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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무죄판결에 대한 다른 시각

조회 수 2733 추천 수 0 2010.01.20 16:26:26

기사를 살펴보면 이 판결은 아마도 법원이 "PD수첩의 보도는 공익적인 목적을 띄고 있다.",  "PD수첩 제작진이 의지를 가지고 사실을 조작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라는 판단을 내려준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법 공부를 안 해서 더 정확하게 정리는 안 되는데, 여하간 그렇다.)


법원 판결은 '광우병'과 '미국산 쇠고기'의 관계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다. 법원이 하는 일들은 그보다 훨씬 더 기술적인 것들이다. 그런 면에서 PD수첩측 변호사의 "보도가 '진실'임이 밝혀졌다." 드립이 적절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얼마나 기쁘겠는가. 그리고 언론 플레이가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겠고. 하지만 개별사건을 넘어 사회의 담론의 흐름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라면, 법원이 그런 실체적인 판단을 내려주는 기관이 아님을 적시하는 쪽이 더 유용했을 거라고 말할 수도 있는 거다.


판결은 뒤집힐 수도 있다. 오늘은 사법부가 진실을 수호했다고 말하고, 내일은 사법부가 진실을 내팽개쳤다고 말할 것인가. 그런 에스컬레이션 된 말의 성찬 속에서 사태를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든다.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의 관계에 대한 명확한 진위판단이 어떻게 가능한가? 적어도 사람들이 믿는 방식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지금 과학이 불가능하단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PD수첩의 비판자들은 제 입에 미국산 쇠고기를 넣어보고 죽지 않는다는 이유로 PD수첩이 '거짓'이라 말하고 CP와 PD들을 잡아넣어야 한다고 생각할 게다. 옹호자들은 어쨌든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PD수첩은 진실이고 정부의 탄압이 거짓이라 말한다. 이렇게 진실과 거짓을 명확히 구별하는 인식체계는 쉽사리 음모론에 빠져든다. 정부 옹호자에게 촛불시위는 PD수첩의 조작에 의해 발생한 음모론적 사건이다. 정부 비판자에게 검찰 수사는 그 자체가 하나의 부조리한 음모극이다.


'실체적 진실'에 대한 초딩스러운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PD수첩은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며 정부의 협상이 잘못 되었다고 판단할 만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근거를 바탕으로 정부의 시책에 대한 비판을 하고 의혹을 제기했다. 법원이 판단하는 것은 그 부분까지다. 그 이상의 의미는 법원이 개입하는 부분이 아니다. 식당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기피하는 소비자들이 '광우병 괴담'을 믿는 이들인지 아니면 미국산 쇠고기가 품질이 안 좋다는 판단을 내린 합리적 소비자인지는 법원이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조중동 등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에 유리한 판결을 소개할 때 법원 판결의 취지는 생략하고 무조건 자신들의 보도가 옳음이 증명되었다고, 혹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적 입장의 옳음을 보증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일보가 조아세 멤버들에 대한 광범위한 소송을 걸어놓고, 법원 측에서 조선일보 고소 내용의 극히 일부만 인정했는데도 판결 보도를 하면서 안티조선 진영의 오류가 증명되었다고 주장한 것이 한 예다. 헌법재판소의 종부세 위헌 판결을 두고 조중동이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파탄을 운운한 것이 또 하나의 예다.


그런 태도가 올바르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이라면 PD수첩 법원 판결에 대해  "사법부가 진실을 보호해줬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수사적 표현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법원을 모든 실체적 진실의 판단자의 위치에 올려놓고 그들을 쉽사리 칭찬했다가 욕한다. 법원의 기능적 역할에 대해 냉철한 생각을 가지는 것이 이 소란스러운 정치평론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는 길이 아닐까? 우리가 법원을 기묘한 방식으로 숭배하는 한, 검찰의 무리한 기소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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