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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26년 1 상세보기
강풀 지음 | 문학세계사 펴냄
1,000만 명의 누리꾼의 감동과 격려로 만들어진 광주민주화운동 이야기! 한국 만화계의 새로운 나침반, 강풀의 광주민주화운동 이야기, 만화 『26년』 제1권. 인터넷 만화의 모든 기록을 바꾸고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불리게 된 저자의 작품으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었던 남자와 시민군의 아들, 딸이 그로부터 26년이 흐른 후에 모여 법이 심판하지 못한 당시의 최고책임자를 처벌한다는 내용의 팩션 만화다



<26년>은 강풀만화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강풀의 나머지 작품들은 보기는 봤으나 취향에 그리 맞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내가 그전까지 강풀을 싫어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이유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를 좋아할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첫째, 강풀만화는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을 장기로 한다. 강풀은 스크롤을 가장 잘 이해하는 만화가이다. 스크롤을 내리면서 독자의 감정은 점점 증폭된다. 인터넷 소설로 비유하자면, 중요한 대사가 나올 때엔 대사 하나 하나 사이의 간격을 넓게 배치하여 스크롤을 한참 내려야 다음 대사가 나오게 하는 그런 방식을, 강풀은 만화에 구현한다. 그 결과 독자들은 그가 의도한 감정선을 그대로 따라가게 된다.


하지만 가령 <순정만화>의 권하경-강숙 커플의 경우처럼, 딱히 별다른 관계도 없는데도 작가가 의도적으로 감정을 증폭시키려고 화면을 배치하고 있으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외려 감정이입에 방해가 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순정만화>에 감정이입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둘째, 강풀만화는 달짝지근한 휴머니즘이 지나치다. 어떤 케릭터도 악인으로 묘사하지 않고, 나름의 내러티브를 가진 사람으로 만들려다 보니 스토리에 무리가 온다. 가령 <바보>에 나오는 단란주점을 생각해 보자. 나는 단란주점을 관리하는 '어깨'가 로맨티스트라는 설정까지는 이해할 수가 있다. 하지만 여종업원에게 누드 사진 있으니 떠날 생각 말라고 협박하던 단란주점 사장님이 실은 그 여종업원을 좋아했고, 그가 말한 사진이란 것도 누드 사진이 아니라 언젠가 서울 타워 앞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식의 애틋한(?) 설정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인물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자랑스럽게(?) 묘사할 필요도 없다. 나는 룸싸롱 한복판에서 인간적 고뇌를 느끼는 사람을 싫어한다. 일단은 룸싸롱을 안 가야 고뇌고 뭐고 맥락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바보>에 감정이입하는 데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바보>에 대해서는 <웰컴 투 동막골>과 묶어서 '바보의 판타지'라는 별도의 글로 비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단점들이 <26년>에서는 장점으로 역전된다. 이 만화는 광주학살의 주역인 전두환을 죽이고 싶다는 매우 단순명쾌한 욕망에 기초해 있다. 이 욕망은 한때는 세대의 공통체험과 같은 것이었다. 가령 386세대를 정의하는 50대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현정권이 배양한 개혁 의지의 수원지는 광주민주항쟁이다. 기성세대에게 한국전쟁의 상처가 있듯이, 현정권에게는 5.18민주항쟁이 있었다. 그 기저를 알지 못하면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현정권에게는 광주사태와 같은 비극을 자행한 군부정치, 독재, 폭력적 국가기구, 그것을 지원하는 권력 실세들이 적으로 인식된다. 기성세대는 다음과 같이 물을 것이다. '너희들이 전쟁을 아느냐.'고. 그것은 우문이다. 젊은 세대에게 전쟁은 추상적 이미지로 남아 있지만, 5.18 민주항쟁은 너무나 생생한 체험으로 육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에서 몇 명이 죽었는지 아느냐.'고 묻는 기성세대가 있다면 그 또한 어리석다. 광주민주항쟁에서 죽은 500여 명의 시민군은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었거나 다친 2백만 명보다 더 무겁고 더 충격적인 기억으로 인화되기 때문이다. 현정권의 멘탈리티 내부에는 광주민주항쟁에 대한 속죄의식이 각인되어 있다. 그것은 청년 시절의 순박했던 의식을 느닷없이 후벼 파서 무엇으로도 사면될 수 없는 원죄의식을 마음 한가운데 심어놓았다. 386세대가 대학생활을 시작할때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최초의 필독서로 주어졌다. 그것은 광주에 잠입해서 살육 현장을 육안으로 목격한 작가의 르포르타주였다. 그 죽음을 넘지 않고는, 그 어둠에 젖어들어 죽임의 이유를 물어보지 않고는 386세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여명을 기다리는 것은 이들에게 사치였다...


