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이런저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정당 관계자나 지지자들에게 “마케팅 좀 배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 적절한 접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나는 마케팅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마케팅론 운운하는 이들이 마케팅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지는 판단할 수 없다. 그러니 편의상 그들의 불만을 뭉뚱그려 “소비자를 왕으로 대우할 것”이라고 요약해 보기로 하자. 이 요약에 불만을 가질 사람도 있겠지만, 적절한 요약이라 평가할 분들도 많을 줄 안다.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소비자를 ‘왕’으로 대우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나는 “알 수 없지만, 나라면 아니라는 쪽이 걸겠다.”고 답변하겠다.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그들의 소비자들에게 ‘살인적으로’ 친절하다. 반면 유럽의 동네 자영업자들은 소비자들에게 무뚝뚝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한국의 자영업자들과 회사원들이 각각 그들의 소비자를 챙기기 위해 노동강도를 늘리고 자존심의 훼손을 감수하는 데에 비해서, 유럽의 자영업자들은 비교적 널럴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비만 하고 사는 게 아니라 재화든 서비스든 생산을 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결국 ‘소비자는 왕’이라는 구호는 서로가 서로를 효율적으로 착취하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극소수 부르주아를 제외한 만인을 고통에 빠뜨리고 만다.
이런 식의 ‘소비자 대접’이 ‘소비자 주권’과는 큰 관련이 없다는 것도 직관적으로 금방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소비자는 왕’이라는 말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보편타당한 공리처럼 인지되고 있지만, 제도적인 차원에서의 ‘소비자 주권’이 올바로 행사되고 있다고 보기에는 미비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소비자는 왕’이라는 말이 니 말처럼 결국엔 모두를 괴롭히는 것으로 작동하는 것일 수는 있겠으나 적어도 어떤 미덕은 있는 것이고 그 점을 배우라고 요구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소비자를 왕으로 대접하라고 말하는 이들은 기업은 소비자에게 그런 대접을 하는데 정치인들은 유권자에게 그럼 대접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불만’으로 내세우는 것 같다. 그런 ‘불만’을 품을 수도 있다. ‘마케팅’ 운운하는 조언은 딱 그만큼의 맥락에서만 타당하다. (사실 좌파진영의 마케팅 능력이 조악한 것은 사실이며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엔 현실적인 효력을 지니는 조언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것은 정치의 영역을 규준하는 원리가 시장원리와는 좀 다르기 때문이다.
기업이라면 소비자의 숫자를 되도록 늘려 그들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이라면 상황은 다르다. 그들은 되도록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야 할 필요는 없고, 단지 상대편보다 더 많은 유권자의 지지만 얻으면 된다. 정치에 실망하여 기권자가 되는 시민들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그들은 타격이 없다는 뜻이다. 정치인들도 지지자의 숫자에 구애받지만, 기업인과 꼭같은 방식으로 구애받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이놈도 저놈도 내게 친절하지 않으니까 난 아무런 ‘정치적 상품’도 구매하지 않겠어!”라는 식의 판단은,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정치집단들에게 어떤 타격도 입히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손해만 끼칠 가능성이 높다. (기권율이 아무리 높아도 싫어하는 정치인이 계속 권력을 휘두를 거라는 점에서 그렇다.) 정치집단들에게 영향력 있는 ‘소비자’로 인정받으려면 그냥 물건을 안 사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다른 제품을 직접 구매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라면 “나는 여기 편하게 앉아 있을 테니 옷을 벗든 똥을 싸든 내게 물건을 사도록 해봐.”라는 식의 접근으로도 원하는 물건을 얻을 수 있겠지만, 정치적 영역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즉 ‘소비자로서의 자세’를 벗어던지는 것이 정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개인의 입장에서 훨씬 더 유리한 길이라는 것이다. 좌파정당이 마케팅 전략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고 요구하면 그것은 타당한 지적이 되겠지만, 정치에 관심을 지니는 시민들에게 당신들의 처지에서 마케팅 운운해봤자 아무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얘기하는 것 역시 타당한 지적이다. 우리는 정치집단에 거액의 후원금을 쾌척할 수 있는 부르주아가 아니라 겨우 한 표의 권리와 당원이 되어 약간의 당비와 후원금과 노동력을 제공할 수밖에 없는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진중권은 촛불 시위를 정리하면서 시민들에게 “한나라당이라도 좋으니 입당해라.”고 권유했는데,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선 ‘소비자’보다는 훨씬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이 얘기를 이제 목수정이 국립오페라단을 위해 정명훈의 서명을 받으러 갔던 상황에 적용시켜보자. 아마도 노정태 류의 얘기는 지금까지의 내 논의와 비슷한 맥락에서 목수정을 옹호하려고 하는 것일 게다. 노정태는 목수정이 “글을 못 썼다.”고 경멸하면서도 목수정에 대한 모든 비판을 거부한다. 즉 서명운동 받으러 간 목수정에게 극한의 친절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명훈이 소비자이고 목수정이 외판원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 같은 정치적 주체로서 대우받아야 하며 정명훈은 목수정에게 실례를 한 것이다, 등등으로 그의 주장을 예상해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만 써도 내가 노정태보다는 같은 내용의 글을 훨씬 더 짧게 표현하는 재주가 있는 듯하다.)
