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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강남좌파의 기원과 형성

조회 수 9318 추천 수 0 2011.05.28 22:19:53


(...) 그러나 ‘노무현 바람’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노사모가 2000년에 이미 성립해 있었다는 이야기는 벌써 했다. 2001년 즈음에는 민주당의 내부 권력 구조와는 별개로 노무현 후보에 대한 명백한 지지층이 형성됐다. 2002년 초에 현직 기자들은 여론 조사에서 대통령에 가장 적합한 후보로 노무현을 꼽았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실제로 당선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통령 후보로 이회창을 꼽았다. 시사 평론가였다가 2002년 대선 정국에서 정치인의 길로 들어선 유시민의 분석을 빌리자면, “노무현은 기자, 증권 전문가, 시민운동가, 대학생 등 소위 ‘여론 주도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조선일보>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그런데 싸움이 격렬해지면서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 왔던 유권자들이 노무현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각주1: 유시민,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개마고원, 2002, 131쪽) ‘노풍’은 바로 이런 추세에 우연의 도움이 몇 번 겹치면서 불기 시작했을 것이다.


(...) 한편 유시민의 진술에서 정말로 유의해야 할 부분은 그가 ‘노무현 지지층’과 ‘기존 민주당 지지층’을 구별했다는 점이다. 그는 ‘노무현 지지층’에 대해 ‘여론 주도층’이라는 표현을 썼다. ‘자뻑’에 가까운 이 일방적인 규정을 전적으로 신뢰할 필요는 없지만, 노무현 지지층이 무언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경선 이후 유시민이 언급한 ‘노무현의 지지층’이 ‘기존 민주당 지지층’을 이끌어 내자 전국적으로 ‘노풍’이라는 것이 불기 시작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유시민은 특정한 성향을 가진 집단이 있었고, 이들이 ‘노무현’을 계기로 삼아 정치성을 분출하기 시작했다고 봤다. 중요한 대목이다. 투박하게 정리하자면 유시민은 2000년 이후의 정치적 사건들인 안티조선 운동, 여중생 사망으로 촉발된 촛불 시위, 노무현 바람, 탄핵 반대 촛불 시위, 이명박 당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를 주도하거나 관망했던 새로운 정치적 주체들에 대해 이야기한 셈이다. (...) 그렇다면 노사모를 만들어 냈고, 혹은 나중에 노사모에 합류하고, 혹은 훗날 노무현의 가장 강력한 지지층이 된 이들의 성격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 일단 유시민의 좀 더 정교한 설명을 들어보자. 


'노무현 바람'은 기성 정치의 사각지대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연말 이후 봄까지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노무현은 연령별로는 20대와 30대, 학력별로는 대학 재학 이상의 고학력층, 소득 계층으로는 월수입 2백만원 이상, 성별로는 남자, 직업별로는 화이트컬러와 전문직 유권자들에게서 처음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으며 출발했다. 이들은 정치에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하며 투표율이 낮은 집단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정치 거부는 '더 많은 민주주의와 보다 효율적인 개혁'에 대한 그들의 열망의 표현이었다. 그들은 이 열망을 지속적으로 배신한 낡은 정치를 거부했을 뿐이다.

이들이 노무현에게 높은 지지를 보낸 것은 그에게서 새로운 대안을 조직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의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반면 '저학력, 저소득, 고령층, 생산직과 서비스직'의 서민들은 국민통합과 민족화해, 권력문화의 혁신과 새로운 동북아 질서 구축 등 그가 내세운 정치적 가치와 목표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서민 후보를 자처하는 노무현이 아니라 귀족 이미지를 가진 이회창이 서민층의 지지를 받는 역설은 이렇게 해서 발생한 것이다.(각주2: 앞의 책, 273~274쪽)



