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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4월 11일자 판에 실린 건데 이사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늦게 올립니다. 이 당시에 사람들이 이런 쪽 얘기를 안 하는 것 같아서 부러 이렇게 썼는데, 이 사건에 대한 진보언론/지식인들이 반응에서 보완해야 할 지점에 대해선 따로 짧게 포스트를 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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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카이스트에서 잇따라 4명의 학생이 자살함으로써 ‘징벌적 등록금제’가 논란이 됐다. 카이스트를 비판하는 사람도 많지만 자살의 원인이 거기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사람, 다른 대학에서 자살한 이들도 많다고 반론하는 사람도 많다. 죽은 이들의 유약함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거나, 심리적 문제로 환원하려는 태도도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한국 사회가 다른 죽음들을 대하는 방식과 대동소이하다.


물론 누구도 죽음의 원인을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죽음이란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는 게 아니라, 그로부터 환기된 제도와 그 제도 이면의 교육철학의 정당성 여부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맞짱을 뜨겠다는 신념으로 학생 수를 무리하게 늘리고, 그렇게 늘린 학생의 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 학점이 3.0에서 0.01 미달할 때마다 6만원씩 등록금을 늘려 최대 600만원의 등록금을 걷는 것이 합리적인 제도이며 올바른 대학개혁 일환이라고 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경쟁’의 강요가 학생들의 최선의 노력을 이끌어내고 대학 경쟁력을 올린다고 판단할 것이다. 최근 카이스트의 세계 대학 순위가 올랐다는 사실은 이 판단의 유력한 근거가 된다. 다행히 네 번째 자살자가 발생한 이후 여론이 악화되자 서남표 총장은 다음 학기부터 징벌적 등록금제는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어떤 차원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당장의 격앙된 여론이 작용한 결과로 사태가 매듭지어진다면, 이와 비슷한 제도와 사건은 다시 생겨날 것이다.


‘경쟁’ 논리 자체가 문제이며 대학의 시장화가 문제라고 규탄하는 방법도 있지만, 오늘날의 ‘대학 개혁’이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실력’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따져보는 시각도 필요하다. 카이스트처럼 등록금이 국비로 지원되는 대학엔, 가정형편이 안 좋지만 실력이 좋은 학생들도 지원해봄직하다. 그런데 학비가 지원되고 기숙사가 제공된다 하더라도, 생활걱정 없이 공부할 시간을 많이 배당할 수 있는 쪽은 아무래도 형편이 괜찮은 학생들이다.


평균적으로 볼 때 징벌적 등록금은 가난한 이들에게 교육비를 더 물리는 역누진세와 같은 정책이다. 이는 ‘학점이 좋은 취약계층 자녀들’에게 등록금을 주겠다는 대부분의 대학 장학금 정책이 ‘눈가리고 아웅’으로 전락하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복지가 허약한 한국 사회에서 ‘성적’으로 지표화된 실력은 그 자체로 계층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데, 그 지표를 보고 징벌하고 포상하는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 펼쳐지는 거다.


수많은 대학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학교를 만들기 위해 등록금을 인상하고 학생들의 경쟁을 권장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있는 것은 교육시장 개방과 대학 구조조정 시대를 대비하여 더 많은 자본금을 축적하려는 ‘대학 간 재무지표의 경쟁’일 뿐이다. 학생들이 아니라 대학 법인이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고, 그 경쟁을 위해 학생들(혹은 학부모들)의 ‘삥’을 뜯고 있는 것인데, 이런 유의 경쟁이 학생의 실력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지 알 수 없다.


등록금을 많이 받으면서 연구업적도 남기기 위해 애초에 형편 좋고 실력 좋은 학생만 선발하려는 욕망까지 느껴질 정도인데, 몇몇 상위권 대학이 이런 방식으로 그들을 빨아들여 순위를 올리더라도, 사회 전체적으로 나오는 결과는 형편이 안 좋은 학생들의 실력 발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일 뿐이다. 징벌적 등록금제가 폐지된 김에 한국 사회의 장학금 제도에 관한 논의도 이런 측면에서 다시 한번 활성화되었으면 한다.


파도소리

2011.04.15 13:28:49
*.246.71.97

장학금보다 기숙사나 식비, 교재비 지원이 바람직 할 수도 있겠네요 물론 빈곤층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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