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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그리고 '사이버 민중주의'

조회 수 2360 추천 수 0 2010.02.16 08:44:24

동계올림픽의 어느 쇼트트랙 경기에서 스스로 반칙을 저질러 실격하고 동료까지 넘어뜨려 한국 대표팀의 금, 은, 동 싹쓸이를 무산시킨 어느 선수에 대한 웹상의 비난 여론이 거세다. 피상적으로 보자면 WBC 결승전 마지막 순간에 이치로에게 얻어맞은 임창용에 대한 분개처럼 과잉된 '스포츠 민족주의'의 발현처럼 보이지만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네티즌들의 문제제기는 '한국의 메달 획득을 방해했다'고 비난하는 차원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이 이 사건에서 읽어내는 것은 실력을 견주는 공정한 경쟁을 왜곡하는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파벌주의다. 과거의 기사들과 경기동영상을 토대로 네티즌들은 문제의 선수가 어떤 파벌에 속해 있으며, 국가대표 선발전과 세계대회 등에서 그 파벌선수들의 승리를 위해 어떤 반칙을 범해왔는지를 고발한다. 살펴본 것만으론 근거가 너무 정연해서 반박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 네티즌들의 의견에 반대근거를 내세우려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의 '사이버 민중주의'가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네티즌들이 제시하는 자료는 몇년 전에 이미 완성된 것들이었다. 그 말인즉슨 인터넷상에는 이미 이 논란이 예전 대회에서부터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비리'가 폭로되었을 때, 보통의 사회에서라면 문제해결과 재발방지를 위한 조처가 취해졌을 것이다. 비리가 없는 사회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리를 남들이 모두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떠벌리고 다니는 사회도 희소하다. 체제는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해 적어도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비리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판례에 따른다면 명백한 범죄행위를 '삼성 예외주의'를 적용하여 면죄해주는 한국 사회가 회피하는 부분이다. 네티즌들이 비리를 폭로해도 누구도 이 의혹에 대해 해명하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자는 여론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기득권을 유지한 채 그저 '별 일 없이 산다.'


기득권에 대한 강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사이버 민중주의'는 바로 이러한 토양 위에 서있다. 인터넷 문화 좌담에서 만났던 어느 분의 발언이 생각난다. 외국에서는 기사에 대해 독자들이 항변의 메일을 보내면 기자들이 직접 답을 준다고. 그런데 한국에서는 기자가 독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법이 없으니 네티즌들이 포탈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 밑에서 악플이나 달고 있는게 아니겠느냐고. 이 착상은 한국의 인터넷 문화 전반에 유효하다. 사회적으로 상하관계가 뚜렷하고 하급자의 이견이나 항변을 수용하지 않는 사회에서, 인터넷은 해소되지 못한 욕망이 들끓는 뜨거운 냄비가 될 수밖에 없다. 많은 한국인들은 인터넷이 소통의 천국이라고 예찬하지만, 그 이면엔 사회 전체의 의사소통 능력이 한심하다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덧붙여 인터넷이 그 막강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종종 사회적으로는 완전히 무력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설명해 줄 수 있다. 말하자면 인터넷 여론은 수렴되지 않은 여론의 다발인 것인데, 그렇게 다발이 되어봤자 수렴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이다.


권력을 가진 이가 그러지 못한 이의 항변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의무를 느끼지 않는 사회에서, 인터넷 여론의 극단적인 쏠림과 폭력성을 도덕적으로 단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기득권을 타파하려는 '사이버 민중주의'는 무고하거나 공허한 희생자를 산출하는 마녀사냥의 길로 빠지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2PM 박재범의 사례가 그렇고, 실제로는 기득권도 별로 없는 지식인에 대해 적대적인 인터넷 문화의 풍토도 그렇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은 인터넷 여론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영역에서 가장 큰 좌절을 느낀 이 수렴되지 못한 여론의 다발은 엉뚱하게 연예인들에 대한 다수의 폭력을 통해 자신의 민중성을 증명한다. 어떤 교수가 그저 학교 내에서 학술활동과 행정업무를 하면서 기득권을 누린다면 그런 이들의 행동에 대해 인터넷 여론은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교수, 혹은 교수가 아닌 지식인이 대중과 접하는 글쓰기를 시작한다면 인터넷 여론은 그를 가혹하게 매질한다. 그래서 기득권을 타파하고 대중과 무언가를 해보려는 지식인들이 대중들에게 기득권의 상징으로 치부되면서 가장 많은 욕을 먹는 역설이 생긴다.


앞서도 말했듯이 사실상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이버 민중주의를 벗어나자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귀를 막은 기득권'만큼이나 그것의 존재로 탄생한 '사이버 민중주의'가 우리가 처한 현실이라면, 우리는 그 질곡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좀더 건강하게 이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사이버 민중주의는 양날의 검이다. 그리고 그 검의 한쪽 날이 사람들을 벨 때, 우리는 그것의 부당함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이버 민중주의를 체현하는 이들이 자신들을 향한 비판에 열려 있어야 함도 물론이다. 사실 미네르바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한 것도 인터넷이었고, 박재범 퇴출이란 결과에 대해 분개한 것도 사이버 여론이었다. 그러니 인터넷 여론의 문제를  그 인터넷 안에서 해결하려는 시도도 전혀 부질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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