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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선거연합과 유시민의 선택

조회 수 7904 추천 수 0 2011.04.01 18:04:20

이 글은 2011/03/31 - [정치/정당] - 진보신당 당대회와 그 정치평론가들 에서 이어지는 글이지만 굳이 이전 글을 읽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전 글은 최근의 진보신당 문제에 관해 정치평론가들이 취하는 부적절한 처신을 비판하는 것이었는데, 이번에 쓰는 글의 예상독자는 진보신당 문제를 넘어 야권연대 자체에 관심이 있는 유권자들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나는 일부 정치평론가들이 민주노동당-진보신당 통합을 2012년 야권 선거연합의 필요조건으로 상정하는 것을 비판하고, 2012년 야권 선거연합의 성패를 가를 핵심적인 요소가 유시민의 선택이란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요즘 조국을 포함한 몇몇 정치평론가들이 지지율 1~2%에 불과한 컬트정당 진보신당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1) 야권연대를 해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
2) 야권연대를 하려면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딜을 해야 한다.
3)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딜이 성립하려면 무조건 진보정당은 통합해 있어야 한다.



이에 덧붙여, 본인들이 야권연대만 신경쓰는게 아니라 진보정당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을 하겠다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덧붙이는게 연립정부론이다. 진보정당이 컬트정당을 벗어나 민주당과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행정능력을 학습할 기회를 얻으면 수권정당의 길에 보탬이 될 거라는 것이다.


이 제안은 여러모로 문제가 있는데 먼저 현실적으로 볼 때 가장 큰 부분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자기들끼리 몫을 배분하는 모양새'가 될 확률이 너무나 크다는 것이다. 연립정부론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김부겸과 같은 민주당 내 비주류 개혁파 정치인, 조국과 같은 학자, 김창현, 심상정과 같은 진보정당 쪽 정치인/활동가들이다. 말하자면 민주당 주류에서 진지하게 생각할지도 불분명한 제안을 하나의 당근으로 진보정당들에게 제시하고 대의를 위해 받으라고 요구하는 웃기지도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다.


또 한국같은 대통령제 국가, 그것도 대통령에 대한 권한이 극도로 집중된 국가에서 정체성이 다른 정당들이 모여 수립한 연립정부가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을지를 물어봐야 한다. 차라리 DJP 연합과 같은 '야합'이라면 대통령이 의지를 가지고 내각의 배분을 하는 식의 연립정부 구성이 가능하다. '장관 자리'를 밥그릇으로서 정파적으로 배분하면 그만인 일이기 때문이다.(물론 DJP 연합 역시 끝까지 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정치성향이 다른 정당이 모여서 정부를 공동구성했다고 할 경우 (...장관 몇 명 입각하는 것을 '정부의 공동구성'이라 칭할 수 있을지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이를테면 김대중 재임기간에 자민련 출신 노동부장관이 탄생했다 하더라도, 정리해고나 파업진압 문제에 갈등을 겪을 일은 없었을 거다. 그러나 진보정당은 상황이 다르다.