이 설명은 다소 찜찜하다. 한나라당 지지층에 대해서 ‘계몽되지 못한’, ‘못 배운’, ‘노인’과 같은 딱지를 붙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 해석이 현상적으로 옳다 하더라도 가치 판단의 문제가 남는다. 2002년 당시에는 두드러지지 않은 문제였지만, 가령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생각해 보라.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이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조중동의 세뇌 때문’이라는 것은 하나의 이유는 되지만 사태를 전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2007년, 정동영의 저조한 득표율은 사실상 민주당 지지층의 붕괴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정동영이 참여정부를 제대로 계승하지 않아서 그와 같은 득표를 하게 됐다는 말도 맞다. 하지만 정치인은 표심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그를 비롯한 수많은 정치인들이 참여정부를 멀리하려고 했다는 것은 조중동의 왜곡 수준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영향을 미쳤다고는 해도) 실제로 대중들에게는 참여정부가 인기가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각주3: 물론 나 역시 참여정부를 부정하고 나선 정동영 같은 이보다는, 참여정부를 계승하겠다는 이해찬 같은 정치인이 대선에 나와 정정당당하게 국민의 심판을 받는 쪽이 더 바람직한 일이었다고 믿는다. 사실 국민참여당의 탄생은 참여정부가 2007년에 마땅히 거쳐야 했던 국민적 평가를 지나친 상황에서 예고됐던 일이라 볼 수 있다)


다시 언급하게 되겠지만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원인을 찾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다. 하지만 유시민의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계몽되지 못한’, ‘못 배운’, ‘노인’들이 ‘조중동의 세뇌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다고 설명하는 경향이 짙었다. 그 설명을 인정하더라도 ‘계몽되지 못한’, ‘못 배운’, ‘노인’들에게도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일 것이다. 비루한 민중들 때문에 정치가 잘못되고 있다고 규탄하는 것은 (설령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엘리트주의적 시각이지 민주주의적 견해는 아니다. 유시민이 언급한 것처럼 새로운 정치를 욕망하는 사람들은 왠지 그런 노력을 배격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엘리트주의의 냄새를 풍겼다. 그런데 그 ‘엘리트주의’는 과거의 엘리트주의처럼 어떤 특수한 지식을 근거로 삼지 않고, 자신들이 민주주의의 ‘상식’을 알고 있다는 믿음에 기인했다. 즉, 이들의 엘리트주의는 자신들이 엘리트라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이들이 ‘보통 사람’이어야 한다는 그런 믿음에서 나온 묘한 엘리트주의였다.


이들을 학력, 소득, 세대를 통해 규정하는 유시민의 방책은 유효하다. 그것은 당시의 여론조사 결과에 근거를 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서적으로 볼 때 그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졌던 듯하다. 학력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은 한나라당 지지층에게는 우월 의식을 지니면서도, 지식인들의 기득권(?)을 경멸하는 태도를 취하게 했다. 이를테면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무식하다고 공박하는 반민중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것도 그들이지만, 지식인들이 글을 알아먹게 쓰지 않는다고 인터넷에서 비난하는 민중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것도 그들이었다. 즉, 유시민이 구별해 낸 ‘노무현 지지층’은 스스로 ‘지식인’도 아니고 ‘민중’도 아닌 그 중간에 있는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라 생각했고, 지식인과 민중 양쪽에 대해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들의 ‘상식’이 ‘보통 사람’의 그것이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엘리트와 민중을 동시에 경멸한 셈이다.


정치의식 면에서도 그들은 역시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유시민이 혹은 유시민 이전에 당대의 ‘노무현지지’ 논객들이 ‘발견’해 낸 이 새로운 정치적 주체들은 재벌을 옹호하는 수구 세력도 싫어했지만 기존의 노동 운동 진영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즉 이들은 부르주아(자본가) 계급 의식에 대해서도, 프롤레타리아(노동자) 계급 의식에 대해서도 배타적인 태도를 취했다. ‘보통 사람’과 ‘상식’의 역할은 여기서도 분명했다. 여기서도 그들은 중간자적인 입장을 취했다. 노혜경 시인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노무현의 정책에 비판적인 자세를 취한 진중권을 비롯한 진보누리 논객들과 논쟁을 벌이며 그러한 의식을 명시적으로 천명했다. 다음은 서프라이즈 칼럼방에 2003년 7월에 올라온 글이다.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배회하고 있다---계급의식없음이라는 유령이. 

