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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부동산 환원론

조회 수 2047 추천 수 0 2009.12.13 13:43:47


- 자료를 챙기지 않고 떠오르는 대로 메모한 것이므로 비판/반론이나 보충/부연을 환영합니다.


1. 진보신당 경기도당 상근자였던 김민하는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에 MB 정권의 지지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 지지율은 시사 이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다만 수도권 지역 부동산과 관련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수도권 지역 부동산이 상승할 기미를 보일 때 이명박의 지지율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어떤 소스를 보고 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흥미로운 주장이고 통계적으로 검증되느냐 여부를 떠나서 진실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2.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조차도 미분양 물량을 '정리'하려는 건설업체의 욕망에 부합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84678 
이명박과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것은 쉽지만, 건설자본에 상시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신문사 입장에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의 재정독립이 확보되지 않은 '대안'언론이 대안적 논의를 함에 있어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일 것이다.


3. 참여정부 시절을 돌이키는 저술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저술, 이미 나온 유시민의 저술, 그리고 전 국정홍보처장 김창호의 저술까지. 그런데 이들 저술들이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 세심하게 적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직 읽은 것은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 밖에 없지만, 그외의 책들에 대한 서평들을 봐도 부동산 문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정책의 측면에서 노동과 복지의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참여정부는 노동유연화와 (진보주의자들 입장에서는 매우 불충분했던) 복지확대를 동시에 추구했는데, 그 결과는 양극화의 심화였다. 그런데 참여정부 정책의 제약조건이 되었던 것 중 매우 큰 부분이 부동산 문제는 아니었을까?


4. 한국인들이 복지의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복지가 해결해야 할 영역의 문제를 다른 방법으로 해결한 세월이 수십 년이기 때문이다. 그 다른 방법을 우리는 부동산과 교육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소득을 부동산으로 바꾸어 자산을 축적하고, 소득을 교육에 투자하여 자녀의 계층상승을 유도한다. 이런 실정에서는 세금을 어디에 쓰느냐는 문제보다는 우리 동네 집값과 우리 동네 학군에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5. 부동산에 대한 관심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명백하다. 그것이 자산축적에 가장 유리한 길이라는 신화를 깨뜨리면 된다. 부동산 가격이 끝없이 올라가는 동안 부동산을 축으로 하는 계급 격차가 생겨났고, 기업의 생산성이 저해되었다. 가령 세금이 많아서, 임금이 높아서 기업 못 해먹겠다는 어느 기업인의 항변을 생각해보자. 문제의 핵심은 세금이나 임금이 아니라 부지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데에 있다. 그러니까 이 때에 정답은 부동산 가격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런데 왜 기업인은 그런 요구는 결코 하지 않는 걸까? 간단하다. 그도 어딘가에 부동산이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으로 자산을 축적하는 체제가 수십 년 지속되다 보니 모든 사람들이 이 체제 안에서 부동산을 소유하며 성공하거나 버티는 방법을 터득했다. 자영업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사업해서 시설에 투자한 사람들은 결국 다 망했고 그 돈으로 집사고 땅 사둔 이들만 계속 버티고 있다고 한다. (IMF 이후엔 가계들마저 저축을 멈추고 빚을 내어 '투자'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90년대 초반 다소 하락하던 부동산 가격은 IMF 이후 다시 급상승하게 되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영원히 상승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이런 체제는 조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참여정부조차도 그 조정에 실패했다. 이제는 시장경제의 원리인 수요와 공급에 따라 (더 이상 건설회사들이 쏟아내는 중대형 아파트 물량을 소화할 자금을 가진 사람이 없다.) 가격하락의 압박이 시작되었는데, 이명박 정부는 엄청난 돈을 퍼부어 시장 기구의 조정을 교란하려고 한다. 안 팔리면 가격을 내려야 하는데 가격을 내리면 정권이 큰일 나니까 어떻게든 지원을 해서 가격을 내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원리를 영원히 거스를 수는 없는 법, 결국에는 부동산 가격이 큰폭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것이 선대인과 같은 사람의 예측이다. 

6. 참여정부는 2004년 총선 이후 분양가 원가 공개를 거부하고 원가 연동제를 채택하였다. 비판적으로 보자면 개혁의 의지를 꺾고 건설자본과 융합했다고 말할 수 있고, 온정적으로 보자면 다소 온건한 개혁의 방법을 채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참여정부는 부동산에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었지만, 비교적 지방의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켜 지역균형을 꾀해 보자는 정도의 생각은 했었던 것 같다. 행정수도나 세종시와 같은 구상이 거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는 '개혁 담론'도 '부동산 불로소득의 분배 문제'라는 틀 안에서 놀고 있다는 얘기가 될 수 있겠다. 그러니까 부동산이 비정상적이니 내려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지방의 부동산이 덜 올라서 문제이니 그쪽도 올려야 한다고 접근한다는 것이다.


7. 진보정당이 집권한다 해도 부동산에 대해 다른 수를 쓸 수는 없었을 거라는 노빠들의 항변은 적절한 지적은 아니다. 더 정확한 얘기는 한국인들은 부동산을 자산축적의 수단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들에게 권력을 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시장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김종철 후보는 토지 공영제와 같은 얘기를 당당하게 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2008년 총선에서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는 노원지역의 개발 문제에 대해 다소 모호한 자세를 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타운과 영어교육에 밀려 홍정욱에게 패배했다.


8. 참여정부를 온정적으로 본다고 해도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의 뉴타운 개발은 참여정부의 정책을 심각하게 교란했다. 참여정부 말기에 수도권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엄청나게 상승하면서 결정적으로 민심이 이반하고 말았다. 당시 참여정부는 상승하는 부동산에 대해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증언들과 정황들을 보면, 정권 주체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무를 담당하는 관료의 레벨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을 막을 의지가 없었던 것 같다.


9. 결국 한국의 기형적인 부동산 문제는 국가 기구의 개입에 의한 조정의 기회를 가지지 못했고, 이제 시장기구의 가격조정에 의해 해결될 일만 남았다. 이명박 정부가 언제까지 부동산 경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세종시 문제와 4대강 문제가 가장 민감한 이슈인 것에서도 드러나듯, 여전히 우리의 '정치적' 문제들은 거의 다 부동산 문제들이다. 다른 사안이 아니라 세종시가 이토록 민감한 문제가 되는 이유는 지역민들의 땅값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무현의 실현되지 못한 약속을 이명박 시대에라도 돌려받고 싶어한다. 물론 그건 이명박이 원하는 것은 아니다. 4대강 사업이 구체적으로 어떤 이들의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키는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할 문제다. (대운하 주변 땅은 강남사람들이 이미 거진 다 사버렸단 얘기를 언젠가 들었는데, 4대강 사업도 비슷한지는 모르겠다.)


10. '부동산 불로소득 분배 문제'는 결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수도권 지역의 특권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을 유지하려는 이명박의 정책행위는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경쟁력 강화"라는 대의 뒤에 숨는다. 지방의 부동산 가격 상승을 도모하려는 참여정부의 정책행위는 "균형발전"이라는 레토릭 뒤에 숨는다. 따라서 새만금 사업과 세종시 사업의 추진동력은 완전히 동일하다. 물론 그것들이 공익에 부합하는 것인지를 평가하려면 또 다른 잣대를 들이대야 하겠지만.


11.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신자유주의와 진보를 말하기 전에 당분간은 '부동산 환원론'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상당 부분을 있는 그대로 비춰줄 것이다. 그리고 '토건국가' 비판이 정치권력과 건설기업들의 유착 문제를 넘어, 한국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욕망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이 이해되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이명박 정부가 탄생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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