우리가 민주당이 지금 자신들이 주장하고 있는 바대로 최대한 좌향좌한다고 편의상 추정했을 때, 민주당과 진보정당 간에는 '복지'에 대한 쟁점은 해소된다. (믿기 어렵지만 일단은 그렇다고 치자.) 다만 남아 있는 것은 '노동'의 쟁점이다. 간단하게 요약해서 민주당은 복지를 통해 인민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대신 노동유연화는 유지하겠다는 입장이 될 공산이 크고, 진보정당은 노동시장 자체의 변혁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참여정부 시절 비정규직 보호법의 모토가 "고용은 유연하게 차별은 없게"였다. 고용과 해고는 자유롭게 하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준수하겠다는 건데, 물론 기업의 이윤을 고려해 차별시정조치들을 살살 적용하느라 큰 차별시정 효과는 없었다. 여하간 민주당이 다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한다 해도 이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나는 이 문제에 있어 좌파들의 대안('비정규직의 정규직화'란 슬로건으로 대표되는?)이 보수주의자나 자유주의자들의 것에 비해 무조건 더 옳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의 노동시장에는 변혁이 필요한데, 그 변혁을 위해선 아마도 헌법정신으로는 보장되어 있지만 도무지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사될 수 없는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단호한 옹호가 필수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 따름이다. 이를테면 파업 현장에 군대를 파견하여 파업노동자를 폭행하는 경찰과 구사대를 진압한 1937년 루즈벨트의 결단 같은 것을 지나쳐야 (물론 우린 연방국가가 아니므로 군인이 경찰과 싸워야 할 일은 없을 게다.) 노동자를 보호하도록 되어 있는 법적인 장치들도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 토양 이후에 새로운 제도적 합의를 논의하는 게 가능해질 거라는 거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사실 진보정당이라도 '노동계급'의 정치적 각성과 함께 성장하지 않았다면 내리기 힘든 결단이다. 한국 사회 실정에서 볼 때, 만일 진보정당 출신의 노동부장관, 농림부장관이 입각하여 활동하게 된다면, 임기에 한 번 정도는 쌍용자동차 파업과 같은 사건에 부딪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 닥쳐올 것이다. 복지제도와 상관없이 이런 사안에 대해 민주당 정부의 선택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일 게다. 사측과의 중재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물론, 경찰과 구사대의 폭력으로부터 농성자들을 보호해 주지도 않을 거다. 이 경우 진보정당 출신의 장관은 정부와 자본가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는 '설겆이'를 하거나 강단있게 사퇴하여 그 현장으로 뛰어드는 것 밖에 답이 없다.


전자는 명백하게 진보정당 운동의 역량을 강화하는 길이 아니다. 그래서 후자가 답이라면, 대체 그 '연립정부'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차라리 '행정경험 연습'만으로 따지면 노동부장관보다는 보건복지부장관이나 문화관광부장관 자리 같은 것이 그나마 자율성을 지키며 어느 정도 할 바를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런데 특히 문광부장관 같은 자리는, 이미 김대중 노무현 시기 때부터 소위 '자유주의자'들이 이른바 '수구세력'에 비해 가장 비교우위를 가지는 그런 지점이다. 물론 진보정당의 문화정책과 민주당의 문화정책 사이엔 꽤 큰 거리가 있지만, 그 다른 지향을 장관의 위치에서 실현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가 된다. 어차피 정책은 의회에서 통과시킬 수밖에 없다면 결국 의회활동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연립정부론이 두 세명의 좌파 정치지도자들에게 장관 연금을 주겠다는 '예우'의 차원을 빼고 생각한다면 정치적으로 진보정당의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또 진보정당 운동을 벗어나 생각한다면 연립정부론을 말해야 할 필요는 더욱더 줄어든다. 사실 야권 선거연대만으로도 벅찬 길인데 연립정부나 당 통합과 같은 그 자체로 많은 논란과 이해관계의 조정을 야기하는 이슈를 던져봤자 문제해결에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것이 노회찬의 가설정당론이라고 볼 수 있다. 노회찬이 가설정당론을 제기한 취지의 핵심은, 지금 시점에서 당 통합을 말하는 것은 너무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선거연대의 성공을 위해서는 딱 그 선거연대를 성사시킬 수 있는 어떤 방책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선거연합과 당 통합을 분리해서 사고하자는 것인데, 나는 이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김부겸은 바로 이 노회찬의 가설정당론이 진일보했다고 평하면서 다시 한번 연립정부 운운 하고 있으니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노회찬의 제안은 '야권단일정당'을 향한 민주당의 공세로부터 '진보정당 운동'(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포괄하는)을 방어하려는 것이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노회찬의 착상은 유효하다고 본다. (가설정당론에 대해 현행 선거법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있으나 여기서는 착상만을 따지도록 하자.) 이를테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사이에 있어서도, 선거연합을 위해 정당통합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선거연합만 염두에 두고 본다면 오로지 선거연합만 합의하는 쪽이 훨씬 더 쉽다. 특히 이번 총선과 대선의 경우, 양당 모두 민주당과도 합의해야 한단 것을 전제로 삼고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다만 지금 진보의 재통합을 운운하는 것은 2012년 야권연대와는 또 조금 별도로 구별되는 진보진영의 위기가 깔려 있는 것인데, 이 위기를 돌파할 방법이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인지 (혹은 국민참여당까지 낀 삼당합당론인지에 대해선) 또 따로 논의해 봐야 한다.

