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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니체와 보편성

조회 수 1191 추천 수 0 2005.12.03 01:55:00
카이만은, 군인이고, 일병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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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고통이 아니라 고통의 무의미함이 지금까지 인간에게 만연되어 왔던 저주"라고 말했다. 인간은 변화에서 고통을 느끼며, 그 고통의 무의미함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고통에서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특히 형이상학자는 "무엇을 위해 고통이?"라는 질문에 대해 "이것을 위해 고통이"라는 답으로서 변화가 없는 세계, 이 세계의 배후에 있는 존재의 세계를 제시한다. 니체는 플라톤 철학과 기독교가 그러한 오류의 표본이라 생각했고, 그 오류로부터 생성과 변화가 가득한 이 세계-우리의 유일한 세계-를 지켜내려고 했다.


하지만 니체는 알 수 없었다. 어떤 곳에서는, 다른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바로 '삶'이라는 어휘가 '삶'을 탄압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삶'이라는 단어로 오직 자신의 삶만을 지시하고, 그 '자신'들의 삶은 실은 매우 비슷비슷한 것이라 다른 가능한 '삶'들을 '삶에서 유리된 어떤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삶이라는 단어가 니체가 원했듯 창조성을 고양시키는데 쓰이는 게 아니라, 어떤 삶만을 현실성의 이름으로 절대화하는 편협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든 남자들이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그것을 그저 기술하는 것만으로 문학이든 철학이든 뭐든 나올 수 있다고 믿는 곳에서, 니체의 책을 덮은 이가 진저리치며 "도대체 이런 데카당이!"라고 외칠 수 있다는 것을. 니체는 알지 못했고, 알 수도 없었다. 20세기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도 몰랐을 것이다.


삶이라는 것에 대한 우리의 감상은 뭔가 신비하고 낭만적인 것, 다른 것에 의해 침해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분명 니체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그 감정의 효과, 그것은 전혀 니체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니체가 처했던 상황에서 사람들을 짓누르는 거대한 용이 보편적/도덕적 격률로 보였다면, 우리의 상황은 정반대다. 우리를 짓누르는 탁한 빛깔의 용은 이른바 현실성의 격률이며, 차라리 과격한 도덕적 근본주의에 의해 그것을 거부할 수 있다. (나는 그 용을 손쉽게 '자본주의적 현실성'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한다. 설령 그것이 사실일 지도 모르지만, 도대체 저 용이 저러한 꼬라지를 하고 있는 곳은 내가 알기론 나의 조국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해야 할 일은 우리의 환경에서 가능한 삶의 조건들을 점검하고, 다양한 삶의 형식을 만들어 가는 것일게다. 그러나 그 작업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기에,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일원화된 삶과 앎의 영역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것일 수가 있다. 앎 그 자체로의 앎을 옹호하는 것, 보편성의 세계로의 도약이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 그것은 '하나의 삶'의 폭력으로부터 획득해야 할 자유다. 따라서 보편성은 우리에겐 니체가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말했던 사자에 대응된다. "새로운 가치의 창조, 사자라도 아직은 그것을 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유의 쟁취, 적어도 그것을 사자의 힘은 해낸다."


사실 니체는 알고 있었다. 존재의 세계의 탄생엔 심리적인 요인 뿐만 아니라 인식론적인 요인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생성에 관한 이론은 존재에 관한 이론보다 1만배는 더 어렵다."라고 투덜거릴 때, "문법을 없애지 않는 한 인간은 신을 떨쳐버릴 수 없는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라고 우려할 때, 그는 바로 그 지점을 보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플라톤과 싸우는 전장은 역사적인 공간일 뿐 아니라 보편적인 공간이다. 보편성의 비판자들이 서 있는 곳이 이미 충분히 보편적이라는 것은, 그들의 이론에 대한 반증은 아니다. 다만 그들을 서양철학의 전통에서 분리해서 이해하는 것이 삽질이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는 된다. 저 삽이 둔탁한 머리와 부딪혀 파열음을 생성할 때 현대적 철학 사조의 유행은 언제나 저 우리의 '삶'이라는 물건을 정당화하는 데에만 쓰이기 마련. 진정 니체의 제자라면 단순히 니체의 말을 읊조릴 게 아니라 몇몇 이들이 니체와 그 후계자들의 긍정의 철학에 현혹되는 원인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심리/계보학적으로 탐구할 일이다.



P.S. 이 글의 논지와는 별도로, 최근 읽은 백승영의 <니체 -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은 매우 훌륭한 책이었다. 통독할 만한 부피 안에 니체 철학의 거의 모든 부분을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었고, 한국어 구사 능력과 번역의 매끄러움도 만족스러웠다. 중요한 철학자들마다 이런 책이 한 권씩 있었으면 좋겠고, 고병권의 책이 아니라 이런 책이 개설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병권의 책들은 사실 니체에 대한 저자 개인의 짝사랑의 고백에 불과하다.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 상세보기
백승영 지음 | 책세상 펴냄
니체의 저작을 중심으로 텍스트 내재적 분석 방법을 사용하여 니체 철학을 체계화한 니체 연구서. 저자는 일부 사유만으로 니체의 사유 전체를 오독하는 문제점을 극복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 나름의 생성 이유와 필연성을 부여하며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을 역설하는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자로 니체를 재조명하였다. 이 책은 니체가 자신의 철학적 과제로 무엇을 설정했고, 그 과제 수행을 위해 어떤 전략을 선택


P.P.S. 10월에 쓴 글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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