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경제학자 이준구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걱정이 앞서는 대운하 산업"이란 글을 올렸다고 한다. 그의 홈페이지는 이미 다운되었고 프레시안 뉴스에서 그 글을 확인 할 수 있다. 장문이지만 군더더기 없이 명쾌한 글이다.


긴 글을 읽을 인내심이 부족함이 이들을 위해 논지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선 승리는 '대운하' 공약에 대한 추인이라고 볼 수 없다. 둘째, 한 후보의 캠프가 만든 타당성 평가 보고서는 신빙성이 없고, 사실 비용-편익 분석 자체가 정부가 주도해서 이루어질 경우 많은 왜곡의 여지가 있다. (이 사실을 지적하면서 경부고속철사업과 새만금사업의 타당성 평가 과정에 참여했던 학자 본인의 경험이 언급되었다.) 셋째, 대운하가 타당성이 있다는 주장은 환경파괴라는 외부효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넷째, 물류 운송에서 비용보다 시간이 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 실정에서 매우 느리고 운임이 저렴한 대운하의 경제적 타당성 역시 기업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다섯째, 민자유치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경제적 타당성 평가와 전혀 관련이 없다. 왜냐하면 기업은 환경파괴라는 사회적 손실에 대해 전혀 계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대운하 건설과 그에 부산되는 개발을 통해 전국적으로 지가가 상승하게 되면 국민경제에 큰 혼란이 오게 될 것이다.


그의 글에 굳이 덧붙일 말이 있다면 한마디 정도밖에 없다. 과거 민자유치를 활용한 국책 개발사업에서 정부는 기업의 손실을 보전해주겠다는 정책을 취해왔고, 그것을 통해 기업들은 큰 돈을 벌어왔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런 식의 정부 보증이 없이는 대운하 산업에 참여하겠다는 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손실이 발생할 땐 세금으로 매꾸어야 하니 민자유치와 타당성을 연결짓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사소한 팩트를 추가한다면, 그의 글에서는 대운하 산업에 찬성하거나 심정적으로 동의하는 모든 견해에 대한 논파가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준구의 윤리적인 외침과 그에 뒤따를 지도 모르는 (주류) 경제학자들의 권고가 이 논쟁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의 의사결정에서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앙정치의 영역에서는, 거의 제로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준구 본인이 간파하고 있듯이 이 정책에 대한 심정적 지지자는 지역 개발의 투기 효과를 기대하는 지역민들이다. 이명박 정권의 지지자라고 해서 대운하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서울 사람들, 특히 강남 사람들은 대운하에 찬성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강남 사람들은 전국적으로 땅값이 상승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타지역민들에게 누리고 있는 상대적 수탈감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수구언론 3인방 조중동 역시 굳이 대운하 정책에 찬성해야 할 이유는 없다. 사실 조중동의 심리는 대선 이전부터 이명박은 지지하되 대운하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던진다는 것이었다.


지지하는 이들과 반대하는 이들의 구도로만 본다면 대운하 논쟁의 정치지형도는 행정수도 이전 논쟁 때와 흡사하다. (이준구는 이 점 역시 간파하고 있다.) 다만 행정수도 이전은 국토균형발전이라는 개혁적 명분을 업고 있었기 때문에 개혁적 시민들의 (조금은 과잉된) 지지를 받았고 헌법재판소의 제재를 받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특히나 한국사회에선, 이런 유물론적인 논쟁에서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오히려 여기서 관전포인트는 조중동의 태도일 것이다. 조중동은 강남의 심리를 반영하여 이명박 정권의 대운하 정책에 강하게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 정권과의 밀월관계를 계속해서 추구할 것인가. 세 신문사 모두 각각의 선택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만일 조중동이 전자의 선택을 내린다면, 이준구 등이 활약할 수 있는 공간도 크게 열리는 셈이다. 그러므로 이 정국에서 주요한 변수는 조중동의 판단이고 경제학자 이준구의 타당한 조언은 종속변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슬프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준구의 행동엔 의미가 없는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일단 아무런 효력이 없다 하더라도 그는 학자적 양심에 따라 사회문제에 정확한 발언을 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리고 만일 그의 외침이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 사실 자체가 한국의 지성계가 사실상 기능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한 경종이 될 수 있다. 사실 그러한 징후는 지난 몇 년간 반복해서 나타났는데, 한국의 지식인들은 그 사실에 대해 심도있는 성찰을 하지 못했다. 자기 전공분야의 일이 아니라고 서로에게 무관심했던 탓이다. 한미FTA에 조심스럽게 찬성했던 이 미시경제학자마저 명확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해야 했던 한 한심한 정책에 대해서조차 사람들이 경제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그 사실 자체를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준구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이처럼 큰 문제를 던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비록 지식인들이 종속변수이고 언론이 주변수라 하더라도, 이준구 등의 판단은 조중동의 판단에 어느 정도는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희망사항이다.


