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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음모론 시대'의 이면

조회 수 4015 추천 수 0 2011.03.09 12:19:45

*오해가 있어서 덧붙이는데 여기서 제가 '음모론'이라 밝힌 것은 '조선일보 사주 가문의 누구가 장자연씨에게 성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이것을 은폐한다고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좀 넓게 보면 '리스트'가 진실임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이를 막고 있는 것은 어떠어떠한 권력의 개입 때문이라는 생각까지를 포함합니다.) 그 이상의 문제에 대해, 가령 2009년 당시 공개된 장자연씨의 주장이나 이번에 발견된 편지의 진위 여부에 대해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저는 성접대 사건이 있었을 거라고 믿는 편이며 이번에 나온 편지의 진위에 대해선 알 수 없지만 꽤 많은 언론들의 보도가 '장자연씨 편지의 복사본에 따르면'이라고 보도함으로써 일종의 논점선취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의 본문에선 정황적 판단이란 것을 거의 넣지 않았습니다.  



음모론의 번성이 인터넷이란 매체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그건 음모론의 '본질'이 아니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매체는 본질이 아니라도 영향을 미친다. 비록 독재자의 '심성의 본질'이 수천 년전이나 지금이나 다를바가 없더라도, 총이 발명된 이후 시대의 독재자가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나 그 권력 뒤에 숨어 있는 폭력의 양태는 이전과 전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쟈스민 혁명'이 페이스북을 통해 생겼다는 기술 만능주의적 자뻑과 (그에 대항하는) 아랍 민중의 역량을 무시하느냐는 볼멘소리를 넘어서려면 이런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게 다가갈 때에 혁명은 인터넷의 공로이나 음모론은 정치권의 책임이란 식의 '넷부심'의 부적절함도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SBS의 '장자연 자필 편지' 보도 이후의 여론의 향방도 인터넷이란 매체의 속성과 따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좋은 쪽으로도 그렇고 나쁜 쪽으로도 그렇다. 문제는 어느 사회에서나 창궐하기 마련인 '음모론'과 '검증되지 않은 뜬소문'이 공론의 영역을 집어삼킬 지경에 이르렀을 때다. 이런 경우엔 인터넷이란 매체(...때문에 사태가 더 쉽게 이런 방향으로 오게 되었다는 점에 동의하더라도)의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가 이 나라의 여론 생태계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이 '음모론'과 '검증되지 않은 뜬소문'의 피해당사자에 해당하는 조선일보가 이 지점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오늘자 사설에서 "경찰은 장씨를 죽음으로 내몬 세력과 인물이 누구이며, 그들과 유착해 그들의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성적 접대를 받은 부도덕한 인물들이 과연 누구누구인가를 가려내 죄(罪)를 묻지도 못했고, 이 사건을 이용한 일부 정치 세력의 악의적 공격에 의해 부당하게 명예를 훼손당한 사람들은 또 누구인가를 확실하게 가려내 그 누명을 벗겨주지도 못했"기 때문에 "일부 언론들까지도 뻔히 진실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며 거기 편승(便乘)해 이득을 노리는 탈선행위에 나서 사회를 더 혼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
조선일보 사설 : 장자연 사건 뒤에 숨은 어둠의 세력 밝혀내라 )


우리는 이 타당한 주장을 부정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인터넷 세상의 '공론 아닌 공론'이 공론을 대체해 버리는 현상에 대한 조선일보의 분석은 이해관계를 빼놓고 생각한다면 누구나 수긍할만큼 적절하다. (이에 대한 필자의 견해로는
2010/03/13 - [문화/용어] - [경향신문] 사이버 민중주의 와 2010/04/17 - [정치/성토] - [경향신문] 음모론 권하는 사회 을 참조할 것.) 설령 조선일보 사주가문의 행태에 의혹을 가진 사람이라도 지금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저버릴 만큼 결정적인 증거가 나온 시점이라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조선일보가 결백하고 이 사설이 진심이라 가정하더라도, 경찰이 조선일보가 원하는 그 조치를 취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사실에 있다. 이를테면 (별로 그렇게 믿지는 않지만) 조선일보가 결백한 만큼 경찰 역시 결백하여 뭐라도 하고 싶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사건의 '해결' 앞에 놓인 난관에 대해서는 아시아 투데이의 이 기사를 참조할 것.) 한편으로는 한 여성 연예인의 자살 사건 뒤에 숨어 있는 '어둠의 세력'들의 면면이 조선일보 사주 가문을 제끼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화려하여, '고작 조선일보'를 위해 그들 모두를 파헤치는 일이 엄두가 안 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중 어느 쪽이든 경찰 조사가 다시 진행되어 '거물'을 치지 않을 경우 조선일보를 싫어하는 대중들은 "조선일보가 어둠의 흑막이라서 경찰이 파헤치지 못한다."는 버전의 음모론을 가장 깊게 신뢰할 것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재수사가 진행되어 '거물'이 드러난다 하더라도, 꽤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 사주 가문이 진짜로 이 일과 연관이 없었구나라고 여길 때 어떤 '매니아'들은 조선일보 사주가문이 '거물'들을 제물로 내놓을 수 있는 위대한 베엘제붑임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 사실 이건 입증할 수도 반증할 수도 없는 얘기다.)


