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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20installment_id=271&article_id=4739

[변희재] 변희재의 논변 검증(1)
- 강의자로서의 진중권의 능력 검증에 대해

2009.9.9.수요일


왜 이 글을 쓰는지에 대하여


변희재의 얘기를 왜 그렇게 자세하게 해야 하느냐는 사람이 많다. 그가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자신의 몸값을 올려 온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심정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오늘날 그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해악은 그저 눈 감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관심이 없는 사람은 모르는 일이겠지만, 변희재는 심지어 MBC 방문진 이사에도 지원했다. 특정 지식인에 대한 집요한 스토킹으로 보수(?) 세력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한 그가 방문진 이사 구성에서 제외된 것은 그나마 MB정부의 좁쌀만한 상식성(?)을 증명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난번에 나는 변희재가 진중권의 입장에는 '듣보'일지 몰라도, 내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썼다. 사실 그에 대한 대응 전략에 대해서도 비슷한 얘기를 할 수 있다. 즉, 진중권이 변희재에게 진지하게 대응하지 않는 것은 변희재의 허술한 논변이 다른 이들에 의해 논박되어야 더 좋은 수준의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변희재의 저열한 공세에 대응하려면 차마 본인의 입으로 하기에는 민망한 말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진중권은 낯간지러움을 감수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해주었다. 아마 제대로 된 사회라면 그런 정보는 변희재가 주제넘게 진중권의 전문성에 시비를 걸고 넘어졌을 때 학술공동체에서 전해줬어야 했을 것이다.


자원재활용. 네티즌이 합성한 변희재


나나 딴지일보의 독자들이나 대개는 진중권의 전문성에 대해 제대로 논할 수 있는 학술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다. 그러니 그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진중권에게 미안해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가 전해준 정보를 활용하는 차원의 얘기라면 문제가 다르다. 전문가가 아닌 상식인들이 할 수 있는 '대략적인' 논의라는 게 있다. 다음편인 '논객으로서의 진중권의 능력 검증에 대해'에서 변희재의 되먹지 않은 견해를 논박하며 더 자세히 말하게 되겠지만, 전문가가 아니라고 입을 닫아야 하는 건 아니다. 전문가인 척 거짓정보를 제공할 의사가 없는 이상 그래야 할 필요까지는 없다. 왜냐하면 상식인은 전문가들의 논쟁에 직접적으로 끼어들 수는 없을 지라도, 오가는 공방 속에서 상식적인 견해가 어디와 어디 사이에 위치해 있을 지를 추측하는 것은 '대략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점을 파악해서 정리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면 결국 시민들이 해당한 문제에 대해 토의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시민들이 어떤 문제에 대해 토의를 한다는 것은 전문지식 없이도 전문가들의 견해를 빌려 무리가 없이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는 상식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왕 변희재에 말하기로 한 이상 변희재의 논변을 '전문가가 아닌 상식적인 수준에서는' 논리적으로 검증하려고 해야 한다. 이것이 이왕 글을 쓰기로 한 이상 변희재의 논변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윤리학의 어떤 분파에서는, 어떤 문제에 대한 당신의 윤리적 판단이 그 문제에 대한 당신의 정서적 표현에 불과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변희재의 의견에 반대한다."는 문장은 결국 "나는 변희재가 싫어."를 의미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격한 테제에 담긴 철학적 함의와는 상관없이, 일상생활에서의 우리는 그런 견해에 복종해서는 안 된다. 내가 좋아하는 e스포츠 커뮤니티에서도 기껏 상대방의 섬세한 논의 밑에 "그러니까 너는 동빠구나?"라는 덧글을 다는 이들이 있다. 이런 짓거리들이 '재미'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어도,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논의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매우 곤란하다.