이 유령의 입장은 더 난감하다. 아직도 강고하게 사회문화적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며 정치권력의 겨우 일부를 빼앗겼을 뿐인 수구집단으로부터는 계급투쟁을 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동시에 진보를 독점하고자 하는 집단으로부터는 몰계급적이란 비난을 받아야 하니 말이다. 그리고 공공연하게 자신의 견해와 자신의 목적과 자신의 지향을 표명하여 계급의식없음의 외피를 섬세하게 구분하여 다양화시킬 시기와 여건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는--이제 겨우 싹을 틔우고 있을 뿐이라는 역사적 현실이 이 유령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좋은 것은 죽지 않는다는 종교적 확신에 기대어 이 유령의 모습을 드러내어야 할 것인가.(…)

나는 우리모두, 노사모, 개혁당에서 다시 노사모, 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긴 공동체적 작업으로부터 분명 새롭고 힘찬 흐름을 감지하고 또 그 흐름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흐름은 제각기의 방법론으로 궁극적으로는 공동선을 향하여 나아가는 새로운 엑소더스이다.

 

이 진술에서 중요한 것 두 가지는 ‘계급 의식 없음’이라 특정될 수 있는 자신들이 ‘수구 집단’과 ‘진보를 독점하고자 하는 집단’ 사이에서 중간자로서 위치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자신들이 ‘우리모두, 노사모, 개혁당에서 다시 노사모, 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공동체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노혜경의 정치적 입장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와는 별개로 노혜경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흐름을 정확하게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이 ‘집단’에 대해 좀 더 파고들어 보려 한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나는 ‘안티조선 운동사’를 되도록 쉽게, 장르소설처럼 서술하려고 했다. 그래서 강준만, 진중권, 노무현과 같은 중요인물들을 마치 무림 고수나 대마법사처럼 묘사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것을 소설이라고 할 때 그들이 주인공이냐고 묻는다면 좀 다른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강준만의 ‘실명비판’과 진중권의 ‘키보드워리어질’은, 심지어 <조선일보>와 전쟁을 벌이며 나온 노무현의 개혁 정치조차 ‘그것’을 받아들이고 열광할 준비가 되어 있던 ‘집단’이 없었다면 무의미했다. 물론 강준만, 진중권, 노무현, 그리고 기타 여러 등장인물들은 이 ‘집단’의 정서를 구체화하고, 정교화하고, 더 큰 덩어리로 만든 공로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집단’의 열망에 주어진 ‘해답’으로 존재했을 뿐이지, 그 주인공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혹자는 세대와 지역에 주목하여 이들을 ‘수도권 386’이라 칭한다. 물론 이것은 사회학자들이 통계적으로 검증한 적이 없는 명칭이며, ‘민주당 지지층’을 ‘호남’으로 표현하는 것만큼의 단순화의 우려가 있다. 더구나 당시 노무현 열혈 지지층 중에서는 20대가 많았고, 그 20대들 중 일부는 오늘날 30대가 되어 ‘20대 보수화’를 비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의에는 나름의 미덕이 있다. ‘수도권’이라 함은 이들이 지역주의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들이었음을 뜻한다. ‘386’이라는 규정은 세대의 규정이기도 하고, 사회운동에 대한 태도의 규정이기도 하다. 광주 경선 이후 하루 1만 명씩 노사모 회원이 유입될 때 가장 일반적으로 볼 수 있었던 게시물은 이런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지난 십 년 동안 정치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살아 왔습니다. (중략) 하지만 노무현 후보의 승리를 보고 다시 희망을 얻었습니다. 



