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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아래 은영전 비평에서 빠진 것 두 가지.

조회 수 3828 추천 수 0 2010.07.29 18:15:17
본문의 흐름상 두 가지 정도를 못 넣었는데 하나는 양 웬리 사상의 오류 문제고 다른 하나는 소설 내 전투 상황 설정의 비현실성 문제다.


1.
전자는 테러리즘에 대한 양 웬리의 견해다. 양 웬리는 "테러리즘이 역사를 건설적으로 바꾼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율리안 민츠는 페잔에서 라인하르트를 마주쳤을 때 권총을 들고 나오지 못했음을 아쉬워 했으나, 양 웬리의 그 말을 떠올리고 오히려 권총을 들고 나오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편한 마음으로 라인하르트의 모습을 관찰한다.


적어도 이 상황에서 율리안에 의해 해석된 양 웬리의 주장은 오류다. 왜냐하면 라인하르트를 죽인다는 행위가 정치적으로 정당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있을 뿐, 그를 테러로 죽이는지 전쟁터에서 죽이는지가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양 웬리는 동맹군이 제국군의 공세를 막아내는 유일한 방법이 후계자가 없는 정복자 라인하르트를 사살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동맹군이 제국군을 막아낸다는 건 자유행성동맹이 민주주의 정체를 수호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민주국가의 시민이며 군인인 양 웬리에게 합당한 행위였다. 한편으로 우주 전체를 생각했을 때, 라인하르트의 죽음이 제국의 수많은 민중들에게 위해가 될 수도 있음을 양 웬리는 우려했다. 라인하르트를 죽인다는 판단이 옳으냐 그르냐는 문제는 이 두 가지 상이한 관점에 의해 판단될 일이지 그 수단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페잔이나 동맹의 민중이 그 당시 라인하르트를 권총으로 암살했다면 그 결행은 전쟁터에서 라인하르트를 사살한 행위와 동일한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양자의 정치적 효과는 동일하다. 하나는 테러이기 때문에 역사가 역행하고 다른 하나는 전쟁이기 때문에 역사가 순행하는 것은 아니다.


윤리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국가'라는 체제를 경유한 폭력인 전쟁은 정당하고 그렇지 못한 테러라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의는 승복하기 어렵다. 양 웬리는 명장과 우둔한 장수 사이엔 도덕적인 우열이 없다고 했다. 명장이 적군을 1백만명 죽일 때 패장은 아군을 1백만명 죽였을 따름이란 것이다. 같은 식으로 논리를 전개해도 테러로 사람을 죽인게 전쟁으로 사람을 죽인 것보다 더 도덕적으로 규탄받을 일이라는 것은 승복할 수 없는 논리다. 테러가 전쟁과 윤리적으로 다른 심급에 놓이게 되는 것은 그 테러가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할 때이다. 하지만 라인하르트는 민간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리안은 권총 테러를 결행하지 않은게 더 나은 선택이었는데, 그 이유는 실용적인 것이다. 권총을 발사해서 군중에게 둘러싸인 정복자를 죽이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확률이 낮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이 실행된 다음 성패와 상관없이 율리안이 죽을 거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전쟁터에서 사람을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해 교육받은 인력이 그렇게 소모되어가는 것은 동맹군의 입장에서 손해다. 따라서 율리안은 거기서 권총테러를 실행하지 않고 동맹으로 복귀하는 쪽이 더 나은 선택이었던 거다. 율리안이 없었더라면 양 웬리는 버밀리언에서 라인하르트를 압도하지 못 했을지도 모른다.


안중근이 위대한 인물인 건 그가 단어 몇 개 바꾸면 대동아 공영권으로 전유될 수 있는 동양 평화론을 설파한 사상가라서가 아니라, 그가 단지 권총만으로 적국 정치인을 사살할 수 있는 짱 좋은 사격실력의 섹시한 테러리스트였기 때문이다. 원래는 그런 식으로 사람 죽이기가 어렵다. 의열단이 나중에 테러를 포기하고 광복군 양성에 들어간 것도 우리 쪽 죽는 사람의 숫자에 비해 파괴의 효율이 신통찮았기 때문이다. 


