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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글쓰기와 권위

조회 수 4267 추천 수 0 2010.01.10 19:48:13


사람들은 정말로 어려운 글을 싫어하고 쉬운 글을 좋아하는가? 내 경험에 한정지어 말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어려운 글이 자신을 편들어주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비난하는 글쓰기의 어려움도 내용의 어려움이라기 보다는 ‘누구 편을 드는지를 파악하기 힘든 어려움’이 아니었던가 한다. 가령 ‘이 글은 노무현을 찬양하기 위한 글입니다.’라고 천명하고 시작한다면 어떤 어려운 철학자나 정치학자의 말이 나와도 이해(?)받기는 어렵지 않다. 정치학자들이 쓸모없는 것들로 격하되는 경우는 그들이 민주주의에 관한 이론을 끌어들여 참여정부를 비판했을 때 뿐이다.



지식인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주장하는 것처럼, 세상은 단순하고, 복잡한 건 지식인들의 말밖에 없고, 알아야 하는 모든 것들은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미네르바에 대한 열광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자그니는 소넷 등과의 논쟁에서 미네르바 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아주 적확한 어휘를 만들어냈다. ‘우리편 전문가’라는 단어 말이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우리편임이 확실하며, 뭔가 내가 모르는 맥락으로 상대편의 기를 죽이는 사람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우리편 전문가’에 대한 열광이 ‘딸딸이’ 이상의 의미를 지니려면, 적어도 전문가는 존재해야 한다. 즉 대중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도 무의미한 소리가 아니라 맥락이 존재하며, 수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이며, 세상의 문제를 반영하는 것이라야 한다. 근데 만일 전문가의 지식이 그런 것이라면 그가 내리는 결론이 한 정파의 입장과 온전히 포개질 수는 없을 거다. 만일 어떤 전문가가 ‘우리편 전문가’가 되어 우리편의 입장만을 대변한다 생각해보라. 그의 ‘판단’이 전문가의 판단이라고 믿기는 좀 미심쩍지 않을까? 사실 그는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있으며, 자신이 내뱉는 말에 별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세우고 치장하고 권위의 도구만으로 사용하기 위해 개념어들을 내뱉는 것이 아닐까?



즉 사람들이 사랑하는 ‘우리편 전문가’는 실은 사람들이 경멸해 마지않는 바로 그 ‘지식인’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경멸하는 것은 그 자신의 모습일 뿐, 실제의 지식인은 아니다. 한국인들의 인식체계에는 지식인들이 뭐하는 종자인지에 대한 고려 자체가 없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지식인들은 철저하게 무력하다고 봐야 할 거다. 그리고 그 무력함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우리편 전문가’를 사랑하는 이들에 의해 “자신을 내세우고 치장하고 권위의 도구만으로 사용하기 위해 개념어들을 내뱉는” 타락한 지식인으로 규탄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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