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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보급병의 추억

조회 수 2684 추천 수 0 2008.01.05 10:32:30

연말이었다. 부서에서 내년에 사용할 서류철을 오늘까지 만들어야 했다. 서류철에 단면 접착 아스테지를 활용해서 A4 용지에서 출력하고 자른 종이를 덧대어 붙여야 했다. 말년병장과 이등병, 그리고 내가 있었다. 말년병장은 계속 투덜대고 있었고, 이등병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버벅댔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야! 넌 그냥 저기가서 찌그러져 있어!”


그러자 “예!” 하며 그 이등병이 찌그러지기 위해 저기로 갔다. 말년병장은 대노해서 외쳤다.


“아 정말 뭐 저딴 게 다 있어?? 빨리 이리로 안 와??”


그 꼴을 보며 나는 ‘저 두 사람은 어차피 전력이 안 되겠군.’이라고 생각했다. 커터칼을 들고 종이를 자르는데 종이가 이상하게 잘리지 않았다. ‘이건 뭐야? A4지가 아니라 골판지라도 되나?’



깨어났다. 꿈이었다. 시간은 오전 6시. 경험을 반영하고 있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었다. 전역한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왜 이런 꿈을 꾸었는지 의아했다. 한참 생각하다보니, 그제야 어제 술을 마시면서 나눴던 얘기들이 떠올랐다. 금융자본과 금융업계의 파생상품을 규탄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가, 경제학에 무지한 나는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뭐야? 결국 방법이 더 복잡하다 뿐이지 보급병이 실셈과 상관없이 장부를 관리하는 거랑 별 차이도 없잖아?’ 결국 모든 사태를 군대 경험으로 환원시키는 예비역의 심성이 그를 꿈속에서 왕년의 군수과로 돌려보낸 것이다.



얘기하기도 어려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군수과 계원은 세 명이었다. 내 사수는 자신은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내게는 체계적으로 일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지만, 그의 사고구조 자체가 체계적이지 않았다. 나는 업무 쪽보다는 개념이 없다는 이유로 중대의 모든 고참에게 갈굼을 먹는 처지였고, 그래서 일병이 끝날 무렵까지 지극히 불행했다. 일병 5호봉쯤이 되자 고참들이 “그래도 네가 제일 고생했다.”며 나를 풀어주기 시작했다. 상병을 달자 아버지 군번이었던 군수과 왕고가 군대를 떠났고, 나는 군수과 막내를 그제야 벗어나면서 지원과 부분대장이 되었다. 그 다음부터가 사실상 보급병으로서의 나의 시대였다. 군수과 왕고는 기계류 물품 담당(7,9종)이었고 왕고가 된 다음엔 총기/탄약(5종)을 다루었기 때문에, 의식주와 관련된 모든 물품을 다루는 (1,2,4,8종) 내 업무를 터치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업무가 지독히도 많기는 했지만.



규정의 범위를 벗어나는 절차는 모두 내가 일하기 편하게, 그리고 물건을 관리하기 편하게 바꾸었다. 중대 계원들에게 내가 새로 만든 양식을 보내주고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내 군생활은 장부상의 물건과 실재하는 물건 사이의 간극을 지우려는 사투로 점철되어 있다. 전산 재산대장, 수작업 재산대장, 그리고 실셈이 다 달랐다. 대대의 전산 재산대장과 중대의 전산 재산대장도 일치하지 않았다. "아니, 이 미친 놈들은 왜 이걸 애초에 같은 서버로 연동하지 않은 거야? 밑에서 물건 떼먹기 쉽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거야?" 성질이 난 나는 이렇게 외쳐댔다. 엄밀히 따지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이 네 가지 뿐만이 아니었다. 중대에서 ‘이게 실셈’이라며 내려보낸 숫자마저 신뢰할 수 없었다. 지난 번에 맞춘 물건과 경위를 생각해 볼 때 도저히 그 결과를 믿을 수가 없어서 재검을 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나는 중대 계원과 그 뒤에 있는 중대 행정보급관들을 길들여(?) 나갔다. 그 행보관들 중에는 우리 중대 행보관들도 있었다. 중대 후임들은 경악했다. 자기들은 행보관에게 한번도 “안 된다.”는 말을 해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대대에서 내가 일하는 방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실상 군수보급관 업무를 해야 했던 급양관리관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 고작 하사였다. 상사인 행보관들에 비해 짬이 비교가 되지 않았던 그는 나를 비호해 주기는커녕 나를 팔아가며 자신의 신념을 지켜야 했다. “우리 계원은... 전자과장이 달래도 라면 하나 주지 않을 그런 녀석입니다.” 그건 사실이 아니었지만 하여간 그는 그렇게 말했다. 장교인 군수과장들은 (몇번 바뀌엇다.) 업무에 무심하거나, 물건을 많이 들고 오면 일을 잘 하는 줄로 알고 좋아했다. 물론 나는 결코 물건을 많이 주문하지 않았고, 우리 대대의 인가산정 기준에 맞춰 필요한 물품만을 상급부대에 요구했다.