지구교의 음모나 9.11테러가 추잡하다고 해서 '테러' 일반을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적어도 전쟁이 있을 수도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테러도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민간인을 죽이지 않는 한, 테러가 나쁜 행위라고 말하는 건 전쟁만으로 약소국을 짓밟을 수 있는 강대국의 논리일 가능성이 높다.우리가 그런 논리를 받아들여 김구나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 부르는 것을 반대해야 하는지 나는 의문이다.


뉴라이트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에서도 나는 그런 문제를 느낀다. 뉴라이트가 김구와 안중근을 폄훼하기 위해 테러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이지만, 전후사정 따지지 않고 '테러'가 '나쁜' 말이기 때문에 '좋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여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면 그것도 문제다. 당시 상당수 독립지사들은 스스로의 행위를 거리낌없이 테러라고 지칭했음을 알 필요가 있다. (물론 안중근은 널리 알려졌다시피 본인을 테러리스트라 칭하지 않았다. 자신이 군인의 신분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체포했으므로 전쟁 포로 대우를 해달라고 주장했다.)


2.
다른 하나는 암리츠아 전투의 진행과정의 불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양 웬리의 이젤론 탈취 이후 동맹군은 제국령에 대한 대규모의 공세를 감행하게 되는데, 제국군이 동맹군의 보급선에 무리를 주는 전략을 사용한 후 군데군데 측면에서 병력을 쌈싸먹어서 패퇴하고 암리츠아에 집결하여 다시 싸우지만 또 다시 발린다. 동맹군이 모든 자원과 역량을 낭비하는 이른바 암리츠아 전투다.


그런데 당시 제국은 동맹군의 보급에 무리를 주기 위해 동맹이 침공하는 성계의 농민들의 식량을 강탈해서 갔다고 묘사된다. '해방군'을 자처하는 동맹군은 그 민중들을 먹이기 위해 보급물자를 허비해야 했고 그 덕에 보급선이 길어지고 물자 보급이 안 되어 나중엔 농민들의 물자를 징발하느라 민중과 사이도 틀어지고 어쩌고 했다는 것이다.


이 상황의 비현실성은 동맹군이 식량을 징발할 때는 폭동을 일으키고 저항하는 농민(농노)들이 제국군이 식량을 가져갈 때는 군소리없이 협력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제국군이 당장 내일 먹을 식량이 없을 정도로 농민들의 식량을 다 쓸어간다는 설정은 근본적으로 실행이 불가능하다. 그런 짓을 하려고 했다간 제국군은 동맹군을 맞이하기 전에 일단 농민봉기군과 맞서야 했을 것이다.


제국군과 동맹군은 숫자 단위가 크니 엄청난 군대로 보이지만 인구에 비해 그 숫자가 많지는 않다. 제국이나 동맹이나 동원할 수 있는 군사의 쪽수는 2-3천만 정도인데 그들의 인구는 각각 250억, 130억이다. 이 정도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뭘 그리 허덕이나 하겠지만 그런 문제는 아니다. 초광속 항행이 가능한 우주전함을 타고 싸우는 인력들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장비를 타고 싸우는 것이고, 그 장비를 다루기 위해 엄청나게 교육받은 이들이다. 이들이 전쟁터에서 끝없이 소모되어 간다는 걸 생각하면, 이 정도 비율의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 GDP의 2-30%를 국방비로 소모한다는 설정이 비현실적이진 않다.


다만 그런 '우주군'이 국내 치안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지는 의문이다. 이를테면 농민의 식량을 제국군이 뺏어간다는 설정으로 보면 당시 동맹군이 맞아들이게 된 제국령 농민이 1억 정도인데 이 정도 농민의 식량을 1천만 남짓한 제국군이 회수할 수 있다고 보긴 어렵다. 제국군이 동맹군의 침공에 대비하지 않고 전 병력이 식량 강탈에 열중한다고 볼 수도 없고 말이다. 좀 더 생각하면 특히 봉건제 국가인 은하제국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선 제국군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을 거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제국은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2천만 정도의 우주군과 별도의 수억의 치안유지군이 필요했을 거다. 하지만 소설엔 그런 얘기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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