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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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이 뒤늦게 김규항-진중권 논쟁을 비평하여 나도 뒤늦게 한마디 거들 핑계를 찾게 되었다. 내 생각에 이 논쟁이 상이한 반응을 낳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김규항의 진보신당 비평은 올바르되, 김규항의 진중권 비평은 오류이기 때문이다.
김규항의 글은 진보신당의 위기와 정체가 정체성 확립 부재에서 오고 있다고 진단하는데, 맞는 말이다. 그 문제를 사퇴한 심상정에서 뿐만이 아니라 완주한 노회찬에서도 볼 수 있었다고 말하는데,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렇게 깊이 있지는 않은, 평이한 분석이지만, 신문 칼럼의 짧은 분량을 생각할 때 그가 쓸 법한 글이며 필요한 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전체 글의 맥락에서 볼 때 진중권을 언급한 오류는 사소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김규항의 글을 대충 읽었지만 그 오류를 기억해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물론 진중권 본인에게 이는 다른 문제였을 거다.
김규항의 이 글에 담겨 있는 함의는 이렇다. 1) 진중권이 전진을 조롱한 이유는 그가 좌파 사상을 용인하지 못하는 자유주의자이기 때문이다. 2) 진중권과 같은 자유주의자의 활약으로 촛불당원들이 유입되었다. 3) 그렇게 유입된 자유주의 당원들은 진보신당을 자유주의 정당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어떻게 이렇게 읽느냐고 항의할 분들이 있겠지만 이 칼럼 뿐 아니라 그 후 김규항이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면 이렇게 읽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팩트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2) 뿐이고, 1)과 3)은 해석이다.
3)에 대해 먼저 말해보자. 나는 촛불당원이란 범주가 2010년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촛불 당시 유입된 당원들의 정치적 성향은 그후 2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제각기 갈렸다. 그들이 진보신당을 자유주의 정당으로 만들고 싶어할 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이때 '자유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그들 사이에 합의가 없다는 것이다. 유시민을 위해 심상정이 사퇴하는 것을 '자유주의적 행동'이라 부른다면, 변태같은 코미디가 탄생한다. 왜냐하면 이 경우 심상정더러 사퇴하라는 압력이 전체주의적이고 심상정의 완주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자유주의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그 자체로 악이 아니고 진보정당이 추구해야 하는 자유주의도 있는 거고 피해야 하는 자유주의도 있는 건데, 김규항의 '대충 비평'은 이런 섬세한 문제를 그냥 포대기로 덮어 버린다. 덮어 버리면 안 보인다고 생각하는 거다.
또 진보신당이 그들 때문에 자유주의적으로 변했다고 할 때, 더 큰 문제는 그들과 논쟁을 하면서 당의 방향성을 제시할 사회주의자, 혹은 사민주의자 그룹의 역할이 존재했느냐는 것이다. 정말로 슬픈 것은 지난 2년 동안 그런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회찬 심상정 등 당 지도부의 문제일 수도 있고, 전진과 같은 의견그룹의 문제일 수도 있다. 심상정은 후보 사퇴 후 기자회견에서 진보신당의 정체성이 확립된 적이 없다고 논평했다. 정말로 맞는 말이지만 여기에 대해선 심상정도 큰 책임을 지닌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에 대한 책임은 진중권에게도 김규항에게도 내게도 있는 거다. 김규항이 "심상정 뿐만 아니라 노회찬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말한 그 세밀한 시각을 진중권에게도 대입했다면, 틀림없이 "진중권 뿐만 아니라 전진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말해야 했으리라.
1)에 대해선 진중권이 직접 반론을 했다. 진중권의 반론의 핵심은, "내가 전진을 조롱한 건 내가 좌파 사상을 용인하지 못하는 자유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터키 인형 속에 난쟁이를 숨기는 차가운 도시 남자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진중권은 난쟁이를, 혹은 붉은 자지를 안 숨기는 사회주의자를 비판하고 있는데, 그의 비평이 옳은지 그른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진중권 본인의 행동에 대해선 그 자신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을 길이 없다. 그리고 진중권의 벤야민 독해가 잘못 되었다는 이야기는 별도로 할 수 있는 얘기긴 하지만 이 논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김규항은 진중권의 반응에 대해 거듭 진중권이 좌파를 용인하지 못하는 자유주의자라고 주장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고종석과 강준만과도 구별된다는 것이다. 김규항은 진중권이 전진에게 '닭짓'이란 표현을 썼단 이유로 그를 반공주의자라고 부른다. 좀 변태적인 어법이다. 나는 심지어 유시민이 민주노동당을 조롱할 때도 그를 반공주의자로 여기진 않았다. 유시민은 민주노동당이 공산주의라서 박멸해야 한다고 믿은 게 아니라 백년 쯤 후져빠진 정당이라 생각했다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진중권의 '닭짓'이란 어휘 역시 어떤 미학적인 경멸을 담은 말이지, 반공주의를 표현하는 말은 아니다.
아마도 진중권은 전진을 조롱하면서 '김규항 같은' 이란 수사도 사용했었다. 김규항은 본인이 받은 모멸감을 해소하기 위해 '사상의 자유'의 두 가지 측면을 의도적으로 혼동한다. 이를테면 내가 국가보안법에 의해 한총련이 구속되는 것에 반대한다 하더라도, 한총련의 이념을 '닭짓'이라 부를 자유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건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런데 김규항은 NL들이 "우리를 비판하면 모두 국보법 찬성론자!"라고 말하는 바로 그 방식으로, 자신과 전진을 옹호하고자 한다. 전진은 그것을 반갑게 여길까?
