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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눈치 챈 방문자도 있겠지만 난 요즘 블로그질에 흥미가 떨어졌다. 매체 기고나 단행본 작업과 다른 블로그질의 매력이라면 기존의 견해를 풍성하게 해주는 실시간 코멘트일 텐데, 코멘트할 만한 의견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의견이 마음에 안 든다고 코멘트하기도 민망할 만큼 어긋나 있다.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의견에 코멘트하려면 대단히 정교하게 얘기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복잡한 얘기는 차라리 매체 기고나 단행본 작업을 위해 남겨두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이다.
 

최근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필자는 경향신문의 이대근 기자다. 진보정당 관련해서 정치 얘기를 주로 하시는데 내 생각과 거의 100% 일치한다. 그런데 이대근의 글을 볼 때 느끼는 시원함과 답답함은 ‘이대근의 견해 정도가 진보정당 지지자의 표준이 되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은’ 현실 때문이다. 답답하긴 하지만 이대근의 글에 동의해줄 사람은 꽤 있다. 이대근이 말하기 전에 그런 생각을 말해줄 사람도 어느 정도 있다.


하지만 지식인-대중 문제, 즉 사회의 의사소통 문제와 관련한, 특히 '인터넷 문화'라는 시대의 특수한 환경 속에서 그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진보/개혁 세력은 인터넷에 대한 장밋빛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조중동은 그것의 위험성과 규제에 대해서만 말한다. 변희재는 아마도 유일하게 그 두 파당을 모두 거쳐본 사람이겠지만 어느 쪽에 있을 때나 영양가가 없었다.


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정치인의 행동을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이지만, 이 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은 시민들의 행동을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이다. 이 시대에 남이 자신의 삶을 객관화시키거나 메타화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선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니 한겨레신문에 오늘 올라온 강준만의 칼럼을 보고 내가 얼마나 속이 시원했겠는가? 과장 좀 보태면 백만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저 언론학자에게 경의를 표하며 칼럼의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코멘트하기로 한다.


그간 많은 지식인들이 인터넷에 의한 ‘자기검열’ 효과를 지적해 왔다. 인터넷에서 험한 꼴을 당하는 게 두렵거나 더럽다고 생각해 논란의 소지가 있는 주장을 아예 피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지식인이 그렇게 심약해서야 쓰겠느냐고 혀를 끌끌 찰 사람들도 있을 게다. 아닌 게 아니라 인터넷에서 인신공격을 당하면 오히려 더 신바람을 내면서 자기 소신을 공격적으로 밝히는 지식인도 많다. 그 패기는 존경할 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강심장 지식인’들만이 큰소리를 내는 세상이 돼 버렸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이 우리의 공공 커뮤니케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강심장 지식인’들은 대부분 강한 이념적·당파적 색깔을 드러내기 때문에 각자 막강한 지지세력을 거느리고 있다. 적으로 간주되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으면 우군의 지지가 더 뜨거워진다. 아무리 험한 꼴을 당하더라도 그런 ‘패거리 싸움’의 원리상 속된 말로 밑질 게 없는 것이다. ‘강심장’과 자기성찰은 원초적으로 궁합이 맞질 않는다. 적을 매섭게 공격할 때에 지지자들의 피가 끓는 것이지, 자기성찰은 오히려 지지자들을 내쫓는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강심장 지식인'의 대표주자는 두 번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진중권'이다. 나는 그동안 '진중권'을 '지식인의 표준'으로 삼는 자세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줄기차게 지적해 왔다. 진중권처럼 대중에게 바로 와닿을 말로 자신의 견해를 풀어내면서 비판과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는 물론 소중한 것이지만, 모든 지식인이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진중권'에게 표준을 맞춰놓고 "니들이 말을 할 때 그렇게 욕을 먹는 것이 인터넷의 룰이며 평등주의며 민중주의이며 민주주의며 하여간 우리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것이 부당한 기득권을 타파하는 자세이며 역사의 진보이며 킹왕짱인데 우리보고 함부로 욕하지 말라 어쩌구 저쩌구 할 생각말고 너희가 이 표준에 따르거나 아니면 인터넷으로 나올 생각 따위 하지 말아 색히들아~"라고 말하는 태도는 대다수 지식인들을 의사소통의 현장에서 쫓아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진중권이란 지식인의 활동의 유의미함과 별개로 진중권에 대한 찬양의 어떤 방식은 위험한 구석이 있다. 내가 지금 '지식인'들 욕 먹지 말라고, 그 양반들 똥구멍 핥아주려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인터넷의 '자유'를 말하는 이들이 인터넷의 '가능성'을 자신들이 만들어낸 '룰' 안에 속박시키고 진입장벽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시민들 자신의 역량을 약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다. 자기들이 지식인들을 쫓아내는 행동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못하고 다 쫓아낸 다음에 "지식인 어디 갔어?! 한국 사회에 쓸 놈 하나 없네?? 어라 미네르바가 역시 짱이네? 하악하악!!" 해 가지고서는 국가를 특수계층의 이윤추구를 보장해주는 핫바지로 아는 '기득권 세력'에게서 권력을 뺏어올 가망이 없다는 거다.