물론 이 음모론은 이 다소 복잡한 '현실정치'에 대한 매우 단순한 가설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설령 조선일보와 경찰이 둘 다 뒤가 구린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이 사실을 공유해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영화 <부당거래>에서도 (약간은 단순하게) 제시되었듯 권력기관들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상호견제의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도 단순하게 쓴 것이고 실제로는 내부에서도 정보가 균등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변수는 훨씬 더 많아진다.) 대개의 음모론이 그렇듯 그게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라도, 사태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설득력있는 가설이라 보긴 어렵다. 아마도 진실은 훨씬 더 애매모호하고 지저분하며 깜깜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론의 차원에서 볼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주장은 조선일보 사설의 바로 그 주장을 되풀이 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조선일보와 인터넷이 한마음으로 이런 주장을 되풀이한다 하더라도, 경찰수사에 뒤바뀌는 것이 크게 없을 것이라는 점을 (왠일인지 이미) 알고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것을 합리적으로 행사하지 않을 때 '음모론'이 사실 여하와 상관없이 그것들을 삼켜버리려는 욕망에 들끓게 된다는 점은 '자업자득'이라 말할 여지도 있다. 조선일보와 경찰의 해명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여론의 현실은 사회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경우에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이 사건의 사실 여부는 판정내릴 수 없지만, 조선일보와 경찰이 그간 신뢰를 잃은 것은 그들 자신의 문제 때문이었기 때문에 이 상황을 방치해야 하는가? 수많은 쿠데타나 혁명이 결과적으로 뜬소문으로 판명난 거짓 선동에 연유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즐겁게 맞이해야 하는가? 조선일보엔 이미 '죄'가 많기 때문에 이것이 확실한 '죄'가 아니라도 우리는 단죄할 수 있어야 하는가? 혹은 내가 그러지 않더라도 그러는 사람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안 되는가? 이것은 하나의 윤리적 문제다. 사실 '헬게이트'의 문을 열 것이냐란 문제에 대한 책임은 대개 개인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이 상황을 방관하더라도 조선일보가 무너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 엄청난 사건의 전조에서, 우리는 대부분 끌려들어가 그 문을 억지로 열게 되거나, 열고 싶어 발광을 한다 하더라도 남들이 따라오지 않아서 못 열 뿐이다. 그래도 생각은 해볼 수 있다. 정당한가?


이를테면 "조선일보와 경찰은 기득권이므로 이 선동은 정당하다."란 견해는 충무로와 평론가의 '선빵'이 <디 워> 사태 누리꾼들의 난동에 책임이 있다는 견해와는 얼만큼 다른가? 조선일보와 경찰은 실제로 기득권이고 충무로와 평론가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고 말하면 되는가? 기득권이란 것도 상대적인 개념이 아닌가? 사건의 팩트 확인과 별개의 심리적 현실을 도입하면, 그것이 뇌내망상과는 어떤 지점에서 차이를 지니게 되는 것인가?


물론 질문은 근본적으로 던지더라도 언제나 상대성의 차이라는 것은 있다. 나만 해도 조선일보와 경찰의 기득권을 말하는 이들을 충무로와 평론가의 기득권을 말하는 이들과는 다르게 대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내리지 못했기에, 그리고 나는 '역사의 간교한 지혜' 따위를 주재할 수 없는 일개 상식인에 불과하기에, 이 경우에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렇다. "나는 '장자연 리스트'의 공개를 주장하는 사람들보다는 조선일보의 사설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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