물론 마케팅 운운하는 이들이 목수정이나 진보신당에게 그들이 판매자들에게 요구하는 ‘복종’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이 적절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왜 적절한 일이 아닌지는 지금까지 설명을 했다.) 또한 다르게 표현하면, ‘마케팅’ 운운하긴 했지만 그저 평범한 상품 판매자가 평범한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 정도의 ‘친절’만을 요구했을 가능성도 있다. 당연히 가능성은 이쪽이 더 많다. 그리고 이 경우엔 그리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도 아니다. 노정태 류의 접근은 대중의 반응이 전적으로 전자라고 부당하게 환원해놓고 거기서부터 논의를 출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게다가 목수정이나 진보신당의 비판자들이 ‘마케팅’ 운운했을 때 잘못된 판단기준을 도입한 것이라는 사실과 목수정의 행동이 어떻게 평가받아야 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목수정 등이 정명훈을 찾아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말하는 건 목수정 자신의 입장에서 쓰여진 문건 하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문건으로만 판단해도 정명훈과 대화를 나누었을 때의 목수정의 행동이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의 사회문제에 대해 운동을 하고 연대를 모색한다는 것은 그 사회문제를 중심으로 전선을 구축한다는 것을 말한다. 목수정 본인이 자신의 행동을 옹호하기 위해 썼듯이, 오페라단 해고문제에 문제의식을 가지는 이들은 진보적인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 지지자든, 민주당 지지자든, 민주노동당 지지자든, 오페라단 해고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모두 오페라단을 돕기 위해 나설 수 있고, 그렇게 되도록 판을 짜야 하는 것이다. 촛불시위에 대한 판단 역시 그렇다. 촛불시위가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고 생각하는 이에게도 오페라단의 문제를 설명하고 서명을 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목수정은 정명훈이 촛불시위를 폄하한 순간부터 정명훈의 말을 ‘오물’로 취급했다. 서명 받으러 간 사람이 그런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자기 모순이다. 정명훈이 원래부터 진보적인 수사를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막연한 신뢰를 가지고 갔는데, 그런 발언을 해서 실망했다... 라면 그런 실망이 당연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지 않았던가?
서울시향의 사례를 보면 정명훈은 음악인들의 수준을 높이는데 노조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정명훈은 목수정에게 그 사람들이 정말 능력이 있는 사람들인지를 물어보고, 사정을 자신이 따로 알아보겠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음악을 하는 이들은 안정된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개념은 없었던 거다. 다만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그에게도 중요했기 때문에 사정을 알아보고 정말 능력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런 대우를 받았다면 그건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1) 정명훈의 생각이 그 정도라면 그 정도 선에서 서명을 받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촛불시위 폄하 발언 따위에 열받을 일이 아니라 말이다. 반대로 만일 정명훈을 문화계의 신자유주의자로 규정하고 비판을 할 일이었다면, 그리고 오페라단 문제를 해고 당사자들과의 합의를 통해 문화계의 비정규직 문제라는 틀로 접근할 생각이었다면, 2) 애초부터 정명훈은 서명을 부탁할 사람이 아니라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목수정은 분명히 ‘미숙’했다. 목수정은 1)도 2)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당연히 그런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이다. 그런 미숙함이 발생했다면 적어도 a) 서명운동을 받으러 갔던 상황에서 b) 거절당했다는 이유로 정명훈을 타킷으로 삼아 비판해야 한다는 주장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목수정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계속 이런저런 글을 쓰게 되었는데, 그 결과는 최악이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욱 수렁에 빠져든 셈이다. (쓰다보니 지금의 노정태도 비슷한 꼬라지이긴 하다.)
그 미숙이 오페라단과의 공동작업에 의한 혼선의 결과라고 해도, 그 책임은 투쟁 당사자인 오페라단이 아니라 연대 주체로 결합한 진보신당 당원(그냥 당원이 아니라 진보신당의 문화정책에 꽤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영향력 있는 당원이다.)이 지는 것이 도의적으로 합당한 일이 아닐까?