그러고보니 나같은 사람은 자기편을 비판하면서도 강심장인 경우에 속하기는 하는데, 그건 내가 '지식인'도 아니고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이란 건 언제든지 대중에게 욕을 먹어도 가드 올리고 맞고만 있어야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진중권을 제외하고.) 영향력도 없어서 이해관계도 없고 욕을 먹어도 고작(?) 몇 백명에게 먹고 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평론하는 인터넷 글쟁이란 게 인기를 끌어봤자 돈도 안 나오는데 인기 끌면 뭐해, 라는 생각도 물론 있다. 하기사 '어차피 돈도 안 나오는데 뭐하러 욕 먹어?'라고 생각할 이들이 훨씬 더 많기는 하겠지만서도.


천하의 쓸데없는 종자인 변희재는 진중권 욕을 해도 강준만처럼 쓸모있는 방법으로 욕할 줄을 모른다. 그래도 진중권은 지식인들 일반이 자기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잘 안다. 그래서 <디 워> 사태 때 "평론가들이 욕먹는 걸 보고 '꼭지가 돌아'서 내가 나섰다."고 선언한 것이다. 심약한 지식인/글쟁이들을 다구리치는 행태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이때 변희재는 말을 하려면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며 정말로 평론가가 비판이 무서워 말을 하지 못한다면 '절필'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게 도대체 진중권을 욕하려는 얘긴지 띄우려는 얘긴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글쟁이하려면 진중권처럼 해야 하나? 진중권의 '축출'을 욕망한다는 변희재는 역설적으로 진중권을 한국 사회의 유일한 지식인으로 만들고 있는 거다. 얼마나 한심한가.


나 역시 강한 당파성을 갖고 있을 때엔 ‘강심장’에 속했지만, 당파성의 한계와 추한 면을 본 뒤로 자기성찰을 부르짖으면서 ‘심약파’로 변했다. 중간적 입장을 뜨겁게 지지해줄 사람들도 없으니 욕먹어 가면서까지 소신을 피력할 동기부여도 안 된다. 그래서 가슴속 깊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꾹 참는다. 어느덧 “38선 혼자 막느냐”는 우스갯소리가 내 좌우명이 되고 말았다. 모두 다 미쳐 돌아갈 때엔 침묵하는 게 최상이라고 믿게 되었다.

지금 한국의 공공 커뮤니케이션은 바로 이 함정에 빠져 있다. 시장원리상 자기성찰이 가능하지 않게끔 돼 있는 것이다. 신문들도 마찬가지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모두 다 ‘강심장 신문’들이다. 상대편을 공격하는 데에만 모든 정열을 쏟고 있을 뿐이다. 아니 지금 이명박 정권과 그 패거리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데, 그런 양비론을 펴는가? 분노할 독자들이 적지 않으리라.


이 얘기도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강준만에게도 할 말이 있다. 강준만은 이 칼럼 말미에서 '자기성찰'을 주문한다. 옳은 말인데, 강준만이 요구하는 사람들 만큼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강준만도 자신의 왕년의 행동을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이 '당파성'과 '강심장'으로 양분된 건 물론 인터넷이란 매체환경 탓이 크다. 인터넷 시대엔 자기가 원하는 정보만 골라 읽고 그렇기에 더욱 더 '생각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중립지대가 없어지더라는 외국 미디어 비평가들의 훌륭한 얘기가 있다.


근데 문화는 환경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공공 커뮤니케이션'이 이렇게 된 큰 원인에는 강준만이 탄생시키고 내가 참여했던 '안티조선 운동'의 역할이 크다. 물론 편가르기를 극단적으로 심화시킨 건 '노무현 정치운동'이었지만 그 운동의 기본적인 논리는 또 어디서 나왔느냐는 거다. 강준만과 그 지지자들이 '조선일보 편 들래, 아니면 안티조선 편 들래?'라고 질문하고 지식인 사회를 일도양단 했을 때 '한국의 공공 커뮤니케이션'은 십년 후 이 모양 이 꼴이 될 가능성이 컸던 거다.


