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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전통

조회 수 2897 추천 수 0 2005.12.26 01:58:00
카이만은 군인이었고, 일말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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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한동안 유행했던 이 표어는 한국 사회에서 '전통'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출현했는지를 보여준다. 즉, 그것은 외부로부터, 외부자의 시선으로부터 찾아왔다. 왜 예쁜 한옥을 부수고 콘크리트 건물을 짓는지 모르겠다는 외국인들의 투덜거림이 수십 년의 격차를 두고 한국인들의 귀에 들린 것이다. 아니,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인들은 적어도 명절날에 기모노를 입고 돌아다니기는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말하는 '전통 계승'이라는 것은, 자신들의 삶의 형식에 결합해 있는 무언가를 유지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선조들이 남긴 유물 중에서 외부자의 시선에 어필할 수 있는 것을 취사선택해온 역사에 가깝다. 불고기가 한국의 대표음식이 되어온 과정이 그 사실을 단적으로 증거할 것이다. 물론 김치의 경우는 다른 패턴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말이다.


과연 그러한 것들을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이 온당한 어법인지에 대한 의심이 들만도 하다. 그러므로, 사실 서구문화가 우리의 전통이라는 복거일의 주장을 - 고종석이 긍정한 - 나는 받아들일 수 있다. 백종현도 "서양근대철학"의 서문에서 비슷한 얘기를 한 바 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구체적인 사례에서 서술해 보자면 이렇다. 우리의 헌법에 역사적으로 선행하는 것은 경국대전이다. 그러나 우리의 헌법에 구조적으로 선행하는 것은 로크의 "통치론"이다. 경국대전과 헌법은 만나지 않는 평행선이다. 헌법에 영향을 주고, 헌법을 규정지은 것,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것은 실제로는 로크의 "통치론"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전통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이것이 복거일과 백종현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구조적으로 선행적인 것이 끼치는 영향은 역사적으로 선행적인 것이 끼치는 영향을 능가한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회계약론을 생각해보라. 실제로 사회계약론에 의거해 세워진 민주주의 국가는 얼마나 될까. 딱 잘라서 말하면 미국 하나다. 나머지 나라의 헌법은 그저 미국의 역사적 경험을 구조적인 선행성으로 받아들이면서 구축된 것일 뿐이다. 그러나 미치는 효과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플라톤의 생각처럼 '진짜'가 '짜가'를 언제나 이길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짜가'가 '진짜'를 능가하기도 한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을 보면 이 미국인이 캐나다의 민주주의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로크와 사회계약론을 우리의 전통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도 않다는게 한국 현실의 희극성이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의 관념은 그 구조적인 선행성이 마땅히 우리에게 미쳐야 할 영향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념은 라캉의 말대로 일종의 물질성을 띤다. 경국대전에서 서울이 우리의 수도라는 '관습헌법'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고 느꼈던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그리고 그러한 판결을 지지하기까지 한 몇몇 헌법학자들을 보라. 한국에서는 직능인이 자신의 직업에 마땅히 요구되는 세계관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흔하다. 행정수도이전 위헌 판결은 헌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판관들의 사적 세계관에 의한 것이다.


