, 매맞고 쫓겨나지 않고, 오히려 궁궐 안에 거주하게 된다. 그런데 도대체 연산군은 왜 웃었을까?


“왕을 희롱하니까..왕이 웃었잖아. 그러니까 중신을 희롱하면....중신이 웃지 않겄어?”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광대의 이 대사 속에 사태의 모순이 집약되어 있다. 중신을 희롱하니 왕이 웃었다는 건 이해하기 쉬운 얘기다. 그런데 왕을 희롱하는데 왕이 왜 웃는가? ‘걔들이 웃기잖아.’라는 성의 없는 대답만으론 부족하다. 서태지가 이재수의 컴백홈 뮤직비디오를 보고 웃었다고 가정해 보라. 얼마나 황당한가? (서태지는 웃지 않고 이재수를 고소했다.)


패러디는 대상의 강력함을 인정하는 행위다. 그러니까 장생이 “왕이 이런 (이토록 무력한) 건 줄 알았으면 희롱도 안 했을 것이오.”라고 말한 건 전적으로 타당하다. 연산군과 장녹수는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장바닥에서 그렇게 회자되고, 희롱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연산군과 장녹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상적으론 선왕의 법을 휘두르는 중신들에게 판판이 깨지다가 히스테리의 피바람을 통해서야 간헐적으로 그들을 극복하는 연산군의 무력함은 영화 내내 제시된다. 역사 속의 장녹수에 대해 잘 모르기는 하지만 왕의 애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자유연애와 비슷한 행위일 리는 없다. “젖줄까?” 엄마-놀이를 하는 장녹수의 음성엔 다급함과 초조함이 묻어난다.



그래서 그들은 웃는다. 패러디의 대상이 되는, 그야말로 좆방망이를 마구 휘두르는 왕과 왕의 비의 모습이야말로 그들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희롱하는 희롱극에서 역설적인 해방감을 느낀다. 짜릿한 해방감을 느끼며 희극을 재연한다. “아랫입? 윗입?”



연산군은 계속 그 환상의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한다. 광대들의 익살극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좆방망이를 마구 휘두르는 왕의 모습을 재연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상한모자님의 적절한 비평대로, 그는 익살극 안에서만 현실을 보며 거기서 현실을 불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계의 큰별이신 노정태 선생님은 “피분석자가 통제가 안 될 경우에는 사이코 드라마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이 영화에서 얻었다고 하신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은 장생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기 위해 기획된 거라고 하신다. 타당한 말씀이지만 장생이 연산과 맞짱을 뜨는 그 장면에도 여전히 패러디를 둘러싼 욕망은 남아 있다. 저놈이 죽인 사람 숫자가 기왓장 숫자보다 많다고 연산을 탄핵할 때 연산은 마냥 웃고 있다. 바로 그 연산이 연산의 자아-이상인 것이다. 연산이 분노하는 시점은 장생이 공길과의 비역질을 언급할 때다.



상징계에 포획되었고 그 안에서 초월적 자유를 꿈꾸는 그렇고 그런 인간 군상들이 영화 속에 잘 녹아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황산벌 감독의 두 번째 영화가 분명하다. 황산벌의 주제 중 한 부분을 도려내어 더욱 철저하게 관념적으로 구성한 영화인 것이다. 아마 황산벌이 흥행에 실패한 이유는 감독의 관념성이 전쟁 영화라는 장르와 어느 정도 충돌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나 보다.





P.S 아무도 황산벌을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스스로 언급한다. 내 술친구들은 2004년도에 매일매일 내게 세뇌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가끔 내가 먼저 언급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언급할 때가 있다. 그래서 이상한 모자님의 비평을 보고 너무너무 기뻤다.

파란토마토

2007.11.24 04:54:13
*.250.170.223

이야........

"피분석자가 통제가 안 될 경우에는 사이코 드라마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이 영화에서 얻었다"


이 말 끝내줍니다. 정말 팍팍 와닿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저렇게 말하는 군요.ㅋ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1 열 아홉 살의 나 [1] 하뉴녕 2006-02-28 1130
200 프라하의 연인 : 환상의 상업성, 상업성의 환상 하뉴녕 2006-02-24 2105
199 조우커의 정치비평 [2] 하뉴녕 2006-02-21 1861
» 왕의 남자 : 패러디를 둘러싼 욕망 -연산군은 왜 웃는가? [1] 하뉴녕 2006-02-10 1366
197 강준만, 혹은 어떤 무공비급 [1] 하뉴녕 2006-02-07 2501
196 선임병의 탄생 하뉴녕 2006-01-17 929
195 자살하지 말아야 할 이유 하뉴녕 2006-01-10 1264
194 황산벌 하뉴녕 2006-01-07 1967
193 난해함에 대하여 하뉴녕 2006-01-05 1455
192 강우석 영화와 중산층 의식 [2] 하뉴녕 2006-01-03 1074
191 전통 하뉴녕 2005-12-26 2897
190 팜므 파탈 하뉴녕 2005-12-22 1423
189 니체와 보편성 하뉴녕 2005-12-03 1191
188 그렇게 되고 싶었던 사람들 하뉴녕 2005-11-07 1626
187 연애의 목적 (스포일러 만땅데스) [1] 하뉴녕 2005-10-20 2661
186 형이상학 (1) - 고르기아스로부터 하뉴녕 2005-10-09 1592
185 내가 스타리그를 좋아하는 이유 [1] 하뉴녕 2005-08-26 1196
184 친절한 금자씨, 주이상스의 영화 (스포일러 有) 하뉴녕 2005-08-23 1985
183 고참의 취향 하뉴녕 2005-08-20 824
182 인트라넷 소설과 쾌락의 경제 하뉴녕 2005-08-17 17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