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글 수 1,361
어제 종로를 행진하던 사람들은 3-4천명 정도 되어 보였다.
구호는 단순하고 간명했지만 언제나 같진 않았고, 가끔 대오 중간에 확성기로 구호를 조율하는 차량이 보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열심히 구호를 부르짖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대충 행진을 따라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할머니들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박근혜 지지자인지 아니면 무당파인 것인지 조금 궁금했지만, 뭐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이다.
태극기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보였다. 전반적으로 시위라기보다는 월드컵 거리응원 분위기를 연상케했다.
시위대는 자신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몰랐다. 지금 지나가는 시위대가 아까 시위대와 다른 시위대인지, 아니면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다시 돌아온 아까 그 시위대인지도 알 수 없었다.
어느 누구라도 이 사람들을 실제로 보게 된다면 '좌익'이라는 딱지붙이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좌파'라고 불려서는 안 된다고 방어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가 짜증났지만, 여하간 조중동도 이번에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아예 시위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정부나 조중동의 입장에서는 시위대가 쇠파이프라도 들어주기를 간절하게 원할 것이다. '폭력시위'를 유도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했으면 좋겠다.
386세대 끝자락에 있는 어느 분은, "세상에. 경찰이 막으면 그냥 다른 길로 피해가면 되는 거구나. ㅡ.,ㅡ;; 왜 우린 그걸 몰랐지? ;;;;"라고 반응했다. 90년대 후반 학번인 누군가는 시위대 앞과 뒤에 사수대가 없다는 것, 그들 뒤로 전경이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무척 신기해 했다.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소위 '민주화 세력'을 지나치게 용인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민주화 세력이 양극화를 주도하는 현실에서 어지러이 배배꼬여 표출되기 어려웠던 그들의 불만이, 이명박에게 모두 표출되고 있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으로서도 조금은 억울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레토릭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현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감정으로부터도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 말이다.
여하튼 굉장히 흥미로운 풍경이었다.
봉구
촛불시위에도 낮의 '걸어다니는 헌법' 버젼이 있고, 새벽녘까지 이어지는 밤의 '쓸쓸하고 애잔한 달빛같은 대한민국' 버젼이 있는 듯 싶었습니다. 자신감있고 당당하고 세련되고 능숙한 정치소비자의 행진과, 미처 다 못 타오른 사람들의 애잔한 촛불빛이 번지는 어스름한 새벽이 공존하는.. 놈현 유시민에 대한 그리움 대신 땡볕에도 지지 않고 빛나는 촛불 하나씩 안겨 드리고 싶었는데, 특히 스스로 역사공부 정치공부 해서 나오는 '88만원 세대' 분들한테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그런 주제에 되도 않는 소리 떠들고 나왔더니 맘속에 계속 물이 찰랑거립니다. T_T 참.. 세상 일도 모를 것이, 흡사 일본의 마이니치 산케이 요미우리의 권위가 하루 아침에 시정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같은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줄 어느 누가 알았겠어요(절레절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