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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NL의 승리

조회 수 3851 추천 수 0 2010.11.27 06:53:31

오늘 아침에 읽을 만한 기사 두 개.


1.
하나는 프레시안의
서평 기사. 인제대학교 김연철 교수라는 사람이 이명박 정부의 외교 실세였던 이용준의 <게임의 종말>이란 책을 조목조목 비평하고 있다. 이용준의 세계에서 북한은 협상을 한 적이 없다. 핵무기를 숨기기 위해 잠깐 우리를 현혹시켰을 뿐. 그러므로 노태우도 김영삼도 북한에게 속았고 카터는 일을 방해하러 온 불청객이었다. 한미동맹이 가장 빛나던 시점은 1994년 미국의 북폭 시나리오가 쓰여지던 시점이다. 김대중 노무현이 병신이란 건 말할 것도 없고, 부시 행정부도 말년에 북한에게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려 했다. 한심한 일이다. 이명박 행정부는 그것을 막았다. 북한핵문제는 제재를 통해 한방에 해결해야지 단계적으로 수습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별 거 아니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이 부분이 결정적 에러라서 지금 이렇게 털리고 있다.)


물론 나는 김연철 교수의 의견에 더 동의하는 편이지만, 지금까지 협상이 부족해서 사태해결이 안 되었단 얘기도 공허하긴 마찬가지다. 그의 설명을 들어봐도 유화책의 성공은 미국과 한국의 행정부가 합심하여 최소 10년 이상 프로세스를 진행했어야 될똥 말똥한 일이었던 것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이용준에게 모든 유화책은 강경책으로 얻을 수 있는 효력을 배제하는 '문제의 원인'이듯이, 김연철에게도 모든 강경책은 유화책을 교란하고 저지한 '문제의 원인'이었다. 사실 둘 중 누가 옳냐는 문제를 떠나,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둘 중 하나만 죽어라고 했다면 사태가 이렇지는 않았을 거다. 그게 이 사태의 진정한 아이러니다. 데카르트는 옳았다.


그러나 이건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는 가정이다. 미국 외교관들과 한국 국민들이 북한에 대해 20년 동안 일관된 입장을 취한다는 게 있을 법한 가정인가. 미국은 4년마다, 한국은 5년마다 행정부를 바꿀 수도 있는 선거를 치뤄야 하고, 전혀 상이한 철학을 지닌 집단이 집권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선거가 있기 때문에 '인내'엔 한계가 있을 수 있고 그때그때의 정치적 상황에 맞춰 단기적인 성과를 내려는 유혹이 존재한다. 강경책을 추구하는데 사건이 터지면 유화책으로 변경되고, 유화책이 진행되는데 사건이 터지면 강경책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설령 미국과 한국이 그런 '선의'를 가졌다는 역사적 가정을 해봐도 문제가 된다. 북한은 스스로 민주국가는 아니지만 외교영역에서 민주국가들이 어떤 짓을 하는지는 안다. 그들은 정권이 바뀌고 정책이 바뀔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자위권'을 반납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대체 왜 이 사태가 강경책에만 책임이 있고 햇볕정책에는 책임이 없단 말인가? 적어도 이용준은 지난 20년을 얘기하고 있는데, 김연철은 이를 지난 2-3년의 일로 축소시키면서 부당하게 한쪽 편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우리의 오락가락 속에서 지난 20년 동안 북한 문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되어 버렸다. 이 문제를 망각하고 싶어한 우리들을 멋지게 비웃으면서 말이다.


양쪽 정파는 자신만의 가상우주에서 논의를 전개한다. 유화파는 미국과 한국이 10~20년을 인내할 수 있는 가상우주를 상정한다. 강경파는 미-일-한 극우 블럭이 북한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이 길에 중국을 10여년 간 꾸준히 동참시킬 수 있는 가상우주에서 현실을 내려다보며 떠든다. 이렇게만 적어놓아도 두 개의 가정이 얼마나 '미션 임파서블'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우리는, 문득 이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게 내가 쓴 경향신문 칼럼의 요지다. (
2010/11/26 - [정치/기타] - [경향신문] 비둘기와 매의 시간 ) 절망스럽지만 적어도 이 지점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데 아직도 양편은 자신들의 가상우주에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현실세계의 모든 사건은 상대정파의 오류를 드러내고 내 정파의 진리치를 입증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안 될 거야...