그러니까 만일 당신이 변희재에 대해 한번이라도 왈가왈부한 적이 있다면, 그의 논변에 대한 논박들을 내가 더 섬세하게 다듬는다는 것을 문제삼아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변희재가 싫어!"라는 정서를 표현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진중권을 옹호하는 논변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주로 그렇게 했던 것처럼 나는 주로 진중권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우리들이 아니라, 진중권도 변희재도 모르는 일반 사람들에게 변희재의 주장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가령 "진중권에겐 거품이 끼어 있다."라는 변희재 패거리들의 주장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가정해 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도 변희재의 논변과 대학당국의 처사가 부적절하다는 점을 밝혀낸다면, 문제는 중립적인 누군가가 보더라도 훨씬 간단해지지 않을까. 이제 시작해보자. 


사건에 대한 요약정리


먼저 무슨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자. 최근 진중권이 교수임용에서 탈락한 곳은 카이스트, 한예종, 중앙대 세곳이지만 매체에서 널리 보도된 한예종, 중앙대, 홍익대 사건을 중요한 부분만 요약정리해 보겠다.


사건파일 1 : 한예종 사건

진중권은 한예종 객원교수로 초빙되어 1년치의 연봉을 받았다. 한예종은 예술이론 교육을 강화하는 '통섭'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학생들에게 인문교양을 가르치고 (진중권이 담당한 과목은 '현대사상의 지평'이었다.) UAT 사업에서의 연구를 맡기기 위해 진중권을 초빙한 것이다.

변희재의 주장은 1) 연구자로서 2) 강의자로서 진중권이 함량미달이라는 것이며, 객원교수로서 진중권은 2학기 강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봉의 절반을 반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예종과 진중권측은 2학기 강의가 외압으로 중단되었고 진중권의 계약조건에 연구활동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연봉 반납은 불가하다고 항변했다. 변희재측은 이에 대해 1) 한예종은 이론교육을 해서는 안된다. 한예종 설치령에 이론교육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으로 대통령령을 시정해야 한다. 2) 객원교수는 학칙상 객원교수 채용규정에 강의만 시키도록 되어있다. 총장이 정한 학칙외 규정은 상위 규정에 위반되는 것으로 무효다. 라고 반박했다. 진중권은 통섭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한예종과 재계약을 하지 못했고, 연봉 반환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변희재측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 하더라도 진중권은 학교측과 강의 및 연구에 대해 합의하고 계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 잘못된(?) 행정의 책임은 학교측에 있게 되어 연봉 반환은 실현되지 않을 전망이다.   

사건파일 2 : 중앙대 사건

진중권은 2003년부터 중앙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진중권은 독문학과와 문화연구학과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대학원 강의인 '독일문화이론' 등을 강의했다. 2009년 중앙대는 진중권이 겸임교수 재임용에 탈락했다고 통보했다. 그 이유에 대해 대학본부는 겸임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학칙상 '겸직기관'이 필요한데 진중권은 겸직기관이 없기 때문이라 하였다. 독문학과는 이 조치에 대해 사문화된 규정을 들이민 부당한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사건파일 3 : 홍익대 사건

진중권은 2009년 2학기 '디자인 미학' 강의를 홍익대에서 담당할 예정이었으나 수강신청도 모두 완료된 강의시작 직전에 강의가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진중권은 홍익대 담당자가 "중앙대 건도 있고 뭐..."라고 말끝을 흐렸다고 증언했다.


8월 28일 진중권 블로그에 올라온 글 


이보다 더 자세히 알 필요는 없다. 지엽적인 학칙논쟁에 얽매이는 것은 논쟁을 진흙탕으로 만들려는 변희재 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누리꾼들이 하는 것처럼 "진중권이 왜 해임되었나?"만을 묻는 것도 곤란하다. 거기엔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에'라는 단순한 대답이 존재하지만, 객관적으로 입증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더구나 '진중권이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아 해임되었다'는 주장을 계속 되뇌이다 보면 모르는 이들에겐 '진중권이 정권에 도움이 되는 자라서 채용되었다'는 변희재의 주장 역시 그럴듯하게 들리는 역효과가 생긴다. 진중권에 대한 사람들의 단편적인 이해와 편견들이 결합하면 그 역효과는 더욱 커진다.

변희재를 논박하기 위한 진정한 문제제기는 이것이다.


"도대체 진중권은 왜 채용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누가 더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어놓느냐가 상식인과 변희재 사이에 존재하는 경쟁관계인 것이다.


왜 진중권이었나.