그런 나도 언제나 가짜 문서들을 남발했다. 문서와 실셈이 차이가 나면 맞춰야 했고, 어떤 소모성 물품들의 경우는 사실상 측정하기가 불가능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가령 1종 물품(식료품)이 그러했다. 병장 때 육군 중령이 검열을 나와서 1종 재산대장을 펼쳐놓고 나보고 왜 조미료 소비량을 매일 기록하지 않느냐고 따진 적이 있었는데, 정말이지 순간적으로 “니가 해봐 개XX야!!”라고 외치며 서류더미를 던져버리고 싶은 욕망을 참아야 했다. 그 짓을 하려면 나는 하루 종일 1종 창고에 책상 하나 두고 앉아 서류를 들쑤시고 있던가, 취사병들을 괴롭혀야 했다. 하지만 나는 사용한 물품량을 적어내라고 하면 kg과 g단위를 헷갈려서 적어내는 취사병들을 괴롭힐 수가 없었다.



그런 업무는 불가능했다. 나는 단지 1종계원만이 아니라, 1,2,4,8종 계원이었다. 그것도 서류만을 관리하는 계원이 아니라, 직접 물건을 들여오는 계원. 진지공사가 시작되면 내 전투복에선 시멘트 냄새가 났고, 부식을 나르는 날에는 온 몸에서 김치 냄새가 진동했다. 겨울에는 겨우내 쓸 연탄을 한번에 들여와야 했다. 원래는 나는 그런 일이나 하고, 서류관리는 모두 간부가 하게 되어 있었다. 그저 규정상 그렇다는 말이다.



원칙주의자가 될 수도 없었지만, 애초에 나 자신이 원칙주의자도 아니었다. 중대에 정말 원칙주의자라고 불릴 만한 후임이 하나 있었는데, 너무 꼴통 취급받는 게 안타까워 종종 비호해 주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그런 친구들이 꼴통으로, 겨우 나같은 위인이 원칙주의자로 불리는 가보다 싶었다. 사실 나는 군대의 규정이 아니라 나 자신의 가치관에 의해 판단했다. 언젠가 수송관이 직접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상사보다도 더 높다는 준위였다. “너 FM (원래는 야전교범 Field Manual의 준말. ‘규정대로’라는 의미를 지닌 군대 속어)이라며? 근데 수송부에 라면 좀 주라. 수송관은 안 먹어. 정말이야. 근데 애들이 고생하잖아. 한두박스씩 내려줘. 겨울에 운행 갔다 오면 난로에서 하나씩 끓여먹게.” 나는 직접 새파란 계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은 먹지 않는다는 점을 주지시킨 수송관에게 감사하며 내가 융통할 수 있는 한에서 라면을 내려보냈다. 만일 내가 원칙주의자라면, “라면은 규정에 의해 월에 4회씩, 전 장병에게 일과시간 이후에 지급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부서에 따로 내리도록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했어야 할 것이다.



손이 많이 갔지만 후식 불출은 특히 내가 신경 쓴 부분이었다. 월초에 후식 불출계획을 각 중대에 내려주고 대개 그 순서에 따라 불출했다. 모든 장병들이 오늘 저녁에는 라면이 나온다, 쌀국수가 나온다, 마스터가 나온다라는 사실을 예측할 수 있었다. 말년에는 게을러져서 불출계획 자체가 월 중순이 되어서야 지급되고 월말에 거의 매일같이 후식을 먹였던 적도 있었지만, 어쨌든 계획대로 진행된다는 사실 자체엔 변함이 없었다. 불출하면서 중대 부대일지에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중대 계원들에게 직접 불러줬다. 야간 근무자들에게만 지급되는 근무자 라면은 일이등병들에겐 지급이 안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아예 받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사인을 하는 양식지를 만들었다. 숟가락 들고 밥을 떠먹여 주는 식이었다.



