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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http://junglog.co.kr/


그때까지 따라왔던 문화 전체를 패배자의 것으로 매도당하고, 또한 스스로도 매도하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남의 것을 철저하게 베끼는 데에 열중했던 나라에서, ‘전통’이라는 단어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 자신도 소중히 여겨보지 않은 것을 남들 앞에서만 소중하게 대하는 척 하는 허영? 정체성을 찾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 우리의 습속 중 많은 것은 사실 다른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것일 텐데도, 우리는 전통이란 것이 어떤 점에서 우리를 설명해 줄 거라는 느낌을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또한, 그 느낌을 어떻게 정당화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고양 아람누리 아람미술관세어 열리고 있는 “오늘로 걸어나온 겸재”전은 필시 그런 사람들을 위한 전시일 것이다. 저 유명한 천재화가 겸재 정선의 그림은, 사실 이 전시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겸재의 그림 몇 점은 교과서에서 본 그의 유명하고 큼지막한 그림들이 던져주던 압도적인 쾌감을 주지 못한다. 일단 너무 작고, 힘이 덜 들어가 있다. (하지만 그래서 더 특색이 드러난다.) 이 푸근한 그림 몇 점은 오히려 ‘이게 정선의 그림이야. 이 그림들은 이렇게 생겼어. 자, 그런데 그는 아직까지 살아 있거든? 그 사실을 이제부터 확인해 볼래?’라는 제안의 문맥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정선, <금강산 단발령>. 18세기

그런 제안을 받자 마자 당신은 겸재 이후 조선의 풍경화들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 제안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의 풍경들이다. 정선과 함께 독특한 조선 특유의 화풍을 보여주고 있고, 투시원근법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원근감을 주려는 노력이 뚜렷하다. 그래서 실제로 저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가 한번도 금강산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 아름다운 산에 대한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내 경탄에 무언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강세황, <비홍교>. 18세기



그리고 그후 당신은 서양화를 배우고 돌아온 첫 번째 세대의 사람들이 그린 풍경화들을 보게 될 것이다. 한국화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쓴 그림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그림들도 있다. 그렇지만 전시는 이런 그림들 모두 겸재의 영향을 조금씩은 받고 있다고 말한다. 사회 전체가 ‘부끄러운 과거’를 통째로 지우려고 노력하던 시대에도,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체질을 새로운 틀에 구현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혹은 과거라는 것이 그렇게 완전히 소거되는 것이 아님을 행동으로 증명하고 있었거나.


훙병학, <광덕사추색>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이, ‘옛 것’을 그대로 따라한다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삶은 변한다. 서구 열강이 아시아로 밀려오지 않았더라도, 일본에 의해 식민지배를 당하지 않았더라도, 조선인들의 삶의 모습 역시 변했을 것이다. 겸재의 진경산수화 이전에 절파화풍이 유행했고, 진경산수화 이후에 민화의 시대가 시작되었듯이 말이다. 전통을 살려낸다는 것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변했다면 이렇게 변했을 것 같은’ 그런 변화를 우리 안에서 뽑아 내는 것이 아닐까. 그림을 보는 눈은 없지만, 전통과 새 것 사이의 고민이 담겨 있는 수십 년전 화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진경산수화 역시 중국 남종화의 화풍에 조선의 풍경을 담아낸 것이 아니던가. 


몇몇 현대작품들은, 굉장히 유쾌하다. 여기서는 전통이 그들의 유희의 근거가 되어 있다. 전통도 전통이 아닌 것도 우리가 작품 안에 끌어들일 수 있는 맥락들이다. 그래서 김수영은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라고 말했던가. 특히 생라면으로 표현한 제주도의 풍경은, 정말이지 압권이었다. 제주도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정말로 나무들이 멀리서 바라보면 꼬불꼬불한 생라면의 형상을 하고 땅에 붙어 있다고 한다.


박병춘, <칠판산수> 라면으로 묘사한 제주도 풍경은 파일을 못 구했다. 이건 칠판에 분필로 산수화를 그린 그의 작품의 부분이다. 순간 손가락으로 만져볼까 하는 충동이 들어서 ㅎㄷㄷ;;


이 전시 바로 옆에서 어린이 산수화 체험전 “풍경속으로 풍덩” 전도 열리고 있다. 미리 예약을 하고 가면, 어린이들이 산수화에 대한 놀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림도 배울 수 있고 재미있는 퍼포먼스에도 참여할 수 있으니 어린 자녀가 있는 분들은 아이를 데리고 가면 좋을 것 같다.


이상한 모자

2008.05.21 19:54:10
*.147.155.253

전두환에 대한 글인줄알었네..

하뉴녕

2008.05.21 20:07:23
*.176.49.134

?? 뭔소린겨...

쟁가

2008.05.21 21:51:52
*.254.122.7

박통, 노통, 전통...-_-; 센스찬란했던 이상한모자님하가 이 지경까지...

하뉴녕

2008.05.21 22:21:47
*.176.49.134

역시 애아빠가 된다는 건 두려운 일이군효 ㅠ.ㅠ

jonaldo

2008.05.21 23:45:23
*.188.38.5

박병춘씨 아시나봐요?
흠냐.
제 선배인데.

하뉴녕

2008.05.21 23:47:53
*.176.49.134

몰라요 ;; 그냥 이번 전시 관람가서 처음 알았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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