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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경제학 3.0 - 10점
김광수 지음/더난출판사



'김광수경제연구소' 소장 김광수의 첫 단행본이라는 말에 냉큼 서점에서 집어 들었지만, 사실 엄청난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방에는 김광수경제연구소의 "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 1-3권과 연구소 부소장 선대인의 신간 "위험한 경제학" 1,2권이 있다. 김광수경제연구소에서 낸 책은 이보다 훨씬 많으니 내가 꼴랑 이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김광수 소장이 무슨 말을 할지 짐작했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내가 "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는 조금 읽다가 접어둔 상태이고, "위험한 경제학" 시리즈는 최근에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면 "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처럼 (이 책은 연구소 보고서를 좀 더 쉽게 고쳐 편집한 책이다.) 비전공자 입장에서 읽기 까다로운 내용이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다.


내 예측은 즐겁게도 빗나갔다. 김광수는 독자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혹은 비슷한 내용을 다른 어조로 설명하기 위해 책 한 권을 보탠 것이 아니다. 그는 존경받을 만한 전문가가 흔히 그렇듯 글쓰기를 무겁게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건 나처럼 생계를 위해 적어도 당분간은 다작을 하기로 한 사람은 따라하고 싶어도 따라하기 힘든 덕목이다. 그가 '글쓰기'에 그런 태도를 지닐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업 자체가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즉 김광수는 이미 연구보고서나 경제시평 같은 글을 통해 끊임없이 연구소 유료 회원들을 만나는 글쓰기를 한다. 그의 일상이 이미 전문능력을 기반으로 한 다작의 연속인 것이다. 이런 사람이 좀 더 대중적인 단행본을 고민하고, 더구나 업무상 다작에도 불구하고 이제와서야 첫 책을 냈다고 했을 때, 그 책에 담긴 고민의 깊이는 결코 만만치 않을 거다. 기자 출신인 선대인 부소장이 주류 언론의 이데올로기를 화끈하게 공박하고, 실증적 데이터로 자신의 주장을 술술 풀어내는 입담을 보여준다면, 김광수는 내면의 정제된 언어로 자신의 오랜 견해를 정돈하는 에세이의 담백한 힘을 보여주는 것 같다.


김광수는 금융기관, 방송, 언론, 정치권과 자신의 연구소를 비교하면서 "나와 우리 연구소 직원들은 결코 천재가 아니"(p154)지만 "마음을 비우고"(p156)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전문가 집단의 인정을 받는 글을 쓸 수 있다고 고백한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지식인으로서의 도덕적 사명감을 자각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p156)한다는 김광수의 자세는 차라리 조선 선비의 모습에 포개질 듯 싶다. 김광수의 다짐은 냉소주의자들이 보기엔 '오버'일 수 있겠으나, 심금을 울리는 구석이 있다. 왜냐하면 그는 "10명 안팎의 조그만 연구소"를 "겨우 꾸려가는" 정도의 "책임자"(p269)일 뿐이며 "지금까지 낡은 집 한 칸 가져본 적 없이 셋방살이를 전전했으며, 자식들과 노후를 위한 자금조차 없을 정도로 여유가 없"는 "평범한 개인"(p27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광수의 내면의 다짐은 바로 이 물적인 기반에서 나온다. 말하자면 내일 무엇을 먹을지를 걱정할 정도로 곤궁하지는 않으나, 정치권력이나 기업으로부터는 물질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그런 정도의 기반 말이다. 김광수 경제연구소의 '정직함'은 바로 이 물적 기반이 열어준 '자유'의 공간에서 가능하다. 


