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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에 대한 냉소, 냉소 바깥

조회 수 930 추천 수 0 2007.01.24 12:54:16

나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의 내용과 방향이 민주화 세력의 기대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민주정부의 권위를 스스로 약화시키는 권력의 운영 스타일도 문제이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존중하고 실천하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386 세력을 부당하게 매도해서는 안 되겠지만, 객관적으로 권력에 참여한 운동세력과 여기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화운동 세력 간의 괴리는 굉장히 커졌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권력에 참여한 사람과 세력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노무현정부가 민주화운동세력 전부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모든 민주화 세력의 책임으로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민주개혁 세력은 독자적으로 대안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그 가능성을 확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정부와 분명한 차이를 강조하고 싶었다.
                                                                                   -최장집 교수 한겨레 인터뷰 중에서


최장집 교수의 인터뷰는 한국정치에 대한 그 누구의 평결보다도 훌륭하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사회경제적 이슈를 정치권은 다루지 않고, 그런 이슈를 피해가는 여러가지 방식으로부터 현재 정치의 파행이 도출된다는 식이다. 한나라당 집권은 안 된다고 나서고 있는 여러 사람들(노무현 정권 바깥에 있는 사람들까지)에 대해서도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그는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의 관심사는 그중 극히 일부다. 한 명의 생활인으로써 나는 한국 민주주의의 본원적 문제를 교정할 위치에 있지 않다. 노정태 말을 빌리면 방법론이 없는 것이다. 가령 나는 사회경제적 이슈가 부족해서 문제다, 라고 한마디 던질 수 있을지언정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공유하고 있는 정책적 조류를 벗어날 정책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건 매우 큰 문제다.)

그러므로, 정치에 대한 나의 발언은 '조중동 프레임' 안에서 놀게 된다. 조중동이 정치를 해석하는 방식 말이다. 그것은 내가 조중동에게 '세뇌'당한 탓도 있겠지만, 그것이 대중이 정치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대중들이 한국 사회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도대체 386이 나라를 말아먹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것밖에 없다.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거기서 시작해서 그 문제에 대한 최상의 결론을 도출하고, 거기서 나의 정치적 선택을 끌어내는 것이다.

연초에 한겨레가 386을 분류한 방식으로부터 시작해 보자. 386이란, 1) 35세부터 45세까지의 (처음 이름붙였을 때로부터 세월이 지나서 이젠 386세대의 절반은 30대가 아니다.) 세대 전체를 일컫는 말일 수도 있고, 2) 그중 진보적인 이들을 일컫는 말일 수도 있고, 3) 그중 정치권에 참여한 이들만을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다. 지금 조중동은 1)이나 2)가 나라를 말아먹었다고 매도하는 중이다. 최장집 교수의 발언은 무미건조하고 합리적인 것인데, 2)와 3)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정부가 민주화운동세력 전부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모든 민주화 세력의 책임으로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는 발언이 나온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것은 냉소에 대한 분석의 칼질이다. 그러나 이 무미건조한 말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면 좀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다. 오마이뉴스에서 손석춘도 저런 식의 말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종의 도마뱀 꼬리 자르기인 것 같다. 말하자면 실패한 것은 노무현 정권이지 민주화운동세력이 아니므로, 민주화운동세력을 중심으로 한나라당 집권저지에 총력을 기울이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장집 교수와는 달리) 한나라당은 안 된다는 약간의 의식 내지 편견이 들어가버리면, (최장집 교수가 그리 긍정적인 것 같지는 않다고 평결한) 시민사회운동진영의 독자후보론으로 달려가게 된다.

냉소는 하나의 기질이므로, 거기에 대해 옳다, 그르다를 논한다는 건 무의미하다. 노무현 정부를 옹호하고자 하는 노빠들의 반론은, 대중들의 냉소에 심정적인 근거를 제공해준다. 나에게 술을 몇번 사준 열린우리당에서 보좌관을 하고 있는 형은 "노무현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민노당의 지지율도 같이 떨어졌으므로, 노무현만 잘못했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발언엔 큰 의미는 없다. 손석춘에게 반론한 오마이뉴스 기자는 "노무현 정권만 잘못했고 민주화운동세력은 잘못한게 없다고 하는데, 그럼 시민사회단체나 민주노동당은 잘한게 있느냐."고 말한다. 이 말엔 좀 의미가 있다.

물론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케릭터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로마 황제가 '제 1시민'이라면, 그는 '제 1노빠'다. 노무현 대통령의 진정성은 (데카르트식의) '기계 속의 유령'처럼 그의 육체 안에 위치하고 있지 않다. 그의 진정성은 서프라이즈라는 사이트에, 그 사이트에 올라오는 글들에 플러스를 꾹꾹 눌러대는 사람들의 손가락에 물리적으로 현존한다. 원포인트 개헌론은 서프라이즈라는 이름의 노빠수용소에 던져진 대통령의 떡밥이다. 그는 노빠만 바라보면서 정치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원적인 회의가 있다. 물론 그것이 문제를 더 심화시키기는 했겠지만,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특이한 케릭터의 문제이기만 할까 하는. 대다수의 대중들은 이 문제에 대해 이미 결론을 내렸고, 이명박이라는 신화적인 케릭터에게로, 신화적인 선택으로 달려가버렸다. 거기에 대해 온전히 동의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들의 냉소는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