도대체 왜 대학들은 진중권을 채용했을까. 변희재는 말한다. 그것은 정권의 특혜라고. 변희재의 주장대로라면 시기가 각각 다른 중앙대 독문과 및 문화연구학과 겸임교수, KAIST CT 대학원 겸임교수, 한예종 객원교수 임용 등이 다 정권의 특혜여야 한다. 그의 도식을 간단히 그림으로 그리자면 다음과 같다.


x= 진중권에 대한 합당한 처우 
---------------x------(현재 진중권의 처우)--------> 정권의 특혜
A= 진중권보다 능력이 뛰어난데 교수가 못된 시간강사들의 집합


즉, 변희재의 비평행위와 그에 조응하는(것처럼 보이는) 국가기관의 감사와 대학당국의 처신은 진중권을 x의 위치로 되돌리고 A 집합의 원소들을 위하는 길이다. 그래서 진중권을 옹호하겠다고 나선 지식인들은 정작 위해야 할 이들을 위하지 않고 과대평가된 지식인을 보위하는 조폭적인 패거리주의가 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학칙논란 따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이게 그의 논변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 논변이 허술하다는 점만 짚어주면 논쟁은 종료된다.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진중권이 참여정부 시절 친정부 인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건 내가 증명해야 할 일이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딴지일보 독자들이 진중권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미묘한 앙금이 스스로 증언할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중권이 친정부 인사였다는 식의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 변희재측이 할 수 있는 말은 어떤 것이 있을까? 어느 유명한(?) 변희재 옹호자는 "참여정부는 좌파 정권이기 때문에 좌파적 비판은 아무 문제가 안 된다."고 했다지만 이런 건 그저 우스갯소리로 치부하자. 대충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두 가지 정도다. 1) 진중권이 참여정부에 비판적이었다 할지라도, 참여정부는 386 패거리가 번성한 시대였다. 이 시대에 386 패거리가 진중권을 실력보다 높은 자리에 앉힌 것이다. 2) 진중권은 초기에는 참여정부에 강한 비난을 퍼부었지만, 중기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KAIST, 한예종 등의 채용이 그 시기에 이루어졌다. 진중권이 반정부인사였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이 의견이 설득력을 지닌 설명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


첫째, 그러는 변희재는 참여정부 시절 KBS 시청위원을 했다. 이 인사도 특혜였나? 만일 이것은 특혜가 아니었다면, 정권이 사학들에 미치는 영향력이 KBS에 미치는 영향력보다 더 컸단 말일까? 그런데도 사사건건 참여정부를 걸고 넘어지던 조중동이 그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단 말일까?


둘째, '386 패거리'라는 말이 너무도 범위가 넓다. 인사담당자의 나이가 386이면, 혹은 운동권 출신이면, 모두 다 성립할 수 있는 말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변희재의 KBS 시청위원 선임에 찬성했던 KBS 피디들도 '386 패거리'가 될 것이다.


셋째, 진중권의 중앙대 채용은 정권 초기의 일이었다. 2003년이면 이라크 파병 등으로 진중권이 인터넷에서 강력하게 노무현과 참여정부를 비판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의 진중권 채용이 정권의 특혜인가? 중앙대 독문과 학장이 열린우리당 의원의 형제라서, 열린우리당의 이라크 파병 찬성을 맹렬히 비난하던 진중권을 억지로 채용해줬단 말인가? 열린우리당은 메저키스트인가?


넷째, 어떤 이가 한군데에만 채용되었을 경우, 그가 어떤 종류의 특혜로 채용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여러 군데에서 채용되었을 경우 그것이 특혜라는 사실을 입증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가령 진중권의 중대 채용이 특례라고 쳐보자. 이미 특례를 받은 이를 구태여 다시 특례를 주려는 다른 대학들은 뭘까? 진중권이 참여정부를, 혹은 대한민국 '386 패거리' 전부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자라도 된단 말인가? 반면 진중권의 KAIST와 한예종 채용이 특례라고 쳐보자. 그렇다면 도대체 중앙대는 진중권을 왜 임용한 것일까?


