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난쟁이 컴플렉스

조회 수 1049 추천 수 0 2007.02.02 00:15:45
물론 여자들이 외모에 대해 신경쓰는 것만큼은 안 되겠지만, 남자들은 키에 신경을 쓴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키에 대해 말할 때는 대개 2-3cm는 올려잡는게 보통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냥 내 키가 169cm라고 밝히고 다녔다. 키를 올려잡는 친구들이 혐오스러워 보여서는 아니었다. 올려봤자 170-171cm인데 그래봤자 뭐 달라지는 게 있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169cm인데요."라고 말하면 듣는 사람들이 "아,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라고 반응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런 경우엔 기분이 좋아지지만, 일부러 그걸 노리고 '사실대로' 밝히는 것도 아니다.

군대에서도 누군가 내게 키를 물으면 "신검 때도 169cm, 의무대에서도 169cm, 에누리없는 169cm."라고 답변했기 때문에, 가끔 꽤 재미있는 상황이 발생했다. 누군가 자기 키를 "170cm"라고 기술하면, 후임들은 꼭 나와 그 친구를 같이 세워보기를 좋아했다. 나는 일종의 기준점이었던 셈이다.

사실 나보다 큰 지 작은 지 눈대중으로는 잘 확인이 가지 않았던 어떤 이와 키를 재보고, 그 녀석의 키를 대충 168cm정도로 결론을 내렸을 때까지는 나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170cm라고 거듭 주장했지만 한눈에도 나보다 좀 작아 보였던 어느 이등병이 이런 가혹한 시험에 의해 대충 165cm 정도로 결론이 나고야 말았을 때, (좀 많이 높이긴 했다.) 그리고 그 이등병이 풀이 죽어버리는 순간엔 나도 당황했다. 괜히 일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녀석들의 짖궃은 '키재보기'는, 기하학적 정의를 제외한 어떤 종류의 정의에도 부합하지 않을 터였다. 키를 아무리 속여봤자 보는 이들은 자기 나름대로 상대방의 덩치를 느낀다. 작다, 좀 작다, 보통이다, 약간 크다, 크다, 따위로. 키높이 신발 등으로 상대방의 그런 감각을 속여보려고 노력한다면 그것도 인정할 수 있는 일이다. 어차피 이런 종류의 '거짓말'은, 거짓말하는 본인도 속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거짓말은 그 거짓 여부를 정밀하게 밝혀내는 것보다는 도대체 왜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를 밝히는 것이 차라리 더 합당하다.

20대 남자 평균키는 2004년 기준으로 173.6cm니까 계속 크고 있다고 해도 175cm정도일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평균보다 6cm쯤 작은 셈인데, 어떻게 보면 고작 그쯤(?) 작은 주제에 '난쟁이 컴플렉스'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있다는 게 웃기는 짬뽕일 수도 있다. 가령 반대로 평균보다 키가 6cm 큰 181cm의 사내가 "나, 키 크다."라고 말했다고 치자. 입다물고 있으면 '약간 크네.'라고 생각했을 이들도 그가 웃기다고 생각할 게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로는 나는 별로 안 작은 것일 수도 있는데, 사실 그렇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남자가) 170cm 안 되면 (장)애자"라는 관념이, 주로 171cm에서 176cm 사이의 신장을 가진 남성들 사이에 확고하게 박혀있다. 뭔가 거기서부터 끊어서 등급을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군대에서 "응, 너도 (아닌 것 같았는데) 애자였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이런 것보다는 좀더 코믹한 에피소드에 속하지만, 키가 184cm쯤 되는 내 동기 민호군은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윤형! 나는 (장래의) 내 여자친구 키가 딱 너만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면 나는 대충 "...죽여버릴거야."라고 반응하곤 했다. 그것도 처음 이삼십번 당할 때의 말이지, 이런 상황을 일 년에 걸쳐 일주일에 두번쯤 당하다보면, 나중엔 아예 무덤덤해지게 된다. 여하간 이제 여러분들은 내가 그에게 '민호타우르스'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해서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키가 170cm가 안 되는 남성치고는 그 사실에 대해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 편에 속한다. 나는 키가 173cm라고 밝힌 내 후임에 대해, (실제로 재보니 정말로 그쯤 되는 것 같았는데) 그가 그렇게 밝히기 전까지는 대충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녀석은 늘상 나와 농구를 하던 녀석이었는데 내가 그의 슟을 블락해버리는 경우도, 그가 내 슟을 블락해버리는 경우만큼이나 흔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전에는 그리 생각했더라도 내가 그의 키를 묻고, 그가 답변을 한다면, 나는 다음부터는 '(그의 키가) 나와 비슷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게 된다. '어라. 나도 저쯤되면 평균이라고 우기고 다닐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무슨 나이트에서 부킹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던 것도 아니니, 나는 내 문화적 취향을 통해, 남자의 키를 통해 그 사람의 등급을 파악하려는 여자들을 체계적으로 배제하며 살아왔다. 그런데도 이 정도이니 좀더 상황이 나쁜 사람들이 컴플렉스를 심하게 느끼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굳이 위로 혹은 충고의 말을 해야한다면, 어떤 단점도 그 자체로는, 그 단점에 대해 컴플렉스를 심하게 느끼는 것만큼 심한 단점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작은 키를 농담의 소재로까지 삼을 수 있는 남자가, 그것 때문에 매사에 소심한 남자보다는 그나마 더 매력적으로 보일 거라는 얘기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61 [펌]스타리그 역대 2회 이상 결승진출자들 [3] 하뉴녕 2007-02-07 850
260 영어 공용화론이 다시 나와야 할지도 [6] [2] 하뉴녕 2007-02-06 1111
259 이미지 file [6] 하뉴녕 2007-02-05 1157
258 키워드 통계 [1] 하뉴녕 2007-02-05 1000
257 민주노동당의 '오픈프라이머리'에 반대한다. [4] 하뉴녕 2007-02-03 1340
256 e스포츠 연봉에 대해 하뉴녕 2007-02-03 1077
255 노빠의 변신 [3] [2] 하뉴녕 2007-02-03 856
» 난쟁이 컴플렉스 하뉴녕 2007-02-02 1049
253 다음 슈퍼파이트는 [5] 하뉴녕 2007-01-31 843
252 참정연의 선택, 그리고 '유시민 효과' 하뉴녕 2007-01-30 870
251 김동렬의 최장집 비난에 대한 핀잔 [3] 하뉴녕 2007-01-29 1522
250 만 원의 음주 (1) - 완산정 편 file [5] [1] 하뉴녕 2007-01-27 1307
249 용산에서 술 얻어먹은 이야기 [5] 하뉴녕 2007-01-25 1098
248 386에 대한 냉소, 냉소 바깥 하뉴녕 2007-01-24 930
247 윤용태를 눈여겨 봐야겠다 [2] 하뉴녕 2007-01-23 955
246 송호근의 미덕과 악덕 하뉴녕 2007-01-22 1912
245 군대 꿈 하뉴녕 2007-01-21 891
244 강풀의 26년 : 정치적 열망의 비정치적 해소 하뉴녕 2007-01-20 2920
243 싫어하는 사람 [4] [1] 하뉴녕 2007-01-20 2467
242 음주의 단계 하뉴녕 2007-01-19 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