상말에 군수과 막내가 들어온 후엔 차츰차츰 일을 물려주기 시작했지만 말년까지도 나는 평탄치 않았다. 인원이 30명 남짓하고 각자의 처부에서 일하는 본부중대 특성상 여전히 나는 대부분의 물건을 나 혼자서 (사실은 2 1/2t 트럭 운전병과 둘이서) 들여와야 했다. 물건을 나르곤 힘들어서 돌아오는 동안 2 1/2t 짐칸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일 열심히 했다고 누가 칭찬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나도 가짜 문서를 남발하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다만 나는 내가 어디서부터 가짜를 제조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검열이 오면 파보면 걸리는 거고 안 파보면 안 걸리는 거였다. 내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품목에 대해서 매달 ‘일관성 있는 가짜 문서’를 만들어다 바치던 나는, 어느 날 ‘일관성 없는 가짜 문서’를 제출해 봤자 상급기관에서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심드렁해졌다. 병장 때 유격훈련 나가기 전에 누군가가 건조장에 말려놓았던 양말 다섯 켤레를 훔쳐가자, 나는 훈련 전날 부랴부랴 PX로 내려가 양말을 사와야 했다. 후임들이 놀렸다. “아니 대대 군수과 왕고가 양말을 사 신는다니 이건 말이 안 되지 말입니다~” 날아가는 전투복도 떨어뜨려 지가 챙겨 입는다는 대대 2,4종이 양말을 사 신는다니, 정말이지 나는 군생활을 헛한게 틀림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개인적인 '부정'을 전혀 저지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말년에 군생활 편하게 하기 위해 행정보급관에게 가끔 라면을 가져다 바쳤고, "내가 대대 1종이거든?"이라고 말하면서 종종 컵라면에 계란과 치즈를 넣어 먹었다. 취사반에서 고기를 조금 떼어내고 소주를 밀반입해서 보일러실에서 소주파티를 연 적도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즐기는 데엔 약간 관심이 있었고, 챙기는 데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밖에 나가면 후줄근한 전투복인데, 굳이 A급을 하나 더 챙겨서 전역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나는 지급받은 전투복만으로 군생활을 마쳤고, 전투화도 빵구가 나는 바람에 하나 더 받았을 뿐이다. 어느덧 말년이 된 나는 군수과 왕고의 상징인 A급 활동복을 입고 대대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내가 해야 할 일은 군수과 막내와 새로 들어올 얼굴도 모르는 어느 친구를 위해 인수인계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6개월 후임(그는 경리계원이었다.)이 걔들이 뭐가 예뻐서 그런 일을 해주느냐고 나를 말렸다. 나는 “급양관리관님 때문에......”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보기드문 선량한 부사관이었던 그가 없었더라면, 내 군생활은 훨씬 더 꼬였을 것이다. 내가 집에 가더라도 그는 여전히 급양관리관으로, 대대 군수업무를 사실상 총괄해야 할 터였다.



부서에 돌아다니는 인수인계서는 많았지만, 내 인수인계서는 맨 뒤에 색인이 붙어있었다는 점에서 다른 것들과 차이가 있었다. 그 점을 나는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녀석들이 이렇게 공들인 인수인계서를 어느 서랍인가 쳐박아두고 망각의 기억 속으로 떠내보낼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지나고보니 기억나는 건 검열, 검열, 검열뿐! 물자관리와 별 상관도 없는 이상한 문서는 또 얼마나 생산했던지! 이게 육군 3대 땡보 중 하나라는 편성보급병 (주특기 2111)의 삶이었다. 언젠가 내가 약간 푸념을 하자 군대를 전혀 모르는 어머니가 “어, 그게 되게 힘든 일인가봐?”라며 반응했는데, 그때 자리에 같이 있던 작은할머니(작은할아버지가 원사로 전역하셨기 때문에...-_-;;)와 아버지가 “아아니이이!!”라며 큰 소리로 부인했다. 아버지는 심지어 이렇게 중얼거렸다.“대대 2,4종... 아 그거 끗발 장난 아니지...” 물론 물건을 움켜쥐고 내 원칙대로 분배했던 내게 ‘끗발’은 커녕 남는 것도 별로 없었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일하다 오기는 했던 것 같다.   


