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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국개론'과 '민주주의'

조회 수 1126 추천 수 0 2008.04.22 07:09:09

최근 여론조사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서 선거를 유권자의 행태로 환원해 설명하는 경향이 과도하게 확대되었다. "유권자가 바로 서면 나라가 바로 선다"는 등의 비민주적 논리나 심지어는 "유권자 의식개혁운동"과 같이 극도의 권위주의적 언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될 수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민주주의 정당이론의 고전들이 말하는 것은 그 반대이다.

 
사회학적 정당이론을 대표하는 것으로 유명한 립셋·로칸(Lipset & Rokkan)은 "정당으로 조직된 대안들이 유권자에 앞서 존재한다"고 말한다. 유권자가 어떻게 선택할 수 있는가 하는 정치적 조건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갈등이론에 근거해 정당이론의 한 패러다임을 개척했던 샤츠슈나이더(E. E. Schattschneider) 역시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에서 인민주권이 실현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좋은 정당 대안을 가질 때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면서 유권자가 어떻게 선택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도외시 한 채 여론조사를 근거로 유권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이론들이 왜 반민주적인가를 통렬히 비판했다.

 
현 정부에 대한 책임 추궁 경향이 국면을 지배한다고 해서 이를 유권자의 비합리성으로 비난하는 것도 잘못이다. 정당이론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해석자로 인정받는 피터 마이어(Peter Mair)가 강조하듯, 현직 정부에 대한 평가가 유권자 투표결정을 좌우하는 '회고적 투표'의 양상은 정당 간 차이가 약해질 때 나타난다. 이 차원에서 문제를 보면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의 사례가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집권당의 정책이 보수적 야당과 동일해진 정치구조가 더 중요한 요인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김영춘 의원의 사례가 보여주듯, 80년대 학생운동의 지도자로 활동하다 신한국당-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을 하고, 열린우리당으로 또 옮겨 국회의원을 하다가 다시 움직여 문국현 후보의 선대본부장을 맡을 수 있는, 그야말로 좌우를 넘나들 수 있는 정당체제의 무이념성이 더 문제인 것이다.


이 글은 정치학 박사이자 후마니타스의 대표인 박상훈이 지난해 대선 직전이었던 11월 13일에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 중 일부다.  


박상훈 대표는 "한나라당의 공천 결과 이명박계가 독점했지만 친박연대가 나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집권당을 안정적이고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여건이 매우 안 좋다"며 "집권당 안에서도 정당 응집성이 굉장히 떨어져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고 해도 그것이 순조롭게 관리되는 보수독점 체제는 현실화되기 어렵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대표는 이를 자민당 장기집권의 토대를 구축했던 일본의 55년 체제와 비교했다. 그는 "일본이 30년 장기집권 체제가 될 수 있었던 건 사회당과 공산당까지 포함한 모든 세력에게 경쟁의 장이 허용되고 이를 통해 시민들의 의사표현이 충분히 허용된 결과였다"고 말했다. 요컨대 사회적 의견을 반영하는 통로로서 정당정치가 뿌리내린 바탕에서 장기집권의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2004년부터 지금까지 기존의 정당체제가 해체돼 왔으며 이번 총선도 그것이 분해되는 혼란한 상황이 진행되는 와중에 치러지는 선거"라고 박 대표는 규정했다. 진보개혁진영은 물론이고 보수진영 역시 지지기반이 형편없이 무너져 가는 과정에 놓여 있다는 진단이다.
 

이를 반증하는 건 유례없는 부동층의 증가와 50%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투표율이다. 박 대표는 "만약 투표율이 매우 낮고 보수세력이 200석이 된다면 이 선거를 민주적 결과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 하는 고민에 봉착할 것 같다"고 난감해 했다. 그는 "사실 우리정치의 제1당은 기존 정당에 거부감을 가진 투표거부층"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건 그 박상훈 대표가 이번 총선 직전이었던 4월 4일에 역시 <프레시안>지와 한 인터뷰 내용이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투표 안한, 혹은 한나라당 찍은) 국민이 개새끼다."라는 의견과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지 않다." 혹은 "민주주의가 허약해지고 있다."라는 의견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민주주의 약화의 원인을 정당에서  찾는다면, 그 책임은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한 정치세력에게 돌아간다. 첫번째에 인용한 박상훈의 글이 바로 그런 내용이다. 이 글에서 낮은 투표율은 정치세력에 대한 정당한 경고라고 해석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근의 인터뷰에서 지나치게 낮은 투표율은  민주주의적 정당성에 대한 회의를 불러 일으킬 거라고 우려하고 있는데, 이 역시 상식적인 생각이다. 적어도 투표율이 낮아진다고 좋아하는 정치학자는 세상에 없다. 그러니까 의무투표제를 도입하는 나라들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국개론'은 언급할 필요도 없는 인터넷 유저들의 마스터베이션이다. 그렇다고 현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모조리 다 '국개론'으로 치부해선 안 되지. 얼핏 보아도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은 하나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라는 기능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이고, '국개론'은 도덕적 품성론에 해당할 텐데, 이 양자를 동일시하는 심보는 도대체 무엇인지. 어디선가 가소롭게 허수아비를 때리는 소리가 들리길래 잠깐 짬을 내어 글을 퍼왔다.