진보신당이 처음으로 치룬 2008년 총선에서 내가 가장 흥미를 지녔던 인물은 비례대표 3번을 배정받은 피우진 (전) 중령이었다. 억울하게 군복을 벗게 된 후 복직을 위해 투쟁해왔던 그녀가 ‘좌파’들과 인연을 맺었다는 사실도 신기했을 뿐더러, 그녀의 안보관에 의문을 느낀 당원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질의했을 때 “양심적 병역거부를 용인한다.”고 선뜻 답변한 것도 무척이나 놀라웠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할 때, 피우진이 군복을 벗던 그 순간부터 양심적 병역거부 등의 문제에서 진보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복직투쟁이 길어지면서, 자신을 진심으로 도와주는 이들과 엮이게 되고, 그들과 생각을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심경의 변화가 생겼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소수자의 처지에 놓이게 되면서 다른 소수자의 처지를 더 적극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주체들의 연대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만일 처음부터 ‘억울한 퇴직자 피우진’의 사상을 좌파들이 검증(?)하려고 했다면, 그녀는 훗날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나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목수정이 사태를 만들고 수습(?)하는 과정을 보며 나는 그런 식의 연대의 자세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해 멋대로 전선을 확장했고, 자신이 그은 전선에 진보신당이라는 정치집단이 충실해야 한다고 주문하기까지 했다. 이것이 비판받을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운동을 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해도 된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그러므로 목수정에 대한 나의 비판은 전략적인 고려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다. 전략이야 어디에나 있는 것이고 모든 비판은 전략적인 행동이지만, 어쨌든 원칙이 서 있지도 않은데 비판을 할 리는 없지 않겠는가.
tortellini
목수정이 정명훈에게 이러저러한 일을 당했더라도 그 상황을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에 유리하게 쓰이게 했어야 하지 않냐는 다른 표현 같습니다.
적어도 전여옥씨는 자기 편을 궁지에 몰진 않잖아요.
진보신당은 마케팅을 잘 해야 한다는 말은 결국 정치가 뭔지 좀 알고 덤벼라 라는 말과 비슷하다고 보입니다. 현재 진보신당은 웬만한 대형 다음 카페보다 못한 조직 아닙니까? 당원분들은 뭔가 하는 듯 해서 뿌듯하겠지만 겉에서 보면 애들 놀음 같지요.
(그넘에 아고라 청원이니 뭐니 좀 그만 하라 하세요.)
진보신당에서 그나마 말이 통하는 분은 capcold님이나 윤형님 밖에는 없는 듯 합니다. 님들은 주류같지는 않은 것 같고..
이번 목수정씨 관련 논란은 단순히 오페라합창단 문제(혹은 목수정씨 문제)가 아니죠.
진보정당(진보신당이 아닌 진보'정당')에 관한 총체적 문제가 터져나오는 거라 보여요.
목수정씨 글과 관련 대처들이 중간자들의 어떤 역린을 건드린 것 같습니다.
아직도 이런 상황이 감지 되지 않는 것인지, 화제 전환을 위해 일부러 저러는 것인지 모르지만, 최소한 진보신당의 젊고 글 잘 쓰는 분들은 다같이 죽자고 덤벼서는 안 되죠. 뭔가 가슴이 꽉 막힌 게 답답하네요.
책 내신 거 내일 퇴근 하면서 사와야겠습니다. 인터넷의 이런 논쟁들은 이제 소용없지 않나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아...답답하네요.
갓 창당한 당이 2.9% 의 지지율을 얻었다는 것. 그리고 중견이라 할만한 정치인이 별로 없다는 것. 입맛에 맞아 보이는 '진보' 라는 이미지(매우 애매하지만)를 입은 정당이라는 것.
이게 비극의 시작일지도 모르겠군요.
진입 장벽이 매우 낮아보이는 정당. 그것도 조금만 지나면 안정화 될만한 정당에 몰린 어중이떠중이들 때문에 진짜 진보들도 욕을 얻어먹는 상황이 벌어져버렸네요.
하이에나들 말입니다.
정치가는 커녕 정치꾼도 되지 못할 자들이 감히 '진보신당' 이라는 당명을 내세워 스스로를 드러내려하니 탈이 날 수 밖에요.
그래도 하이에나가 아닌 표범은 한윤형님 정도군요.
가능하면 끝까지 버텨주셨으면 합니다.
더 전문적인 마케팅론의 영역으로 넘어간다면... 정말 안타깝지만 그런 거야 돈 많은 사람들이 외주같은거 줘서 더 잘 할 수밖에 없는 그런 분야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돈 없으니까 우리한테 그런 거 시키지 마...는 아니구요. 돈 없으니까 센스라도 챙겨라는 요구에는 응해야 한다고 보는 쪽입니다. ;;
제 나름대로 정말정말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마케팅은 사람들의 수요를 찾아 그 수요를 충족하는 재화/용역을 설계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광고를 통해서 존재를 알리고, 유통을 통해 장사를 하죠)하는 일련의 과정들입니다.
