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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가독성과 글쟁이의 밥그릇

조회 수 6195 추천 수 0 2010.12.16 03:06:54

2010/12/11 - [문화/기록물] - 라캉 정신분석과 비평의 문제?

루시앨 님 : 보다보다 못해서 개입.


2010/12/15 - [문화/기록물] - 라캉주의 정치평론에 대한 아이추판다 님과의 덧글 교환

...이어지는 글이긴 한데 위에 것들 굳이 안 읽어도 된다.


의학적인 측면에서 정신분석 담론의 유용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는 있다 해도, 정신분석 담론으로 사회비평을 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것은 논리적/실천적으로 무리한 일이라는 점까지는 대충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대개의 까가 그렇듯 택까들도 "이택광이 뭘 하니까" 까는게 아니라 "이택광이니까" 까고 있는 상황이란 것. 까들은 자기들끼리 그 대상을 까는 이유가 제각각 다르고 심지어는 양립할 수 없을 지라도 까는 그 대상을 위해선 기꺼이 협력하는 경향이 있다. 하긴 왕년의 조선일보 독자마당에선 "김대중은 신자유주의자다."와 "김대중은 빨갱이다."라는 진술이 공존했었다.


여튼 그들의 '유희'에까지 내가 간섭할 일은 아니나, 대략 남은 논점은 두 가지 정도인 것 같다. 하나는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라면 그 정도로 어려워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라는 글쓰기의 가독성에 대한 항의고, "야 이놈아 소피스트처럼 그렇게 교묘하게 네들 권리를 옹호하는 건 결국 비평가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 아니냐?"라는 글쟁이의 밥그릇에 대한 불만이 있다. 이 두 가지 지점에 대해 간략하게 답해본다.


글쓰기의 가독성에 대한 논의는 대충 1)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글은 쉬워야 한다. 2) 블로그는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다. 3) 블로그 글은 쉬워야 한다. 로 이어져야 한다. 좌파담론은 사회변혁을 목적으로 하므로 쉬워야 한다는 추가적인 요구도 있다. 그런데 나는 블로고스피어에서 이택광의 글보다 '안 읽히는' 글들을 얼마든지 발견한다. 가령 경제학이나 법학 전공한 양반들은 학문적 특성에 의해 어휘가 고정되고 문체가 딱딱해져 맨날 글만 쳐다보며 사는 나같은 사람이 보기에도 안 읽히는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내가 무식해서 그런 것이기는 하다.)


우리는 이런 글들이 블로고스피어에 올라오는 것을 '금지'해야 할까. 황당한 소리다. 그런데 어째서 이택광에 대해서만은 그런 얘기가 성립하는 걸까. 차라리 가독성을 가지고 시비를 걸거면 경향신문 원고에다 대고 시비를 거는게 더 말이 되겠다.


난 대중이 '쉬운 글'을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중은 뭔가 전문적이고 어려운 어휘를 마구 섞어쓰는 '우리편 전문가'가 내 편을 들어주길 바란다. 미네르바 글이 그런 것 아니었던가. 그의 비평 자체는 '뺑끼'임이 밝혀졌지만 말이다. 우리는 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ㅇㅁㅂ ㄳㄲ'라든가 'ㄱㄷㅈ ㄳㄲ'와 같은 감성을 포기할 생각이 없고, 이 감성을 어떤 전문가가 지지해주길 바라는 것이 아닌가? 쉽게 글을 쓰는 사람은 무시해도 좋은 얼간이일 뿐이다. 가령 살인적으로 친절한 글쓰기와 무한에 가까운 소통을 서비스로 제공하는 이 블로그가 한 사례인데, 내가 친절하게 대꾸하면 대꾸할수록 덧글러들은 술취한 한국 남성이 술집 아가씨 대하듯 나를 대할 뿐이다.


좌파 담론이 특히나 어렵다는 얘기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정치분야 한정해서 얘기한다면, 내가 보기에 가장 글을 간명하고 설득력있게 쓰는 두 집단이 조선일보와 좌파들이다. 그들말고는 대중을 선동(좋게 말해서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이들도 없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이 글쓰기를 통해 한국사회를 통치한다는 야무진 판타지를 실제로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고, 좌파들은 가진 자원이 없어서 글쓰기를 통해서라도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다고 애써 믿어야만 한다. 나머지 정파들은 그냥 자신의 기득권을 침해받기 전에는 딱히 '쉬운 글'을 써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386들이 대학을 정치적 해방구로 삼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레포트를 교환하며 '사상투쟁'을 하던 전통만을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으나, 90년대 이후 진보담론은 '무지막지하게 쉬운 글쓰기'를 통해 발전되고 전개되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사회과학도서는 안 보고 인물과 사상 따위나 본다."고 학자들이 빈정대던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이 대중에게 히트를 치자, 강준만보다 더 왼쪽에 있었던 이들이 강준만큼이나 쉬운 글쓰기로 소위 '진보담론'의 시민권을 획득했다. 우리가 익히 아는 홍세화, 진중권, 박노자, 김규항 등이 그들이다. 반면 한국에서 정신분석 담론의 영향력은 2003년 경부터 슬라보예 지젝의 번역서가 많이 팔리면서 커지게 되었는데, 지젝을 소비한 것은 아까 말한 지식인들이 아니라 대중들이었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사회주의 붕괴 이후에도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이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얼마전 작고하신 리영희 선생님이 90년대에 던진 테제이다.)라는 상식적인 언명 이상의 '거대 이론'을 욕망했다고 볼 수 있겠는데, 그 욕망에 한국의 학자나 논객이 아니라 지젝이 대안으로 제시된 셈이다. 이택광은 우연히 한국 사회가 그 유행에 진입했을 때 영국 땅에서 문화연구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귀국할 수 있었던 행운아일 뿐이다. 지젝의 번역자들의 정치성향이 '좌익'이란 것은 확인하지 않아도 불문가지겠지만, 이들이 한국의 정치지형도에서 열심히 좌파적 발언을 하고 있냐 하면 그건 아니다. 이택광은 '무능하고 어려운 좌파담론의 대표주자'로 호출될 존재이긴커녕 이 판에서 이질적인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진중권의 학적 능력의 부실함(?)을 성토하던 사람들이 이택광 글의 미진한 가독성(?)을 문제삼을 때는 솔직히 '뭐 어쩌라고.'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이택광 글이 정말로 가독성이 부족했다면 악플도 달리지 않고 까도 창궐하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내가 아는, 가독성이 낮은 글을 쓰는 사람들의 블로그는 대개 덧글없이 휑하다. 이택광의 글에 악플이 달리는 이유는 적어도 그의 글에 어떤 수준의 가독성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가 내가 관심있는 대상을 다루고 있어서 들춰보았고, 8-9할은 알아들을 수 있는데 잘 모르겠는 이론용어 때문에 1-2할을 알아먹을 수가 없으니 신경질이 나는 것이다. 8-9할을 알아들을 수 있는 글을 쓰다는 건 이택광의 '한국어 능력'과 관련이 있다. 그 정도 한국어 능력이 없음이 명백해 보이는 분들이 그의 글의 가독성을 문제삼을 때 성질이 나는 이유도 그래서다. 쉬운 글을 읽고 싶다면 여전히 홍세화나 진중권이나 박노자나 김규항의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들에 비하면 듣보잡이지만 나같은 사람의 글도 있다. 굳이 문체가 있는 사람의 글을 붙들고 그의 글을 거세하려고 발광들을 하는 모습을 보면 꼴같잖지 않겠나.