그 독립적인 '자유'의 공간에서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지난 십 년간 세상을 바라보는 거대한 그물망을 촘촘히 짜내왔다. 이제 그 그물망 위에서 노니는 김광수의 텍스트는 단지 경제적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자면 사회문제에 포괄적으로 대응하는 경제학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김광수는 북한 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북한을 둘러싼 한국과 미국 정권의 엇박자"(p245)에 대한 대응이 현재의 북한 정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라고 지적한다. 세종시 문제에 대해 논할 때는 경제적 문제 이전에 "여러 차례의 우여곡절 끝에 여야가 당리당략 차원에서든 국가 발전 차원에서든 합의를 통해 추진한 사업"(p131)이란 사실을 상기시킨다. 경제학에서 출발하여 그 경계를 넘나드는 시평 뿐만 아니라 경제학의 근본을 성찰하는 부분도 매력적이다. 그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가난의 뜻에 대해 곱씹어 보기도 하고, 정의가 빠진 경제학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정치의 속성에 비추어 정치인들이 '엉터리 케인지안'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해설해 준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에 대한 문제제기는 결코 겉도는 것이 아니라 김광수경제연구소에서 주장하는 '대책'에 녹아들어가 있다는 점을 느끼게 한다.


이런 김광수의 글쓰기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내가 관심을 가지고 중요하게 보는 것들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식인의 문제'다. 나는 방금 김광수가 다소 고루한(?) 지식인의 윤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그런데 문제는 지식인의 윤리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지식인들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고, 지식인들이 그에 부합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김광수는 그 지점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경제 예측을 둘러싼 일반의 오해 - 경제 분석을 바라보는 시선"이란 에세이를 통해 경제 분석가로서의 자신이 무엇을 하려 하는지를 설명한다. 가령 버블이 끼어 있기 때문에 부동산이 곧 떨어질 거라고 전문가가 예측했다고 치자. 그런데 일정 시간이 지나는 시점까지 부동산은 하락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 전문가는 그 예측에 대해 비난받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김광수의 생각이다. 전문가의 경고는 모종의 근거에서 나왔다. 그런데 정부에서 더욱 투기를 조장해서 버블을 키우는 식의 근시안적 대응을 했다면, 전문가의 예측에 어긋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 경우 정부는 버블을 더욱 심화시켜 한국 경제가 치뤄야 할 기회비용을 증대시킨 것이므로, 전문가의 예측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p111)는 것이 김광수의 설명이다. 이것은 예측의 어긋남에 대한 치졸한 변명이 아니라, '분석'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부동산이 떨어진다고 예측한 이의 주장에 들어 있던 논거가 결코 성립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부동산이 계속 상승한다면, 결과적으로 그의 주장은 틀린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일순간의 등락을 예측하지 못한 '오류'(?)를 공박하여 전문가의 논거를 부정하는 '속류 반증주의'는 지적 분석을 거부하는 잘못된 습관일 뿐이다.


'그게 안 되는 일이라면 우리는 어디 가서 재태크에 관한 조언을 들어야 하느냐?'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김광수의 경제시평이 아니라 점집을 찾아다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거다. "떨어진다더니 왜 안 떨어졌어??"라는 질문으로 요약될 그런 식의 '책임'을 지울 수 있는 대상은 경제분석가가 아니라 점쟁이일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그들의 자산을 위해 말한다면, 재태크의 차원에서도 경제분석가의 분석을 중시하는 것이 적어도 돈을 덜 잃을 수 있는 방법이긴 하다. 장기적인 점에서 본다면 말이다. 아마도 미네르바에 열광한 이들은, 이런 문제들의 구별이 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나는 미네르바 문제에 대해 두 편의 글을 썼는데, ( 2008/11/21 - [정치/기타] - 정말로 미네르바 밖에 없는가? / 2009/01/20 - [정치/분석] - 미네르바 이야기 ) 이 글에는 사람들이 '분석가'를 대하는 잘못된 자세에 대한 비판이 정리되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문가'의 이미지가 여전히 미네르바라면, 나는 그만큼 우리 사회의 희망의 총량을 줄여서 어림할 것이다. (요즘 매체에 성실히 글을 쓰시는 자연인 '박대성' 씨의 글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의 이야기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그의 글을 평가할 능력이 없다.) 김광수와 그의 연구소의 장점은 그들이 손쉽게 취할 수 있을 것 같은 '미네르바식' 전문가의 이미지를 한사코 회피하려 든다는 거다. 특히 인터뷰 중독에 빠진 경제 전문가의 모습을 경계하는 글에서 나는 그것을 느꼈다.