이 모든 사실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제시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이건 변희재가 뇌내망상으로 아무리 글을 찌그려도 안 되는 일이다. 상식인이라면 저 모든 조건을 충족할 머리 아픈 가능성을 따지고 있느니 "뭔지 모르지만 진중권은 채용될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가정을 받아들이고 말 것이다.


진중권의 위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그렇다면 그 채용될 만한 이유를 변희재가 그렇게 좋아하는 '실력'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하고 말아도 되는 걸까? 진중권을 둘러싼 복잡한 지형과 한국 대학의 기형적 현실은 그런 섣부른 결론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도대체 왜 진중권이 채용되었나?"의 질문에 대해 상식인들의 동의를 받을 수 있는 그럴듯한 답변을 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설명이 더 필요할 것이다.


먼저 한 사람의 학자로서의 역량을 평가하는 것은 동료 학자들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진중권은 모두 알다시피 박사 학위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평가'에 있어 불리한 위치에 처해 있다. 이 점만을 놓고 보면 다음과 같은 도식이 도출된다.
 
x= 진중권에 대한 합당한 처우 
학계의 폐쇄성 <--------(현재 진중권의 처우)------x--------------
B= 진중권보다 능력이 모자라지만 교수인 사람들의 집합


말하자면 진중권은 원래는 교수가 되기 힘든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진중권은 비록 정교수는 아닐지라도 이곳 저곳에서 겸임, 혹은 객원교수를 지냈다. 이는 어떻게 된 일일까?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었다는 류의 괴담에 가까운 변희재의 허접한 논변을 잊고 합리적인 추측을 해보자면, 그의 '대중성'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역설적이지만 대학에 수용되기 시작한 상업주의의 물결이 진중권에게 제도권 진입의 기회를 준 것이다. 대학이 상업주의 이념에 물들기 시작하면 인문대학은 그 자체로 위축된다. 인문대학은 원래 지니고 있었던 폐쇄성을 일부 훼손해서라도 대중적으로 이름난 이에게 자신의 생존을 부탁할 수밖에 없다.


'겸임교수'. 강의료를 두 배 더 줄 뿐이라는, 그래서 한 달에 100만원을 지급한다는 그 알량한 자리. 사실상 시간강사와 같은 이에게 50만원을 더 주고서, 그에게 '중앙대학교'라는 소속감을 지급한다. 진중권=중앙대학교라는 등식을 통해 학과의 위상을 강화하고, 학생들을 유치한다. 겸임교수가 된 초기의 진중권이 '학과에서 교양강의를 맡기고 무조건 쉽게 가르치라고 한다.'고 푸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난다. 굳이 이런 기억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태는 합리적으로 예상이 가능하다. 학생선발에 있어 인문대의 다른 과와 경쟁해야 하는 학부제 체제에서 독문과는 '진중권'의 존재를 매우 유용하게 써먹었을 것이다. 신설된 문화연구학과의 입장에서도 진중권은 도움이 되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전문성이나 실력이라는 차원과 상관없이, 다음의 등식이 성립한다. 


학계의 폐쇄성 <-------(현재 진중권의 처우)-------> 진중권의 대중성
A= 진중권보다 능력이 뛰어난데 교수가 못된 시간강사들의 집합
B= 진중권보다 능력이 모자라지만 교수인 사람들의 집합


이제 여러분은 내가 왜 학칙논쟁이 무의미하다고 말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번에 중앙대가 유독 진중권에게만 엄하게 사문화된 학칙을 들이밀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자료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설령 중앙대가 변희재의 말처럼 과거 학칙을 어긴 잘못된 채용을 했더라도, 그 채용은 정권의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전문가가 아닌 상식인인 나는 위 표에서 x의 위치를 굳이 정하지 않았다. 진중권에 대한 합당한 대우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진중권이 양쪽 방향으로 주어지는 힘에 의해 균형상태에 있다는 것, 그리고 저 힘의 균형을 깨뜨리는 새로운 변수인 정부의 입김이 나타났다는 사실만을 알 뿐이다. 학계의 폐쇄성과 대학의 상업주의는 별도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A 집합과 B 집합이 진중권 임용의 정당성이나 부당성을 설명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문제는 새로 등장한 변수이며, 그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변희재가 정권의 특혜에 의한 임용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는 적어도 대학이 정권의 입김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진중권은 무자격자이므로 설령 정권의 외압이 있었더라도 항변할 수가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똘추같은 논리다. 설령 변희재가 꼴통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를 강간죄로 잡아넣어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상관이 없는 양자를 묶어놓고 관련이 있다고 우기면 안 된다.