정치판을 여기에 끼워맞춰보면, 유권자들의 필요를 인지한다->이 중 어떠어떠한 수요를 우리가 어떻게 충족시킬지를 정하고 당규나 정책 등에 반영한다->매체들을 활용해서 지지세를 모은다->집권해서 정책을 실현한다가 되겠네요. 여기까지는 다들 (일단)하고 있는 부분이죠.
문제는, 보통 시장은 여러 개가 존재하며 소비자들의 구매력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정치시장(일단 이렇게 쓰겠습니다)은 딱 하나 뿐이며 소비자들이 모두 한표씩만 행사할 수 있다는 거죠. 충성도 높은 소수의 Fan들을 상대로 하는 프리미엄 상품을 내놓는 것은 통상적으로는 생존을 보장받기엔 꽤 괜찮은 방법입니다만, 소비자들 간 구매력 차이가 전혀 없는 Mass Market(정치판이죠, 네)에서는 최악의 선택이죠.
소비자(유권자)를 무조건 떠받들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철저하게 이해할 필요는 있습니다. 못하면 죽어요. 운 좋으면 불구/불임정당 신세로 명맥은 잇는 거고.
그리고 저는 변화에 필요한 힘을 얻기 위해서는 게으른 소비자들의 한표도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라서요. 매사에 열심인 진성당원이 많아져 봐야 얼마나 많아질 수 있을까요? 메이저가 되려면 일단 소비자들을 알고 상대보다 많은 표를 얻어야 하죠. 정치시장에서 소수정예는 제 생각엔 불가능합니다. 양이 안 받쳐주는 질은 나오기 힘들구요.
덩치가 큰 정당은 '게으른 소비자의 1표'를 지지자의 1표와 똑같이 취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니정당들은 그럴 수가 없어요. 1표가 동등한 건 선거 때에나 그렇죠. 일단은 돈 내는 당원들이 많아지지 않으면 당이 굴러가지가 않거든요. 당비 내는 지지자 한명 한명이 중요해지지 게으른 소비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진보신당 실정은 사람에 비유하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에 가깝습니다. 정부 보조금 못 타면 굶어죽어요. (물론 보조금 타게 된 것도 약간이라도 지지율이 나왔기 때문에 얻게 된 성과이긴 합니다만)
물론 말씀하신 것들에 대해 원론적으로는 공감하기는 하는데...이쪽 사정을 알고 있는 저로서는 참 한숨이 나올 뿐입니다.
...목수정이나 노정태 같은 이들이 왜 저렇게 나댄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그 사람들이 기존의 운동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글루스에서 흔히 "역시 좌파들은 저 모양이야."라고 얘기하는 것을 보면 "아 저 사람들 운동권이 뭔지 잘 모르는구나..." 하고 마는데요. ;; 목님이나 노님은 자기들이 기존의 운동권이 아니라서 저렇게 혼자 나이브하게 설쳐놓고 그것을 잘났다고 자화자찬할 수도 있고 그런 겁니다. ;;; 운동권들이 만나게 되는 첫번째 '대중'이 바로 저런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이런 일이 생기게 되면 운동권들은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손을 놓게 되죠...OTL
옹알이
여론에 몰린 목수정이 진보신당 당원들에게 구조요청(당게로 끌고가서 쓴 글은 그런 혐의가 있죠)을 했다해서 봐주는(?) 것 없는 사람들이 레디앙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자주 보이는 이해관계자들간의 암묵적인 미세한 유착관계가 여기서 보입니다.
꼭찝어서 예를 들자면, 레디앙에서 책을 낸 박권일씨나 가끔 글을 기고하는 한윤형씨나 목수정 일로 할 말이 무지 많고 심지어는 노정태씨까지 씹어줘야 할지언정 레디앙에 대해선 모른척이죠.
레디앙을 잘 가지도 않는데다가, 기본적으로 이 일에 개입한 이유가 블로그스피어에서 너무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에 별로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레디앙이 글을 올린 것 자체를 문제삼는다면 모를까, 레디앙의 댓글 삭제는 목수정의 요청으로 이루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댓글 일괄 삭제는 악플이 너무 많으면 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사자가 요청을 했는데 안 받기도 뭣하고... 오히려 목수정 님이 자신이 레디앙에 아이피 차단을 요청해놓고 다른 이들이 비판하자 "그건 레디앙이 한 일이다. (나와는 상관없다?)"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보기가 안 좋더군요.
그래서 저는 레디앙을 굳이 까야 할 필요는 느끼지 않았던 건데, 다른 분들이 다른 판단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물론 존중합니다. 어떤 근거로 레디앙을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그나저나 "심지어는 노정태씨까지" 라니. ㅎㅎㅎ 노정태는 이 정국에서 가장 큰 뻘짓을 했습니다. 목수정보다 더 바보같은 짓을 해서 결과적으로 목수정의 뻘짓을 희석시키려는 의도였다면, 꽤 괜찮은 행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