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이렇게 자세하게 적는 것은 내키지 않아 망설였는데, 사태를 둘러싼 혼란스러운 인식이 너무 많아서 할 수 없이 정리해 봤다.
먼저 사실만 건조하게 적어보자.
김현진이 사람을 때렸다. 그것도 여성을. 때린 이유는 폭력을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닌 상식인의 입장에서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피해자의 상처 수위는 전치2주였다. 의사는 맞은 직후에 왔으면 전치3주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냥 툭툭 치는 폭력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법적 개념으로 '상해'까지 가는 수준의 폭력은 아니었다. 좀 애매하긴 하지만 대체로 검찰에서 구속기소를 하는 수준은 전치 4주부터라고 한다. 뭐 의사에게 폭행 피해자라고 말하면 전치4주로 그냥 해준다는 얘기도 들었으니, 이 기준이 그렇게 엄밀하지는 않다. 여하튼 이 사건을 법리적으로 건조하게 기술하면, 고소를 했을 경우 김현진은 약간의 벌금을 물고 끝났을 것 같다.
피해자는 고소를 원하지 않았다. 여러가지 이유로 인한 공포심 때문에 가해자를 다시 보기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피해자에겐 심리적인 상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피해자가 원한 것은 김현진이 자신의 블로그에 사과문을 올리는 것이었다. 피해자가 원한 것은 가해자의 사과의 진심뿐 아니라, ‘글쟁이’ 김현진이 자신의 행위를 독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반성하는 그 행위였던 것 같다. 그런 요구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여하튼 그런 요구도 이해할만 하고, 정당했다. 고소를 하지 않는 대가로 쌍방이 합의한 것이 그거라면 더더욱 그렇다. 김현진의 사과문은 진정성이 없어 보였다고 평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여하튼 본인의 이해할 수 없는 폭행의 과정을 서술하여 사람들에게 전달하기는 했다. 그러나 나중의 시점에서 당시를 서술하자면, 피해자는 김현진의 사과에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후 김현진은 블로그를 접었고, 그렇게 이 사건은 끝나는 듯 했다. 문제는 그녀가 낸 신간에서 불거졌다. B급 연애담에 대한 그녀의 책에 피해자의 사례가 한 사례로 들어가 있었다. 이것도 상식인의 입장에서 납득이 가는 일은 아니다. 자기가 때린 여자의 사례를 왜 책에 써먹는단 말인가. 가장 선의적으로 해석한다면, 폭행사건이 있기 전에 넘긴 원고를 미처 검토하지 못하고 그냥 낸 것일 게다. 물론 이것도 작가의 부주의다. 도대체 그걸 왜 까먹어. 피해자는 기분이 나빴다. 출판사에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자기 얘기는 빼달라고 했다. 출판사는 이미 나온 책의 회수는 곤란하고 2쇄부터는 그 얘기를 빼주겠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는 그 제안에 동의했다.
그후 몇 가지 이 사건을 스캔들(?)로 비화시킨 소소한(?) 계기들이 있었다.
김현진을 욕하는 블로거와 김현진을 옹호하는 블로거가 싸웠다. 피해자는 다시 한번 기분이 나빴다. 서점에 가서 책을 확인했다. 2쇄가 나왔는데, 수정이 되어 있지 않았다. 당연히 화가 난다. 출판사에 전화를 했더니 사실은 1,2쇄를 한꺼번에 찍었다고 한다. 3쇄부터 바꿔주겠다고 한다. 피해자에게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은 아니다. 피해자는 인터넷에 이 사실을 공개하겠다고 말했고, 출판사는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피해자는 이글루스에 블로그를 하나 만들어 폭로글을 쓴다. 제목은 “김현진 작가에게 글을 도용당했습니다.”다. 이 글은 거의 올라오자마자 이오공감에 올랐고, 이틀 후 내려오기 전에 400에 육박하는 (혹은 넘는) 전무후무하고 가공할만한 추천수를 기록했다. 이왕 사건을 폭로하기로 한 상황에 피해자가 자신의 글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 했다는 것은, 그러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은,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문제는 글의 내용이었다. 그 글의 내용은 지금 내가 서술한 건조한 사실들의 나열이 아니었다. 김현진과 그녀의 친분에서부터 시작하여, 폭행 당시의 자세한 상황, 폭행 이후의 그녀의 행동, 까지의 상세한 내용이 기술된 일종의 서사였다. 그 내용은 피해자의 권리를 구제받기 위한 필요 이상으로 김현진이라는 이름의 사람의 사생활 정보를 낱낱이 까발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로 그랬기 때문에, 그 글을 보고 김현진에게 분노를 느꼈다. 