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어스시의 마법사 : 그림자와의 조우

조회 수 1092 추천 수 0 2008.05.18 15:48:59
어스시의 마법사 (어스시전집1) 상세보기
어슐러 르 귄 지음 | 황금가지 펴냄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와 더불어 세계 3대 판타지 문학으로 손꼽히는 [어스시]전집 제1권 "어스시의 마법사"편. 환상 세계의 짜릿한 모험 이야기인 동시에 '자아 발견'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성장 소설인 이번 전집은 일본 애니메이션 '게드 전기-어스시의 전설'의 원작 소설이다. 마법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산골 소년 '새매'는 다른 섬의 침략자들을 물리침으로써 위대한 마법사 오지언의 제자가 되지만,


<어스시의 마법사>는 어스시전집의 주인공이라 볼 수 있는 게드가 대마법사의 명성을 얻기 전의 이야기다. 마법사의 재능을 보이게 된 게드는 '침묵의 오지언'을 스승으로 삼지만, 힘을 얻으려는 그의 호기심은 어둠을 소환할 뻔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오지언은 게드와 의논 끝에 로크의 마법사 학교에 그를 입학시키기로 결정하고, 추천서를 써준다. '바람이 옳게 불어 준다면 곤트의 마법사들 중 가장 훌륭하게 될 사람'이라 쓰여진 추천서를 들고 게드는 로크 섬에서 마법 수련을 시작한다. 그는 또래 중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이지만, 손위의 동료인 보옥과 갈등을 겪는다. 게드는 끝내 시기심과 미움에 사로잡혀 보옥 앞에서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기 위해 고대의 영혼을 소환한다. 그 사건은 게드가 보옥보다 훨씬 뛰어난 마법사의 자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만, 그때 게드의 영혼을 좀먹는 그림자가 저쪽 세계에서 같이 소환된다. 로크를 나온 게드는 그 그림자로부터 도망다니다가, '사냥꾼을 사냥하는 사냥꾼이 되라.'는 스승 오지언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림자를 사냥하러 다니기 시작하고, 마침내 그림자를 극복해 내는데 성공한다.


르 귄의 소설을 비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의 소설은 뭔가 어떤 종류의 인문학적 이론에 척척 들어맞을 듯한 냄새를 풍기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얘기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적절하게 찬사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냥 이 스토리에 맞춰 개인적인 얘기나 해보려고 한다.


나도 그림자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2003년쯤의 이야기였는데, 그때도 나는 그것을 '그림자'라고 불렀다. 특별히 무슨 이론을 알아서는 아니었고, 먼저 그렇게 부른 후 적당히 융의 '그림자'에 끼워 맞춰보기도 했지만, 큰 수확은 없었다. 차라리 이 소설의 '그림자'에 대한 서술을 보았다면 더 쉽게 공명했을 것이다. 나는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살다가 갑자기 그것을 인지했기 때문에, 정말이지 깜짝 놀란 상태였다. 어떤 커다랗고 검은 여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려고 하는, 그리고 그 문을 내가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꿈을 꾸었다. 그 문이 열리면 절대로 안 된다는 공포가 그 꿈 안에 있었다. 왠지 그게 꿈의 영역에만 걸쳐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 벌벌 떨었다. 가장 심하게 시달릴 때는 낮에도 눈만 감으면 그 환영이 보였다.


......악이야. 그것은 자네를 통해 악을 행하려고 해. 그것을 불러낸 자네의 힘이 그것에게 자네를 지배할 힘을 준 것일세. 자네는 이제 그것과 연결되어 있어. 그것은 자네 오만의 그림자이고, 자네 무지의 그림자이며, 자네가 던진 그림자일세...... (p111)


게드는 그것에 쫓기면서, 그리고 심지어 그것을 쫓으면서까지 그림자를 자신과 다른 어떤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판타지 세계에 살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것에 가장 심하게 시달릴 때도 물론 그것을 내 자신의 일부로 취급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냥 잠이 들기가 두려워 끊임없이 술을 마셨는데, 물론 그 술값으로 병원이나 갔다면 좋았을 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나는 내 돈으로 술을 먹고 있지도 않았다.


어떤 친구는 안 그래도 자살 충동이 심한 내가 자살해 버릴까봐 걱정했다. 그건 사실과 달랐다. 남자는 싸움을 하는 도중엔 자살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상황은 내 인격을 둘러싼 그것과 나의 권력투쟁의 상황이었다. 자살은 개뿔, 나는 오기가 치솟아 방방 뛰었지만 그것은 쉽게 진압되지 않았다.


급기야 내가 가장 신뢰하던 어느 현자(판타지스럽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는 이렇게 부를 수밖에 없다.)에게 조언을 하러 갔는데, '그것과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라.'고 말했다. 시도해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결정적인 성과는 없었다. 그래도 한참 고민을 해보니 그것에 나의 어떤 욕망이 베어 있는지는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다시 연애를 하게 되고, 친구들을 자주 불러모으고, 언제나 그랬듯이 술독에 빠지면서 나는 그림자를 그대로 내 안 어딘가에 존속시킨 채로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지나치게 술에 빠졌을 때쯤, 예정했던 대로 군대에 갔고 국가는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 줬다. 전역 이후에는 다시 운동과 술을 병행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지만, 가끔 몸과 마음이 약해질 때면, 여전히 녀석이 두렵기도 하다.