(이 글은 성격상 바로 그 부분에 대해 논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이전에 내가 쓴 글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한편만 읽으려고 한다면 
2010/09/10 - [정치/분석] - 정당 지지자의 계층 분포와 진보정당 운동 이 제일 적당할 것이다. 물론, 길다.)


여기까지의 핵심은 비록 당의 숫자가 적을 때 선거연합이 더 쉬울거란 추정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현재 여러 당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선거연합을 논의할 때엔, 당 통합논의 보다는 여러 당의 이해관계를 조합시키는 선거연합 방책 자체를 논의하는 게 더 실용적인 길이라는 거다.


또, 선거연합 이전에 예비적으로 몇 개 당들을 통합하자고 요구하는 것이 하나의 가능한 정치평론이라 하더라도, 그 경우엔 도대체 왜 국민참여당에 대해선 민주당으로 도로 들어가라는 요구를 강하게 하지 않는지가 궁금해진다. 물론 조국의 경우 유시민에 대해서도 "어째서 민주당과는 합당하지 않느냐."고 질문은 하고 있으나, 그 부분에 대해 강한 압력을 넣지는 않고 오히려 그가 엉뚱하게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의 통합논의를 제시한다는 점을 높이 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 대해선 민주노총 조합원 중 양당 당원인 이들에게 당비 거부 운동을 펼쳐서라도 합당을 유도해야 하고, 진보신당 당 대회 결과를 보고 '비상 당대회'가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그 조국이 말이다.


그에겐 국민참여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명료하고,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차이는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럴수도 있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정치평론가들의 책을 사보고, 인터넷에서 정치평론가들의 견해에 대해 발언하기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참여당 지지자(혹은 유시민 지지자)가 특히나 많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겠다. 조국은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에 대해서야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발칙한(?) 압력행사를 기획할 입장에 있지만, 유시민의 지지자들은 상황에 따라서는 진보언론에 대해서도 절독운동을 하겠다고 압력을 넣는 처지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유시민의 지지자들은 개혁담론의 생태계에서 특히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에 비해 '과잉대의'되고 있다. 진보신당의 지지자도 지지율과 견주어 생각하면 민주당/민주노동당 지지자에 비해 '과잉대의'되고 있지만 유시민 지지자들에게 비할 바는 아니다. 특히 촛불시위 이후 진보신당이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다소 우스꽝스럽게 걸치고 있었던 '강남좌파'의 이미지가 조국에게 완전히 흡수되어 버린 상황에서, 유시민 지지자가 과잉대의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는 정치세력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진중권이 조소한 김규항의 확언처럼 2012년 선거에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조국이나 진중권 등에게 어떤 '자리'가 떨어질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좀 투박하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 아니라도, 그들의 발언이 인증받는 생태계가 많은 유시민 지지자들로 둘러 싸여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환경이 그들 발언의 방향과 수위를 의식적인 차원에서든(가령 이해관계를 위해 유시민 지지자의 소망을 채워주고 있다든지) 무의식적인 차원에서든(그게 아니라 주변에 유시민 지지자가 워낙 많아서 유시민과 민주당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단 걸 별다른 고민 없이 '상식'으로 인지하고 있다든지) 규정한다는 것은 개연성 있는 추론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2011년이고, 지금 있는 당들이 2012년에 사라질 거라고 믿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민주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사회당이 존재할 거라고 가정하고 얘기를 시작하자. (물론 창조한국당은 자유선진당과 연합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이 논의에 끼지 않을 수도 있고, 사회당은 이 논의에 있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민노/진신 양 진보정당에 대해서만 제한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 간에 무엇을 주고 받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변하는 것은 그 자체가 선거연합 문제에 대해 답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은 이들 사이에 '주고 받는 것'을 힘들게 하는 방해요소들을 검토해 보자.