좌파니까 쉬워야 한다고 말하는데 사실 뭘 바꾸자는 이들의 논의는 그냥 내비두자는 사람의 논의보다 복잡할 수밖에 없다. 생각할 것들이 많고 논의가 복잡한데 쉽게 쓰려면 글 길이가 무한정 길어진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길게 쓰게 되는 편인데, 그럴 때 당신들은 뭐라고 했나.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냐고 제발 요약 좀 해달라고 지랄을 하지 않던가. 요약을 하면 당연히 이해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렇게 요약된 글에 다시 가독성을 시비걸고 있으면 이제는 뭘 어쩌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독자들이 긴 글을 멀리하고 신문 지면의 길이가 짧아지는 현실은 다시 한번 이론가들이 '풀어쓴 글'을 쓰는 걸 막는 원인이 된다. 140자 이내의 글만 보고 싶다면 트위터만 해야지.


글쟁이의 밥그릇에 관한 얘기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럼 글쓰는 놈은 밥도 먹지 말라는 것인지. 일을 안 해도 밥을 먹여준다고 해야 할 판에. 더구나 적어도 냉소를 하려면 역지사지를 해보는 쪽이 좋다. "왜 사람들은 인문학자들 이름은 알면서 과학자 이름은 모를까." // "왜 과학자는 논객 대우를 안해주는 걸까." // "콰인이 더 유명한지 라캉이 더 유명한지 내기할까?"// "너는 사조방을 안 배운 허접인데도 매체에 일주일에 한번씩 나오더라?" // 와 같은 진술을 분석하는데는 정신분석학이 아니라 진화심리학이면 충분하다. 진화심리학적 접근으로 저 진술들이 어떻게 '해체'될 수 있는지는 굳이 내 입으로 설명하지 않겠다.


인문학 담론의 밥그릇에 관한 얘기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치면 '통섭'도 밥그릇 투쟁의 문제로 귀결해서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친구랑 하던 농담을 옮기자면, 의학(+약학)과 공학(물리학과 화학이 포함된)으로 관심과 투자가 쏠리는 세계에서 생물학/심리학이 할 짓이 없다 보니 인문학한테나 집적대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비유에서 생물학/심리학이 신생 제국주의 일본쯤 된다면, 인문학은 막 개항한 조선 정도가 될까. '통섭'으로 인문학이라도 먹지 않으면 의학의 식민지로 전락할 거라는 공포가 있을 거다. 그렇게 먹은 다음에(먹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의학의 침탈에 대해서는 지금 인문학이 과학에 대고 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로 자기 영역을 방어하려고 들겠지. 안 봐도 비디오다. 동물 행동학 등이 참 매력적인 분야임은 틀림없지만, 그렇게 쳐다보고 만든 이론으로 할 수 있는게 인문학에 시비나 거는 것 밖에 없냐고 냉소할 법도 하다. 이런 내 얘기가 잘 모르는 방외인의 섣부른 넘겨짚기라는 비판은 매우 타당하지만, '인문학계의 밥그릇 투쟁'이란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라면 못할 얘기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정신분석 방법론으로 비평하는 놈도 밥먹을 권리가 있느냐는 말은 그렇게 중요하지도 래디컬하지도 않은 것 같다. 차라리 사회비평이나 사회개혁이란 것이 도대체 쓸모가 있는 것이냐라는 근원적인 회의가 더 논의해볼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좌파비평가의) 글쓰기의 가독성과 글쟁이의 밥그릇 문제도 이 중차대한 문제에 딸려 있는 것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문제를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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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나는 맨날 이렇게 내가 하는 일이 무의미할 거라는 가정 속에서 살아가는데 무슨 밥그릇과 기득권을 지키려고 한다는 것인지. 악플달 시간에 지 글이나 쓰지. 여튼 별 꼴같잖은 종자들이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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