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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의사소통의 바깥

조회 수 843 추천 수 0 2006.04.21 02:18:00
카이만 그 친구는 상병이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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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사자가 말을 하게 되더라도, 우리는 그를 이해할 수 없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의사소통의 성공은 언어의 체계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형식'의 유사성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때의 일치는 의견의 일치가 아니라 삶의 형식의 일치이다."그렇다면 위 문장에서 '만약'이란 어구는 의미가 없다. 우리는 사자가 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도대체 알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어 안의 존재'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언명은 지지될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인간만이 언어 안의 존재'라는 주장은 검증될 수 없는 것으로 남게 된다. 행성 바깥에서 우리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외계인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그들은 우리와 삶의 형식이 (어느정도는) 일치한다는 얘기일 테고 정의상 '인간'이 될 뿐이니 별로 변하는 것도 없다.

내무반 -요새는 '생활관'이라고 부르라고 하지만- 안에서 나는 위 명제를 확증하는 우스운 사례들을 많이 접하고 있다. 이렇게 '삶의 형식'이 일치하는 공간에서, 의사소통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눈빛만으로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건 결코 내가 유능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런 활동에 매우 무능한 종류의 사람이다. 다른 이들은 이런 상황에 훨씬 더 잘 적응하고 있다.

그런 나조차도, 고참이 침상 아래를 물끄러미 쳐다볼 때, 그 눈빛에서 '젖지 않은 슬리퍼 어디 없나.'라는 문장을 읽어낸다. 슬리퍼를 그의 눈앞에 대령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초, 다시 그의 눈빛이 변한다. '이런걸 시킬 생각은 아니었는데.' 다음 순간 그는 같은 의미의 문장을 소리내어 말한다. "아니야. 이럴 필요없어." 물론 머리에 작대기 두 개를 달고 다닐 때의 얘기다.

더 기가 막혔던 것은 후임의 꿈을 분석할 때의 일이었다. 나는 결코 그에게 '자유연상'을 요구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겪은 사적인(?) 경험을 나 역시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분석할 수 없는 꿈도 나오기는 했으나 그런 꿈은 어제 오늘 일과 상관없는 깊은 무의식적 층위에서 나온 꿈, 융선생이 좋아하는 집단무의식에서 길러낸 신화적인 꿈들이었다. 라캉을 읽으면서 융과 너무 멀어져 버린 나는 그런 꿈을 대할때면 "몰라. 이건 너 개인과 상관없는 수준의 꿈이야."라고 말했고, 그러면 후임은 돌아서면서 작게 "개꿈이네."라고 내뱉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적인 영역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된 사적 담화들이 존재한다. 나는 그런 담화들을 수집하는 것을 이곳에서의 내 역할의 하나로 삼았다. 그 짓이 살짝 재미있기도 했고,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짓이 필요하기는 한 것 같은데 그 짓을 하면서 그나마 가장 덜 지겨워할 인물이 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자칭 '비공식 고충상담병'이 된 것이다. 공식적인 고충상담병이 되어 고충상담비 5천원이라도 타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군종병만이 고충상담병이 될 수 있다."는 군대의 이상한 원칙에 밀려버렸다.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 상담을 더 잘해준다고 믿는 걸까?

그러나 구타도 가혹행위도 없는 군대에서 사적 담화들은 그것의 존재불가능성에 대한 한탄이 된다. 고참이라는 것들은 자신이 갈굴 때 후임의 눈빛이 변하는 것만 봐도 후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 삶의 패턴이 단순하고, 자신들도 다 거쳐온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선, "요새 애들은 알 수 없어...."로 시작하는 저 유명하고 상투적인 교설이 답변으로 제시된다. 군대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되자 나는 더 이상 세대차이의 문제를 생물학적 나이의 문제로 생각할 수 없었다. 후임들의 괴로움은 (바깥에서와 달리) 자신이 낱낱이 까발려지고 있다는 그러한 느낌에서 온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취미를 가져라.'고 조언한다. 나 자신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차피 우리는 내무생활이나 군대상의 업무에 있어 사적 공간을 소유할 수 없다. 짬을 무지하게 많이 먹은 상황이 아닌 바에야. 그렇다면 결론은 다른 형식의 사적 공간을 소유하는 길일 뿐이다. 나 자신의 경우는 내무반에서 책을 읽거나 행정반 컴퓨터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행동이 그에 해당한다.

처음에 고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결국 그들은 그것이 나의 일관된 삶의 형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어떤 고참은 내가 읽는 책들을 보며 "밖에서 나는 그런 책을 들고 지하철에 타는 애들을 보면 왜 읽지도 않는 책을 폼으로 들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책을 좋아서 보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행정반 컴퓨터에 앉으면 "또 저술(?)하러 왔어?"라고 묻는 고참도 생겼고, 그 중 몇몇은 내 글이 궁금해 클릭해서 훑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취미를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상황이거나, 그런 취미 자체가 아예 없는 경우도 왕왕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 나는 후임들에게 아예 데카르트식의 '마음과 육체' 이원론을 가르쳐버린다. 데카르트의 이름을 언급한다는 것은 아니고, 이렇게 말해준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여러가지 간섭이 있을 지라도, 그건 너의 중요한 부분들을 침해할 수 없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네가 아무리 변했다고 느끼더라도, 군생활이 지속되는 어느 순간 너는 또 한번 다시 너 자신은 그대로이며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모든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라.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에게 주고, 너는 너 자신을 지켜라."

인생을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행동주의자들의 관점을 따른다면 불가능하고, 니체의 관점을 따른다면 건강하지 못하다. 그러나, 저항해 봐야 기간이 더 늘어나기만 하는 곳에서, 한 2년은 그렇게 살아도 된다. 이곳에서 나는 사람들의 고통을 부당하다고 비판해야 할 의무를 느낀 적이 한번도 없었으며, 그저 무미건조한 진통제의 역할만은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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