첫째, 민주당과 다른 정당들 간의 현격한 힘의 불균형이다. 이에 대해선 상세하게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둘째, 위에서 수반되는 결과로, 각 정당들이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더라도 그것을 결정할 구체적인 경선룰에 합의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어떤 식의 경선룰을 가져오든지 간에 '민주당의 조직력'의 효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제1야당으로서 민주당의 프리미엄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수 있을지의 문제와 연결된다.


셋째, 민주당이 확실히 당선될 수 있는 지역, 그러니까 호남일 경우 민주당이 '양보'에 합의한다 해도 지역구 의원이 무소속으로 입후보해버리는 경우 실질적인 주고 받는 효과가 나타날 수 없다. 이는 민주당이 '양보'를 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문제다.


넷째, 세번째 문제와 연관지어, 민주당 지지자들은 어떤 지역구에서 군소정당에게 '양보'하는 것이 결국 한나라당에게 의석을 넘기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결국 야권연대가 이루어진다면 민주당에도 다소 이로운 것은 분명하지만, 구체적인 차원에서 군소정당들이 민주당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


국민참여당의 유시민이나 정치평론가 진중권이 넌지시 주장하는 '3당합당론', 노회찬의 가설정당론에서 소수정당들끼리 연합해서 먼저 후보단일화를 한 후 민주당과 경선을 치르자는 제안, 크게 보면 진보대통합론까지 위에 제시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협상을 위한 덩치를 키우자는 제안으로 정리될 수 있다. 3당합당론의 경우 참여당과 민노/진신 두 진보정당의 당론의 거리로 볼 때 꽤 무리한 제안으로 생각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유시민은 '나중에 다시 갈라설 수도 있다.'고 언급하면서 사실상 이것이 선거연합 협상을 앞두고 덩치를 불리는 방책임을 고백한다.


여기서 우리는 협상을 위해선 덩치가 커지는 쪽이 유리하지만, 덩치를 키우기 위해 합당논의를 시작하면 선거연합 자체만에 대해 논의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어진다는 애초의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통합을 강조하는 이들의 입장은 이 딜레마 중에서 한쪽 측면, 즉 협상하는 쪽의 전술적 우위를 취하기 위해 다른쪽 측면, 즉 소수정당들이 정체성의 요구를 하는 것을 제어하자는 것에 있다.


우리는 이것이 '반MB연대'의 논리구조와 동치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반MB연대' 역시 한나라당의 명백한 실정을 제어하기 위해 민주당과 기타 정당들 간의 차이들을 지워버리거나 잠깐 잊어버리자는 얘기이니 말이다. 물론 논리구조가 동치라고 해서 그 현실적 설득력마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지금의 정치국면은 한국 사회가 지금의 수준에서 요구하는 전선보다 훨씬 더 많은 전선이 난립하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하나의 전선이 내려올 때마다 그 전선에서 강자를 포위하려는 '반...연대'가 성립한다.


투박하게 요약할 때, 극우 한나라당과 대치하는 좌우합작의 영역에서는 '반MB연대'가, 그 연대 안 쪽에서 민주당과의 현격한 세력불균형을 타개하기 위해 '반민주당연대'가, 그 연대 안 쪽에서 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그에 대한 비판자들이란 전선에서 '반참여당연대'가, 또 그 아래에 북한 문제에 대한 진보진영 내부의 이견을 중심으로 '반민노당연대', 그 아래에 진보신당과 사회당 및 진보정치단체들이 위치하는 형국이다. (그림으로 그리면 더 말끔할 것 같은데 내 깜냥으로 만들기가 어렵다.)


여기서 참여당의 존재는 이중적이다. 유시민이 언젠가 지적했듯이, 바로 참여당이 존재하기 때문에 민주당은 군소정당들과의 협상이 불가피하다고 (적어도 예전에 비해서는 생까기 힘들어졌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한편으로 참여당은 정책성향이 진보정당들에 비해서 민주당과 훨씬 더 가깝기 때문에 이들과 연합한다는 것은 진보정당들에게 정체성의 위기로 다가온다.


분명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외 군소정당들이 연합하여 민주당과 협상을 펼쳐야 할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된다. 그러나 군소정당들이 힘을 합쳐 협상을 해야 한다는 당위에서 곧바로 그들이 합당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뒤따라 나오는 것은 아니다.


