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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강호무림이라는 공간

조회 수 892 추천 수 0 2006.03.07 02:11:00

카이만, 군인, 상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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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무협지 읽는 걸 현실도피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호무림은 슬픈 공간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돈 놓고 돈 먹기’라면, 강호무림은 ‘내공 놓고 내공 먹기’다. 20억 정도를 벌면 ‘부자 취급받을 수 있다고 치자. (이게 내 평소의 관념이었는데, 군대에서 만난 강남에 거주하는 고참은 부모가 그쯤 가지고 있는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고 부자의 기준을 50억으로 제시했다.) 그러면 여러분이나 나같은 일반인들은 ’내 월급으로 그 돈 벌려면 얼마나 걸리나...‘라고 머리를 굴린다. 여러분이 심심찮은 노력과 적절한 운을 통해 연봉 5천 정도를 버는 직장에 안착했다고 하자. 그러면 한푼도 안 쓰고 계속 번다해도 20억 버는데 40년 걸린다. 따지고 보면 강호무림에서 내공 쌓는게 그보다 더 쉽지도 않다. 대충 무협지의 주요인물들은 최소한 2갑자쯤의 내공은 품고 다니기 마련인데, 2갑자라는 건 혼자 수련하면 120년 걸린다는 얘기 아닌가. 이쯤되면 우리는 인간 종족의 평균수명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기 마련이다.

이처럼 20억을 버는거나 2갑자를 얻는거나 아무런 기반없이 혼자 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20억을 벌려면 부모를 잘 만나거나, 재능이 있으면서 그 재능을 살려-혹은 죽여?- 전문직에 진입한 뒤 몇 번의 횡재를 맞닥트려야 한다. 후자는 자수성가의 길일까? 그렇게도 볼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내가 전문직에 진입하려면 그 부모는 연봉 5천은 벌어줘야 할 것 같다. 그 아래 레벨에서 전문직으로 도약하는 일이 복권 당첨되는 것처럼 힘든 일은 아니지만, 여하간 그의 노력과 운은 그쯤에서 지쳐버릴 것이고, 20억으로의 길은 다시 험난해질 것이다. 한편 2갑자의 내공을 마흔이 되기 전에 몸에 구비하려면 부모 모두 우연히 협객이고, 우연히 명문정파에 소속되어 있고, 어릴 때부터 정종의 내공심법을 수련하는 등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며, 내공을 증진시키는 온갖 영약을 얻어먹으며, 덧붙어 만일 성장기에 한두번 주화입마에 빠진다면 기꺼이 자신의 내공을 희생시켜 소공자를 살릴 가신 몇 마리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길은 이른바 ‘기연’의 길인데, 기연의 실행과정을 보고 있자면 ‘저 주인공은 무림의 역사에 전무후무한 인물이어야 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각 소설에는 각자의 기연이 있으니, 인간이 만들어낸 강호무림의 시공간은 서로 겹치지 않은 채 수십만개가 되는 모양이고, 그 수십만개의 시공간에서 모든 주인공들은 전무후무 공전절후(前無後無 空前絶後)한 럭키보이의 위상을 차지하는 모양이다.


P.S 원래 나는 좌백의 <혈기린 외전>을 재미있게, 그러나 뭔가 마음에 들지 않게 읽은 후, 혈기린 외전에 대한 길고도 긴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쓰다보니 그 서평(?)은 아예 무협지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성찰(응? 정말?)로부터 시작하게 되었고, 그래서 ‘혈기린 외전 서평’이라는 애초의 의도와 많이 어긋나 버렸다. 그래서 나는 편의상 그 글의 개요를 뭉텅뭉텅 잘라서 독립된 글로 나누기로 했다. 독자들은 이후 이어지는 글들을 하나의 독립된 글로 이해해도 좋고 매우 긴 혈기린 외전에 대한 잡다한 비평문으로 이해해도 좋다. 뭔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이렇게 긴 글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그 소설은 힘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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