이른바 4대개혁입법이란 것을 만들 때 교수들도 많이 참여했다. 하지만 그 법안의 꼬라지는 관료들의 비웃음을 살 수준이다. 사립학교법은 그 취지가 올바름에도 불구하고 위헌적인 요소가 있어 통과된다 한들 '또' 헌법재판소로 넘어가 도루묵이 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하고, (이건 그냥 법공부하는 친구에게 들은 얘기라서 나 자신이 근거를 들어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견해는 아니다.) 과거사 진상규명법은 굳이 이영훈의 비평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도대체 이해하기 힘들게 생겨먹었다. 극히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해방 직후에 만들어진 반민특위의 기준보다 친일파의 기준이 더 폭넓다는 것을 어찌 납득할 수 있단 말인가. 박정희가 포함이 되네 안 되네 하면서 한나라당과 열우당이 힘싸움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소위 임관되고 몇 년 안되어 해방을 맞은 박정희는 친일파가 될 싹수는 보였을 망정, 반민특위 기준으로 치면 '부일배역자'에도 들지 못할 피래미였기 때문이다.

386들이 '참여'를 해서 노무현을 대선 후보로 만들고, 대통령까지 만들었을 때, 노무현 대통령 당사가 민주당과 축하를 나누자마자 바로 빠져나와 향했던 개혁당. 그 개혁당이 해산되었을 때 분개했던 사람이 나는 더 많을 줄 알았다. "백년가는 정당 만들겠다." 말한 후 일 년만에 당을 내팽개친 유시민에 분개하는 사람도 나는 더 많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리저리 찾아보면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그런 사람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하다. 물론 개혁당 사수를 주장한 노무현 지지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대개는 열린우리당 당원으로까지 흘러들어가서 자신은 여전히 참여를 하고 있다고 우기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노사모나 개혁당은 게시판 토론과 실제 구성원들이 따로 노는 모임이었다. 불현듯, 게시판에 비판 글을 올리니 반론은 안 나오고 수십 통의 '전화'가 걸려오더라는 '노사모 비주류' KDY의 경험담이 떠올랐다. 요새 하는 일과 모종의 관련이 있어 모임 하나를 취재하다보니, "아하, KDY가 (노사모) 게시판에 글을 올리든 말든, 김수민이 (개혁당) 게시판에 글을 올리든 말든, 이 사람들은 이렇게 모여서 술이나 먹고 있었구나. 이게 노사모고 개혁당이고, 열우당 진성당원이구나."라는 생각이 콱 들었다. 그런 그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내가 '노빠'라는 말을 쓸 때, 이 사람들 전부를 칭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런 식의 참여는 한계가 명백해 보였다는 것이다.

관료들이 받아들일 만한 정책을 생산해 줄 싱크탱크의 역량도 부족하고, 지식인들에게 그런 역할을 강제할 만큼 지지자들의 참여가 분별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보다 정치를 '잘'할 수는 있었을 지언정 최장집 교수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분석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약간이나마 타개할 수 있었으리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런 상황이니 노무현 정권과 민주화 운동세력을 분리해야 한다는 무미건조한 말에 일차적으로는 동의를 하지만, 기본적으로 민주화 운동세력의 역량 자체가 부족하다는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노빠들의 항변이 심정적으로 이해가 간다. 그들 중 많은 이들도 내심 깊은 곳에서 노무현 정권이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며, 잘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나름대로 원인분석도 하고 있을 것이다. 조중동이 어쩌고 하는 노정권의 '실패의 알리바이' 논법말고, 다른 원인분석 말이다. 그들의 항변은 대중의 냉소와 통하는 지점에 있고, 어느 정도는 실제와도 합치한다. 다만 냉소는 틱 던지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면, 분석은 파헤쳐진 잔해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

그래서 이 상황을 타개할 장기적인 플랜을 무엇으로 잡건 간에, 일차적으로 올해 대선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적극적 기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마도 올해는 적극적 기권과 소극적 기권을 분리해서 설명해야만 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그가 정확히 이런 용어를 썼는지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내가 들은 가장 적극적인 기권의 사례는 노정태의 것이다. 지방선거 때 나와 KDY가 4, 4, 4, 4번을 쾅쾅 찍은 후 4번이 없는 투표용지에선 1번을 찍고 있을 때, 노정태는 4번이 안 나오는 투표용지는 그냥 무기표한 상태로 집어넣었다고 한다. 만약 노회찬이나 심상정이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로 나와 TV토론에서 민주노동당 내 NL의 무분별한 준동을 까먹게 할 만큼이나 명쾌하고 뚜렷한 아젠다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올해의 나는 생애 첫번째 대선투표를 노정태를 본받아 실시할 가능성이 높다. (5년 전엔 그렇게 권영길 찍고 싶었어도 한 살 차이로 표가 없었는데!) '소극적 기권'과 행동주의적으로 분리하기 위해 투표소로 입장해서 투표용지도 받은 후, 도장을 아예 네모칸 바깥에다 찍고 집어넣을까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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