솔직히 말해서 김현진이 남자친구의 양다리에 슬퍼할 당시에 자신도 양다리였다거나 폭행 직전의 피해자가 찾아 냈을 때 옆에 있는 남자를 껴안고 있었다거나 하는 종류의 얘기들이 (적혀 있었던 얘기들은 이보다도 훨씬 상세한데) 이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하지만 바로 이런 얘기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김현진을 “좋은 사람인 척 하고 다녔지만 사실은 나쁜 년”으로 규정하고 무한대의 분노를 터트릴 수 있었던 거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건 명예훼손이다. 법리적으로 볼 때는 적어도 김현진이 했다는 도용보다는 훨씬 무거운 범죄일 것이고, 폭행 사건에 대해 고소를 하여 쌍방 맞고소를 한다 해도 어느 쪽이 더 피해를 볼 지도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피해자의 ‘대응폭력’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난 절대적 평화주의자가 아니라서 대응폭력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피해자와 김현진 간의 권력관계에서 김현진이 우위에 있다면, 그런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이틀 후 뒤늦게 명예훼손의 위험을 자각한 피해자가 자신의 글을 내리고, 출판사 및 저자와 협의를 하면서 종료된다. 쌍방 고소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김현진의 각서와 사과문을 피해자 측에 전달하고, 3쇄에서는 피해자의 얘기가 아닌 다른 얘기를 넣기로 했다. 해당하는 원고는 이미 저자에게 받아놓은 상태라고 했다. 전반적으로 봐서 출판사의 초기 대응이 미진하기는 했지만 사건 발생 이후 출판사와 저자가 신의있고 성실하게 반응하지 않았다고 보긴 어렵다.
이 정도면 사건은 끝난 것이며 그 외의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구석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사건 당사자인 것처럼 ‘김현진 비판’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다. 근데 가만히 듣고 있자면 이건 ‘비판’이 아니다. 사람 패고 글 도용한 쌍년이 글을 쓰는 꼴을 우리가 방치해야 하느냐, 합심하여 그녀가 더 이상 글 팔지 못하고 살도록 하게 해야 한다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이 그런 수준이란 건 그들이 “사태를 다 봤지만 그래도 난 김현진의 글을 좋아한다(읽겠다).”고 말하는 블로거들에게 가서 난리를 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네들은 그것이 ‘소비자’로서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글을 ‘소비’하겠다는 다른 ‘소비자’를 타박하는 소비자 운동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들의 행동은 피해자의 합의문의 내용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피해자는 김현진이 어떤 행동을 할지 앞으로도 지켜보겠다고 했지 글을 쓰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
보다 못해 이택광이라는 사람이 나서서 몇 마디를 했다. 요약하자면 이 사건을 관통하는 집단적 다구리의 방식이 박재범 사건과 별 차이도 없다는 것이다. 사태의 파장의 크기에 차이가 있고, 박재범보다는 김현진이 훨씬 잘못했다는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 보아 그리 틀린 얘기는 아니다. 가령 모 블로거는 한겨레 데스크에 그녀의 글을 빼라고 난리치자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건 김현진의 글이 불량상품이니 소비자들을 설득하여 먹지 못하게 하자는 수준을 넘는다. 말하자면 변희재가 “박재범과 박진영을 퇴출시켜야 한다.”고 말했던 그 시장(?)의 논리다. 그래서 이택광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닮아 있습니다. 애국주의라는 측면만 빼면 말이죠. 일단 '추방'과 '배제'라는 정서에서 그렇고, 공공성을 빙자해서 타인의 행복추구권을 인정하지 않고자 하는 감정들이 비슷하죠.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비난의 대상에게 '사회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리려는 게 목적이죠.” 독해력이 부족한 이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여기서 말하는 ‘행복추구권’은 김현진의 사람을 패거나 원치 않는 사람의 사례를 인용할 권리가 아니라 글 쓸 권리를 말한다.
