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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코미디 영화론 (1) : 브루스 올마이티

조회 수 867 추천 수 0 2006.07.04 16:51:00
시간순서는 정반대지만, 사실 "강우석 영화와 중산층 의식"이 "코미디 영화론 (2)"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카이만, 군인, 상말이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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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코드만큼 차이에 민감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남들이 보기에 재미있는 플롯은, 내가 볼 땐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은 플롯이 될 뿐이지만, 남들이 보기에 박장대소하는 유머는 내가 보기엔 그저 불쾌하기만 하다.

가령 대대 보급병인 나는 언제나 여자 연예인 누구누구를 ‘청구’넣어 달라는 고참들의 ‘유머’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 나는 거기에 맞춰 (고참이니까 화를 낼 수도 없고) ‘인가’가 없다느니, ‘재고번호’가 잡히지 않는다느니 하는 맞춤용 헛소리를 제공해 줘야 했다. 거기까지는 별 문제 없었다.

문제는 그 일상화된 유머를 고참이 아닌 후임이 내게 건낸 최초의 순간에 발생했다. 아, 불행히도 나는 그때 전투화를 닦고 있었다. 들고 있던 전투화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바닥을 보고 있던 시선을 천천히 들어 올려 후임을 쳐다본다. 그때 나의 시선은 명백히도 ‘너, 뒤질래?’를 표상하고 있었다. 후임은 “죄송합니다아!!”를 외치며 도망갔다. 그리고 나중에, 일과시간이 지난 후에 업무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의 오해 덕분에, 내가 그들의 유머에 불쾌감을 느낀다는 사실은 아직도 비밀이다.

<브루스 올마이티> 역시 바깥에 있을 때는 설정이 재미있어서 한번 빌려봤다가 ‘뭐 이런 쓰레기.’라고 툴툴거리며 던져버린 영화였다. 그런데 군대와서 한번 더 보니 꽤나 재미있었다. 그 얘기를 전화통화로 시나리오 작가 ssy에게 했더니 ssy는 “그거? ‘좋은 영화’야.”라고 말했다. 내가 브루스 올마이티를 이해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했던 걸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어떤 교육적 훈계도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고는 전혀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말하자면 특정한 상황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특정한 인물에 대한 질투심 같은 감정이, 피교육자와 교육자 사이에 공유되어 있을 때, 교육자의 훈계는 피교육자의 마음에 와닿게 된다.

하나의 텍스트가 사람들에게 감성적으로 수용되는 방식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브루스 올마이티가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기 위해 필요했던 감정, 공유가 필요했던 감정은 분명 “아아,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것 같아.”라는 감정이다.

물론 브루스 올마이티는 ‘착한 영화’라 이 감정을 승인해 주지는 않는다. 이런 감정을 가진 자, 신을 불렀고, 신이 응답했고,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났고, 결국 주인공은 사실 자신이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의 삶에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음을 체험했다, 뭐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런 얘기가 되겠다. 하지만 애초에 그딴 감정을 전혀 가지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어떻겠는가? 그런 놀음 자체가 시시하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전에 이 영화에 결코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참으로 군대는 나에게 이른바 ‘평범한 감정’을 많이 돌려주는 곳이다. 이성적으로는 결코 승인한 적이 없지만 “아아,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것 같아.”라는 감정은 나에게도 생겨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브루스 올마이티에 감정 이입을 하고, 그 코미디를 즐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군대에 오기 전에는 질투심이라는 감정도 거의 가진 적이 없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가진 무언가를 부러워 한다는 감정, 거의 없다시피 했다. 군대에 오니 물론 사소한 것도 부러워하게 되더라. 하도 사소한 것들도 충족을 안 시켜주는 동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젠 또 뭘 이해할 수 있으려나?

그런데 브루스 올마이티가 이전에 불쾌했던 이유는 단순히 그 감정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감정의 주체가 ‘미국 중산층’이라는 것, 그것이 나를 불쾌하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ssy에게 “미국 중산층 영화 아냐? 자기들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할 거라는 알량한 생각.”이라고 말했고, ssy는 이 ‘코미디 영화론’ 시리즈를 탄생시킨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야, 원래 코미디는 중산층 거야.”

자, 그럼 이제 다른 작품을 말해보자.


p.s 참고로 고백하자면 내가 지난 몇년간 블로깅 하면서 '(1)' 써놓고 안 쓴 시리즈가 서너개다. ㅡ.,ㅡ;;

아햏햏

2013.02.01 07:43:30
*.113.121.37

러브코미디도 볼때마다 비교적 안온한 생활을 하는 중산층의 영화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말랑말랑한 노래와 화사한 화면으로 치장되는 '감동적인' 장면들은 돈이 뒷받침되어야 이뤄질 수 있는 장면들이고, 연애하느라 울고웃고하는것만 보여주지 가난한 집 양아치가 나이트에서 눈맞은 여자랑 잤다가 덜컥 애가 들어서서 셋방살이를 시작하고 맨날 부부싸움에, 남편은 아내를 때리기만 하고 이런 영역에서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야기 자체가 되지를 않을테니까요. 가난한 사람들에게로 카메라를 돌리면 영화가 나오는게 아니라 다큐가 나오고 만다는 생각을 했더랍니다. 그런데 막상 애비가 맨날 에미 패고 에미는 맨날 술먹고 혼자 방에서 울고 그런 유년을 보낸 여자들은 그런 러브코미디 잘만 보더군요. 이런거 보면 한윤형님이 여성의 존재론이란게 남성의 그것보다 10만배는 우월한거다- 라고 했던게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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