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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학생논단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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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변양균과 신정아의 ‘부적절한 관계’를 폭로하는 순간, 갑자기 사건은 학위조작극에서 선정극으로 바뀌었다. 검찰은 두 사람의 사적인 정황들을 실실 흘리기 시작했고, 언론들은 관음증 환자가 된 마냥 그것들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신씨가 변씨를 평소에 어떻게 불렀다느니 하는 비리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기사들이 난무했다.

이 상황에 대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언론은 없지만, 그중에서도 한 신문은 단연 부각을 나타냈다. 9월 중순 한 석간신문은 ‘신정아 누드’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알몸 사진 두 컷을 기재했다. 다른 신문들은 앞 다투어 이를 따라서 보도했다. 최근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그 신문에 2단 크기의 사과문 게재를 요구했지만 신문사는 재심을 청구했다. 노조에서는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경영진에선 재심의를 원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더니, 막판 사과문 문안 작성을 두고 진통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의 알 권리? 선정성? ●

굳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면, 이렇게 말해 볼 수 있겠다. 알몸사진이 있었지만 로비는 없었을 논리적 가능성을 우리는 충분히 머릿속으로 가정해 볼 수 있다. 반대로, 알몸사진이 없었지만 로비는 있었을 가능성 역시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알몸사진과 사건의 본질은 별 관련이 없는 것이다. 사진의 존재가 로비를 증명하는 것이므로 충분히 공익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편집진의 변명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설령 일말의 설득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진을 굳이 1면에 게재했어야 할 필요성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국정감사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의 정청래 의원은 “올해 7월 ○○일보의 강안남자가 다시 선정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이유로 신문윤리위원회의 경고를 받았다”며 “그런 상황에서 신정아 누드사진 게재 사건이 벌어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언론의 선정성 역시 큰 문제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지 선정성이라는 범주로 바라볼 게 아니다. 한 명의 사적인 개인(비록 그 사람이 범죄자로 추정되는 처지였다 하더라도)에 대한 폭력적인 시선의 문제인 것이다. 연재물의 선정성과 이 사건을 언급하는 것은, 비록 그가 한 신문을 비판하기 위해 그랬다손 치더라도, 사태의 핵심이나 심각성을 읽지 못했다는 느낌을 준다.


‘황색’화가 언론의 살 길인가 ●

문화일보의 뻔뻔스런 변명과 그에 대한 맥락이 어긋난 비판을 바라보면, 이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상식의 건전성을 측정할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인디밴드 카우치가 공중파 방송에서 성기노출을 감행했을 때 많은 상식적인 시민들은 불쾌감을 느꼈고 분노했다. 이 하위문화를 향유하는 젊은이들이 추구했을 순수성을 생각하면 체제의 관용이 모자라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심각한 반향이 있었다. 반면 그 문제의 신문은 카우치보다 훨씬 더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데에도 이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그다지 크지 않다. 돈을 벌기 위해 그랬는데 어쩌겠냐는 식이니 차라리 유교윤리가 그리울 지경이다.

그 신문이 노출한 것은 한 여성의 알몸이 아니라 한국 언론의 현주소다. 한국의 언론들은 인터넷 시대에 굳이 돈을 주고 사봐야 할 정보를 제공한다는 인상을 독자들에게 심어주지 못했다. 한국에서 이것이 신문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신문이 자초한 문제인 것도 사실이다. 윤리 문제를 떠나서, 인쇄매체의 신뢰성을 폭력적인 선정성으로 얻으려는 매체가 맞이하게 될 운명은 자명하다. 포털 사이트에 대한 불평을 털어놓기 전에 언론은 스스로를 돌이켜야 한다.

한윤형 서울대 인문 01 (대학내일 3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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