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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인문학의 위기?

조회 수 1149 추천 수 0 2006.12.05 16:19:00
카이만, 군인, 말년병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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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에 관한 선언을 내무반 TV에서 보았을 때 무언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저것도 하나의 '관심'이긴 하다. 그리고 관심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다. 관심을 가지다 보면 그보다 더 진전된 의식을 가지게 될 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영역에서 하는 말이며, 그런 종류의 가능성이 현실화될 여지는 별로 없다.


대한민국에도 지적 허영이란 것이 있었던 어떤 시대에 대해, 나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내가 대한민국 평균 20대 젊은이보다 책을 덜 읽고 산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 모르는게 100% 내 잘못도 아니다. 역사가 망각된 곳에 살면서도, 게다가 현재를 기록할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도, '유구한 5천년 역사'를 자랑하며 '고아의식'에 함몰되어 있는 이 사회의 분위기 탓도 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탓'은 두번 하면 찌질해지기 때문에 여기서 한번만 하겠다.


그러니까 이런 인식의 한계로 인해 판단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내 느낌을 말하자면, 나는 인문학의 위기 선언이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이 물에 빠져 죽을까봐 걱정하는' 소리로 들린다. 내가 보기에, 한국인들의 삶은 한국 인문학보다는 훨씬 더 주체적이다. 말하자면 한국인들이 삶에 대한 태도는 이미 외국 것을 따라하는 수준을 넘어서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한국은 스웨덴의 미래다."라는 홍기빈의 테제처럼 신자유주의의 귀결인지에 대해서는 좀더 경제학적인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한국인의 삶'에 인문학의 자리는 배당되어 있지 않다. 인문학과들이 사라지는 것은 단지 그때문이다. 이전에는 선진국 대학 따라하느라 대학에 인문학부가 있었지만, 우리끼리 살아보니 그런 건 필요없더라는 식의 주체적인(?!) 결단, 그것이 인문학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조류 안에서 그 결단을 뒤집을 방법은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물론 한국에는 '한국적 삶'과 상관없이도 그 존재를 인정받는 스포츠 종목들이 있다. 하지만 그 스포츠 종목들은 올림픽 메달 획득 가능성을 통해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는다. 인문학이 이처럼 '우리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타자와의 순위경쟁(?)을 위해 존재하는 어떤 것'의 위치라도 확보할 수 있을까? 인문학에는 올림픽도 없고, 금메달도 없다. 정말 투박하고 천박하게 비유해서 어떤 상징자본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인문학에서의 금메달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일정한 인문학적 허영심이 필요할 것. 하버마스의 애제자를 국가보안법으로 구속시키는 나라에서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역시 무리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인문학의 탄생이다. 물론 한국에는 훌륭한 인문학자들이 있고, 인문학이 탄생하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 그 사람들의 존재나 업적을 송두리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 나라에 인문학자는 있어도, 인문학은 없을 수가 있다. 한국의 인문학은 위기극복이 아니라 자신의 존립이유를 증명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그게 아니라면 인문학은, 가끔 그걸 위해서 밥을 굶는 놈들까지 있는 꽤나 고약한 취미로 자리매김할 뿐이다. '꽤나 고약한 취미'. 아마 이것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국 인문학의 근미래에 배당된 운명일 것이다. 애니매이션 오타쿠와 인문학도가 동등한 지평에 서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굉장히 속편한 일이긴 하다. 인문학이 아무 것도 매개하지 않는 곳에서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P.S 강유원의 경우는 아예 적극적으로 그 '굉장히 속편한 일'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가령 이런 글을 참조하라. 그가 그런 정체성을 가지는 건 자유지만, 이따위 정체성으로 어떻게 다른 이를 무시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내가 지적했듯, 인문학이 '꽤나 고약한 취미'가 될 때엔, 애니매이션 오타쿠나 인문학도나 별반 차이가 없어지는 데도 불구하고. 왜 그는 특별히 강연을 하면서 잘난 척을 해야 하는 걸까? 굉장히 엄청난 진리를 말하고 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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