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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진의 예측과 박근혜 문제

조회 수 4564 추천 수 0 2011.05.08 16:38:12

http://hook.hani.co.kr/archives/26476


아마 안병진은 야권통합론자일 것이고, 이정희를 높이 평가하는 그의 정치적 성향(취향?)은 나와 같지 않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이 글은 꽤 함의가 있다. 


전문을 읽어보기를 권장하지만, 중요한 부분만 추려보자.


물론 그 전에 총선이 있다. 하지만 이미 민심의 돌이킬 수 없는 분기점을 지난 내년 총선은 집권 진영에 재앙이 될 것이다. 이번 재보선은 운명의 신이 살짝 예고편을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야권이 자만과 분열의 극심한 어리석음만 범하지 않는다면 내년 총선은 이미 지나간 미래이다.



첫째, 그는 2012년 총선에서 야권의 무난한 승리를 예상한다.  


문제는 대선이다. 흔히 총선에서 야권이 이기면 대선에서도 집권 진영이 무너질 것이라고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야기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닉슨의 길이 더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둘째, 그는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하더라도 대선에선 박근혜가 이길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대선에서 인자한 보수주의와 온건 대북 노선에 패배한다면, 한국의 야권으로서는 더 암울한 닉슨의 길을 맞게 될 것이다. 미국의 경우 그건 국내 노선에서는 고 에드워드 케네디 진보 의원조차 경이롭게 생각한 닉슨의 복지 어젠다 선취의 길이다. 국제 노선에서는 중국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꼴통 보수들을 경악하게 한 평화번영 노선의 길이다. 한국의 경우에 그건 복지국가의 길과 한반도 지각변동 속 평화노선의 길이며, 그 과정에서 야권은 좌충우돌할 것이다.



셋째, 그는 박근혜의 집권이 '대한민국'에 재앙이 아니라 민주당 등 현재의 야권정당들에게 '재앙'이 될 거라 예측한다. 말하자면 그는 박근혜가 집권하면 '닉슨의 길'을 갈거라고, 국내 노선으로는 '복지국가'를 추구하고 국제노선으로는 '대북정책에서의 평화노선'을 추구할 거라고 예측한다.


나는 이런 예측들이 꽤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평론가는 점쟁이가 아니며, 시민들이 가져야 할 정치적 관심은 경마장에서의 배팅과 달라야 한다. 우리는 안병진의 예측이 2012년에 실현되는지를 눈뜨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아서는 안 된다. (안병진의 예측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의 예측을 대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안병진의 예측이 어떤 '현실'을 반영하며 그 현실에 대해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를 정리해야 한다. 


물론 그의 예측은 빗나갈 수 있다. 나는 저 예측들에 설득력이 있다고 보지만, 그것들이 빗나가는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먼저 첫째 예측, 야권지지자들에게 손학규로의 쏠림현상이 발생한다면, 한나라당은 일찌감치 '박근혜 중심'으로 정돈될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될 경우 박근혜는 '여소야대' 정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총선에서부터 정면승부를 걸어올 수 있다. 물론 그 승부에서 야권이 패배하는 일이 가능하다.


다음으로 두번째 예측, 총선 결과야 어찌됐든 대선에서 반-반 싸움이 진행된다면 승부를 예측하기가 힘들다. 적어도 2007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승부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예측, 박근혜가 대한민국을 '잘' 통치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녀가 어떤 인력풀을 동원하여 관료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어떤 방식으로 통제할 수 있을지에 대해 우리는 별로 아는 바가 없다. '이명박 정부의 무능'이 이명박의 특출난 무능인지 아니면 한국의 관료제와 의회민주주의가 봉착한 어떤 난국인지에 대해 우리는 별로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안병진의 예측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예측에 두 가지 함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정권을 창출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정권을 운용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첫번째 함의는 박근혜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야권의 정치인, 정치평론가, 지지자들은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이고 여성이라서 영남권에서도 전적으로 환영받을 수 없기 때문에 쉬운 상대라고 생각한다. 친노진영에서 꽤 생각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해찬조차도 "총선만 승리한다면, 박근혜는 그저 박정희의 딸이 될 뿐이다."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물론 민주당 입장에서 산적한 문제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일단 A의 과제를 해내면, B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니다."란 식으로 용기를 북돋우는 발화를 하는 거라면 그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이기 때문에 정말로 쉬운 상대라고 믿는다면 야권은 선거에서 나쁜 꼴을 볼 확률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박근혜는 역설적으로 독재정권에 협력했던 어떤 정치인보다도 '사과'를 많이 한 사람이다. 한나라당의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독재정권에 대해 향수를 가지고 있는 지지층을 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 또는 독재정권의 포괄적인 과업에 대해 사과할 입장에 있지 않다.


