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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누가 NL과 PD를 욕할 것인가

조회 수 1128 추천 수 0 2007.02.09 00:36:59

나름대로 자기 전문분야에서 최소한 이십 년간은 활동을 하신 '어르신'과 우연히 합석했을 때의 일이다. 이분이 얘기하기를, 민주노동당의 한계를 얘기하면서, 첫째로 민주노총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했고, 둘째로 NL과 PD의 관념적인 무한대립을 넘어설 수 없다고 했다.

타당한 얘기다. 그러나 이분이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에 이러이러한 처방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동당과 함께 할 수 없다.'라고 얘기했다면 문제가 된다.

나는 한번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노동자인 적도 없었고, 민주노총에 대해 귀동냥으로 아는 바도 거의 없으니 첫번째 논점은 생략하기로 한다. 원래 사람은 자기가 아는 문제로부터 사회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켜야 한다. 그래서 내가 NL과 PD에 대해 (심지어 그들의 이론의 기본에 대해서도)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노상 그들과 싸워 왔던 사람으로써 얘기하고자 한다. 나는 이 얘기의 대강을 그 사람 앞에서도 했다. 다행히 나를 그 자리에 불러냈던 사람이 그 '어르신'에 비해 (사회적인 지위에서) 모자라는 사람이 아니었고, 게다가 "견해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한마디'를 강요했으니 말이다. (이런 조건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냥 '예, 예.'하며 듣고만 있었을 게다.)

"일단 그 말씀은 맞는데요. 저는 그런 얘기가 어떤 의미에선 비현실적인 게 아닌가 해요. 예를 들면 '정치인들은 모두 다 부패했어!'라고 어느 냉소주의자가 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정치를 할 때 모든 정치인을 거부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같은 얘기라고 봐요. 그러니까 민주노동당 바깥에 어떤 정당을 만들었다고 쳐요. 거기에 NL과 PD가, 운동권이 안 들어올까요? 한국 사회에서 운동권 제외하고 '자발적인 시민참여세력'이 얼마나 있을까요? 들어온다면, 운동권에 대항해서 얼마나 많이 노력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람들의 논의를 이해하고, 지적으로 (그것을) 넘어선 입장에서 비판하는 것이 더 맞는 길이 아닐까요?"

...라는 식으로 얘기했다. 어투는 좀 더 온건했으니 안심하시길. 술자리 판이 깨질 정도는 아니었고, 내 요지에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동의한) 다른 '어른'이 끼어들어 이 논쟁은 지속되었다. 다시 내가 발언할 공간은 없었다. 하지만 이 발언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이다.

잠깐 사실관계를 짚고 넘어가자면, 한국 사회에서 운동권 제외한 '자발적인 시민참여세력'이 잔뜩 들어온 정당은 딱 한번 존재했다. 그게 바로 내가 가끔 언급하는 개혁당이다. 하지만 이들의 실험정치는 실패했다. 단순히 운동권이 기타 세력을 속여넘겼다 하는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유시민과 기타 정치자영업자 일당을 '운동권'으로 개념화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다.) 그 '자발적인 시민참여세력'은 개혁당 위기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탈당만 함으로써 그들이 특정정파에 대항하는 대항세력이 될 수 없음을 증명했다. 그들이 윤리적으로 그르다는 게 아니다. 그러니 그들을 운동권에 대한 대안세력으로 인정할 수가 없다는 거다.

내가 문제삼는 것은 이것이다. 누구나 한국 정치인들이 모두 썩었다고 하는 자세는, 궁극적으로 한국 정치를 지원하는 방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누구나'라는 말이 좀 심하다면, 적어도 정치에 관심이 있고 정치를 발전시킬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안다. 그런데 왜 그런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저런 관점을 가지고 있을까?

왜 사람들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양당구조는 '현실'이라고 생각하면서 (물론 지금 그 현실은 노무현 대통령의 탁월한 업적에 의해 상당부분 붕괴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전체 논지와는 큰 관련이 없다.) 민주노동당에 존재하는 NL과 PD는 '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나는 '현실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생각하는 건 '현실'을 판단하는 다양한 조건들, 그 중에서 올바른 조건들이다.

왜 사람들은, 삼성 때문에 대한민국이 먹고 사는 구조는 '현실'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래서 삼성을 거스르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현대자동차 노조에 대해서는 그렇게 강한 적개심을 드러낼까? 어째서 그들을 아작내면서 현대자동차의 '신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할까?