또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에서 갈라 나오면서 던진 화두인 '진보의 재구성'이란 기획은 선거연합 문제와 (무관할 수는 없지만) 또 다른 '진보의 재정립, 재생산' 문제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는데 이 화두는 원활한 선거연합을 위한 통합과는 동일시 될 수 없다. 진중권은 이 다른 두 문제를 한 큐에 엮어버리고, 조승수가 실패했다고 선언한 (나는 그 말 자체에는 동의한다.) '진보의 재구성'을 민주당과 협상하기 쉬운 '3당합당'으로 실현하자고 한다. 사실 이는 유시민이 넌지시 건네고 있는 3당합당의 제안만도 못한 것이다.


우리는 2012년 총선 및 대선에서 1vs1 대결을 보편적으로 성사시킬 수 있는 세 가지 방책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두 개는 이미 위에서 언급된 경선이 존재하는 경쟁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단일후보 원칙 합의/경선룰 합의 수준을 넘어 후보 자체를 합의로 정하는 협상의 방식이다.


가) 유시민-진중권 안
- 잡야당들이 모여 제3당을 창설한다.
- 제3당이 총선 전체 지역구 및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와 야권대표 후보를 두고 경선으로 경쟁한다.
- 제3당의 창당으로 민주당에 대한 조직력의 핸디캡이 다소 극복되었으므로, 적절한 경선룰을 정해 이 경쟁을 정당한 것으로 만든다.


나) 노회찬 안
- 모든 야당들이 모여 가설정당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잡야당들이 모여 민주당과는 별도의 협의기구를 만든다.
- 총선 전체 지역구 및 대선에서, 잡야당들의 협의기구에서 먼저 경선을 해 제3후보를 선출한 후 이 후보가 다시 민주당 후보와 경선을 한다.
- 두 번의 경선에서 각 정당의 조직력과 기여도를 검토한 적절한 경선룰을 정한다. 


첫 번째 방책은 참여당과 정책적으로 거리가 먼 진보정당들의 정체성의 희생을 전제한다. 또 유시민의 말처럼 제3야당의 창설도 잠정적인 것이 된다면 결국 그것은 두 번째 방책에 근접해진다. 두 번째 방책인 노회찬의 가설정당안은 선거법상 실현이 어렵다는 문제를 빼고 생각하더라도 지나치게 많은 경선에 대한 요구와 경선룰 합의 과정의 지리함, 결별가능성 등을 함축한다. 바로 이 문제점들을 지우기 위해 사람들은 '통합'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정체성에 차이가 있는 정치세력들 간 통합을 억지로 일구어낸다고 하더라도 그 내부에선 이 문제들이 똑같이 불거질 것이다. 다만 이름만 '정당 간 경선'에서 '정당 내 경선'으로 바뀔 뿐이지. 


경선의 존재는 공정함을 담보하는 것 같지만 적어도 세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드러낸다. 첫째는 경제적 비용의 문제다. 이를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둘째는 경선룰 조율과정의 불협화음과 그것의 항상적인 결렬가능성이다. 경선을 치를 경우 투표 전날까지 단일후보가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을 안고 살아야 한다. 셋째는 인재의 집중문제다. 4.27 재보선에서 민주당과 참여당이 김해에 집중하자 유력한 친노후보는 어느 당 후보로도 나오지 않았고, 양당이 새로운 후보를 투입해 경쟁해야 하는 형국이 되었다. 지역구 숫자가 적은 재보선에서 이는 별로 큰 손해로 보이지 않지만, 총선에서는 큰 손해를 발생시킬 것이다. 이를테면 민주당이 군소야당에게 지역구 하나를 덜 뺏기기 위해 중량급 인사를 경선에 투입한다고 치자. 경선에 참여한 그 인사가 경선을 끝내고 다른 지역선거에 투입될 수가 없기 때문에, 이 경우 범야권은 한나라당에 비해 인재의 집중 문제에서 손해를 보게 된다.  