erte

2008.01.05 11:04:11
*.99.83.71

다들 누군 편하고, 누군 힘들고 해도, 다들 힘든 군생활이었고, 또 이런 이야기를 보는 건, 군대얘기 지겹다고 해도 정말 재미나지 말입니다~

임계질량

2008.01.05 11:45:07
*.173.22.177

대대 군수 계원이셨군요. 저도 대대 군수(탄약)였거든요. 원칙과 유도리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꼴통이었죠. 결국 적응못하고 대대 작전으로 옮겼던 슬픈 추억이 있군요. 주특기가 편성 보급이라서 취사장에서 1,3종 관리하라고 했는데, 제가 컴퓨터 만지고 싶어서 작전과 가고 싶다고 중대장한테 졸랐더랬죠. 힘들어도 제대로 된 간부 만나서 마음은 편안했는데, 윤형님 직속 간부 성격은 어땠나요?

하뉴녕

2008.01.05 19:48:49
*.180.10.147

처부에서는 조씨 성을 가진 중위 하나가 지랄맞았고, 나머지는 양호했습니다. 중대에서는 행보관이 흠좀무... 1,3종 계원은 '떡대'가 해야 그나마 적성이 맞을 것 같은... 3종은 엑셀양식만 만들어줬고 제가 직접 일을 해본적이 없습니다만, 드럼통을 옮기는 일이....ㅡ.,ㅡ;;

svinna

2008.01.05 12:18:48
*.148.224.205

저도 대대 군수과 였지요. 주한미군 안에서 일하는게 다르기는 했지만.
지금은 다른 대대 본중 화생방으로 옮겼는데...

그 시절 생각하면...
대체 뭐하고 살았지? 아무 생각이 안 납니다.
점심시간에 식당 안가고 더 자고 싶어서...
그냥 창고에 야전식량 빼가지고 방에와서 혼자먹은 기억밖에는...;;;
그래도 한국군 편성 보급병보다는 왠지 정말 하는 일이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미군애들도 보니까 하는 일 없어 보였고...;

하뉴녕

2008.01.05 19:50:41
*.180.10.147

우린 야전식량은 치장물자 취급이라서 죽어도 건들 수가 없었는데... 다만 훈련할 때 지급된 야전식량 중에서 훈련 때 다 소모하지 못한 것만 보급병이 임의로 까먹을 수 있었지요. 상말 때 종종 말년병장들한테 갖다바쳤던 기억이 납니다.

아큐라

2008.01.05 12:44:57
*.208.209.123

당분간 니힐리스트가 될 일은 없겠군요.

김수민

2008.01.05 16:11:02
*.229.82.115

군대 꿈은 앞으로도 쭈욱 계속될 걸? ㅋㅋ 나는 웬 의무소방으로 제대직후 끌려가는 꿈도 꿔봤고, 갑자기 상근예비역으로 재입대하는 꿈도 꿔봤다.

하뉴녕

2008.01.05 19:51:56
*.180.10.147

안 그래도 주욱 계속되고 있다... 전역하고 한 달도 안 되서부터 시작되더라. 그나저나, 군대 꿈 꾸는 심정의 배경에는 "아아 그때도 이렇게 끔찍했는데 지금 이 따위 상황은 이길 수 있어!"라는 감정과 "제기랄 차라리 그때가 더 좋았어!!"라는 감정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 같아, 나의 경우엔.

오래된눈팅

2008.01.05 22:17:47
*.77.140.181

병기탄약선임하사였습니다ㅡㅡ; 7사단5연대...
탄약도 전산 , 수작업,실셈이 다 달랐죠.

