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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군대 꿈

조회 수 891 추천 수 0 2007.01.21 17:46:53


전역 후 처음으로 군대 꿈을 꿨다. 나는 일과시간이 끝나고 내무반으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행보관이 분대장들을 데리고 일일결산을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행정반 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문으로 내무반으로 들어가는 것이 병장들의 일반적인 행동패턴이다.

바로 그렇게 행동하다가, "아, 난 내일모레 집에 가잖아? 더 이상 행보관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한 순간, 다른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는 집에 갈 날짜가 지났던 것이다. 꿈 속에서도 날짜 관념은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자문하기 시작했다. 날짜가 지났으니까, 이건 꿈이야, 라는 식으로 바로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한참 동안이나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말출 복귀 후 다시 나왔는데 왜 다시 여기 들어온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혼자 고민한 것도 아니고 내 알동기 '민호타우르스' 군과 함께 고민하고 있었다. 불쌍한 민호. 내 꿈속에선 그마저 군대로 소환되어 있었다. 하긴, 나는 민호군이 없는 군생활이란 걸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

나와 함께 생활했던, 나보다 좀더 일찍 나간 말년병장들이 토로한 꿈은 '군대로 다시 끌려오는 꿈'이었다. 전역이 한두달 남은 시점, 집에서 빌빌거리는 젊은이들은 다시 병역자원으로 징발한다는 법이 통과되어 다시 끌려오는 꿈을 꾸었다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그들에겐 자신이 놀맨놀맨하고 있을 때 쏘아보는 (돈벌어다줘서 그들을 먹여살리는) '어른들'의 시선이 굉장히 부담스러웠나 보다.

한편 내 꿈은, '전역 이후, 별로 기쁜 일이 없었다.'는 단촐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말이지 '욕망'이란 대책없이 자기편의적이다. 말하자면 작년 가을 OSL 결승전에서 오영종과 이윤열이 맞붙을 때, 오영종은 임요환을 깨부신 애라 이기는 게 싫고, 이윤열이 이기면 골든마우스를 (임요환보다 먼저) 차지하게 되니까 싫더라는 어느 임요환 팬의 고백만큼이나 자기편의적이다. 그러니까, 군대와 사회를 비교할 때 나는 말년병장 때의 편안함과 이곳을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먼저나간 내 고참 중에서도 사는게 힘들어 진지하게 군대로 돌아가고 싶더라는 사람이 있다. 그럼 나는 짖궂게도  "이등병때로?"라고 묻고 싶어진다. 대다수의 병장들은 자신이 이등병 때 무슨 행동을 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갈굼을 먹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추상적으로 '힘들었다.'라는 기억만 남아있을 뿐이다. 예비역이 군대로 다시 돌아갈 방법은 부사관 지원 뿐이다. 그리고 군대에서 만난 모든 부사관은 나이보다 십년 이상 늙어보인다.

군대를 가기 전에는 수능치는 꿈을 종종 꿨다. 그때도, '어, 그러고보니 나는 대학에 입학했던 것 같아."라고 생각했고, 꿈속에서 도대체 내가 왜 다시 수능을 공부하고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때도, 나는 차라리 단촐하게 하나의 목표를 두고 매진할 수 있었던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적도 없건만) 그 시절을 갈구하는 '욕망'을 드러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에서 깨고 나면, "에잇, 다시 수능을 치느니 이렇게 사는게 낫지!"라는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 군대 꿈도 앞으로는 그런 식으로 기능할 것이다. 나는 엄살이 심해서 그렇지, 적응은 잘 한다.


덧글 : 그러고보니 상병 3호봉 때 나는 '전역하는 꿈'을 꾸었다. 친하게 지내던 4개월 후임, 6개월 후임 등을 붙들고 "야, 나 먼저 갈께. 잘들 있어."라고 말하며 눈물의 작별인사를 하는 꿈이었다. 그 꿈이야기를 듣고 모든 고참과 후임들이 경악했다. 벌써 전역을 그렇게 구체적으로 욕망할 짬밥이냐는 것이다. (나는 그때 전역이 10개월 남은 찌글한 상병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과 헤어질 땐, 눈물이 나오기는 커녕 무척 얼떨떨했다. 수십 명을 보냈던 그 행사의 주인공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나는 내일 집에가는 '개구리'치고는 꽤나 조리정연한 덕담을 후임들에게 남겼고 덕분에 우뢰와 같은 박수도 받았지만, 그 순간에도 내가 그 행사의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을 연기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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