그 권리를 인정하지 않겠다면 어쩔 것인가. ‘자유주의’를 자유주의적 정의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내가 좋은 것을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것’이라 본다면 어찌할 것인가? 김현진을 비난할 수는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녀의 글을 읽지 않겠다는 사람을 말릴 수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글을 읽겠다는 사람도 존중되어야 한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상식’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박탈하려고 하면서 스스로가 정의를 행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김현진의 글을 읽지 않는다. 억지로 그러는 건 아니고, 그녀의 글이 내게 필요한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글이 필요할 수도 있을 거다. 그 영역은 나와 관계없는 세계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녀의 글 쓸 권리를 다른 사람들이 논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다는 거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이 사건을 통해 김현진의 글 쓸 권리를 원천적으로 박탈하고 싶기 때문에 사실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사태를 잘 모르고 개입해서 그러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에는 잘 모르는 얘기를 흥분해서 하는 것이 그리 적절한 일은 아니라는 문제가 있다.)
1) ‘표절’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정말 표절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그 글쟁이의 글 쓸 자격에 대해 논할 수도 있을 거다. 근데 전체 책에서 몇 줄에 해당하는 남의 사례를 허락없이 인용했다고 해서 그걸 표절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피해자의 합의문을 보면, 이 사태는 ‘도용’도 안 되고 ‘복제’라는 개념으로 정의되었다고 한다.
2) 남의 사례를 자기 사례처럼 써먹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김현진은 남의 사례를 이니셜을 써서 썼다. 서술이 너무 상세해서 문제가 됐지만. 역시 이 건과는 관련이 없다.
3) 그 사례 서술에서 피해자를 비하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그렇지는 않다.
4) 이 모든 과정에서 김현진이 사과를 하지 않고 나댔다는 사람이 있다. 피해자의 텍스트를 통해 사태를 살펴봐도 그렇지는 않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김현진의 글을 불량식품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정당하다. 근데 그러려면 이렇게 사실을 막연히 아는 대중의 분노에 편승해서 상대방의 ‘사회정치적 사망’을 욕망해서는 안 된다. 이번 건은 김현진의 글쓸 권리를 논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런 주장을 하고 싶다면 김현진의 이전 글에서도 어떤 문제가 드러났다든지, 그녀의 신간이 이러저러한 의미로 허접하다고 세밀하게 비평하면 될 일이다. 그런 노력들이 겹치고 김현진의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획득한다면, 시장은 김현진의 글 팔 자격을 박탈할 것이다. 그런 게 ‘변희재의 시장’이 아닌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일 게다.
음..
제 생각엔 충분히, 성실하게 반응하지 않았다고 보여지는데요... 제가 이상한 건가요? 적어도 그 피해자란 분의 요구가 정당한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는, 책을 이미 만들어 놓았다 해도 그것이 기존의 약속을(2쇄부터는 수정하겠다는) 번복할만큼의 이유가 되는 것인지...
"모 블로거는 한겨레 데스크에 그녀의 글을 빼라고 난리치자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 부분의 경우도 가능한 주장 아닌가 싶은데요.(저또한 이런 과격한 주장하는 사람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허위 사실을 유포해서 훼방을 놓으려 한다면 그거야 말할필요 없이 큰 잘못이겠으나, '평시에 아니꼽게 보인 사람의 글에 대해서 까고 싶었는데, 폭력건이라는 맛있는 씹을거리가 생겼으니(즉, 사람들의<적어도 우리나라사람들의> 호응을 받을 여지가 있을 거 같으니) 한겨레에 우리들의 힘을 행사하자'는 사람들이 나온다 한들 그리 문제가 될 이유가 있을까요?
좀 극단적인 사고방식인지 모르겠으나, 논리라는 것도 감성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뭔가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즉, 그런 선동가(?)들의 말이 먹혀 들어간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닐까요?
글 쓰는 것이야 자기 마음이지만 글이 실리는 매체라는 건 결국 독자를 향한다고 볼 때 그 독자들 중의 누구라도 어떤 필진에 대하여 거부의사를 밝히고 또한 타인에게도 그런 의사를 주장할 수는 있는 거 아닐까요?(물론, 욕설을 동반한 강요나 그러한 것들은 안되겠지요!)
p.s. 위와 같은 의문을 제기 했다고 해서 제가 그런 이들의 의견에 동감(김현진씨 까기)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저런 사람들도 존재할 수 있는 거 아닌가?라는게 제 생각이죠. 굳이 문제가 있다면 그런 이들에게 쉽게 선동 당하는 이들이 문제 아닐까요?