진중권의 전문성에 대해 추측할 수 있는 자료들


그러나 한예종의 진중권 임용과 각 대학의 진중권에 대한 강의제의는 진중권의 '상업성'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또 아니다. 변희재 말마따나 진중권에게는 '로봇 미학', '디지털 미학', '디자인 미학' 등 다채로운 미학 강의에 대한 섭외가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변희재는 진중권이 이 모든 분야에 대해 전문성이 있을리는 없지 않느냐며 "진중권은 전문성이 없다."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고 든다. 역시 똘추같은 논리다.


정권의 압력으로 진중권이 임용되었다면 대학들이 그렇게 다채로운 강좌를 맡길 리가 만무하다. 자신들에게 필요가 있어서 강의를 개설했는데, 진중권이 거기에 적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맡긴 것일 것이다. MB 정권이든, 참여정부이든 그것을 떠나서. 물론 대학의 판단의 기준이 상업성에 있었는지 진중권의 실력에 있었는지를 우리가 하나하나 따져볼 방법은 없다. 아마도 진실은 양 극단의 어딘가에 있을 게다.


한 인터넷 서점에서 키워드 '진중권'으로 검색한 결과


변희재는 진중권은 미학관련 독일 유학 실패자일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부분은 사실이 아니다. 진중권은 미학관련 유학을 떠난 것이 아니다. 그는 독일에서 비트겐슈타인 철학을 공부했다. 내가 들어본 진중권의 강의에 따르면, 진중권의 사회철학적 기획은 비트겐슈타인의 사적 언어 논증을 통해 마르크스 이론을 재구성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진중권은 이 기획을 완수해낼 수 없다고 여겼거나 계속 추진할 여건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후의 그의 활동에선 이 기획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진중권의 사회비평 저서인 <폭력과 상스러움>은 비트겐슈타인의 지반을 통한 이데올로기 비판을 탁월하게 수행하는 책인 것 같다. 이 책은 슬라보예 지젝의 정신분석학에 의한 이데올로기 비판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수입되기 전에 출판되었다. 어쩌면 진중권의 작업은 지젝 등의 작업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진중권 본인은 정신분석학에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후 '논객 진중권'의 사회비평에는 본인의 사회철학적 기획의 흔적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철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진중권의 학적 기획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미학의 영역에서 진중권은 꾸준한 작업으로 자신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었던 듯하다. 진중권의 프레시안 기고문의 일부를 인용해 보자.


"UAT 사업과의 관련에 관해 말하자면, 대단히 미안하지만, 인문학자 중에서 이 분야에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갖고 연구해 온 사람은 내가 거의 유일하다. 내가 석사논문의 주제로 삼은 유리 로트만은 기호학과 정보이론을 예술론에 적용한 최초의 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를 통해 정보미학과 생성미학의 창시자인 막스 벤제를 알게 되었고, 그와 관련한 리서치를 하던 중에 일본 최초의 컴퓨터 예술가인 카와노 히로시의 존재를 접하게 되었다. 내가 컴퓨터 예술에 관한 카와노 히로시의 책을 번역한 것이 1992년, 그러니까 무려 17년 전의 일이다. 내 기억에 따르면 당시는 PC가 XT에서 막 AT로 넘어가던 시절이었고, 컴퓨터가 아직 계산기나 타자기로나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나는 이미 컴퓨터가 영상의 제작, 즉 예술의 창작에 사용될 가능성을 미리 짐작하고, 일본에서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카와노 히로시를 발견했고, 팔리지 않을 거라고 난색을 표명하는 출판사를 설득해 그의 책을 번역 출판하는 데에 성공했다. 최근 컴퓨터가 영상매체로 자리 잡으면서, 컴퓨터라는 계산기로 그림을 그리겠다는 발상을 처음으로 했던 예술가들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의 타마 미대에서는 초기 컴퓨터 생성 예술에 대한 전시회를 대대적으로 열었고, 이 전시회는 오스트리아와 독일로 순회를 떠났다. 독일에서는 2007년에야 초기 컴퓨터 그래픽에 관한 연구서가 나왔고, 2008년에는 미국의 MIT에서도 비슷한 책이 나온다고 들었다."