사실 이명박 정권은 참여정부의 경제노선을 그보다 더 과격하게, 실무적으로 더 솜씨좋게 처리하겠다고 나선 '참여정부 2기'다. 이택광이 적절하게
지적한 것처럼 그들은 정통적인 보수주의자들도 아니며 따라서 보수언론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이 우파 포퓰리스트들의 정권과 보수언론이 불화하는 상황이 그나마 우리가 뚫고 들어갈 수 있는 희망의 빈틈일 것인데,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노선이 승리하게 된다면 걱정이 더 커질 것 같다.





xenogan

2008.01.16 08:46:41
*.168.180.151

어제 말씀드렸다시피, 경제학자로서의 이준구의 무게와 이명박 정부의 노선에서 나오는 긴장관계를 간과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외는 저랑 견해가 같다고 봐도 무방..) 학현학파의 수장이 저렇게 나서는 건, 어떻게 보면 학현학파 전체가 들고일어섰다고 해석해야 할는지도 모르는 사건입니다. 학현학파와 대립각을 세우는 '경제대통령'이 과연 더 이상 경제대통령일 수 있을까요. 이 사건은 이명박의 노선을 놓고 벌어지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과연 이명박은 제대로 된 경제대통령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사건이 될 거라는 이야기지요. 다시 말하자면, 이명박이 최장집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있지만, 이준구의 의견은 그렇게 쉽게 무시하기 어려울 거라는 얘깁니다. 게다가 정운찬 교수의 총리 영입설마저 나도는 판에 말입니다.

추이는, 조금 더 두고 지켜봐야겠지만 바로 그 이준구 교수의 개입으로 사태가 엄청나게 확장될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어떻게 될는지는 역시 더 지켜봐야만 하겠지요. 언제나 답을 주는 것은 시간, 시간일 뿐이니까요..ㅎ

하뉴녕

2008.01.16 08:51:07
*.176.49.134

흠 텍스트의 세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겐 당연히 그게 명확하겠지만, 애초에 이명박의 '경제'가 '경제'도 아니었던만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행동엔 별 차이가 없을 거라는 슬픈 예감이 드는 것이지요. ;

ghistory

2008.01.16 08:58:16
*.140.16.98

한윤형/ 이명박 행정부가 한반도대운하 건설사업의 만간자본 유치방식으로 채택하려 하는 방식은 BTO방식인데, 이는 사기업체가 먼저 자기 비용으로 시설을 건설한 뒤 국가로부터 비용을 나누어 받는 BTL방식하고는 다르다고는 합니다. BTO방식은 시설을 건설한 다음에 사기업이 일정 기간 동안 그를 운영하여 수익을 챙기고 난 다음에 그 소유권을 국가에 이전하는 방식이죠. BTO방식은 도로건설에 많이 이용하고 BTL방식은 건물건설에 많이 이용하는데, 문제는 운하가 과연 이익을 낼 수 있느냐는 것이겠지요.

