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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달리기와 술

조회 수 850 추천 수 0 2007.04.04 03:46:36
달리기와 음주는 무언가 비슷한 데가 있는 것 같다.

나는 군대에서 거의 달리기 매니아가 되어 버렸는데, 사실 알코홀릭을 술 못 먹게 하고 격리된 공간에 쳐넣으면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있다. 물고기자리는 약물 중독자의 별자리라지 않은가. 그들이 할 약물이 없으면, 도대체 뭘 하겠는가.

군대갈 때 나는 꽤 포동포동한 상태였으니까, 사실 처음에는 살빼려고 뛰긴 했다. 그렇지만 그 후엔, 스트레스가 내 달리기의 주된 원인이었다. 검열준비하다가 되도록 일찍 끝내고 밤에 연병장에 올라가서 20바퀴를 뛰고...... 막 그랬다.

달리기를 하면 나중엔 뭔가 쾌감이 온다. 그때는 그게 어지간히도 싫었더랬다. 맥주 500cc 한잔이면 나올 것 같은 이 쥐꼬리같은 쾌감을 위해 내가 이렇게 달려야 한다는 게. 하지만 그래도 나는 달리고 있었다.

병장 때 츠지 하토나리와 공지영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보았는데, 나는 이 소설을 굉장히 우습게 봤지만, 그 어이없는 관계의 연인들이 달리기를 매개로 사랑을 회복한다는 것을 보곤 샘이 나는 구석이 없지 않았다. 연인 관계가 샘이 났다는게 아니라, 그들은 이노카시라 공원과 일산 호수공원에서 8km를 뛰어다닐 수 있는 체력이 있는데 나는 그런게 없다는게 샘이 났다는 것이다.

그날부터 내 목표는 연병장 32바퀴가 되었다. 한바퀴를 250m 계산하면, (나는 굉장히 넓게 뛰는 편이었다.) 32바퀴가 8km였던 것이다. 그 목표는 성취하기는 했으되, 그 기간이 길지는 않다. 대략 병장 3호봉에서 4호봉 사이까지는 실제로 그 정도로 뛰고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너무 추워져서 뛸 수가 없었다.

술 마실때 폭음하는 것처럼 나는 달릴 때에도 체력 이상으로 달리는 편이다. 장이 축나야 음주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폐가 적당히 아파오지 않으면 달리기가 만족스럽지 않다. 사실 나는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어 호흡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폐에 부담이 많이 가는 편이다. 아무래도 남들처럼 호흡조절을 잘 하고 뛸 수는 없다. 그래서 실제로 무리하게 뛰는 일도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아직 내 체력이 남아 있을 때도 너 무리하게 뛰는 거 아니냐고, 그러다가 쓰러진다고 충고하곤 했다. 입으로 숨을 쉬며 뛰고 있었으니까.

전역을 하고 나서는, 한동안 달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술 마시지 않는 날은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 가서 20바퀴 정도는 돌고 오는 날들이 있었다. (이렇게 뛰면 한 4km는 나오는 것 같다.) 음주와 달리기는 똑같이 자학이다. 물론 인공적인 것이 더 극단적인 것이라 음주는 쾌락의 효용으로도, 자학의 강도로도 달리기를 압도한다. 하지만 나는 평생 술마시고 싶은 사람이고, 젊었을 때 몇 년 술먹다가 술 못 먹는 인생 수십 년을 살 걸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는 사람이라, 간간히 달리기를 섞어줘야만 한다. 물론 뱃살도 관리해야 하고. 그리고 가끔은, 아주 가끔은, 어느 우울한 날에, 정말이지 술처럼 좋은 게 달리기라고 느낄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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