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연개소문과 주몽

조회 수 953 추천 수 0 2006.08.25 02:29:00
요샌 주몽보다 연개소문이 훨씬 더 재미있다. 내 예측이 틀린 셈이다. -_-;;


--------------------------------------------------------------------------------------------
고구려 사극 하나 없다고 내가 한탄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동시에 두 개의 고구려 사극이 방영 중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편의 드라마가 한국의 수구세력과 개혁세력의 정신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연개소문>은 한국사의 위대한 순간을 포착하려는 욕망에서 탄생했다. 연개소문의 군사적 영광의 절정은 안시성 전투로 묘사되고, (잠깐 순전히 역사적인 딴지를 걸자면 연개소문의 군사적 영광의 절정은 안시성 전투가 아니라 당나라 방효태의 대군을 몰살시킨 사수대첩이다. 나는 연개소문이 안시성 안에 있었다고 가정한 드라마 스토리를 납득할 수가 없다. 대막리지가 그렇게 작은 성에 짱박혀서 어떻게 적대국과의 전면전을 지휘했을까? 당태종 눈도 후벼파야겠고....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장군 중 하나인 설인귀랑 맞짱도 한번 떠 봐야겠고.... 뭐 그런 이유로 성에 들어갔을까?) 연개소문의 어린시절을 보여주겠다고 과거로 돌아갔지만 영양태왕과 수문제의 전쟁에 가려 아역배우 얼굴도 기억이 안 날 지경이다.

이게 수구세력이 생각하는 한국사의 재미있는 부분, 자랑스러운 부분이다. 정말로 재미있는 건 이들이 들떠서 읊조리는 '위대한 고구려'가 실제의 고구려만큼도 위대하지 않다는 거다. <연개소문>에서 고구려는 어떻게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내는가? 먼저 업수이 여김을 당하다가, "아, 고구려라는 나라는 정말 알 수가 없다!"라는 한숨섞인 탄성과 함께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정말 보기가 안쓰럽다. 이건 '작은 고추가 맵다.'류의 스토리, 전형적인 '약자 판타지'다. 고구려는 약자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수당의 지배층은 고구려가 어떤 나라인지 잘 알고 있었고, 그런만큼 총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고구려가 강하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아니, 고구려가 이리도 강했단 말이냐!" 따위의 어설픈 대사들을 내뱉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연개소문>에 등장하는 중국 황제들은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우습게 보다가 큰코다쳤네, 식의 이야기는 나중에 멋쩍어서 하는 얘기일 뿐이다. 고구려가 멸망하던 해, 당군의 마지막 총공세에 즈음하여 한 당나라 관리는 "이번에야말로 고구려는 멸망할 것입니다. 고구려 옛 말에 '900년 되던 해에, 80세 되는 장군에게 망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올해로 고구려가 900년이고 이적 장군이 80세 아닙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모든 동맹국이 멸망하고 연개소문 아들들의 내부분열로 인해 껍데기밖에 안 남은 고구려로 진격하는 그 시점에서도 그들은 그런 유언비어에 의존해야 할 만큼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수당과 고구려의 전쟁은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이 비교할 만 하다. 하지만 <연개소문>에서 묘사되는 고구려는 합스부르크 제국을 격퇴하는 스위스 정도의 위상이다.

한껏 잘난 척 하려는 의지가 실재의 모습을 따라잡지 못하는 영혼의 빈약함. 우리는 그런 왜소한 정신에선 충분히 박정희도 영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야전군 사령관에게밖에 열광하지 못한다. 그 이상의 크기를 식별할 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영웅을 야전군 사령관으로 이해하려 든다. 연개소문이든, 히딩크든, 아드보카드든 간에.

한편 <주몽>이란 드라마는 한편의 이념극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정통성 있는 국가'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다. 여기, '다물'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있다. 그 이데올로기의 광휘는 찬란하고, 그것이 실현되지 못해서 억눌린 고조선 유민들의 삶은 처참하다. 그러나 현존하는 정치세력, 부여는 저 이데올로기의 껍데기만을 실현하려는 가짜 종자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가.