......그리고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게드는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니며, 다만 자신의 죽음의 그림자를 자기 이름으로 이름 지음으로써 자신을 완전하게 한 것이다. 그로써 그는 한 인간이 되었다. 진정한 자아 전체를 깨달은 인간이며 자신 아닌 그 어떤 힘에 이용당하거나 지배받지 않을 사람, 살기 위하여 살며 결코 파괴나 고통이나 증오나 어둠을 섬겨 살지 않는 인간이 된 것이다......(p293-4)


게드는 나처럼 어정쩡한 타협에 머물지 않고 그림자를 사냥하여, 그것을 흡수했다. 안 겪어본 사람은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경지이며, 있다 하더라도 정말이지 범인의 레벨에선 성취할 수가 없는 경지다. 하지만 자신이 잘났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이 소년이 저런 식으로 책임감을 지닌 대마법사로 성장하는 광경을 보는 것은 매우 유쾌했다.  



한줄 요약 : 르 귄 킹왕짱. 지금 일이 조낸 쌓여 있는데도 현실도피 심리로 집에 굴러다니던 르 귄의 SF 3권을 다 읽었음. 이제 일해야지 ㅠ.ㅠ
  

Cranberry

2008.05.19 21:43:38
*.219.107.121

르귄 킹왕짱 맞습니다 맞고요... ㅜ_ㅜ
황금가지에서 어스시 3권까지 내놓고서는 4권은 감감무소식으로 몇 년을 지내다가 '게드 전기' 때문에 갑자기 앞권 판본까지 다 바꿔버린 채 4권을 출간해서 절 분노케했지요.
출간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앞쪽 3권을 새 판본으로 바꿔주는 이벤트를 한 모양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다가 넘기고... 그래서 제 책장에는 어스시 시리즈가 4권만 뻘쭘하게 전혀 다른 책처럼 꽂혀있다는...

여담으로 '게드 전기'는 참으로 몹시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_-

hama

2008.05.21 11:33:15
*.72.242.107

http://www.locusmag.com/2005/Issues/01LeGuin.html

뜬금없이 Ogion의 발음이 궁금해져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르귄이 어스시 미니시리즈 관련해서 한 말씀 하신 에세이가 있네요. 역시 생각했던 대로 르귄 여사 가라사대 Ogion은 '오지언'이 아니라 '오기온'입니다. 사실 대충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고, 아마도 이 에세이 이전에도 르귄이 어딘가에서 언급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나는 것 같아서 황금가지의 선택은 아쉽습니다. 사소한 것이기는 하지만, 위의 에세이에서 르귄 여사가 '오지언'씨를 거듭해서 놀려먹는 것을 보면 르귄이라면 결코 이 선택을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어스시의 마법사 : 그림자와의 조우 [2] 하뉴녕 2008-05-18 1092
720 [펌] 스갤문학]] 2008 로스트메모리콩 1 [2] 하뉴녕 2008-05-16 1033
719 [씨네21/유토디토] 광우병 논란 하뉴녕 2008-05-16 1269
718 프징징의 계절이라고 함 [1] 하뉴녕 2008-05-16 912
717 밀어내기용 포스팅 [12] 하뉴녕 2008-05-15 785
716 홍진호!!!! [3] 하뉴녕 2008-05-12 1280
715 버로우 [10] 하뉴녕 2008-05-11 784
714 광우병 민심에 관한 몇 개의 잡담 [10] 하뉴녕 2008-05-09 798
713 이사 [3] 하뉴녕 2008-05-08 806
712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에 대한 생각 정리 [30] [4] 하뉴녕 2008-05-05 1011
711 [펌] 이명박 정부를 위한 변명 [3] 하뉴녕 2008-05-05 767
710 할아버지 [8] 하뉴녕 2008-05-04 801
709 광우병 논란 [13] [1] 하뉴녕 2008-05-03 1028
708 혁명의 끝 - 부제 : 택빠의 입장에서 바라본 “택뱅 시대” 회고 하뉴녕 2008-05-03 938
707 진영수 file [4] 하뉴녕 2008-05-02 962
706 혁명적 우익의 나라 [8] 하뉴녕 2008-04-30 1176
705 미국과 중국에 대한 입장의 차이 [4] 하뉴녕 2008-04-28 813
704 [대학내일] 교육현장에 상륙한 ‘규제 완화’ 광풍 [3] [1] 하뉴녕 2008-04-28 748
703 [씨네21/유토디토] 운동 망해도, 나 안 망한다 [3] [1] 하뉴녕 2008-04-27 1285
702 조모상 [11] 하뉴녕 2008-04-27 7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