따라서 1vs1 구도를 만드는 선거연합을 위한 최선의 방책은 합의라고 볼 수 있겠다. 민주당에게 확실한 지역구인 호남을 몇 군데 넘기라는 무리한 요구대신, 군소정당 후보가 나올 경우 한나라당 후보에 더 잘 대항할 수 있는, 적어도 민주당과 비슷한 수준으로 대항할 수 있는 몇몇 지역구에 대해 각 정당별로 합의를 통해 단일후보가 되고 대신 다른 지역구와 대선에선 후보를 내보내지 않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이 구도가 성립된다면 참여당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강하게 행사되는 경남 지방의 몇 곳, 민주노동당은 현역 지역구의원인 권영길, 강기갑과 대중적으로 혹은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은 이정희, 김창현 정도, 진보신당은 현역 지역구 의원인 조승수와 2004년 총선 당시 지역구에서 석패한 노회찬과 심상정 정도를 합의를 통해 할당받을 수 있을 것이다. (창조한국당은 사정을 잘 몰라서 일단 얘기하지 않았다.) 


만약 민주당에게 "확실한 지역구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양보없이, 군소야당 후보도 민주당만큼 한나라당 후보에 잘 맞서 싸울 수 있는 지역구 20곳 미만을 양보하며, 대신 다른 지역구와 대선에선 민주당이 대표주자로 나간다."는 사안을 주지시킨다고 치자. 그리고 이것을 받아들이는 게 2012년 의회에서 '반한나라당' 진영의 의석 숫자를 늘리고 대선에서 선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게 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 협상은 군소정당들이 선거연합과 관련해서 민주당에게 제시할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협상안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제안은 과거 지방선거 때의 5+4연대나 위에 나온 가)와 나)의 방책처럼 이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5+4연대에서 그랬듯 합의가 정 되지 않는 곳에서만 경선을 실시한다고 본다면, 이 방책은 노력 여하에 따라 가장 야권연대 판을 성립시키기 쉬운 방책이다. 협상과정에서 대선출마 가능성이 배제되는 것에 대한 진보진영의 불만이 있겠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 선거연합을 통해 반 한나라당 진영이 의회 다수를 확보할 경우 총선 비례대표제 확대나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등의 제도도입을 약속하는 수준에서 타협이 가능하다. 이 경우 협상안은 적어도 당면 선거에 있어서는 민주당에게도 군소정당들에게도 최소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큰 비용을 치르지 않고 반 한나라당 세력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현실적인 수준에서 볼 때, 군소정당들끼리는 총선/대선 정국에서 이해관계가 충돌할 일이 별로 없다. 그 때문에 군소정당들 간의 통합은 그 자체로 야권연대의 성사가능성을 현저하게 높이지 않는다. 혹시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이 버티고 있는 울산 북구에 대해 무언가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에 하나 유시민이 (이미 그는 그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과거 자신이 국회의원을 했고 그후 심상정이 도전했던 지역구에 출마하려 할지도 모른다. 이 정도가 그들끼리 부딪힐 수 있는 가능성이고, 문제가 된다면 이해당사자 양당의 협상을 통해 합의할 수 있는 정도의 충돌지점이다. 


문제는 민주당과 군소정당들 간의 주고 받음에 있다. 적어도 군소정당들이 민주당에게 무언가를 주는 형태를 만들기 위해선, 위에서 말했듯 대선후보에 대해선 한나라당에 맞서는 그 1명의 후보가 민주당이 되도록 하겠다고 보장해주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다시 참여당의 문제가 돌출된다. 왜냐하면 국민참여당 대표 유시민은 군소정당 정치인들 중에서 유일하게 '야권단일후보'를 노릴 수 있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해당사자 각 정당의 외곽에 있는 지식인들/정치평론가들/시민사회가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유시민의 대권도전을 무조건 포기시키라는 것이 아니다. 물론 지금 이 순간 그것은, 2012년의 선거연대의 성사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진보신당-민주노동당 합당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일 수 있지만, 개인의 정치적 선택을 무조건 깔아뭉개라는 것이 이 글의 취지는 아니다.