하뉴녕

2008.01.16 08:59:35
*.176.49.134

흠 방식 이름까진 몰랐는데, 하여간 그 방식을 바꾸어달라고 기업들이 요구하고 있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습니다.

ghistory

2008.01.16 09:05:59
*.140.16.98

한윤형/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BTL방식으로 건설한다면 시공사는 이익을 확실히 보장받지만 BTO방식으로 하는 경우에는 지금까지 종종 운영수입이 비용에 미달하는 경우가 허다했거든요.

한편 그러면 국가는 미리 체결한 협약에 따라서 또 그 손실을 보전해 주기도 하고... 그래서 민간자본을 유치한 건설공사는 국가예산을 절약한다는 구실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예산은 예산대로 낭비하고 이용자들에게도 비싼 요금을 물리는 이중의 낭비인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ghistory

2008.01.16 09:08:12
*.140.16.98

BTL방식은 기획예산처가 노무현 집권기에 엄청나게 적용을 확대시켰고 국립대학교들의 기숙사 신축이 그 주요한 시범적 적용 사례들인데(사립대학교들도 따라하고 있음), 그 결과 기숙사 입주비용의 대폭 인상이 거의 확실하다고 하는군요.

라루

2008.01.16 13:20:48
*.183.41.186

BTL과 BTO의 차이는 국가가 운영해서 돈 받아다 주느냐, 아니면 기업이 직접 운영해서 돈받느냐 의 차이일뿐 입니다. BTL이든 BTO이든 국민 입장에서는 그 비용을 세금으로 내지 않는대신 원래 세금으로 나갈 돈 +이자+기업 수익까지 지불해 줘야 한다는 점은 같죠. 어쨌든 부담은 더 커지죠 전형적인 조삼모사 라고나 할까요? 다만 수익자 부담 방식이기 때문에 좀더 공정한 비용 부담이 된다는 점은 세금으로 투자하는 것과 다르겠네요.

오히려 대운하 같이 대규모의 개발 사업이고 여러가지 부수적인 개발 이익(이게 핵심이겠죠)과 다양한 수익 사업이 가능한 사업에서는 기업들은 BTO를 원하겠죠. BTO방식일 경우 빨리 본전 뽑고, 최대한 수익 내려고 하는 기업들에 의해 운하 이용료는 엄청 비싸지겠죠,(현재의 민자 고속도로 통행료 요금처럼). 더욱이 비싼 운하 요금에 맞추어 전반적으로 교통 요금이 상승할 유인도 있죠.. BTO라고 수익 못 본다는건 이명박의 "친기업"을 너무 만만히 보시는 시각인듯 합니다. 이명박은 기업들의 초과 수익 까지 확실히 챙겨 줄겁니다. 운하 이용 촉진법 같은 걸 제정 해서 라도 말이죠.

쓰바

2008.01.16 12:16:46
*.46.73.129

이영훈 교수와 경제학자 이준구의 차이는 뭐요?

하뉴녕

2008.01.16 12:18:07
*.176.49.134

어떻게 쓰기를 원하세요? 요새 쓰는 방식이 변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만. 요새 생각으로는 '교수'라는 직함을 부르는 것보다 '학자'라는 정체성을 호명하는 것이 더 존중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루

2008.01.16 13:34:27
*.183.41.186

이준구 사태를 보며 그의 글 자체보다 더 재미있는건 그에 대한 반응 입니다. 대중들의 매우 열광적인 반응 그에 놀란 언론들의 호들갑이죠. 조선일보는 아예 "대운하 비판 이준구 교수는 누구인가?" 라는 섹시한 제목의 기사까지 썼더랍니다.(조선일보의 특기인 뒷조사, 사상검증 들어갈 수도 있다는 제스츄어 인듯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열악한 한국의 지식인 저널리즘의 실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가짜"가 판을 치는 이곳에 "진짜"처럼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열광 하는 거겠죠. 하지만 그가 진짜 "진짜"라면 역선택(그라샴의 법칙과 유사)에 의해 곧 저널리즘의 시장에서 아웃 할겁니다. 그의 성향상 이곳을 견뎌낼 수가 없겠죠.. 한국의 폴 크루그만이 될 자질은 있지만 한국의 풍토 자체가 폴 크루그만을 용납 하지 않죠..