- "유인촌의 문화부, 예술을 겁탈하다" 프레시안 09. 6. 8.


이런 기반 위에서 진중권은 미학과 기술을 결합시키는 다양한 시도들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한국처럼 인문학이 융성하지 않은 나라들의 특징은, 인문학이 정전을 해석하는데 급급하고 현실문제나 구체적인 대상에 적용되는 일이 드물다는 것이다. 가령 칸트 철학의 잣구에 매달리는 연구자는 많아도 그것을 활용하여 정치평론을 할 겨를이 있는 연구자는 드물 거라는 거다. 미학 분야에서도 상황이 비슷하다고 한다면, 나름의 활동을 하고 있는 진중권이 대학들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물론 진중권은 그 분야에 있어서 세계 학계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전문가나 권위자는 아닐 거다. 하지만 그 분야에 있어 한국 사회에서 강의자를 찾으려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일 것임은 틀림없다.


변희재의 오류 더미들에 대한 마지막 언급


이 모든 맥락들을 생략하고 변희재는 1) 진중권은 능력 미달이지만 2) 정권의 특혜나 386 패거리들의 지원을 받아서 3) 돈도 많이 벌고 교수도 되었다. 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실력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며, 진중권을 옹호하려는 지식인들의 행동은 시간강사에 대한 배신이라고 주장한다.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 그건 이미 내가 위의 표에서 A의 집단의 존재와 진중권의 처우가 논리적으로 별도의 문제임을 증명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변희재가 오직 진중권을 공격하기 위해 내세웠던 논리들은, 그가 시간강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주장을 반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변희재가 능력있는 강사들이 제대로 된 대접(가령, 겸임교수라든지)을 받기를 원했다면, 최소한 중앙대의 학칙은 옹호해서는 안 되었다. 겸직기관이 없을 경우 겸임교수 자격이 없다는 규정은, 결국 다른 직장이 없는 연구자들 입장에서는, 타대학 교수가 아닐 경우 우리 대학 겸임교수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교수라야 교수가 될 수 있다니, 이 황당하게 폐쇄적인 주장을 두고 뭘 어찌하란 말인가.


둘째, 변희재가 객원교수는 연구를 해서는 안 되고 강의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그는 오직 강의자로서의 진중권의 능력에 대해서만 시비를 걸어야 했다. 연구업적은 얼마 없어도 학생들에게 훨씬 재미있고 유익한 강의를 할 수 있는 시간강사들이 많을 거다. 대중적 저술가인 진중권은 아마도 거기에 포함될 것이고. 시간강사들을 위했다면 그는 객원교수 규정을 정상화(?)하면서 진중권의 프로젝트에 대해서만 시비를 걸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진중권의 프로젝트와 강의 모두에 대해 시비를 걸었다.


셋째, 변희재가 동원한 논거의 대다수는 학칙이었고, '전문성' 검증과는 상관이 없다. 전문성을 검증하는 학계 인사들은 그의 글에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고,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에게 말을 해주었다는 어떤 익명의 사람으로 등장했다.


적어도 변희재가 아직 대학들에게 스스로 강의자로 나서겠다고 제안한 사실이 있다고는 듣지 못했다. 그러니 결코 진중권과 같은 강의자가 될 수 없을 변희재가 진중권의 강의자 자격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도 가능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요모조모 검토해 봐도, 우리는 상식인의 시각에서 변희재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변희재의 주장에 동의하려면 지나치게 무리한 가정들을 수용해야 한다. 물론 우린 하등 그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상이다.

<뉴라이트 사용후기>,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 저자 한윤형
(a_hrim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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