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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

조회 수 4912 추천 수 0 2011.04.06 14:06:54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 다큐멘터리, 67분, 감독 손경화


<개청춘>을 연출했던 여성영상집단 반이다의 멤버들이 각기 신작을 들고 나타났다. 그중 손경화의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과 나비의 <송여사님의 작업일지>(35분)은 이전에 얘기했듯
2011/03/23 - [문화/영상물] - 인디다큐페스티벌 2011 에서 상영되었다. 지민의 <두 개의 선>(85분)은 4월 7일에서 14일까지 신촌 아트레온 관에서 열리는 제1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기간에 상영될 예정이다. 이 영화제에선 세 사람의 신작이 모두 상영되는데, <그 자식...>은 4월8일(금)과 4월12일(화) 오후 다섯시, <두 개의 선>은 4월 9일(금) 오후 다섯시와 4월 13일(수) 오후 두시, <송여사님의 작업일지>는 4월10일(일) 오후 두시와 4월12일(화) 오후 다섯시에 '아시아 단편경선 3'에서 상영된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홈페이지http://www.wffis.or.kr/wffis2011/00_intro/intro.html )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은 <개청춘>의 GV시간에 감독들이 후속작에 대한 설명을 할 때부터 기대작(?)이었는데, 그 주된 이유는 제목이 일종의 '낚시'였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관객들은 <개청춘> 감독의 후속작 이름을 들었을때 자연스레 '그 자식'이 현임 대통령을 말하는 것일 거라 생각하게 되었는데, 사실 제목에서 말하는 대통령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대구에서 자라난 감독은, '그 자식'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망할 거라 했던 동네 어른들의 웅성거림으로부터 김대중을 알게 되었다. 그후 십 수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자라난 동네의 사람들과 사뭇 다른 정치의식을 지니게 된 감독은, 아버지의 정치의식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반이다의 나비가 찍은 <송여사님의 작업일지>와도 흡사한 구석이 있지만,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함께 상영되었던 강유가람 감독의 <모래>(53분)와 같은 핏줄의 영화일 것이다. GV에서 들은 바에 따르면, <모래> 역시 감독과 친구들이 어떤 모임에서 "왜 아버지들은 한나라당을 찍는 걸까?"라는 의문을 공유한 후,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에서의 투표를 클라이막스로 하는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래>가 묘사하는 감독의 가정은 <그 자식...>의 가정과 계층적 차이가 있었고, 결국 <모래>는 '강남'이라는 공간에 더욱 천착하여 "나는 강남 은마아파트에서 산다."는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조금 다른 결의 영화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결과 <모래>의 클라이막스는 투표 장면이 아니라, 감독의 가족이 강남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아파트를 팔고 이사하는 그 순간이 되었다.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이나 <모래>와 같은 영화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영상의 측면에서 볼 때 이 영화들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작품들의 연출에서 뛰어난 지점들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고, '나'와 '내 가족'들을 그린다는 다큐멘터리 컨셉 자체가 한동안 성행했지만 이미 '흘러간 유행'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묘하게도 인디다큐페스티벌 국내신작전 심사평에서 http://sidof.org/510 수상을 하지 못한 채 함께 언급되는 처지가 되었다. 심사평은 "이 젊은 두 작가는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문제를 고스란히 담지하고 있는 자신의 부모세대와 어렵지만 대화하고 있었"고, 그들의 "진심과 정제된 언어는 한편의 훌륭한 시를 접하듯 깊은 여운을 남겼"다고 말한다.


그 '깊은 여운'의 정체를 규명하려면 아마도 영상언어의 맥락과는 다른 문맥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반이다의 멤버들이 나같은 반푼이 글쟁이에게 굳이 초대권을 보내온 것이 아닐까 한다. 함께 영화를 본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그 자식...>은 홈비디오를 연상케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동세대의 일하는 친구들을 찍으면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자신들의 모습도 물끄러미 들여다볼 수 있었던 <개청춘>의 후속작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홈비디오 같은' 모든 종류의 것들이 우리에게 여운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 자식...>은 어깨에 힘주지 않고 편하게 얘기하면서도 보편적인 어떤 경험에 접속하고 있기 때문에 여운을 줄 수 있는 것일 테다.


그 보편성이란 건 무엇일까? <그 자식...>에 조금 아쉬움을 표한 사람들은 '어차피 다 아는 얘기인데 너무 차근차근 접근한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사람들이 '다 아는 얘기'라고 말한 건 그들이 경상도의 가난한 아저씨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세태와 그 논리에 대해 이미 알만큼 안다는 그런 의미일 테다. 사실 <그 자식...>이나 <모래>에 등장하는 '아버지'들이 우리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특이한 사람들은 아니다. 우연히도, 혹은 자연스럽게도 둘다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분들은, 제각기 '대구'와 '강남'이란 공간에서 그리 어색하지 않을 전형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분들의 발화 사이엔, 그분들 간에 엄연히 존재하는 계층적 차이를 잊게 할 만한 어떤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공통점'을 발견할 때, 정치에 대해 논의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섣불리 '타자화'하고 덧붙여 지역과 세대의 낙인도 찍는다. 영남 사람들이 문제야, 나이 든 사람들이 물러나야 이 나라가 잘 될 거야, 영남 사람들이나 나이 든 사람들이 투표를 열심히 하는 건 유감이야...등등의 말들. 특히 한국 사회의 진보담론을 전유한 '386세대'의 경우(좀 더 넓게 잡으면 그보다 살짝 아래인 90년대 초중반 학번들까지) 그런 이들을 '무지한 대중'으로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지는 않은가? 그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생물학적으로 그들이 퇴장하기만을 기다려 온 것은 아닌가?