이 진술을 하나의 표본으로 받아들여도 좋다면, 이들의 정서는 기존 정치권과 운동권에 대한 불신을 기반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진술은 학창시절에 열심히 운동을 했던 ‘386 운동권’의 진술과도 사뭇 달랐다.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서도, 적극적인 참여는 부담스러워 했던 과거에 대한 진술이 많았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어떤 대중적인 운동이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운동권은 다음과 같은 요소로 구성되어 있었다.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과 그 계승자들, 군사 정권의 탄압을 받으며 글을 썼던 리영희와 같은 지식인들, 마르크스주의 이론으로 한국 사회를 판단하던 이론가 대학생들, 대학을 나와 공장에 침투해 노동자를 계몽하려 하던 활동가 대학생들, 그리고 현장 노동자 출신으로 노동조합을 건설하려던 활동가들……. 엄혹한 사회의 반영이긴 했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잣대로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진보’라는 가치는 한마디로 말해 평범한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무엇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단순명쾌한 언어로 진보주의자와 시민들 사이에 존재하던 벽을 넘어섰다. 그는 요트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희생했는지를 강변하는 게 아니라 운동은 했어도 돈은 좀 있다고 얘기했다. 장인어른의 빨치산 경력이 언급되었을 때 노무현은 “그래서 저더러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대꾸했다. 좌파들이라면 “연좌제는 그릇된 것입니다. 그것은…….”으로 시작되는 답변을 했으리라. 노무현은 제 자랑도 하고 아픔도 털어놓으면서 윤리의식을 지향했다. 멋있는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은 노무현에게 자신의 죄책감을 사면받고 다시 정치를 얘기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노무현을 상징하는 구호는 ‘상식’ 혹은 ‘희망’이었다. 거대 담론이나 거창한 자기희생을 말하지 않고 각자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덕성으로 공공선을 지향하려는 사람들이 따르게 된 구호였다. 


그 ‘집단’이 ‘노무현’에게 그토록 열광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집단은 노무현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확립하고,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셈이었다. 그렇다고 그 집단이 오로지 노무현하고만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 집단에 이름을 짓기가 어려웠다. 유시민은 2002년 당시 이들을 다소 애매하게 ‘신주류’라 칭했다. 한편 이들은 스스로를 ‘시민’ 혹은 ‘순수한 시민’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것 역시 적당한 호칭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시민은 사회의 특정한 부분을 칭하는 말이 아니라, 고유의 권리를 가진 사회 구성원 전부를 칭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노무현과의 관계에만 포박되어 퇴행적인 행태를 보일 때, 진보주의자들은 이들을 비하해서 ‘노빠’라고 불렀다. 그런가 하면 이들이 특정한 의제에 맞춰 대규모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자 진보주의자들은 그 혁신성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이들을 ‘촛불 시민’이라 부르고 민주주의의 희망으로 축성했다. 문화평론가 이택광도 이들에게 이름을 부여하기 위해 고심했는데, 계급론의 용어를 차용하여 중간 계급Middle Class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계급 의식 없음’에 착안하여 중성 계급Neutral Class이라 칭하기도 했다. 그 이름이야 어찌 됐든 우리는 그들의 특성에 대해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들의 숫자다. 나는 그들이 많은 숫자이긴 했지만 기존의 민주당 지지층만큼 많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단순하게 생각해서 민주당 지지층을 25%라고 해보자. 그리고 노무현 지지를 선도한 이 집단을 10%라고 해보자. 둘이 합쳐야 겨우 35%다. 2002년의 투표율이 70%였고 그중에서 노후보의 득표율이 48.9%였으니 위의 가정이 산술적으로 오류를 범하지는 않았다. 10%의 노무현 지지층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 자신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리고 후보가 노무현이 아니었다면 이 선거에서의 승리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한편 25% 민주당 지지층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는 자신들이 노무현 후보의 ‘대주주’였다. 둘 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이 두 집단이 노무현에 대해 가진 생각의 차이는 훗날 참여정부의 통치를 불안하게 만드는 큰 요인이 됐다. 민주당 분당, 열린우리당 창당,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의 뒷배경에는 이 두 집단의 대립이 숨어 있었다. 그것은 오늘날의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대립으로까지 이어지는 현재 진행형의 역사다.(...)
- <안티조선 운동사>, p243~251




소위 '강남좌파'라 칭해지는 이들을 분석하려 한다면 그냥 이 설명을 그대로 가져다 써도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엔 유시민의 '신주류'가 십년 지나서 된 것이 '강남좌파'다. 굳이 양자 간에 차이를 찾고자 한다면 그 사람들이 십년 동안 돈을 좀 더 벌었다든가, 일부 20대와 10대(386세대의 자녀들도 포함된)들이 그들의 특성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것 정도가 있을 것이다. 