maybe

2008.04.22 12:03:31
*.165.193.231

치우치고, 치우치지 않기.
제가 느끼는 님의 글의 감상이랄까요...
부연하자면, 전자에는 매력을 느끼지 않지만요.
가끔, 집요할 정도로 논리를 따지다가도(개인적으로 논리적이라는 데에 그리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운동 망한다고 개인이 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씨네 21글이나, 이번 글 같은,
미묘한 균형을 보여주는 글이 님의 글을 찾아 읽게 합니다.
뭐랄까, 진중권씨와 김어준씨가 섞인 듯한.
덧) 혹시 보셨는지...
http://cafe354.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Caxp&fldid=CyaR&contentval=0000Czzzzzzzzzzzzzzzzzzzzzzzzz&nenc=AqK9h.2Ust6Jr-Zw8QFPgA00&dataid=12&fenc=PVcV23rPVjo0&docid=1Caxp|CyaR|12|20080111002727&q=%B1%B9%B0%B3%B7%D0
아이들의 차비와 학원비, 생활고에 괴로워하는 서민들이 더이상 MB를 찾지 않도록, 그들이 기댈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진보신당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볼빵

2008.04.22 12:44:26
*.46.226.233

품성론이라... 다른 표현은 없나연.

글강

2008.04.22 13:56:59
*.218.236.110

국개론은 DC에서 '장난'으로 나온 말이고, 실제로 DC 내에서는 장난처럼 사용되고 있는데 -_-a
어째 이게 DC 밖에서는 너무나도 진지하게 '론'으로 인식되는 듯 ;

허크

2008.04.22 15:26:38
*.53.68.200

국개론이 DC만의 장난감이라기 보다, 예전부터 있어왔던, 지금도 유행하는 국민들이 무식해서 한나라당 뽑는다에 DC가 이름을 붙였을 뿐이죠.

볼빵

2008.04.22 16:37:39
*.46.226.233

장난치고는 너무 진지하게 주장하는 애들이, 은근히 많더군요. 나름 키배(키보드배틀) 여러번 떴습니다.

여울바람

2008.04.22 17:06:09
*.143.20.106

유권자의 선택을 제약한 '정당정치의 부실'에서 문제가 있다는 뜻이군요..으음..생각할 지점 같아요.

볼빵

2008.04.22 20:23:47
*.46.226.233

낮은 투표율에 대해 저는 선거제도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습니다. ( 사표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선거방식이니 투표에 대한 기대심리가 낮고 투표율도 낮다. http://gall.dcinside.com/jinjungK/3907 ) 중앙일보 시론에 어느 정치학 교수가 비슷한 취지의 글을 냈더군요. ( [시론]투표율 하락, 제도 탓은 없을까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109559 ) 한편 바람직한 대안으로는, 어느분의 적절한 포스팅이 또 있더라는 겁니다. (한국정치비극-띠불 선거제도를 바꿔라 http://junghan.pe.kr/tag/%C5%F5%C7%A5%C0%B2 )

김민섭

2008.04.23 06:50:44
*.61.204.67

도덕적 품성론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문자 그대로의 의미라면 좀 아니지 않을까요. 국민들의 의식이 성숙하지 못해서 비이성적으로 (계급적으로는 원래 지지해야하지 않는)잘못된 정당을 지지한다, 가 국개론의 뜻인데요. 대안부재 운운하지만 사실, 민노당이나 진보신당, 특히 민노당은 근 10년째 쭉 있어온 정당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국민의 10%정도가 민노/진보신당을 지지한다고 결과가 나왔으니 헷갈리기도 하네요. 저는 대안부재가 원인이라기 보다는 끊임없이 대안을 도출해내는 세력에게도 지지해주지 않는 국민들이 원인이 되어 대안부재가 생기는 게 아닌가 싶네요. 민주당같은 경우도 우향우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데 이게 국민들이 바라는 바를 행하려는 정당 정치가 원인이 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려운 문제내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뭐가 잘못되었고 어디서 부터 생각해봐야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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