하뉴녕

2008.01.06 07:44:56
*.180.10.147

군견도 낙오하는 5연대? ㅋㅋ ^^; 칠성부대 계셨군요. 강원도 화천은 지금 산천어 축제의 계절일텐데... 말년휴가 후 대기기간 때 이등병들 인솔하고 갔던 기억이 납니다. 쿨럭 ;; 총기/탄약이랑 기재계는 다른 물품에 비해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은 아닌데 차이가 나는 걸 도대체 처리할 수가 없다는 애로사항이 있죠. 기재계는 뭐 손망실이라도 때릴 수 있다지만 총기/탄약이라면 흠좀무......

xenogan

2008.01.06 09:34:33
*.168.180.151

아, 진짜, 군대는 어디나 뭐같아요ㅠ_ㅠ

nobam

2008.01.06 16:03:19
*.223.120.1

진짜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군대 씨리즈 모아서 책 내시면 한 권 살게요.
흠 그런데 카이만 예비역님에게서 틸러 달비 제국 부위의 격조와 포쓰와 문체가 느껴집니다..라고 하면 실례가 될까요. ^^;;

하뉴녕

2008.01.06 16:21:48
*.180.10.147

저는 '틸러 달비 제국 부위'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

nobam

2008.01.07 00:54:02
*.223.120.1

헉 진짜 실례를 했네요...;;
이영도 <피를 마시는 새>의 주인공들 중 하납니다. 인간 종족 가운데 (거기다 군인들 가운데) 보기 드물게 정신 제대로 박힌 멀쩡한 캐릭터입니다...

하뉴녕

2008.01.07 03:07:59
*.176.49.134

앗 실례는 아니죠. ^^; 그냥 제가 몰랐다는 겁니다. 영도님 소설을...더 봐야 하는데 폴랩에서 멈춰있네요. ㅠ.ㅠ

ecol

2008.01.07 14:20:23
*.238.239.6

군생활 참 잘하셨군요. 저도 보급병이었는데, 전 그냥 어디 안퍼주고, 1종물자남으면 전부 식당에 줘서 음식만들고, FRMS 도입초기라 중대보급병들 불러서 FRMS 교육시키는데 행보관이 사병이 뭔 교육을 하냐 라고 이죽거리더라는.
그리고 애들 2종 크게 못빼먹게하고, 그정도만 기억에 남습니다.
한윤형님만큼 빠꼼하지 못해서 저 모르는데서 빼먹은 놈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수송부애들 그렇게 고생하는데 라면좀 빼줄껄, 야작하면서 라면 혼자먹은 제가 좀 반성되구요.
근데 정말 일만 무지하게 했어요. 나중에 쓰러져서 링겔꽂고 의무대 누워있는데, 군수장교가 찾아와서
링겔꽂고 사무실가서 컴터앞에 앉았다는...

하뉴녕

2008.01.07 15:12:56
*.176.49.134

FRMS...ㅠ.ㅠ 우리 땐 FRMS가 일종의 사라지는 퇴물로, 7종, 9종, 그리고 수공구에서만 사용되고 있었어요. 요새는 국방물자시스템이라고 윈도우즈 프로그램이 새로 개발되어서... 이게 그래도 물자관리에 낫긴 합니다. 적어도 상급부대와 서버가 연동되어 있거든요. 거기서 물건을 떨궈주면 내 아이디로 들어간 전산장부에 분명히 들어와 있지, 다른 수는 없습니다. FRMS처럼 다른 서버를 만들어 다르게 저장하고 가라를 쳐서 보고하면 되는... 뭐 그런 시스템은 아니죠. 떼먹기가 확실히 더 힘들어요. (근데 이해가 안 되는 건 중대급 전산대장과는 연동이 안 되어 있다는 것..; ) 마지막에 전역할 때 화학장비가 국방물자화 된다고 해서 준비했던게 기억에 남네요... 조금은 더 나아졌을라나...?

구자윤

2008.03.04 20:42:14
*.45.213.154

4월 7일 특기병 지원입대합니다..좋은 글 잘보고갑니다.; 벌써부터 입질이오내요 ㄷㄷ

하뉴녕

2008.03.04 22:19:08
*.176.49.134

4월 7일 입대라...젊음을 불태우셔야 할 시기로군요. ㅠ.ㅠ

프리스티

2008.03.15 03:31:06
*.131.182.159

휴가 나와서 밀린 글 보다가 이 포스트를 다시 읽게 됬는데 짠하네요 ㅠㅠ 이번에 보급 특기를 받아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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