물론 왜 예전에는 명확한 이름을 가지지 못했던 이들에게 '좌파'란 이름이 붙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다. 이종석이 그 불편함을 고백하는데에서 보여지듯, 원래 한국 사회에서 '좌파'는 배제의 어휘였다. 이를테면 1998년의 최장집 사건 당시 조선일보가 최장집을 '좌파'라고 주장했을 때, 최장집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2011년의 조국은 "나를 강남좌파라고 불러도 좋다."고 얘기한다. 


일단 이 사이에 하나의 간극이 있다. 이 간극은 어떻게든 설명되어야 하는데, 일단 나의 가설은 이렇다. 2010년 지방선거 직후 쓴 글의 일부다. 

1997년부터 2007년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IMF 사태라는 국가적 위기상황 속에서 극적으로 집권한 민주화 세력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삼게 되었다.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세력의 경제정책이 역설적으로 독재정권의 그것보다 덜 민중적이게 된 역전현상이 벌어졌다.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던 좌파들은 1991년 소련 붕괴 후 우왕좌왕하다 합법적 좌파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민주노동당의 창당과 성장은 ‘좌파=친북’이라는 연결고리를 완화시키고 ‘좌파’란 단어의 시민권을 되찾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했을 것이다. 한편 한나라당은 지극히 보수적인 집권당의 경제정책에 대해서까지도 ‘사회주의적’이란 수사를 남발하면서 이념에 대한 혼동을 조성하는데 지대한 기여를 했다. ‘좌파’란 말은 예전보다 덜 위험한 말이 되었지만, 점점 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되어갔다. 


민주당의 보수적 경제정책에 과격하게 가속 페달을 밟은 듯한 이명박 정부의 미칠듯한 반서민 정책은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한나라당은 김대중과 노무현을 ‘좌파’로 몰아붙인 대가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반감은 또 한 번의 역설로 돌아와 민주당이 스스로를 ‘좌파’로 규정하게 했다. 사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시대에 그들은 ‘좌파’를 철지난 유행으로 규정했더랬다.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좌파 꼴통들이나 쓰는 어휘로 치부했더랬다. 그런데 그들이 요즘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말을 한다.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진보신당 심상정 후보는 민주당 김진표 후보에게 물었다. “스스로를 좌파라고 생각하십니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대표적인 보수 경제관료였던 그가 대답했다. “예.” 세상이 뒤집혔다.


선거 직후 어떤 대학생들의 대화를 들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이겨서 다행이야.” / “왜?” / “한나라당은 우파고 민주당은 좌파잖아. 좌파가 승리하면 사회가 어지럽거든.” 이들의 대화는 어찌해서 한나라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들이 모두 “민주당이 좌파다.”란 명제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마디로 말하면, 민주당이 좌파라야 한나라당도 존립근거가 생기고 민주당도 존립근거가 생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당으로의 폭력적 쏠림을 방치하는 ‘야권단일화’를 논할 수 있고 노회찬이 완주하면 진보신당 홈페이지를 폭격하고 노회찬 정계은퇴 서명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 공당의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떳떳하게 다른 정당 후보의 사퇴를 촉구한다.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조중동은 언제나 좌파의 준동을 두려워한다. 그들이 말하는 좌파는 “사회질서를 교란하고, 체제에 위협이 되며, 대한민국을 언제든지 조선노동당에게 팔아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나쁜 놈들”이다. 조선노동당 문제를 제외하고 생각하면, 꽤 멋있어 보인다. 그런데 진보신당 당원이란 나란 사람은 그렇게 위협적이고 무시무시한 존재일까? 내 꼬라지를 돌이켜보니 한숨이 나온다. 민주당이 좌파가 된 세상에서, 좌파정당의 지지자들은 한줌도 안 되는 일종의 오타쿠 집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진보신당이 국민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고 규탄한다. 국민이란 건 민주당 지지자들만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란 정치적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보편적인 수사인데 말이다. 정상인의 말로 번역하자면, 그들은 노회찬에게 진보신당 당원 말을 듣지 말고 민주당 지지자 말을 들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거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요구가 가능해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미 답을 말했다. 민주당이 좌파니까. 


