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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글을 쓰는 이유?

조회 수 2766 추천 수 0 2011.01.02 00:26:07

곧 시장에 풀리게 될 글들을 대충 훑어보다 "지금껏 써온 것들보단 좀 낫네."라는 생각을 하다가, 스스로 왜 이렇게 글쓰기에 집착하는지에 대해 잠깐 고민해보았다.


나는 너무 어린 나이에 인터넷을 통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결과 질이 나쁜 얘기들을 한가득 넷상에 싸질러 놓고 말았다. 이럴 때 해야 할 일은 결국 '모자란 나'의 아이디를 어느 순간 지워버리고 '새로운 나'로 돌아오는 것이었지만, - 인터넷에선 이 일을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이들도 많다. -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여건이 닥쳐왔다고 볼 수도 있겠고, 성격이 그러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게다.


어쨌든 내뱉은 얘기들을 주워담을 수는 없었기에, 나는 고민을 해서 진전된 생각들을 다시 내뱉는 길을 택하고야 말았다. 누구도 나 따위에게 AS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서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서 과거의 글쓰기의 모자람을 현재의 글쓰기를 통해 끝없이 타협하게 되었고, 튀는 걸 좋아하긴커녕 묻어가는 걸 좋아하는 천성이었음에도 말만은 두서없이 많았던 관계로 그 타협은 끝없이 이어지게 되었다. 어제 오늘 올린 글들도 곧 부끄러움으로 닥쳐오겠지. 악순환의 연쇄고리다.


하나의 이유가 더 있다면 솔직하고 싶었달까. 나는 대개 나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을 위해 글을 쓰고 있다고 여겼지만, 어쩌면 너무 솔직하게 그것들의 한계와 실태를 폭로하여 그것들의 몰락에 일조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쥐뿔도 없는 주제에 있는 척 뺑끼를 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거품을 정리하고 있는 것만 추려서 보여주면 다른 이와 함께 고민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물론 함께 고민할 사람들 따위는 나타나지 않았고 (큰틀에서 그렇단 얘기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서술과 묘사는 점점 더 적나라해졌다.


내 정세판단이 진실이라면 내가 글쓰기를 하는 건 더 이상 사회에 무가치한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쓰기의 무력함을 폭로하는 것이 (언젠가) 글쓰기의 힘을 복원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낭만주의적이라고? 아니, 사실은 내 심성 중 오직 그 부분만이 '비현실적'인 것일 뿐.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라를 걱정하는 진보든 제 삶을 걱정하는 보수든 대개 자기 보고 싶은 것만 골라내어 구성한 세상에서 꿈을 꾸고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에겐 글쓰기가 필요없거나, 있다 해도 동어반복의 영겁회귀다. 하지만 나는 이 엇나간 결합구조 때문에 고장난 기계가 되어 끝없이 누군가의 몰락을 증언하고 있다. 또 하나의 악순환의 연쇄고리.


그러나 영원히 과거의 자신이나 망해가는 판을 감당하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 자신의 삶에서 해결해야할 문제들도 산적해있기 때문에, 이제는 글쓰기 자체를 현저하게 줄여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 시기는 아마 지금 조금이라도 신경쓰는 일들이 완료되는 그 시점이겠지. 그것들이 끝나고, 그 '구조조정'을 실행하게 되었을 때야 아마도 나의 지옥같은 2010년은 끝나게 되는 것이리라. 내 인생의 어떤 십년의 고난도 함께.


이재훈

2011.01.02 02:13:54
*.71.167.208

"'모자란 나'에서 '새로운 나'로 돌아오는 것"은 아마 '모자란 나'에서 '자아가 더 분열되면서 형성되는 주체적인 나'가 되는 과정의 산물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님이 '글쓰기를 현저하게 줄여야되는' 그 시점이 오기가 쉽지 않다 생각하면,계속 윤형님의 글을 볼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어도 되겠군요..^^;

Ach

2011.01.02 00:44:55
*.124.175.196

"비밀글입니다."

:

andante

2011.01.04 05:59:03
*.36.61.211

그제, 이글을 읽고 뭔 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다시 읽었는데 역시 가슴 한켠이 아픕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어디 서 계시든 뭘 하시든 윤형님이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hoon

2011.01.18 15:10:08
*.66.47.12

열심히 보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너무 절망치 말고 사시기 바랍니다. 당신 글쓰기의 능력을 너무 결

과론적으로 보지 말고 역사에 흐름에 맡기는 위인이 되어 보시길. 윤형씨, 당신은 그런 위인이 될만

한 성숙과 자질을 갖춘거 같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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