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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질투의 시선, 시선의 질투

조회 수 909 추천 수 0 2006.12.12 16:20:00
개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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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의 어느날, 나는 훗날 원빈이 잠시 머물게 될 어느 사단 신병교육대의 훈련병이었다. 식당 앞에서 저녁식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창 너머로 어떤 무리가 캔맥주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녀석들은 뭐 하는 놈들인가 궁금해하는 참에, 옆에서 훈련소 동기들이 '분대장 교육대 교육생들이다.'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급기야 그들이 식사를 마치고 식당 문 앞으로 우르르 흘러나왔다. 그들은 식당 문 앞에 이열 종대로 정렬해 있는 훈련병들을 지나쳐 터덜터덜 그들의 막사를 향해 걸어갔다. 결코 군기가 바짝 들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어리버리하지도 않은, '나는 이 곳이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수십 명이나 내 앞을 지나쳤다. 그때 내 전투모 위에는 하다못해 이등병을 표시하는 작대기 하나도 새겨져 있지 않았는데, 그들은 대개 상병이거나 병장이었다. 누군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아... 별보다 더 부럽다...." (마침 우리는 엊그저께 사단장과 조우했던 터.) 그랬다. 나는 그때 그들이 밤하늘의 별보다 더 부러웠다.


20개월쯤의 시간이 흐른 후에, 나는 바로 그 식당 안에서 캔맥주를 들고 있었다. 따분하고 지겹기 짝이 없었다. 나는 무려 한시간 사십분 동안이나 생삼겹살을 눈앞에 두고 행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행사의 목적은 '내가 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사단장의 은총으로 내가 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을 사단장이 인지하는 것'인 듯했다. 회식이라는 게 원래 어느 정도는 그런 요소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지만, 이 '단결의 밤' 행사라는 건 정말이지 도가 지나쳤다.


그때 내 시선이 창문을 향했고 바깥에서 훈련병들이 지나다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들이 지나다니면서 나를 한번쯤 쳐다봐주길 바랬다. 지금의 나에겐, 그들이 나를 쳐다보고 질투해 줄지도 모른다는 설레임에서 나오는 희열 이외에는, 어떠한 쾌락도 없었다. 정말이지 어떤 즐거움도 없었던 것이다.


한번도 인생을 그런 식으로 살아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바깥에서는 자신의 행복을 과장되이 자랑하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들도 실은 자신의 삶이 재미가 없어서, 그토록 자주 주위를 둘러보면서 질투의 시선을 확인해야 했고, '나, 잘 살고 있다는 거 모두 다 알고 있지?"라는 사인을 보내야 했으며, 그 사인에 대한 응답만이 그들에 대한 격려가 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보다 남은 날짜가 많은 후임들을 골려먹으면서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이제 내가 밖에 나가서 할 일은 다시 한번 그런 종류의 삶에서 이탈하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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