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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바빠도 벼락치기

조회 수 867 추천 수 0 2008.03.17 23:36:46

1.
세상에는 바빠도 느긋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가령 나같은 인간이 그렇다. 무슨 시간을 미분하는 방법이라도 아는 것처럼, 잘라서 잘라서 놀다가 나중에 벼락치기로 처리하는 일을 반복한다. 그러다가 약간씩 빵구가 나지만 그것을 적절하게 처리하는 것이 또 내 방식이다. 몸 버리는 방식이긴 한데, 이렇게 안 하면 마음이 편치가 않다. 물론 기말에 하루에 레포트를 하나씩 완성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다시는 이런 짓 안 하겠다고 후회한다. 하지만 다음 학기에는?


어제도 영어 논문 하나를 통째로 읽어야 하는 학교 과제물을 앞둔 상황에서 HCH 형이 전화가 왔는데, 요는 술 한잔 하고 싶다는 거였다. 나는 논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읽어도 가능하겠다는 희한한 판단을 내렸다. HCH 형이랑 만난지가 꽤 지난 시점이라서, 거절하기가 미안했던 것. 그래서 오랜만에 사당에서 술을 마셨다. 대영이 형까지 합류하여 2차까지 갔다가 11시쯤 파해서 돌아와 집에 들어오자마자 쥐죽은 듯이 뻗어 잤다. 아침을 위해서.


(그나저나 위의 한 문장은 술을 오랜만에 마셨다는 얘기가 아니라 사당에서 오랜만에 마셨다는 얘기다. 맛집이 그득한 사당에 살면서도 요새 일정이 이상하게 되어 있다 보니 홍대에서 술을 마시는 일을 반복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아침에도 6시에 일어나려고 했는데 술먹고 자면 더 피곤한지라 그냥 8시까지 푹 잤고, 학교 전산실에 가서 영어논문을 읽으라 그 이전 수업은 들어가지 않았다. 출석은 잘 안 부르는 과목인데, 어찌되려나 몰라, 쩝. 뭐 나라는 인간은 이런 식으로 약간씩 빵구를 내가며 하루하루를 처리하는 거다. 바쁠 때는.


오늘도 학원에서 돌아와 내일까지 해야 할 일을 생각해보니, 씨네21 마감, 대학내일 논단 마감, 기호논리학 연습문제 숙제, 한국사 간단과제, 그리고 윤리학 과목의 영어논문을 4페이지 정도 읽어야 하는 거다. 그런데 왜 나의 뇌는 또 맥주를 요구하는 거지? 맥주를 마시면서 원고의 초안을 잡아 가고, 숙제는 내일 아침에 후다닥 일어나서 하면 되는 거라는 내 본성의 속삭임이 들려 온다.



2.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 10번, 임한솔. 한국나이 28살.


진보신당 대학생 모임에선 20대 비례대표 논의를 추진하다가 모임의 대표인 유성민씨가 추천한 임한솔씨에 대해 여러 사람이 반대하여 논의 자체가 무산되었다. 임한솔은 자신이 직접 불출마 의사를 밝혔고, 유성민은 모든 논의를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리하여 얼마 전에 희망청에 만난 유성민은 "20대 비례대표는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나는 레디앙의 기사를 읽으면서 당선권과 먼 순위에 집행부가 알아서 20대 비례대표를 배정해 줄 것만 같은 분위기를 느꼈다고 그때도 말했다.


결과적으로는 내 말대로 된 셈인데, 이게 참 웃기다. 지금 진보신당 비례대표 논의 자체가 후보 추대와 경선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중앙당에서 전략 공천 명부를 내민 후 찬반투표만 하는 형식이라서 이런 일이 생겼다. (물론 현재 상황에서 이런 식의 편법이 거의 불가피하다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20대 운동을 하는 것은 좋지만, '어른들'에게 등떠밀려서 하는 형식으로 하면 안 된다. 자기들 모임에서 투표라는 최소한의 절차를 걸쳐서 잡음없는 후보를 추대할 수 있을 정도도 안 되면서 20대 비례대표를 말했다는 사실이 웃기고, 이 모든 논의가 파토났을 때 중앙당에서 바로 그 파토난 후보를 '점지'했다는 사실이 더 웃기다.


(이상하게도) 정치공학적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은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있는 것처럼 보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원칙과 순리에 따라 행동하기만 하면 중간은 갈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제 꾀에 넘어간 정치공학쟁이들보다 더 정치적인 이득을 남기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jonaldo

2008.03.19 00:31:28
*.188.135.79

홍대 자주 가시나봐요.

닷오-르

2008.03.19 01:10:07
*.138.192.175

허허 유성민씨 이것저것 정말 하는 일 많으시군요...

Azure

2008.03.19 16:12:37
*.5.156.236

전 아무리 해도 벼락치기가 잘 안 되던데,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다능...
하드웨어의 문제인가-_-

SimpleLife

2008.03.19 20:14:41
*.102.226.106

"비밀글입니다."

:

여울바람

2008.03.19 23:29:32
*.143.20.250

1번에 무척 공감가는군요.


....지금 제 상황이 딱 그거 거든요.-_-;

kritiker

2008.03.20 00:21:04
*.39.252.30

홍대 자주 와'ㅂ' ? 난 만화책 사느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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