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포모스=심현 기자]마음 편하게 다시 경기에 임할 수 있을 것 같다

‘영웅’ 박정석(공군)이 프로리그 최초로 정규시즌 통산 100승을 달성하며 e스포츠 역사에 길이 빛날 대기록의 주인공으로 탄생했다.

21일 오후 6시 30분 용산 e스포츠 상설경기장에서 열린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4라운드 2주차 4경기에서 박정석은 3세트에서 ‘정복자’ 박지수(KTF)를 물리쳤다.

다음은 박정석과의 일문일답.

- 드디어 프로리그 최초로 100승 달성에 성공했는데
▲ 사실 100승을 먼저 기록하면 당연히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반면에 ‘100승이 그렇게 대단한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에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연패를 끊었다는 사실이 더욱 기쁘다. 100승에 대한 주변의 시선에 굉장히 부담이 컸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이제 100승을 찍었으니 0승이라는 생각으로 마음 편하게 다시 경기에 임할 수 있을 것 같다.

- 99승에서 3연패를 당하면서 추격하는 선수들이 신경 쓰이진 않았는지
▲ 내 솔직한 심정은 100승도 먼저하고 부담감도 덜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내 생각보다 주변의 한 사람 한 사람 이야기가 나에게는 수 많은 의견으로 전해지면서 부담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동과 이윤열의 경기 결과에 대한 관심이나 걱정이 없진 않았다. 그냥 내 성격인 것 같다. 만약 또 다른 성격의 사람이라면 즐겼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부담이 됐던 것이 사실이다.

- 오늘 경기에 임하면서 가졌던 생각은
▲ 4라운드 들어 매 경기 출전하면서 가졌던 생각과 같았다. 마음은 비우고 싶었지만 주변의 이야기와 시선에 부담이 됐었다. 그래도 최대한 부담을 덜고 연습한대로 경기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오늘 준비한 전략 역시 많은 선수들이 도움을 준 전략이다.

- 전진 로보틱스 전략을 선택했는데
▲ 오늘 전략은 삼성전자 허영무 선수가 추천해준 전략이다. 사실 최근에 경기가 많아서 연습량이 그렇게 많지 못했다. 그런데 허영무 선수가 ‘몰래 로보틱스가 어떠냐’는 이야기를 해줬고 직접 해봤더니 좋은 전략이더라. 기존에 추천을 받기 전에는 무난한 정석 플레이만 연습했는데 상대에게 견제를 하지 않고 무난하게 경기하니까 테란이 생각했던 플레이를 하면서 힘들었다. 그런데 몰래 로보틱스를 선택하면서 견제를 통해 테란에게 피해를 줬고 생각했던 플레이를 하지 못하게 하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건물을 짓는 위치도 연습을 해보니 상대들이 모두 발견을 하길래 정찰을 거의 하지 않는 중앙에 짓기로 결정했다. 준비한 전략이 잘 먹혔고 오늘 경기도 잘 풀렸던 것 같다. 오늘도 한번에 끝내고 싶었지만 중간에 약간 루즈한 타이밍도 있었다. 어찌됐건 승리했고 팀도 이겨서 더욱 기쁘다.

- 100승 달성 이후 목표가 있다면
▲ 오늘 승리는 100승이 아니라 0승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0승부터 시작해서 또 다시 최초 100승을 하고 싶다. 내 마음가짐을 그렇게 갖고 경기를 풀어가고 싶다. 이렇게 말이라도 하고 마음가짐을 다시 잡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경기하고 싶다.

- 100승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꼽는다면
▲ (송)병구와의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13연패를 하면서 치른 경기를 보면 정말 내가 보더라도 ‘이런 경기가 다 있나’ 싶을 정도로 형편 없는 경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날 경기 승리를 계기로 자신감도 얻었다. 그날의 승리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100승이 있었던 것 같다. 91승째 경기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걱정했던 것이 내가 90승에서 멈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군 에이스에 와서 무려 10승을 했다.

- 지금까지 선수 생활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꼽는다면
▲ 프로리그 개인전 13연패를 기록하던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그때였고 공군 에이스에서 1승이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다. 그 만큼 뜻 깊은 승리였고 ‘하면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해준 경기였다. 그 경기로 인해서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병구로 인해서 슬럼프를 시작하고 병구로 인해서 다시 딛고 일어섰다. 병구가 나에게 기쁨도 주고 슬픔도 줬다(웃음).

- 100승 상대 팀이 친정 팀인 KTF였는데
▲ KTF 입장에서는 1승이 필요한 중요한 시기였는데 그래서 조금 미안한 감정이 있다. 오늘 승리하고 나서 정말 환하게 웃고 싶었지만 그것 때문에 크게 기뻐할 수 없었다. KTF에서 항상 잘 챙겨줬는데 미안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승리를 하고 싶지 않다면 프로게이머를 그만둬야 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99승을 찍은 이후부터 정말 큰 부담감이 다가왔다.
병구에게 1승을 기록한 이후부터는 경기에 대한 생각은 없이 편하게 잠을 자고 맑은 정신으로 제대로 연습에 임했다. 하지만 99승 이후부터는 경기에 대한 생각과 부담감이 머리 속을 헤집으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경기에 대한 생각과 부담감이 크겠지만 나 역시 99승 이후 그런 생각과 부담감이 너무 컸다. 나는 부담을 가지면 제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이제부터는 잠도 잘자고 부담 없이 경기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수들 가운데는 허영무, 송병구, 이 두 명의 선수에게 고맙다. 둘은 내가 경기에 임하기 전에 항상 조언을 구한다. 평소에 친하기도 하지만 둘은 나에게 도움을 정말 많이 주는 선수다. 내가 생각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해서 도움을 주기도 해서 너무 고맙다. 그리고 100승 때문에 부담감을 느낀 것을 알고 큰 도움을 준 팀원들에게도 고맙다. 빨리 이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많이 미안했다.
KTF 매직엔스 선수들에게도 고맙다. KTF 선수들은 100승을 기록하기 까지 큰 도움을 줬다. 온게임넷 카메라 감독님도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형인데 오늘 100승하라고 박하사탕과 초코파이를 줬다. 그 박하사탕을 먹고 100승을 기록한 것 같아서 고맙다.
주변에 너무 고마운 분들이 많은데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마지막으로 정석동 회원 여러분들께 정말 고맙다. 내가 부담될 까봐 말 없이 응원만 하면서 큰 힘이 됐다. 첫 100승 도전 때는 떡 케이크까지 준비해주셨는데 지는 바람에 그 다음부터는 준비하지 않으시더라(웃음). 팬 여러분들 덕분에 잘 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 드린다. 나도 앞으로 부담 없이 경기할 수 있고 팬 여러분들도 부담 없이 지켜보실 수 있을 것 같다.
깜빡 할 뻔했다. 공군 에이스에 관심을 쏟아주시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관계자분들께 정말 감사 드린다.

lovesh73@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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