"그럼 조선일보에 글쓰는 좌파들을 그냥 두고 보고 있어야 했냐?"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운동한 게 잘못 되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안티조선 운동은 해야 할 일을 했다. 문제는 당시에 강준만이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강준만 본인의 실명비판의 수위를 포함해서 구체적인 운동의 방식은 미묘하게 다를 수 있지 않았느냐는 거다. 특히 양자택일을 거부했던 '중간파 지식인'들에 대한 대응에서 말이다.


강준만 본인은 훗날 민주당 분당 이후 '노무현 비판자' 대열에 합류하면서, 혹은 침묵하면서, 왕년의 자신의 활동의 '외부효과'에 대한 책무를 다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노빠들 입장에서는 "왕년에 강준만이 말한 대로 실천했을 뿐인데 왜 노무현과 우리를 욕하는가?"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노무현 세력'의 논리를 모두 만들어준 강준만이 노무현 비판의 논리를 세우는 것은 좋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반성의 자세는 왕년의 자신의 민주당-김대중 옹호 논리를 좀 더 세련되게 다듬는 것이 아닐까 한다. '침묵'하는 것도 좋지만 조선일보에 글을 쓰는 변희재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으면 왕년에 조선일보에 글 쓴단 이유만으로 강준만에게 무지막지한 욕을 먹은 좌파들이 불쌍하지 않은가. (물론 나는 변희재가 조선일보에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쓰는 글이 쓰레기 수준의 '뻘글'이 되어 버린 게 훨씬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건 사회적 해악 이전에 변희재 본인이 불쌍하다.)  


그런데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이야길 해보면 영 딴판이다. 지금 이런 식으로 가선 답이 나오질 않는다는 데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왜 개혁·진보세력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참담한 패배를 당했는가? 그것도 이명박과 그 패거리들 때문인가? 이 물음은 아예 제기되지도 않는다.

자기성찰을 좀 하는가 싶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모든 게 뒤집어져 버렸다. 이명박과 그 패거리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만이 유일한 대안이자 비전이 되고 만 것 같은 느낌이다. 서거 직전까지 노 전 대통령과 친노세력이 져야 할 책임과 관련해 날카로운 비판을 퍼붓던 진보신문들마저 아무런 설명이나 해명도 없이 돌변해 노 전 대통령을 미화하면서 그의 정신을 계승하자고 외치는 전위대가 되고 말았다.


역시 동의한다. 이는 이대근 등도 공유하고 있는 (그나마) '일반적인' 생각이니 더 코멘트할 필요가 없겠다.


이명박 정권의 ‘표현의 자유’ 탄압만 무서운 게 아니다. 내가 보기에 지금 개혁·진보세력은 스스로 건 최면과 자기기만에 의해 더 큰 탄압을 받고 있다. 공기업들을 망친 게 이명박 정권인가, 김대중·노무현 정권인가? 언론·학계에 있다가 정·관계로 진출한 개혁·진보 인사 가운데 무엇이 문제였으며 자신의 과오는 무엇이라고 밝히는 사람은 왜 한 명도 없는가? 개혁·진보적인 시민운동이 탄압을 받는다고 외쳐대기 전에 그간 정부와 대기업의 도움으로 편하게 살아온 과거를 반성하면 안 되는가? 나는 <한겨레> 지면에서 이명박 비판과 더불어 이런 의제들을 많이 다루는 걸 보고 싶다.