또 하나 재미 있는것은 정치에서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현실의 처참함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운하 라는 거대한 (경제로 위장한 정치적)사업에 대해 야당인 신당이나 민노당이 견제를 해줘야 하는데 둘다 지금 자신의 앞가림 조차 못하고 있어서 대운하 까지 신경쓸 겨를 조차 없는 상황이죠. 오죽하면 이준구 교수가 총대를 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하뉴녕

2008.01.16 13:33:12
*.176.49.134

흠, 이쯤되면 정말 '사태'라고 부를 수가 있겠군요. ^^;; 말씀하신 바에 대개 동감합니다.

2008.01.16 15:52:35
*.239.93.194

근데 윤형님 인강은 뭐 듣고 계시는건가요?? 궁금하네열

하뉴녕

2008.01.16 16:30:11
*.176.49.134

그것은......
비~밀입니다-!

ghistory

2008.01.17 02:07:08
*.140.16.98

라루/ 아직까지는 화물운송업체들이 큰 매력을 못 느끼고 있다고 <한겨레> 여론조사가 보여주더군요. 좀 두고볼 일이 아닐까 합니다만.

ghistory

2008.01.17 02:08:37
*.140.16.98

라루/ 운하가 도로보다도 느린데 가격마저 비싸면 누가 선뜻 이용하려 하겠는지요?

xonamjoong

2008.01.17 11:22:11
*.46.199.43

글도 잘 읽었고, 댓글들도 잘 봤습니다. 꽤나 심도 있는 이야기들이 오갔네요.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다만 이번에 이준구 교수님의 글을 읽고 들은 생각은 건설적 비판이나 생각은 매스미디어가 외면하더라도 널리 유통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였습니다. 때문에 저도 제 블로그에 관련된 글도 쓰게 되었고요.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이 겉으로 드러나 어떤 결론을 잘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61 [펌] 딴지일보 주대환 인터뷰 [2] 하뉴녕 2008-01-19 1106
560 외국의 맥락과 작가의 창작 [6] 하뉴녕 2008-01-19 886
559 [씨네21/유토디토] 벗어던져야 할 ‘개혁 로망스’ [3] 하뉴녕 2008-01-18 1049
558 지역주의 뒤집어보기 하뉴녕 2008-01-17 2551
557 시간을 달리고 싶은 소년 [3] 하뉴녕 2008-01-16 851
» 경제학자 이준구의 대운하 비판과 논쟁의 향방 [16] [2] 하뉴녕 2008-01-16 890
555 컴퓨터가 깔끔하다-. [6] 하뉴녕 2008-01-16 788
554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 로망이 아닌, 어떤 몸부림 file [1] 하뉴녕 2008-01-14 765
553 고민 [32] 하뉴녕 2008-01-12 939
552 정신줄을 놓고 있다-. [2] 하뉴녕 2008-01-12 784
551 오랜만의 영화 관람, 그리고 특이한 키워드 [12] 하뉴녕 2008-01-10 835
550 [펌] 정치적 소수자의 탄생, 노정태 2003/12/30 [2] [1] 하뉴녕 2008-01-10 889
549 5만원 어치 책을 어떤 것으로 사야 할까? [4] 하뉴녕 2008-01-09 872
548 손석춘의 NL 운동권에 대한 감상적 시선에 대하여 [9] 하뉴녕 2008-01-07 981
547 이번주 씨네21에... [13] [1] 하뉴녕 2008-01-07 858
546 [펌] 김택용의 대 저그전 수비력 / FELIX 하뉴녕 2008-01-06 1249
545 이윤열 vs마재윤 : 듀얼토너먼트 E조 승자전 08.01.04 [8] 하뉴녕 2008-01-05 934
544 보급병의 추억 [20] 하뉴녕 2008-01-05 2684
543 정치적 잡담 [7] 하뉴녕 2008-01-04 898
542 미유키 : 아다치 미츠루식 소년 만화의 출발점 file [10] 하뉴녕 2008-01-04 3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