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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붉은악마와 민족주의

조회 수 905 추천 수 0 2006.08.22 02:28:00
병장이 된후 블로그에 올라왔지만 상병 때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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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 있었다면 보나마나 빨간 무리들 사이의 한 점이었을 텐데, 그곳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뻘쭘한 집단의 일원들 사이에서 월드컵을 관전하는 일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일이다. 나를 가볍게 한숨짓게 만든 것은 멕시코 대표팀, 손등으로 심장을 받쳐드는 특유의 경례자세로 국가를 부르는 그들을 보며, 나도 멕시코인쯤 되었다면 아무런 거리낌없이 저 조국의 호출에 응답했을 텐데, 미국선수들이 멕시코로 원정경기 오면 "개**들, 뒤져라!"라고 외치며 광분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미국은 멕시코 원정경기에서 한번도 이긴 적이 없다.) 그러나 나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민족주의를 부인하기에는 너무 한심하고, 승인하기에는 너무 얍삽하다.


붉은악마와 민족주의를 연결시킬 때 우리는 '민족'이라는 개념의 의미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민족주의에서 '민족'이란 아직 오지 않은 노스탤지어였다. 친일파 척결 실패, 대미관계 종속, 그리고 무엇보다 (이 두 가지 사안과 어느 방향으로든 인과관계를 지니고 있는) 민족분단으로 인해 우리의 '민족'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고, 민족주의는 그 오지 않은 민족의 형성을 위해 '우리'가 복무해야 한다는 그런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만일 붉은악마가 민족을 호출하고 있다면, 여기서의 민족은 그 형성되지 않은 민족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로 집약되듯이 국가의 구성원, 혹은 국가의 '형상'이라는 의미에서의 민족을 불러낸다. '대한민국'이라는 말은 극적으로 '남한'이라는 말과 대비된다. (내가 사는 나라를 반드시 '남한'이라고 불러야 된다고 믿는 지식인들도 있다.) '남한'이라는 말에는 이미 우리는 반쪽이라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그런 규정이 없으며, 하나의 국가와 그 정체를 온전히 드러냄으로써 스스로 온전한 하나의 단위를 말한다. 전후세대는 드디어 7천만의 오지 않은 민족 대신 실존하는 4천 8백만의 민족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이들이 "AGAIN 1966"을 외쳤다고 해서, 치우 천황의 깃발을 흔든다고 해서, 마치 이전의 '민족'과 같은 민족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흥분하는 과거 세대의 '투사'들을 보면 안쓰러운 느낌이 드는 것은 그래서이다. 물론 이들의 '민족'에도 과거의 '민족'의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이 부르는 민족은 오지 않은 것에 대한 갈망은 아니다. 그것은 현존하는 민족에 대한 자긍심 혹은 자긍심에 덧칠하려는 노력이다.


지금 이 순간, 한국인들이 한 곳에 모여 산출해낼 수 있는 '공동의 영'은 그러한 종류의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관념이지만 즉자적으로 산출해낼 수 있는 관념, 현실에 영향을 주는 관념, 물질적인 관념이다. 그것은 한국 자본주의가 살만하다고 느끼거나, 적어도 그 틀에서의 삶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판타지인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분명 현존하는 4천 8백만의 것이며, 그 4천 8백만의 것임을 인정하는 한에서 타자를 수용할 수 있는 그런 판타지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신기하다고 쳐다본 붉은악마에 대해 오직 중국만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던 것이 납득이 가는 것도 그 지점에서다. 중국인들에게 한국은 자국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확연한 외국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다. 그러한 존재가 선명하게 자기 정체성을 주장하는 데에 그들은 잠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북한이 월드컵 때마다 모종의 도발행위를 계속하는 것도 '한국인들의 단합'이 그들을 소외시킨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정치행위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들이 '부르는' 민족이 4천 8백만일지라도, 이들이 '배운' 민족은 7천만이기에, 양자 사이의 혼선과 갈등, 착각과 기대는 한동안 게속 될 것이다. 과거의 민족을 온전한 것으로 여기는 민족주의자들은 이들 붉은악마를 '견인'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현존하는 국가의 실체를 구성하는 민족'을 찾는 이들의 행보를 거스를 수는 없다고 본다. 즉물적이라고 비아냥거릴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상식적이고, 현실적이며, 무엇보다 간결한 일이기 때문이다. 간결하고 편리한 일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상처가 인간을 크게 키울 거라고, 실제로 그렇게 된 결과들을 제시하며 아무리 떠들어댈지라도, 실제의 인간은 상처를 품고 살기를 바라진 않는다. 콤플렉스를 안고 미래의 주체를 기다리느니 현재의 주체를 일단 긍정하고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근대적 민족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런데 우리에겐 '민족'이 없으니 일단 통일부터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얼마나 웃긴 이야기인가. 그는 '민족이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하나의 민족을 제시하며 일단 이것부터 만들어내라고 생떼를 부리고 있는 셈이다. 그들보다는 차라리 붉은악마가 '근대적 민족국가'를 만드는 여정에 가까이 있다. 비록 이제 걸음마 단계일 뿐이라고 할지라도.


해방 후 60년이라는 세월은 한때 가장 타당했던 요구를 생떼로 변화시킬만큼 상이한 두 개의 국가를 만들었다. 그 편차는 이미 현격하고, 그 편차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차츰 그것을 인지하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극우세력은 그들을 전체주의 사회의 괴물로 묘사하며 호들갑을 떨 것이다. 여기에 가장 좋은 대응은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는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조선일보에 입사해서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말할 수 있을 게다.) 그들을 타자로 인정하고 그 규정에 적합한 존중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북한주민들의 고통에 그토록 무감각할 수 있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북한은 한민족이므로 도와야 한다."는 (구)민족주의자들의 외침 때문이다. 저 알량한 명제를 마음 편히 받아들이면, 마치 북한이 우리 민족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만 하면 도와줄 의무가 면제된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래 우리 민족이야.(사실은 아니지.) 그런데 도울 수 없는 형편이군.(도와줄 필요가 없잖아?)"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괄호 안팎을 드나들지만 결말은 똑같다. '민족' 개념의 수호자들이여, 이런 식의 결말이 두려워 '민족'을 붙들어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걱정마라. 그런 '파탄'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것도 광범위하게. 그러니 민족이 아니라 보편적 인권을 내세워 북한 주민을 도와도 된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통일이 아니라 탈냉전체제'가 목표여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100% 이해하고 지지한다.


민족의 호출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것을 자기 입맛대로 유혹하려는 여러 세력들의 교태(?)도 점입가경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극우파는 아무 생각이 없다. 자기 이권이 걸린 문제 이외에는. 그들은 필요에 따라 민족을 찬양하거나 폄하할 것이다. 그들은 십년 후 한국에서 민족은 쇠퇴할 거라는 희망섞인(?) 예측을 내놓는 공병호만큼도 확신범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담론의 세계에선 그냥 없는 것으로 취급하고 무시해도 된다. 우리가 관심가져야 할 것은 그런 부분이 아니라, 이 새로운 민족주의자들의 자긍심이 형성되는 순간에 그 자긍심에 포함되어야 마땅할 '관용'에 대해 고민하고 그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P.S 물론, 6월에 쓴 글이겠죠? ㅡ.,ㅡ;;

허매

2013.02.01 07:53:32
*.113.121.37

한윤형은 상당히 히스테릭하고, 물렁물렁한 사람인것 같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글을 죽 읽어나가면서 점점 무서워지고 있습니다.
-.- 눈에서 서리가 뚝뚝떨어지는 무시무시한 남자의 이미지로 점점 바뀌고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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