그러나 이 세대의 공통체험은, 다음 세대에게는 망각되었다. <26년>의 정치적 의도는 물론 그 망각에 대한 거부이며, 공통체험을 좀더 젊은 세대로 확장하자는 것이다. 전두환에 대한 암살계획이라는 설정은 전적으로 젊은 세대를 위한 것이다. 국가 권력, 조직의 거대함에 짓눌려 같은 방식으로 이념과 조직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던 30대중반에서 40대중반의 세대와는 달리, 그 아래 세대에게는 즉각적이고 개인적인 복수라는 방식이 훨씬 더 윤리적으로, 아니 감각적으로 와닿는다.


그래서 이 만화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전두환을 죽이겠다는 욕망을 천명했다면, 그것도 젊은이들에게 와닿는 방식으로 천명했다면, 이제는 그 욕망의 정당함을 설득력있게 증명하는 것이 이 만화의 목표가 된다. 그래야 이 만화가 품고 있는 정치적인 의도가 완성된다. 하지만 이 만화의 정치적인 의도는 그 자체로 비정치적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전두환을 벌함에 있어, 군부독재 세력을 벌한다, 그러므로 한나라당을 벌한다, 와 같은 정치적인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테러라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 결과, 20대는 전두환을 싫어하는 데에는 기꺼이 동의할 수 있겠지만, 가령 '한나라당의 이명박'이 대선후보로 나왔을 때 그를 지지하는 것이 전두환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는 믿지 않을 것이다. (사실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 목표를 완수함에 있어 강풀만화의 특성이 좋은 영향을 미친다. 광주에서 사살당한 시민군을 부모로 둔, 자녀가 26년 동안 복수심을 키워나가는 장면은 '스크롤의 묘미'를 통해 아무리 감정을 증폭시켜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증폭은 윤리적으로도 정당하고, 스토리의 완결성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만화의 주제가 단지 감상적인 복수로만 치닫는다면, 그 정치적 공정성은 심하게 훼손되지 않겠는가? 여기서 강풀만화의 다른 특징이 다시 긍정적인 영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단란주점 주인을 로맨티스트로 둔갑시킨, '열외 1명없는 로맨티스트'로 남자들을 서술한 <바보>의 휴머니즘은 분명 오바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를 얘기하기 위해선 우리는 분명 '내재적 접근법'을 따라야 할 이유가 있다. <26년>은 시민군을 사살한 계엄군으로써 전두환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재벌 회장, 같이 시민군을 사살한 계엄군이지만 그 때의 사건을 역사화시키고 정당화함으로써 전두환에 대한 (이념적?) 충성을 감행하게 되는 경호실장, 우연히 문익환 목사를 만나서 인간적 감화를 받고 안기부 고문실에서 나와 '빨갱이'들을 잡는 일에만 열중했던 민완형사 최계장 등의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풀어냄으로써 과거사 문제를 극복하는 방식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제공한다. 즉, 과거의 아픔은 잘못된 부분을 쳐내거나, 단순히 덮어두는 방식으로 대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자를 열린우리당 주장 중 극단적인 부분으로, 후자를 한나라당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런 부분을 통해 <26년>의 주제의식은 오히려 열린우리당의 과거사 진상규명법보다 높은 위치에 올라서 있다.


이리하여 <26년>은 강풀만화의 특성을 그대로 담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나에게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유일한 만화가 되었다. 그러나 이 만화의 대중적 성공은 또한 더 이상 '독재세력 vs 민주화운동세력'이라는 대립구도가 현실정치판에서 명증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 만화가 명백히 '한나라당 비판, 열린우리당 지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되었다면, (하나의 텍스트가 이렇게 이해되는 것은 그 텍스트의 내용보다는 주변의 맥락의 영향을 더 많이 받기 마련인데) 일개 정파의 프로파간다쯤으로 치부되어 버렸을 지도 모른다. 한나라당의 윤리적 부당성과 열린우리당의 윤리적 정당성이 흐릿해지는 지점에서 <26년>은 태어났고, 성공을 구가했던 것이다.  


정치적인 열망을, 비정치적으로 해소하는 방식에서 <26년>은 탁월하다. 수단적으로 탁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만화에 경의를 표하면서, 동시에 한국 정치의 실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누구도 정치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상황 인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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