그러나 박근혜는 설령 사과하더라도 여전히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있어 운신의 폭이 자유롭다. 박근혜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도, 고 장준하 선생의 유족들에게도 직접 찾아가 사과한 사람이다. 물론 "인혁당 샤건 유가족들에게 사과하지 않는 이상 박정희의 과를 계승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정치적 적대자들의 윤리적 평결은 올바르다. 그리고 박근혜가 인혁당 유가족들을 찾아가게 될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만일 박근혜가 대선후보가 되고 공식적인 대권레이스가 시작된다면 '아버지'의 '과'에 대한 포괄적인 사과 정도는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임을 물고늘어지려는 야권의 전술은, 박근혜의 회피기동에 의해 '닭 쫓던 개 꼴'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야권이 '박근혜식 복지담론'의 허약함에 대해 정면으로 싸움을 거는 대신, 그녀가 '독재자의 딸'임을 부각시키고, 영남사람들은 원래 마초니까 여성을 그렇게 극렬 지지하진 않을 거라는 희망찬 공상 속에서 정치공학을 짠다면, 그녀는 현명하게도 '과거에 얽매이는 야권과 미래를 대비하는 나님'이란 프레임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어떤 의미에선 2002년의 재림이다. 2002년 당시 노무현의 선거전략을 상기해보라.) 그리고 이런 프레임에 말려 들어간다면 야권의 가장 큰 무기가 될 가능성이 분명한 '정권 심판론'마저 희석될 것이다.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이란 사실은 비밀이 아니며 대한민국의 모든 유권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미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 이유로 대개 박근혜를 좋아하고 있고, 박정희를 싫어하는 사람 역시 그런 이유로 대개 박근혜를 싫어하고 있다.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이기 때문에 쉽다."라는 말이 실제로 선거전략으로 실행된다면 그건 민주당에 득이 아니라 실이 될 것이다. 그것은 민주당의 지지자들의 말투와 어휘를 비분강개한 도덕적 단죄의 그것으로 변화시킬지언정 (이것은 중도파 유권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새로운 박근혜의 반대자를 만들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야권이 박근혜에게 제대로 된 싸움을 걸어야 박근혜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것들이 더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녀를 '박정희의 딸'로만 호명하는 것은 그녀의 약점을 덮어두는 전략이 될 것이다. 


두 번째 함의는 좀 더 복잡하다. 정권을 창출하는 문제와 정권을 운용하는 문제는 현격하게 다르며, 사실 후자가 훨씬 어려운 과업이다. 박근혜라는 정치인이 전자에 대해서 '감'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예측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후자에 대해선 사실 뭘 예측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안병진은 박근혜가 복지국가와 평화노선을 추구할 것이라고 대담하게 예측했다. 보수파 박근혜가 그런 노선을 선점해 버리면 야권은 지리멸렬하게 될 테니 미래를 보고 제대로 대비하자고 말하고 있다. 


사실 설령 박근혜가 승리한다 하더라도 박근혜의 미래가 장밋빛은 아닐 것이다. 부동산 가격은 박근혜 임기 내내 하락할 것이며, 그것만으로도 박근혜를 지지한 중도층들은 정부에게 제 삶의 질이 악화된 책임을 돌릴 것이다. 박근혜가 어지간히 정치적 수완이 있더라도 한국 사회의 곪은 문제를 청산하는 대수술을 단행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만일 박근혜가 그런 일을 단행한다면, 그녀는 가장 인기없는 대통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복지국가'와 '평화노선'이란 슬로건이 채택될 가능성은 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병진의 예측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실천을 강제하는 예측이기 때문이다. 만일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아무일도 해결하지 못하고 실패할 거라고 예측한다면, 민주당 지지자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2012년 대선에서 설령 패배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앉아서 그녀가 실패하는 것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녀가 무언가 잘 할 수 있는 확률을 떠올린다면 얘기가 다르다. 정권을 창출하는 문제와는 또 별도인 정권을 운용하는 문제에 있어서, 민주당(혹은 야권연합)은 자신들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앞서 말한 선거전략과도 연결되는데,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이라 쉽사리 공격하는게 아니라 그녀의 복지담론에 비해 얼마나 더 우월하게 작동할 수 있는 공약들을 담금질해서 내놓느냐가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선 민주당 지지자들이 무상의료에 대한 유시민의 공격에 대해서도 인신공격으로 대항하기 보다는 공약을 담금질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실 박근혜가 아무것도 못하고 물러날 것이라는 전망은 민주당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정치를 통해 무언가를 바꿔 보겠다고 희망하는 사람들이 소리높여 주장해야 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박근혜가 잘 하든, 잘 하지 못하든 간에, 그녀가 훌륭한 적수라고 가정하면서 노력하는 쪽이 민주당의 정권교체를, 진중권이 말한 바 바뀌지 않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끝없는 자리교체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방책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차라리 박근혜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희망하고, 그 희망에 입각하여 노력을 경주하는 편이 좋다. 물론 현실적으로도 만약 민주당이 제자리걸음인데 박근혜의 무언가가 성공하는 사태가 발생할 때에, 민주당의 위치가 급격하게 흔들릴 거라는 점을 고려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안병진의 예측은 설령 빗나갈지라도, 정권교체와 야권연대를 말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함의가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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