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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만, 군인, 꺾인 상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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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신화의 수수께끼 상세보기
조현설 지음 | 한겨레출판사 펴냄
우리 신화 속 비밀의 문을 여는 30개의 열쇠를 제시하는 책. 오래된 인류의 마음, 즉 우리 신화 속에서 찾은 인류 최초의 사유 형식을 30개의 수수께끼로 제시하고 그 비밀을 풀어낸다. 2004년 11월부터 6개월간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라는 제목으로 '한겨레'에 연재한 글을 손질하고, 새 글을 덧붙여 엮은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신화의 '약수'를 찾아 떠난 여정에서 만난 수수께끼들을 제시한다.『천지왕본풀이』등의 무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 조현설, 한겨레출판(2006) 읽다.


쉽게 읽히지만 좋은 책이었다. 우리 신화 속에서 흥미로운 소재를 뽑아 그 소재를 비교신화적인 관점에서, 그러니까 다른 나라 신화를 참조하여 풀어내고 있다. 저자의 의도를 재미있게 따라가기만 하면 다양한 의미를 만나게 되는 것은, 이 책의 커다란 장점이지만 신화학이라는 학문의 속성 탓도 있으리라.


이 책이 추적한 ‘우리 신화’에는 이집트 신화나 그리스 신화 등 여타의 유명한 신화와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무녀들의 굿에서 채록된 이야기들이라는 것이며, 남성 신관들의 계통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이야기들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신화는 아직 헤시오도스나 호메로스의 작업을 거치지 않은 채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원초적인 형태로 남아 있다. 우리의 무속신화는 한번도 스스로를 갈고 닦아 아버지-종교의 위치에 오른 적이 없으며, 우리 사회의 지배계급들은 언제나 불교나 유교 등 외래종교를 받아들여 형이상학을 구축해 왔기 때문일 터이다.


요즈음의 한국인들은 전통문화를 ‘발견’해 내려는 의지로 가득 찬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한스러워서인지 체계적인 신화-고대사를 구축하려는 사람이 많다. 매체는 다르지만 이우혁이나 이현세가 그 일례일 것이며, 넓게 봐서는 김지하도 그런 일을 하자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과연 우리에게 호메로스가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오히려 무속인들에게만 남아 있는 정리되지 않고 난삽한 신화 속에, 심리학이나 신화학의 인도를 받아 밝혀낼 수 있는 더 풍부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우리 신화’의 여러 가지 판본에 대한 저자의 해석을 따라가면, 우리는 모계신에서 부계신으로의 전환이라는 신화의 고전적인 테마를 반복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신화에 표현되는 인간의 영성과 심성은 결코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며, 시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냥 그 상태로 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일관성있고 통합된 이야기를 만들어 봤자, 그것은 ‘경전’으로 변해서 우리를 억압할 텐데.


가령 저자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와 우리의 ‘달래강’ 이야기를 비교한다. ‘오이디푸스’는 근친상간을 회피해야 할 이야기의 ‘암흑의 핵심’으로 대우할 뿐이며 결코 그 욕망 자체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반면 달래강의 전승에서는 창조신화에나 찾아볼 수 있는 남매혼이라는, 문명 이전의 원초적인 욕망과 만나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달래강 이야기가 오이디푸스 전승보다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 회피해야 할 ‘암흑의 핵심’이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 ‘오이디푸스’를 재미있게 만드는 점이다. 사실 나는 오이디푸스 쪽이 훨씬 더 흥미롭기 때문에 저자의 설명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두 개의 이야기 모두 우리에게는 사람을 이해하기에 도움이 되는 텍스트일 뿐이니, 일반적으로 먼저 이런 산만한 이야기가 생기고 나중에 이런 정돈된 이야기가 생긴다는 이유로 이쪽이 저쪽보다 더 우월하다는 식으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발달’은 ‘발전’을 필함하지는 않는다. 시간적 선후관계가 존재론적 우월관계의 징표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신화해석에 대한 온갖 방법론이 충만한 이 시대에, 공동체를 위한 서사라는 뻔한 목적에 복무하는 호메로스를 불러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어리석게 호메로스를 따라잡느니, 호메로스를 지나쳐 버리는 것이 낫다. 호메로스에서 소외된 여러 욕망들을 대우하고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한번도 정돈되지 못한 우리의 무속 신화를 가장 쓸모있게 대우하는 길일 테니까. 먼 옛날에 완결된 아버지들의 얘기보다는, 아직도 구전 속에서 변화하고 있는 무녀들의 얘기가 더 재미있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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