이 부분에서 김광수의 문제의식은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다음 논제로 이동한다. 바로 '정치'의 문제 말이다. 김광수는 자신의 연구소에서 가능한 예측은 단기예측 정도라는 것, 그것도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예측이 아무리 정교하게 이뤄지더라도 주식투자 등에 끼어드는 것은 못 가진 사람들에게 '지는 게임'이 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잘못된 게임의 틀을 바꾸자고, 그래야만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제안한다. 여기서 경제의 문제는 명백하게 정치의 문제로 이행한다.  
   


'분석'은 그 자체로는 중립적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분명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는 '욕망'에 기초해 있을 거다. 김광수는 그 점을 숨길 생각이 없다. 숨기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부터 그래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비우고' 보아야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다는데, 한편 있는 그대로를 봐야 하는 이유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소 역설적이지만, 올바른 말이다. 그는 부모 세대가 탐욕을 버리고 20-40 세대가 새로운 정치의 주역이 될 때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말할 때 그는 이제 '검증할 수 없는 주장'의 영역으로 넘어선다. 하지만 분명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분석가의 시각에서 그는 일종의 새로운 주체의 구성을 요구하고 있는 거다.


'세대'에 대한 그의 천착은 사실 '88만원 세대론'과 비슷한 부분이 있고 따라서 그도 이 담론에 대해 호의적인 코멘트를 한다. 다만 "실제 지은이들의 주장처럼 30대라고 해서 승자독식을 통해 안정적인 경제적 부를 지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선 생각이 다르긴 하다."(p251-252)고 언급하면서 약간의 이견을 표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 진술은 김광수의 세대 구분이 '88만원 세대'론보다 더 포괄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세대'라는 말이 애초에 15-20년 정도의 텀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적절한 구석이 있다. (물론 '88만원 세대'론은 '오류'라기 보다는 세대를 잘게 분절하여 마케팅 혹은 분할 통치의 대상으로 삼는 보수세력의 담론 전략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가령 조선일보는 신년 신문기사에서 또다시 세대를 분절하여 'G세대'를 언급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김광수의 분석의 적절함과는 다른 판단의 잣대가 발생한다. 주체의, 윤리의, 정치의 문제는 "그렇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분석가답게 김광수는 방향만 제시하지 방법론을 말하지는 못하고 있다. 경제분석가인 김광수가 그 방법론까지 말하게 된다면 더 이상 분석가가 아니라 정치인이 되는 것일 게다. '정치' 문제가 정말로 화급하다면 왕년에 개혁당을 만든 유시민이 그랬듯 분석가가 실제로 필드로 뛰어 올라오는 일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시민의 사례를 성공이라 보긴 어려울 것 같고, 그보다 지금 한국 사회엔 김광수경제연구소가 구성해 낸 분석가의 위치를 점할 수 있는 단체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김광수경제연구소는 포럼을 통해 사람들을 모으고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할 일을 다 하는 것일 게다.

 

사람들이 점점 김광수경제연구소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여기서 우리는 '민주당을 개혁하는 방법 밖에 없어.', '아냐, 좌파(라고 쓰고 운동권이라 읽는다.) 정당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지.'라는 식의 '마지막 한번 몰빵의 길'을 두고 다투는 절망적인 전략적 선택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의 희망의 역량을 재조직할 길을 발견해 낼 수도 있다. 그러나 비록 이것이 희망의 불씨라 할지라도, 그것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또 별도의 것이 될 것 같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열망과, 기존의 정치적 주체들 - 민주당 비판적 지지자, 촛불시민, 좌파 운동권 등등 - 의 차이를 판독하면서 우리는 그 지점을 깊이 있게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이리라.


"우리는 김광수경제연구소를 활용할 수 있을까?" 답은 이렇다. "그래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그것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지금 이 순간 내일의 전부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한 조각이란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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