기타 부분의 얘기는 감성과 논리가 뭐냐는 문제에까지 토론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제가 서술한 주장들이 불확실한 정보의 자의적인 가공과 함께 전파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선동하는 사람에 대한 비판과 선동당하는 사람에 대한 비판이 구별될 수 있는 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제가 하는 '비판'이란 것도 그분들의 말할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음.. 님의 생각과 큰 차이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큰 잘못은
어차피 대응폭력도 폭력이라는 것을 차치하고, 그나마 상식적인 대응 폭력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치더라도, 이런 사회적 유명인, 또는 대충 알려진 이에 대한 과도한 사적 폭로 자체가 아예 원천 금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박재범이건, 정명훈이건, 강인이건 말입니다.
근데 사람들은 그러지요. 유명인이면 일반인과는 다른 도덕적 책임이 있는 것이고, 이 사람의 사적 부도덕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부도덕이면 여론의 재판대에 올려지고 재판받게 할 우리의 '권리'가 있는 셈이라고.
유명인 즉 강자에 대한 견제수단이 바로 이런 사이비도덕주의인 것 같은 데, 아직은 말로 사람을 죽이는 단계지만, 이게 더 커지면 진짜 파시즘이 나올 수도 있다고 충분히 생각합니다.
이른바 공리주의적 개인이라는 이 놈의 썩을 관점을 만인에게 평등한 자유주의적 관점으로 전환시키려면 참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 합니다. ㅡㅡ
저는 제가 좌파라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는데, 요즘은 '하뉴녕조차도 남들이 좌파라고 부르니까' 바득바득 아니라고 우기기는 뭣해서 그냥 명칭을 수용하고 있는 정도이고... 기본적으로는 한국 사회에 없는 것, 필요한 것을 요구하면 되는 것이지 좌파적이니 우파적이니 하는 게 큰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한윤형 님이 전통적 의미의 좌파(맑스주의자라던가 여러가지 기표들)라고 생각하진 않아요.ㅎ '상식인'의 포지션에서 담론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합니다. 역설적으로 한윤형 님이 이야기하는 '한국사회에 없는 것,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스펙트럼의 상대성의 관점에서, 또 한국사회의 공백을 채워나가는 과정이 종종 급진적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좋던 싫던 요구하는 사람을 좌파로 만드는 게 아닌가 싶은 거죠.
좌파가 자유주의(적 권리)를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운 건, 정작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이 반MB전선과 반독재론에 경도되어 내실을 잃어가는 한편, 한국사회에서 좀 더 근본적인 요구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적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역설이 있지 않나 싶어서입니다.
글쟁이가 글로 판단되어야지요. 시장은, 독자들은, 각기의 틀로써 판단할 겁니다. 그의 글에서 진정성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의 글을 그의 사회적 행동과 발언들과 동일선상에서 판단하는 이들도 있(었)을 겁니다. 시장이란 표현을 쓰셨기에, 소비자 운동 중 비도덕적 행위를 폭로하는 것도 그닥 이상해 보일 것도 없습니다. 김현진의 행위를 비난하고 폭로한 사람들이 그가 시장에서 도태되기를 바란 것이, 그의 글 쓸 자격 자체를 박탈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출판사에서 그의 글을 출판하게 되든, 그의 글과 그의 상품성을 보게 될 것은 자명합니다. 그의 상품성이 그의 일련의 행위들로 인해 타격을 받게 된 들, 상품을 파는 어떠한 이도 그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합니다. 그를 뛰어넘는 글을 쓰면 되는 것이니까요.
저는 기본적으로 김현진의 행위에 대해 분노한 이들이, 88만원세대담론이 자기것이라 여긴 특정한 이십대 좌파라든가, 다구리라는 행위로 표현될 만큼의 폭격을 가했는지 그 실체를 미처 느끼지 못했기에 한윤형님의 이러한 마지막 포스팅 자체가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만 같아 조심스럽지만 댓글을 달았습니다. 여럿의 발화를 한 데 묶어 '큰 틀'을 설정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언제나 진실을 담보한다고 생각치는 않습니다. 형식에 갇혀 그 안의 개개인의 가치판단과 주관이 폄훼당하는 경우를 보자니 조금 씁쓸해져 긴 댓글 달았음을 양해바랍니다.
봉구
흠...