진중권이 전진을 비판한 방식에 대해서는, 나도 좀 과했다고 여긴다. 진중권은 전진의 문건이 '운동권 사투리'라는 점을 규탄하여 촛불당원들의 환호를 받았다. (당시엔 촛불당원이란 범주가 가능했다. 지금도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행동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이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 "헐 자유주의자들이 들어와서 우리를 욕하네. 나 삐졌음. 너희들 진보정당 운동할 자격 없음. 너희들 다 나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시 전진 비주류 계파(물론 조직원이 한명 뿐인)의 리더이신 이상한 모자 선생님은 진중권의 전진 규탄에 환호하는 촛불당원들에게 운동권 정파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저 유명한 "전진 떡밥 - 운동권의 역사"를 저술하셨다. 여기서 할 수 있는 말은 "이상한 모자의 대응이 김규항의 그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진중권의 전진에 대한 비평은 전진이란 정파의 이념적 내용에 대한 것이었다기 보다,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이것은 그의 이번 씨네21 기고문과 통한다. 그의 생각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건 전진과 김규항의 자유지만, 진중권의 견해는 가능한 견해다. 그리고 전진의 문건이 새로 유입된 촛불당원들이 못 알아먹도록 쓰여 있다면 그걸 '표준어'로 변환하려는 노력도 분명히 필요하다. 만일 김규항의 진중권 비평을 진중권이란 사회주의자의 잘못된 인성에 대한 비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얘기가 매우 이상해진다. 마치 진보신당이 촛불시위 때 당원을 많이 모은 것이 잘못이라는 얘기인 것처럼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증거는 더 있다. 김규항은 본인이 '자유주의'란 말을 욕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단 점을 밝히기 위해 고종석과 강준만은 용인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언론지상에 마르크스를 읽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고 쓴 고종석이나 (나는 그런 주장때문에 고종석이 반공주의자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97년도에 진보진영 독자 후보를 내지 말라고 주장했다고 훗날 이에 대해 사과한 강준만이 (나는 그런 에피소드 때문에 강준만이 반공주의자라고 주장할 생각도 없다.) 진중권보다 '좌파 사상을 더 용인'하는 사람들일 이유는 뭘까? 결국 김규항 얘기는 자유주의자는 진보정당 바깥에 있으면 좋지만 안에 있으면 나쁘다는 이야기이고 우리가 외연 확장을 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이 무슨 변태적인 비평이란 말인가? 좌파질 한다는 걸 내 정체성에 디스걸면 급토라지는 삐돌이가 된다는 것과 동일시해선 곤란하다.
'자유주의'가 문제라면 지적해야 할 점들은 더 있다. 진보주의자의 관점에서, 어떤 사람이 '자유주의자'란 것이 그 사실 자체로 문제가 될 수는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자유주의적 행동이 진보의 가치를 억누를 때다. 김규항은 진중권이 자신을 '디빠'로 모는게 못내 불만인 모양이다. 물론 김규항은 <디 워> 사태 당시 디빠가 아니었다. 하지만 '타인의 취향'이란 '자유주의적' 어휘로 뒷짐지고 점잖게 디빠에 흥분하는 이들도 비슷하게 문제라고 말한 그 비평은 어떠한가. 그야말로 자유주의적 패악질이 아니었던가. "강준만은 조갑제보다 더 나쁘다."는 김규항식 자유주의 비평에 의한다면, "김규항은 변희재보다 더 나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타인의 취향"이란 글의 기저에 깔려 있는, 김규항 본인이 '민중주의적'이라 굳게 믿을 '저 어려운 글을 쓰는 평론가'들에 대한 적개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김규항은 그것이 사회주의적인 태도, 예수의 행동을 계승하는 태도라고 믿을 거다. 하지만 어떤 좌파들의 자유주의 비평의 시각에서 보면 그건 지식인의 담론적 권위를 해체하여 글쓰기를 시장논리에 종속시키는 '자유주의적 책동'이었다고 비판할 수 있지 않을까. 김규항의 십년 동안의 행동을 엄밀히 분석하자면 사회주의적이라기 보단 자유주의적이었던 거다.
물론 그건 김규항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십년 전 '전투적 자유주의자'란 애매한 이름으로 묶이던 그룹, 강준만, 진중권, 김정란, 김규항 등에게 함께 해당하는 문제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환호하며 성장했는데, 당시 그들의 비평 활동의 결과로 한국 사회의 담론지형이 더 '자유주의적'으로 변했다는 건 사실이다. 좋은 의미에서도 그렇고 나쁜 의미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그 '자유주의적 재배치' 속에서 진중권이나 김규항 등이 출판 시장에서 '진보 지식인'이란 포지션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던 것이 엄연한 사실이며 현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이 자본주의에 포섭되는 거야 당연하다. 그런 것을 무차별적으로 욕해서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진중권처럼 자신이 어떤 허울을 뒤집어 쓰고 있는지는 알아야 할 게 아닌가. 김규항은 자신이 진중권처럼 책을 많이 팔지 못했단 이유로 스스로를 자본주의 바깥에 서 있는 사회주의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지나치게 편의적인 시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김규항이 자유주의적 비평 활동의 결과로 걸치고 있는 '진보 지식인'의 아우라가 부당한 것이라고 시비 걸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김규항의 '대충 자유주의 비평'이 실은 자신이 해왔던 일을 부정하는 것이란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김규항이 '사회주의적 영성'을 지녔다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의 활동은 활동 그 자체로 평가되어야 한다. 만일 그가 그 점을 부정한다면 그는 '품성론자'와 다를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