아무래도 사람은 자신이 죽여버린 것에 대해서 환상을 가지는 모양이다. 가령 영화 <아바타>를 보라. 인디언과 숲을 죽여 버린 인간이 첨단 테크놀러지로 그것을 가상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볼 수 있지 않던가. 좌파가 아닌 사람들이 ‘좌파’라는 말을 멋으로 알고 유행처럼 그것을 걸치게 된 현실은 좌파정치의 진정한 죽음을 의미한다. 그 지지자들에게 ‘진정한 보수’이기도 했고 ‘진정한 진보’이기도 했던 한 매력적인 정치인의 죽음은 그를 따르는 정치세력을 부활시켰고 그들이 좌파를 ‘대체’하게 했다. ‘좌파’란 것이 ‘사회에 있어서는 안 되는 위험한 것’으로 치부되었을 때는 차라리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민주당이 경제정책의 뚜렷한 변경없이 손쉽게 ‘좌파’라는 구호를 접수한 이 사회에서 심상정은 ‘국민’의 뜻을 떠받들어 왕년의 두 전직 대통령처럼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치’를 이야기한다. 도대체 좌파는 어디에 남아있단 말인가.
- 한겨레 훅 : <민주당이 좌파다> http://hook.hani.co.kr/archives/5377


 
2008년 촛불시위 이후 진중권은 "진보진영도 소비자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말 자체는 별로 틀린 부분이 없는데, 최근 그는 '민주당도 한나라당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의 심사'를 헤아려 민주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들이 반성을 하고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제각각 반성하고 유럽식 사회국가 노선으로 통합하는게 좋다."는 식의 주장은 좀 하나마나한 말이다. 우리는 이 말을 "민주당이 반성하고 유럽식 사회국가를 (혹은 복지국가 노선을, 혹은 미국 민주당을) 지향한다면 야권 단일정당을 추구할 수 있다."로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건이 올바르다면 이 주장은 가치를 지니지만, 전건이 실현이 안 되는 상황에선 하나마나한 말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들은 왠일인지 어느 순간엔 바로 그 전건을 실행시키기 위해서 (군소정당들이 유럽식 사회국가 노선에 합의하기 위해서, 혹은 민주당이 미국 민주당과 같은 자유주의-사회주의 정당이 될 수 있도록,) 후건을 실행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뒤집힌다.(...통합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정치적 주장의 타당성과는 별개로, 진중권이 과거의 '신주류'와 현재의 '강남좌파'들을 별도의 집단으로 보고 있다는 점은 의아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진중권은 양자를 별도로 보고 있다기 보다는, 그냥 그들이 어떤 집단인지에 대해 별다른 고민이 없어 보인다.) 진중권이 진보신당 독자파에 대해 '명령'을 받들라고 말하는 '그들'은, 과거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던 진중권에게 권영길을 포기하고 노무현을 지지하기를 명령했던 바로 그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민주노동당에게 교차투표하여 2004년 총선에서 전국구 의원 8석을 얻게 만들어준 것도 아마도 그들일 것이다.)


즉 진중권은 과거 그들의 명령을 받들지 않았던 (신나게 열심히 그들을 욕하고 성질을 긁었던) 자신과 현재 그들의 명령을 따르라고 요구하는 자신 둘 중에 하나는 부정하거나 반성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실험'이 망했기 때문에 정치적 좌표가 상실되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지만,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갑자기 새로 주어진 것도 아닌데 과거에 치열하게 싸우던 대상들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황망하다. 


이와 별개로, 십년 전의 상황을 정리하면서 우리는 "노무현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노무현도 처음엔 미미했으니 유시민도 곧 대통령이 될 수 있다."와 같은 주장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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