원댓글에서 "김현진의 행위를 비난하고 폭로한 사람들이 그가 시장에서 도태되기를 바란 것이, 그의 글 쓸 자격 자체를 박탈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라고 밝히셨는데, 글 쓸 자격 자체가 그 비난 및 발화로 인해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자체로 영향력을 가지긴 하겠지요. 개인적으로는 바로 '그런 식의 영향력'조차 있어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사실 이렇게 말을 써놨지만, 댓글을 몇번씩 읽어도 제 개인적 난독증 때문인지, 님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겠습니다. 조금만 더 친절한 설명을 해주시면 안될까요, 님이 주장하시는 바와 그 개념들에 대해서?
제 댓글은, 불친절해서 죄송하게 되었습니다만, 한윤형님께 드리는 것이어서 이해가 가지 않으시더라도 당연한 겁니다. 마치 이번 사건을 기회로 삼아 김현진의 사생활을 까발린 사람들이 있다면, 제가 그것에 대해 당연하다거나 그들을 옹호하는 것처럼 이해하시진 않았기를 바랍니다.
새벽
"이 정도면 사건은 끝난 것이며 그 외의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구석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글을 ‘소비’하겠다는 다른 ‘소비자’를 타박하는 소비자 운동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 사건을 관통하는 집단적 다구리의 방식이 박재범 사건과 별 차이도 없다는 것이다."
"그녀의 글 쓸 권리를 다른 사람들이 논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다는 거다."
는 님의 말이나,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구분해야 한다는 이택광의 말 등이 설득력 있게 여겨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보는 것입니다. 만약 김현진이 조두순과 똑같은 행위를 저질렀어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니겠지요..
따라서, (김현진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김현진의 도용이나 폭력의 나쁜 정도에 비해 군중들의 비난의 정도가 과도하다는 걸 논증하는 데 주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사한 사례들을 제시하거나 일반적인 도덕 감정에 호소하거나 하는 방법 등으로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택광이나 님의 주장은 '진영논리'의 의혹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솔직히 이택광이 이번 사태에 온갖 철학자들을 끌고 들어오는 게 좀 우스꽝스럽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이택광이나 님이 즐겨쓰는 '집단적 다구리'의 문제도 좀 그렇습니다. 한 명이 비난하는 건 괜찮지만 집단적 다구리는 안 된다면 그 역시 비난의 정도를 문제삼는 것인데.. 인터넷의 속성상 조직적이지 않은 집단적 다구리는 시스템의 문제지 개인의 문제는 아닙니다. 개개인이, 어떤 대상에 대해 가해진 비난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님의 견해는, 그러므로 네가 글을 쓰려면 ㄱㅎㅈ보다 더 한 짓을 하고도 버젓이 잘 살아있고 대중들이 좋아하기까지 하는 글쟁이들의 예를 가져와바라, 그러면 내가 정서적으로 납득해주마, 논리는 내게 옆집 강아지 짖는 소리로 들리니, 로 들리는데요.
실제로 제가 그렇게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당최 문제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ㄷㄷㄷ (하긴 저도 ㄱㅎㅈ이 꽤 심각한 표절을 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옹호하려 했다면 -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 같긴 한데 - 그런 방법을 써야 했을 지도 모르죠. 흠 근데 이거야말로 물타기가 아닐는지.)
님이 인지하기를 거부하는 '공사' 구분의 문제에 대해서는 위의 더블 L 님이 잠깐 설명을 해주셨으니 스킵하구요. 마지막 문단에 대해서만 대답하겠습니다.
김현진에 관한 비판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 하나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정보들이 집단적으로 공유되고 비판의 준거가 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죠. 명예훼손은 그것이 전파되는 집단의 크기에 따라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리라는 '양'의 문제에 대해서는, 당연히 동의하시겠죠?
저는 김현진에 대한 텍스트적 비판에 대해서는 별로 참견할 생각이 없고,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내가 왜 이런 예시까지 들어줘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세세한 사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이것은 자신의 상처와 남의 상처를 함께 포장해서 팔아먹어야 하는 김현진의 상업적 포지션이 가져온 불쾌한 에피소드일 뿐이다. 이번 책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김현진이 무슨 책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라고 누가 평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 평가에 대해 제가 문제삼을 수 있을까요?
세상이만만터냐
ㅜㅜ
김현진씨의 글쓰기 자유라는 거창한 철학이전에 본인이 저지른 폭력에 대한 댓가일 뿐이죠.