이 부분이 더 중요하다. 이명박을 악마로 만드는 비평에 대항해서 일부 좌파들은 '노무현=이명박'의 등식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것도 현명한 대응은 아니다. 두 사람에게 상대적 차이가 있다는 하나마나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노무현 시대'의 한계를 '노무현'이란 인물에게로 환원해 버리는 위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노무현은 '노무현 시대'의 한계를 자기 위치에서 성찰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그 결론에 내가 딱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테면 이런 얘기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시민단체에게 지원금을 준 것이 '잘못'이었나? 잘못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민단체에게 지원금을 주었으므로 유착관계였다는 조중동-한나라당 비판은 옳지 않다. 만일 정말 시민단체가 지원금만으로 움직인다면, 이명박 정부도 시민단체에 지원금을 주면 되고 그럼 시민단체가 이명박 정부를 따르게 될 거다. (......그럴리가)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시민단체를 그렇게 '관리'하지 않고 그냥 지원금을 끊는다. 지원금 준다고 따라오는게 아니라는 걸 자기들도 아는 거다. 하지만 그 문제와는 별개로, 시민사회 영역에 대해 국가가 지원을 하는 것이 당파를 뛰어넘은 '의무'라는 '상식'이 한국 사회에 성립이 되지 않았음을 이명박 정부는 보여준다. 한국의 실정이 그렇다면 시민단체는 '국가 지원금'이란 요소를 빼고 사고해야 하지 않을까? 지원금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원금을 주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좀더 세밀하게 비판하지 못한 적은 없었는가? 바로 지금, 지원금이 안 나온다는 이유로 이명박 정부를 '독재'로 규탄하는 성긴 논의에 손쉽게 동의하는 것은 아닌가? 다른 것 제껴두고 민주당 중심의 정권교체가 답이라는 식의 그릇된 결론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명박 '폭정'으로 힘들어진 것은 '민생'인가, 아니면 그 이전에 시민단체 활동가들 자신인가?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적어도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는 참여정부 시절 공기업 광고 수주 등의 혜택을 입었다. 참여정부의 잘못 이었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언론환경의 편향성을 극복하려는 나름의 노력이었을 거다. 하지만 '개혁언론'이 정부 지원없이 운영이 안 될 정도의 물적 환경에 놓여 있다면, 한나라당 집권기에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한나라당을 세밀하게 비판해야 하는데, 당장 자신들이 배가 고프니까 한나라당을 악마화하고 정권을 되찾자고 외치는데 쉽사리 동참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민주당에게 그렇게 관대한 것인가?


모두가 욕하는 변희재가 한참 열을 올렸던 포털 문제 같은 것도 있다. 포털이 뉴스를 독점하는 건 분명히 문제다. 그리고 참여정부가 신문의 영향력 자체를 줄이기 위해 포털의 부당권력을 묵인하고 오히려 포털을 통한 정부 홍보에 힘을 쏟았다는 변희재의 주장은 새길 만한 것이다. 하지만 조중동을 적, 인터넷은 아군으로 상정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를 회피한 탓에 '인터넷 여론'이 상업주의적으로 극심한 쏠림 현상에 시달리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변희재가 얘기한 것이기 때문에 관심을 끄고 묻어두면 장땡인가?   


독자들 역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명박 욕하고 조중동 욕만 한다고 정권교체할 역량이 생기지는 않는다.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같은 신문들이 존립할 수 있는 기반을 어떻게 만들어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들 신문이 안정적으로 대안을 생산해 낼 수 있을 정도의 기반이 있어야 우리는 한나라당 노선을 대체하는 대한민국의 운영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없이 이명박만 욕하면서, 심지어는 노력하자고 하면 오만가지 이유 들어 거부하면서, 정치적으로 깨인 사람인 척 하는 이들이 안타깝다. 그러면서 '국민'이 멍청해서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집권했다고 말한다면, 도대체 그는 그 '국민'의 안에 있는가, 바깥에 있는가?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이상이 강준만의 칼럼에 대한 나의 덧붙임이다. 강준만은 스스로를 '중도파'라 말한다. 그 점에 있어서 나와 그는 다르다. 나는 여하튼 진보정당 지지자다. 가령 나는 우석훈과 변희재를 만나게 하는 강준만의 기획이 '중도소통'과 관련이 있다고 보지 않고, 이라크 파병을 이해하는 것이 중도파의 자세라는 김진석의 '갸우뚱한 균형'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노빠들은 너희 좌파들이 정권을 잡았다면 이라크 파병 안 했겠냐고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서 의석 하나 없는 좌파정당이란 놈들이 지들이 집권세력이나 제1야당쯤 되는 줄 알고 '이라크 파병 어쩔 수 없다.'고 대통령을 이해해 버리면 그건 얼마나 코미디 같은 일인가. 십대 소년이 노인네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일 게다. 하긴 그게 요즘 한국 사회의 '트렌드'이고, 십대의 꿈이 커서 교사되겠다는 것이라면 그런 식의 '어른인 척'이 썩 나쁜 일은 아닐테지만, 커서 시민단체 간사 되겠다는 놈이 그런 식의 얄팍한 쇼부부터 배워서야 쓰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준만이나 나의 주장은 개혁/진보 세력의 평균적 지지자들에게 욕을 먹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강준만이야 내가 중간지대에 있으니 욕먹네, 하고 말겠지만, 나로서는 분통 터질 일이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 나는 '강심장'의 자세로 이 짓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수구세력과 '타협'해서, 멍청한 이들 표현으론 걔들 프레임에 먹혀서,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진정으로 '수구세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의 혁신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스스로를 '이명박 비판'이면 충분하다 믿는 이들보다 '급진적'이라 생각한다. 생기는 것 하나없이 아니꼬운 꼴 다 당하면서도 내가 계속 글을 쓰는 까닭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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