주몽을 둘러싼 현실은 이러하다. 여기서부터 그는 각성하여, 시대에 걸맞는 정통성 있는 국가를 건국하기 위해 떨쳐일어날 운명이다. 물론 그 전까지는 현존하는 국가(=부여)에서 그 이념을 실현해 보려는 노력을 하기도 할 것이다. 그 노력이 실패로 끝날 때, 그의 건국은 더욱더 합당한 행위가 된다.

고구려가 다물에 관한한 급진주의자들이 만든 나라라는 주장은 재야사학계에서 흔히 있던 것이다. 따라서 <주몽>은 역사적 실재를 크게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이념을 훌륭하게 드러낸 드라마라고 평가할 수 있다. <주몽>에 투영된 것은 간단히 말하면 친일파 청산의 열망이다. 현토군 태수나 부여의 대소왕자와 같은 정치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이 드라마를 감싸고 있다. 철제무기는 근대화를 상징하고 이를 실현하는 친일파들의 노선과 주몽의 노선이 갈라질 것임을 예고한다. 친일파들은 근대화를 핑계로 자신의 행적을 변명하기 마련이니, 이에 주몽이 어찌 대응할 지 지켜볼 일이다.

언젠가 <주몽>은 주몽신화에서 가장 백미인 그 부분, 자신의 혈통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그 부분을 묘사하게 될 것인데, 그 지점이 또 흥미롭다. 해모수는 천신의 아들이 아니라 다물군의 대장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드라마에서 해모수는 실제 역사에서는 해모수의 아들인 해부루(부여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던 것이다. 이미 혈통은 이념이 되어 버렸다. 그는 다물군 대장 해모수의 아들이며, 한나라 철기군에게 몰살당한 하백 부족의 딸 유화의 아들인 것이다. 독립군 자손들이 통치하는 정통성 있는 국가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이 주몽의 저 선언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비록 <주몽>이 <연개소문>보다는 훨씬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이 이야기가 현재화 될 때에, 민족의 개념에 대한 어떠한 성찰도 제공해 주지 않는다는 점, 그들이 가령 간도땅을 되찾아야 한다는 류의 한국형 나치주의자들과 결별할 수 있는 어떤 기준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현대 한국에서 친일파 청산 문제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41 부대 주변 file [7] 하뉴녕 2007-01-18 1084
240 후임열전 (일이등병편) file 하뉴녕 2007-01-18 2110
239 후임열전 (상병편) file 하뉴녕 2007-01-18 1494
238 후임열전 (병장편) file [3] 하뉴녕 2007-01-17 1104
237 블로그에 대한 간략한 설명 하뉴녕 2007-01-17 911
236 인터내셔날가 [5] 하뉴녕 2006-12-29 1265
235 애정결핍이 평론가들에게 미치는 영향 [1] 하뉴녕 2006-12-15 944
234 질투의 시선, 시선의 질투 하뉴녕 2006-12-12 909
233 인문학의 위기? 하뉴녕 2006-12-05 1149
232 정치평론 하뉴녕 2006-11-28 1045
231 환상의 커플, 그리고 고아의식 하뉴녕 2006-11-25 1183
230 작가의 의도 하뉴녕 2006-11-21 897
229 미안해 형 하뉴녕 2006-11-07 971
228 오만과 편견의 '환상' [1] 하뉴녕 2006-10-24 867
227 연금술사 : 마음의 언어에 대해 [6] [1] 하뉴녕 2006-10-17 1491
226 나르시스의 꿈 : 한국사의 자기비하와 자기과시(2) 하뉴녕 2006-09-19 1368
225 나르시스의 꿈 : 한국사의 자기비하와 자기과시 (1) 하뉴녕 2006-09-12 1319
224 정치적 관심에 대해 [1] 하뉴녕 2006-09-05 1096
223 저자의 책임에 대해 하뉴녕 2006-08-29 979
» 연개소문과 주몽 하뉴녕 2006-08-25 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