대답은 간단하다. 이런 비유를 들 수 있겠다. '아버지'가 있다. 그 아버지의 자식인 두 형제가 있다. 형은 17살쯤 되고, 동생은 11살쯤 된다고 치자. 그 아버지가, '자식은 때려도 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형과 동생이 싸울 땐 무조건 동생을 말리는 게 '현실'이다. 왜냐하면, 동생은 때려도 뒷탈이 없는 반면 형의 경우 자신과 육체적인 힘에서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두려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은 때리면 안 된다.'거나, '어떤 특정한 법칙을 어길 경우에만 체벌해야 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현실'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어차피 무력으로 휘어잡을 게 아니라면 양쪽 모두를 설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가나 아버지의 권위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폭력이다. 나는 그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폭력은 정당성의 측면과 적절하게 결합한 것이라야 한다. 이 역시 '당위'가 아니라 '현실'인데, 한국에선 그 점을 이해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없다. 심지어 당연히 이 사실을 알아야 할 지배계급들조차도.

NL과 PD를 쫓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는 건, 국회의원들을 쫓아낼 '인민민주주의의 힘'은 없지만 그쯤 쫓아낼 수 있는 자신의 권력은 믿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권력도 싫어하고, 그런 권력을 믿는 사람들이 신뢰하는 인민민주주의도 싫어한다. 그것은 필경 권력을 잡아봤자 죽창으로 지주를 찔러죽이는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로 가기 마련이다.

차라리 NL과 PD의 공통적인 지반, 바로 그 부분이 한국의 수준이며, 그 수준이 성장해봤자 현실정치권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식의 냉소주의는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NL과 PD의 소모적인 대립이 그 공통적인 지반에의 의해를 가로막고 있고, 어떤 진정한 운동세력 혹은 민중이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을 거라는 섣부른 '신당주의'는 우습다. 나는 언제나 그 사이를 오가고 있지만, 냉소주의자가 아니라면, 게다가 혁명주의자가 아니라면 모든 인간은 그 체제 안에서 그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명제를 강요받는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진지하게 혁명을 꿈꾸지도 않는 많은 사람들이 혁명주의적인 에토스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NL과 PD를 싫어한다. 386 욕하는 스물 다섯살 젊은이가 그들을 좋아할 리가 없잖은가. 그러나 그들은 내가 처한 정치현실이다. 만일 내가 정치참여를 한다면, 결국 그 사람들과 논쟁하며, 토론하며 무언가를 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영원히 독야청청할 것을 권한다. 차라리 NL이나 PD와 운동할지언정 그런 사람과는 운동할 수가 없으니.




수하이

2007.02.10 02:16:04
*.235.229.60

제대 축하합니다!자주 들르는데 댓글적을 일은 없었네요!근데 요즘 PD라고 하면 어디까지인지,무슨내용을 가지고 이야기하는건지 짐작하기가 어려워서요.혹 운동권 전반을 이야기하는 건가요?

하뉴녕

2007.02.13 01:04:08
*.148.250.67

거의 그렇죠. 대개 운동권은 NL아니면 PD라고 하니까. 저도 학정조에 속해본 적은 없어서, 그 사람들에 대해 정의내리라고 하면 못 내립니다. 만일 내린다 한들, 그 사람들이 동의할 것 같지도 않고.

jiva

2007.02.10 13:47:12
*.194.25.114

아아. 전에 미디어몹에서 한번 NL과 PD에 대해 심한 냉소를 날린 적이 있었습니다. 한윤형님 글의 많은 부분에 동의합니다만, 의견 차이가 있는 부분도 있군요. 한번 트랙백을 걸어볼까 하는데 괜찮을런지요?

하뉴녕

2007.02.13 01:03:23
*.148.250.67

네. 저야 감사하죠. ^^

jiva

2007.02.13 09:04:54
*.99.25.34

감사하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지는군요.
혹시 저 낚였다거나 그런건 아닌거겠죠? ㅎㅎ

하뉴녕

2007.02.15 01:01:15
*.148.250.67

그런게 아니라 대개 트랙백이 없어서....ㅎㅎ 설마 트랙백을 안 거실 생각은 아니겠죠? -_-;;;

jiva

2007.02.15 10:45:27
*.99.25.34

하하하..
트랙백을 걸려고 하니 은근히 사전 합의봐야할 개념들도 좀 있고, 논리구조가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어 머뭇거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트랙백을 안걸 수 없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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