그러나 한국 사회 정치 발전의 지지부진함이나 최근 부각되고 있는 '청년세대 보수화' 담론은 정치적 진보라는 것이 나이든 사람이 늙어죽을 때까지 기다린다고 해서 달성될 일은 아니라는 점을 뚜렷이 보여준다. 이러한 청년보수화에 대한 386세대의 시선은 "역시 독재정권으로부터 세뇌당한 부모들에게서 자라난 아이들이라 보니 지각이 없는 것 같다."는 은밀한 속삭임을 동반한다. 그 이면에 그 잘난 세대로부터 태어나 잘난 교육받고 자라난 우리의 어여쁜 10대들에 대한 예찬의 감정이 베어 있음은 물론이다. 


1980년대생들과 1990년대생들이 나중에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예상은 여기서 생략하도록 하자.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이렇게 다소 나이브하게 구별되는 세대별 정치담론에 짓눌린 한 또래집단의 실존적 고민이다. 이를테면, 내게 정치의식을 학습시킨 저 선배들이 '무지한 대중'이라고 소리높여 비난하는 그 사람이 내 아버지라면 어떻게 되는가? 나는 부모의 삶을 부정하고 담론의 학습을 따라 그들을 경멸하는 시선을 내재화할 수 있는가? 아니면 내 부모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철부지 진보담론을 쓰레기통에 버려버릴 것인가? 두 가지 모두 답이 아니라면, 어떤 해답이 존재하는가? 


이십대 초중반에 두 가지 선택 중 한 방향으로라도 요동을 쳤을 그 세대가 서른 문턱에 이른 순간에, '아버지의 정치의식의 기원'을 탐색해 보자고 달려든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스무 살이 넘어 그들 중 일부는 부모의 정치의식과 절연하고 새로운 종류의 의식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 시점에 적어도 정치의식의 측면에서 그들은 '고아'였고, 그들 부모의 '전통'과 단절되어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전통을, '광주의 학살'로부터 태어났다는 선배 세대의 서사적 전통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식을 형성했다. 실제로 학살의 동시대를 살지 못한 이들은 제각각 제 시대의 죽음을 호출해내거나 근 과거의 죽음들을 서사화/전설화함으로써 정치적 의식을 쌓아갔다.


그리고 서른, 선배들처럼 잔치가 끝났다고 선언하기는커녕 무언가를 시작도 못했다는 자각이 드는 시점에, 그들은 자신들이 기대고 있는 담론의 맥락과 자신들의 삶을 지탱하는 유물론적인 맥락 사이의 존재론적 모순을 느끼게 된다. 아직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고, 설령 독립을 했더라도 지금껏 먹은 것과 입은 것, 그리고 만에 하나 내 삶에 무슨 문제가 생길 경우 부모님에게 "최소한의 안전망"(나레이션에 나오는 말이다.)을 요구할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문제의 귀결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문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주할 수도 없는, 가만히 있을 수도 없지만 앞으로 가기에도 두렵고 뒤로 가기에도 위태로운 그런 중간지점이다. 굳이 이 덫에 걸린 듯한 느낌의 사회적 의미를 찾자면, 한국의 정치평론들이 손쉽게 배제해온 이 다수의 '타자'들에 대해 어떻게든 말하고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리라는 데에 있으리라. <그 자식...>은 영남, 기독교, 한나라당 지지, 빈곤층이라는 한국 사회의 꽤 많은 구성원들에게 하나쯤은 해당할 것 같은 전형들을 들이밀면서 이 보편적인 과제를 가족사를 통해 보여준다. 이것이 영상의 몫이라면, 또한 영상이 고민하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관객의 몫은 이 영화를 관람하고 함께 얘기나누는 것일 게다. 일단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Proles

2011.04.07 13:11:45
*.47.237.11

다른 날만 가고 바빠서 못 갔는데, 저 역시 제목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었군요. 대체 내 아버지는 왜 그런가에 대한 질문을 꾸준히 가지던 사람으로서,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요새 '계몽영화'를 끊어서 보고 있는데, 그것 또한 '한국 우익'의 탄생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제 흥미를 끌고 있습니다. 연결해서 보면 좋겠군요...

똠방

2011.04.09 03:05:26
*.211.71.158

오늘 '당신과 나의 전쟁' 특별 상영에서 만날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리뷰에 '그 자식'이 전혀 다른 인물이란 걸, 오늘 손경화 감독을 만나고서야 알았네요. '그 자식'이 그 '그 자식'이라 생각하고 있었을 땐, 영화를 봐야겠다는 흥미를 그다지 느끼지 못했는데 대구에서 출발하는 '그 자식'이란 걸 알고 나서 영화를 꼭 봐야겠다는 강한 욕구가 밀려 옵니다. ^_^

근데 사족인데요, '나'와 '내 가족'들을 그리는 다큐멘터리 컨셉은 아직도 강력한 컨셉입니다. 물론 이걸 한국이란 공간으로 국한 한다면 어떤지는 모릅니다만... '사적 다큐'란 형태로 구미에선 강력한 장르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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