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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학생논단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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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쯤 되면 꽃다운 나이의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듣는다. 사람들은 그들의 처지를 동정하기도 하고 그들이 성급했다고 나무라기도 한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의 구조를 생각해 볼 때 이것이 몇 년 이내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내년에도 같은 소식을 듣게 될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이 문제의 비극성에 무뎌지고, 매년 똑같이 자살한 수험생들만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입시정책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


내신 강화, 수능 등급제, 논술시험 외 본고사 금지 등으로 요약되는 현 정부의 입시정책에 대한 불만이 높다. 입시경쟁의 과열을 해소하고, 명문대들이 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취지의 이 정책들은 소기의 효과를 거두기는커녕 수험생들의 불안과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내신 강화 정책은 ‘13번의 수능’이라는 자조를, 수능 등급제는 한 문제 차이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로또 수능’이라는 한탄을 낳았고, 논술시험은 입시에 찌든 그들이 ‘슈퍼맨’이 되길 요구한다. 대학이나 논술학원에서 추천하는 교양도서를 보면 그래도 인문대를 오랫동안 다닌 필자가 읽은 책이 절반도 안 되는 것이 현실. 상위권 학생들은 비싼 돈 주고 받아온 학원에서 나눠준 프린트를 ‘암기’하며 불안을 달랜다.


무엇이 공교육인가? ●

현 정부는 3불정책(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본고사 금지)을 옹호하면서 교육의 공공성을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여입학제나 본고사는 시행되는 방식에 따라서는 현재의 정책보다 나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것을 단순히 부자들을 위한 주장이라고 공박한 결과, 사람들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주장하는 경제주의자들이 ‘경쟁력(?)’을 옹호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당장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 교육정책이 크게 변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공교육의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사장되고 있다. 시급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저소득층 학생들이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교육인 공교육의 질이 담보되어야 한다. 둘째, 공교육에서 제시하는 입시의 기준이 학생들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잣대가 되어 경쟁의 에너지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인도해야 한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는 한국인들이 결코 입시경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배웠다. 사회적 안전망이 전혀 없는 학벌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모든 가정에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것에 강제로 찬물을 끼얹으려는 입시정책은 전혀 성공을 거둘 수 없다. 내신과 논술의 오묘한 조합은 그것을 억제하지도 못하고, 사교육을 강제하며, 한 두 번의 실수나 실력의 완만한 향상가능성을 부인하면서 교육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참가자들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통합적인 비전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

입시정책은 대학정책과 맞물려야 효과를 거둘 수 있을 뿐더러, 그 자체가 주의 깊게 설계되어야 한다. 우리의 교육여건에 비춰 볼 때 실행이 가능하면서도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적 비전에 대한 토론이 바로 지금 시작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몇 년 후 또 다시 더욱 거대한 혼란의 현장을 지켜보게 될 수밖에 없다.



한윤형 서울대 인문 01 (대학내일 4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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