사람을 사람이 때리면 그 댓가를 받아야 하고,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글루 추천수는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만(여기엔 사생활 운운한 부분이 작용했겠지만)
인터넷 전체적으로 봐선 너무나 작은 티끌 정도인데요..(그 정도만으로 김현진씨 본인에겐 치명타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누차 말씀드리지만 본인의 폭력행사에 대한 댓가일 뿐입니다)
한국은 역시....성폭력엔 조금 움찔하는 듯 하지만(그것도 아주 잔인한 방법을 동원해 어린아이를....) 폭력에는 둔감하군요.
이택광선생님이나 윤형씨나 누군가에게 맞아보지 않아서 이렇게 설이 길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넘겨짚었다면 죄송합니다.
인터넷에서 제가 원치 않은 사생활이 심한 수준으로 퍼진 적도 없습니다. 전반적으로 제가 공개한 부분보다 조금 웃도는 수준에서 유지가 되었어요.
물론 폭력도 사생활 공개도 피하고 싶긴 하지만, 굳이 둘 중 하나를 고른다고 하면 후자일 것 같습니다. 그건 제가 처한 상황과 취향에 따른 판단이겠지요. 이렇게 말하면 근데 뭐가 달라질까요? 그래서 제가 님을 갈굴 수 있을까요? 아니죠. 제 생각에 방금 제가 한 얘기는 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님의 논법대로라면 사형제 존치 논쟁은 일가족이 살해당한 적이 있는 사람만이 해야 하구요. 태형이나 극형에 대한 논란도 해당 범죄의 피해자들만 모여서 해야 되겠죠. 그런데 님은 인터넷에 원치 않은 사생활이 널리 퍼진 적이 있나요?
인터넷 전체적으로 봐선 너무나 작은 티끌 정도라니, 그 스토리가 네이트 톡에라도 올라가길 바라셨나 봅니다...
화무십일홍
화무십일홍
히요
상대적?
유성주먹
이번 일에서 정말 놀란 것은 이택광 님이나 한윤형 님이 '남의 사례를 당사자의 허락 없이 도용하는 일'에 큰 무게를 두지 않고 계신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한 행위가 법적으로 표절이나 도용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이건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사람으로써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이니셜로 썼든, 사례를 바꿔썼든 관계 없는 겁니다. 그 이야기가 당사자가 자신이라고 주지할 수 있을 만큼 표현되었다면, 충분히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사안입니다.
유미리의 경우, 자신의 지인 이야기를 소설로 창작하여 썼지만 그 지인에게 소송 당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이런 경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불쾌한 일이거든요. 심지어 소설도 아니고, 실제로 있었던 일을 도용한 것이잖습니까?
이후, 일의 전개에 따라 김현진이 사과를 했다 / 안했다, 사과가 충분하다 / 불충분하다, 그런 것은 문제가 안됩니다. 그렇게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논점을 잘못 잡은 것일테지요.
이건 그저 아주 단순하게, 공론의 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쳐 일정 이상의 이득(얼마 안되는 금전이든, 쥐꼬리 같은 명예든)을 얻은 사람에게 주어진 몫을 철회하는 문제입니다.
명백하게 잘못을 한 사람을 탓하는 과정에서 특정인에 대한 일방적인 멍석말이가 벌어졌고, 그 때문에 김현진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부당하다...는 주장은 그렇기 때문에 말이 안됩니다. 애초에 그녀가 얻었던 이득이 있기 때문이죠. 그 반대 급부가 너무 과격하게 쏟아져서 김현진에 대한 일방적인 테러의 형태로 발전된다면...그것은 서글픈 일이겠죠.
하지만 애초에 김현진은 바로 그런 포지션을 스스로 택한 겁니다. 이건 한윤형 씨 역시 마찬가지고요. 나의 글과 생활은 별개의 것이다?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김현진이나 기타 논객의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을 물리적으로 테러해서는 안되겠죠. 하지만 공론의 장에 머물렀던 만큼, 공론에 의해 공격 당하는 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덧붙여...<대중의 분노에 편승해서 상대방의 사망을 욕망해서는 안된다>라고 하셨는데, 우선 욕망이라는 말의 쓰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머리 속에 들어가실 재주는 없으시잖아요? 그냥 그렇게 보인다...라고 주장하시는 것은 설마 아닐테고...그런 것이 틀림없다, 라든가 그런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씀하셔도 안되죠.