"통치론"도 아닌 곳, 그렇다고 "경국대전"도 아닌 곳에서 한국인들은 방황한다. 그것도 행복해 하면서. 이 사례가 이른바 '수구세력'에 국한된 것이라고 항변할 이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내가 보기엔 그렇지가 않다. 소위 개혁세력이 친일파 처벌 문제에 대해 가지는 감정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흔히 예시되는 프랑스의 나치 청산은 프랑스가 나치에게 정복당하기 전에 이미 공화정 체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프랑스의 나치 청산은 공화제를 뒤엎은 파시즘에 대한 단죄요, 헌법을 가진 국가에 대한 테러에 대한 처벌이다. 그들이 말하는 '민족반역죄'에서 '민족'은 우리의 어감으로는 오히려 '국가'에 가깝다. (프랑스인들이 말하는 '민족'이 우리가 '민족정기' 운운 할 때의 민족과 동의어라고 믿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이문열의 조소처럼 친일파들의 시기에 대한민국은 있지도 않았고, 우리의 헌법은 조선왕조를 계승하지 않는다. 그것은 할 수도 있었던 것을 하지 않았다는 우연적 현실이 아니라 '해서는 안 된다'는 필연적 현실이다. 공화국이 왕조를 계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대한민국은 법적으로 - 도덕적, 역사적 단죄가 아닌, 헌법에서 연역되어야 마땅한 법적인 단죄를 말하는 것이다 - 친일파를 처단할 수 있을까, 라고 언젠가 내가 물었을 때, 노무현 지지자였지만 나에 대해 기본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어느 네티즌은 갑자기 씩씩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공화국 좀 늦게 만들었다고 친일파도 처벌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되묻는다. 내가 하려던 말은 그런 말이 아니었지만, 설령 그렇다 한들 뭐가 문제겠는가. 근거와 상관없이 미리 결론이 내려져 있는 상황, 이 역시 사적 세계관이 공적 판단을 압도한 결과다. 그들의 견해를 합리적으로 표현하려 노력해 봤자 '관습헌법' 이상의 도식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이문열의 조소나 이영훈의 회의를 피해가면서 친일파 청산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우리 헌법에 씌여져 있는 대로, 1919년 3.1운동을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민중의 선택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민중혁명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 경우 친일파의 행위는 한민족이 아닌 일본민족에 빌붙었기 때문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국체(國體)를 부정한, 헌법정신을 훼손한 반역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법적 논리로 처벌할 수 있는 한계는 1919년 이후의 친일행각이 될 것인데, 나는 친절한 사람인지라 이 경우에도 당신들이 처벌하고자 하는 그 사람들 대부분을 처벌할 수 있다고 말해주곤 한다. 사실 내게 그렇게 말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그게 그거' 아니냐고 말할 사람이 있겠지만 일단 근거가 섰다는 것과 서지 않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고, 이상의 논의의 효과는 실제적인 친일파 변별과정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민족 범주보다는 인권 범주가 누군가를 단죄하는 데에 더 유효하지 않겠느냐는 이영훈의 타당한 지적은 여기서 상당부분 의의를 상실한다.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부정은 인권 문제와 긴밀히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과거청산 사례를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유포시킨 홍세화를 포함해서, 친일파 척결을 주장한 그 누구도 이러한 주장을 개진한 바가 없다. 다만 박노자가 아주 예전에 친일파가 그릇된 이유는 반민족행위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파시스트 체제의 부역자이기 때문이다라는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했는데, 이 역시 대한민국 헌법을 근거로 친일파를 처벌할 수 있다는 법리적인 얘기는 아니었고 역사적인 단죄에 관한 얘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상의 전통에 대한 논의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가 '전통'이라고 흔히 칭하는 것, 그것들은 우리의 삶의 형식에서 이미 잘려나간 것들이다. 잘려나간 뿌리는 더 이상 그 식물의 구성물이 아니다. 둘째, 마땅히 우리의 '전통'에 포함되어야 할, 구조적으로 선행적인 이념들이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 그것들을 심층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바, 이에 대한 개선이 요청된다. 셋째,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통'에 대한 강박에 대해 비판적인 거리를 형성하도록 도와준다. 아버지들이 우리의 뿌리를 잘라버린 건 어리석은 일이었지만, 우리가 그 잘려나간 뿌리를 손으로 쳐들고 운다해서 다시 접합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뿌리 없는 자식이라는 것, 반만년의 후예가 아니라 반백년의 후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진정으로 우리의 삶의 형식에 결합한, 그러므로 외부자에게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제시할 수 있는 '전통문화'가 탄생할 지도 모른다. 탁 까놓고 말하면, 내게는 불고기와 태권도보다는 차라리 삼겹살에 소주, 노래방, 폭탄주와 스타리그 등이 더 '전통'이란 단어의 의미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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