나는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의 기억 때문에 유시민이란 정치인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가 야권단일후보가 되는 것에 유감은 없다. 나는 손학규든 유시민이든 한나라당 후보보다는 나은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유시민지지자들이 믿는 것처럼, 그가 다른 민주당 후보보다 진보적이라는 견해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그렇게 믿을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권후보로 손학규가 되든 유시민이 되든 신경쓰지 않는다.(단 정동영은 좀 모지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동영이 아닌 다른 사람이 후보가 됐으면 좋겠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유시민의 현재의 포지션은 그의 성향과는 상관없이 진보정당 운동의 미래에 암운을 드리우는 것이긴 하다. 나는 대략 5년 전부터 "유시민은 스스로 대통령될 깜냥은 안 되지만 진보정당을 망하게 할 깜냥은 충분히 된다. 그게 걱정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었는데 요즘 유시민은 그걸 앞장서서 실천하고 있는 듯하고 이젠 왕년에 그 짓거리에 반대하던 몇몇 이들마저 그 짓을 거들고 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지적하려는 것은 유시민의 그 얄미운 포지션의 문제도 아니다. 나는 다만 위에서 언급한 선거연합 디자인에 '유시민' 변수가 적용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말하고, 유시민의 선택이 야권연대를 성사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주지시키고자 한다.


위의 디자인에 '유시민' 변수를 적용시킬 때, 우리는 유시민에게 적어도 양자택일을 요구할 수 있다. 하나는 유시민이 대권에 뜻을 품고 민주당 후보와 경쟁하는 대신 참여당에게 주어질 수 있는 지역구의 몫을 포기하는 것이다. 가장 깔끔한 것은 유시민과 참여당이 민주당에 다시 들어가 경선룰에 합의하는 것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민주당-참여당 간에 경선룰을 합의하는 상황은 자연스럽다.


다른 하나는 유시민이 참여당의 존립에 큰 의미를 두고 그것의 성장이 한국 정치에 기여하는 바라고 믿는다면, 대선에 나올 수 있는 자산을 민주당과의 협상력으로 바꿔 그것을 참여당의 지역구 역량으로 '적립'하는 것이다. 유시민이 이를 선택할 경우 유권자들과 시민사회는 여전히 위에서 내가 제시했던 선거연합 합의 모델을 각 정파에게 압력으로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참여당이 김해에서 한 석을 가져가겠다고 노력하는 것에 대해, 민주당은 '대선에 유시민이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지역구에도 양보해달라는 말이냐.'라는 심사를 품고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말한 것이 정론이라 하더라도 유시민이 벌써부터 확실한 결단을 내리는 것은 (민주당에 비해 약자인) 그의 패를 다 까버리는 것이고, 다른 이들이 강권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2012년 총선-대선 국면에서 유시민의 선택이 선거연합에 중요한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고, 설령 유시민이 미리 확답을 할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사실은 계속해서 지적이 되어야 한다. 


가령 유시민에게 "대선이나 총선 둘 중 하나만 선택하여 노력을 집중하여 경주하라."고 호통치는 정치평론가 한 명 없는데 그보다 훨씬 덜 중요한 변수인 진보정당들 간 통합에 대해선 다들 호통치고 훈수두는 현실은 대단히 미심쩍다. 진보정당들 간 통합이 실제로 야권연대의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 아니라, 현 시점에서 가장 안전하게 비판할 수 있는 쪽이 진보정당들이기 때문에 이런 쏠림 현상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또는 결국 양자택일을 내려야 할 유시민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선택의 기회(혹은 둘 다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훨씬 복잡한 경선을 통한 결정을 지지하거나, 앞뒤 가릴 것 없이 진보정당들은 민주당과 협상을 하기 위해 참여당까지 끼워서 통합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이유야 어찌되었든 선거연합의 가능성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는 정치평론은 결국, "선거연합을 위해 각 주체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유시민 대선후보를 위해 뒤틀린 특정한 선거연합의 시나리오를 바탕에 깔고 민주당 및 진보정당 들의 행동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유시민 지지자들이야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에게 '좌우협공' 당하는 심정이 편할리 없겠지만, 현재 개혁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이 유포하는 담론의 '유시민/참여당 편향성'을 고려할 때 이 질문은 반드시 던져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진보정당 통합론이나 3당합당론을 강하게 주장하는 분들은 정말로 야권연대나 선거연합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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