심지어, 설사 그것이 대중들의 음습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근성 때문이라고 해도...김현진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상대해 온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를 줄여야 하는 것이고요. 실수 했으면 욕먹는게 당연하지...실수 해도 용서는 받고, 그 외의 부분에서는 인정만 받고 싶다...이건 정말 어린애 같은 생각이죠.
이 사례는 피해자가 여전히 가해자와 친분이 있었다면 몇 마디 양해와 한번의 검토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는데, 사건과 사건이 겹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죠.
그리고 도용 문제에만 집중하셔서 '꽤나 심각한 도용'의 사례를 끌어낸 후, 이런 짓을 한 이들을 옹호할 것인가라고 묻고 계신데 이는 반칙입니다. 저는 도용문제(사실 도용이라 이름붙이는 것도 적절하진 않지만 어쨌든)와 명예훼손 훼손 문제를 구별했는데요. 그런 식이라면 도용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이 '가장 심각한 명예훼손 사례'를 이끌어낸 후 김현진을 비판한 사람들이 무조건적으로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양쪽 모두 별로 안 좋은 접근이겠죠?
더구나 그 김현진에 비해 훨씬 심한 도용을 저지르신 것으로 보이는 소설가 유미리씨는 그후에 전혀 글을 못 쓰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님의 지적대로 저는 남의 머리속에 들어갈 재주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인터넷의 인터페이스에 구현된 남들의 '주장'만을 근거로 추론할 수밖에 없죠. 본문에 나와 있는 내용이 다 그런 겁니다.
"이번 일에서 정말 놀란 것은 스스로를 진보로 여기거나 진보에 대한 건전한 비판자로 여기는 사람들이 '남의 개인사를 당사자의 허락 없이 인터넷에 공표하는 일'에 큰 무게를 두지 않고 계신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점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면, 김현진의 도용이 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서도 사실은 잘 설명이 안 될 것 같은데 말이죠. ;;
유성주먹
말씀하신 것처럼 가해자와 친분이 있었다면 몇 마디 양해로 넘어갈 수도 있었겠죠. 그것이 폭행 때문에 양해를 구할 수 없고, 그 와중에 출판이 이루어져서 사태가 커진 것도 이해합니다만...
그럼, 글을 쓰는 이는 타인의 일들을 자신의 글에 마구 가져다 써도 좋은 걸까요? 이 문제는 물론 불특정다수에게 드잡이질을 당하고 있는 김현진 씨에게도 적용되는 것이겠지요. 한윤형 씨가 문제 삼고 있는 것도 그 지점이겠지요? 왜 남의 개인사에 불특정다수가 개입하고 사회적인 사형을 내리려고 하느냐는 것인데...그 지점을 문제 삼으신다면, 당연히 김현진 씨가 최초에 저지른 도용 자체가 중대한 문제인 겁니다. 뭐, 이 부분은 무한 루프로군요. 어쨌거나 저에게 판단을 내려보라고 하시면, 최초에 그 짓을 한 사람에게 명백한 잘못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적하신 유미리의 경우, 이후 몇 편의 소설을 발표했습니다만 저작 활동이 적극적이진 않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외부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유미리의 개인적인 슬럼프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유미리는 '허구'인 '소설'에서 그런 일을 벌였지요. 소설가니까 이해할 수 있는 점도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허구인 소설에서도 그런 일은 중요한 문제인데, 하물며 객관적인 사실을 기초로 하는 글을 쓰는 분이라면...더더욱 심각한 문제인 것이죠.
남의 개인사를 당사자의 허락 없이 인터넷에 공표하는 일...은 당연히 안되죠. 그러나 출판물은 그와는 비교도 안되게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할 겁니다. 왜 그런지는...아마도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현진은 스스로를 진보로 여기거나 진보에 대한 건전한 비판자로 여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여 일정 이상의 몫을 챙겨 왔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 그 몫이란 것이 무슨 거창할 만큼의 명예니까 토해내라...는 멍청하고 잔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란 거죠. 그러나 진정성과 과오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고, 지금 시점에서 그녀는 저지른 과오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그녀를 사적으로 찾아가 물리적으로 가해한다면, 그건 어처구니 없는 짓입니다. 그러나, 욕 먹을 짓을 했으면 욕 먹는 거지요. 그것이 말을 통해 몫을 얻어 온 사람들의 숙명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