2.
다른 하나는 경향신문 박병률 기자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전쟁의 승자가 누구일까에 대한
고찰글. '덕질'의 측면에서 심오한 것 같진 않지만, 상식적인 얘기니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다. 포스트 중간에 링크되어 있는 경향신문의 1면기사 "남북 무력충돌 가상 시나리오"와 함께 읽으면 되겠다.


우리는 북한을 어떻게 할 수 없었고, 그런 이유로 잊으려 했다. 국민들도 그랬고 나처럼 사회진보를 꿈꾸는 사람들도 그랬다. 그런 의미에선 통일을 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의 무슨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굳게 믿은 사람들, 그리고 김정일 정권이 역사의 주체라고 생각한 주사파들이 우리보단 현명한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꼴에 산업화와 민주화 모두 실현시킨 나라이니, 통일문제에만 매달리는 건 시대착오적이고 우리 내부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더랬다.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일궈낸 것들이 있으니 그런 걸 해야 한다고 믿었다.


3.
하지만 위 두 개의 기사는 우리가 처한 객관적인 꼬라지를 보여준다. 뉴라이트가 이승만과 박정희에게 아무리 벅찬 산업화의 공로를 돌릴지라도, 북한 문제를 망각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쌓아올린 그 부는 모래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마치 노름판에 앉아서 돈을 많이 땄다고 자랑하는 꼴인데, 자리에서 일어날 때 그 돈을 들고 갈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전면전이 아니라 제한된 국지전 정도만으로도 일본은 20년의 장기불황을 벗어나 다시 도약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대만이 더 이상 태극기를 찢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 또 한편으로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그 민주화란 것의 결과로 북한 문제에 있어 일관된 대응을 할 수 없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글을 써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어차피 저 두 개의 가상우주에선 모든 사건이 상대정파의 잘못으로만 기록될 뿐 어떠한 성찰도 불가능할텐데 말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도 저 두 정파는 그렇게 반응할 것이다. 전쟁이나 그에 준하는 사태로 파국이 오든, 혹은 운좋게 노름판에서 딴 돈을 들고 집에 돌아갈 수 있든 간에... 신의 가호를 빌거나 우연의 사슬 속에서 우리가 운이 좋기를 바라는 방법 밖에 없다.
 

NL 역시 그들의 가상우주에서 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여하튼 그들의 문제의식만큼은 역사에서 승리했다. 그러니까 이 정국은 NL이 역사에서 퇴장하는 마지막 국면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이번에도 그냥 '사태의 유예'라는 모자란 결론이 날 확률도 없진 않겠지만... 그러나 그건 우리가 희망할 만한 결말인 것일까?)


4.
내 정치지향의 특성상, 내 주변엔 다시 햇볕으로 가면 된다는 얘기들이 차고 넘친다. 이걸 믿느니 장하준 책에 따라 세계가 경제를 운용하면 세계경제가 총괄 10% 성장률을 찍을 수 있단 걸 믿는게 흥하겠다. 이제 현실세계에서 작동하는 햇볕정책과 강경책의 시나리오를 적어보자.


1) 햇볕정책
: 준다.(무기를 확충하면 곤란하니까 식량과 에너지를 현물로.) -> 체제안정에 기여 -> 북한 군부위상 약화 -> 위상 역전을 위한 도발 -> 덜 준다. -> 소강상태 -> 북한의 사인 -> 준다. (무한루프)

장점 : 도발의 수위를 일정 수준 내에서 제어할 수 있다.
단점 :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

* 햇볕정책 무한루프의 이탈방법 1 : 남한의 현질과 북한의 경제정책 변화가 이끌어내어 북한의 '선군정치'가 약화됨. -> 체제의 질적변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함. 이게 과연 김정일에게조차 가능했던 일인지도 불분명함. 설령 이런 프로세스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군부는 독자적인 도발 한번 만으로 무한루프로의 회귀를 추진할 수 있을 듯.)

** 햇볕정책 무한루프의 이탈방법 2 : 지원하며 위협받는 상황에 놓인 남한 인민이 지친다. -> 정권이 교체된다. 매파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음. 실제로 발생.) 


2) 강경책
끊는다 -> 도발수위 강화 -> 끊는다 -> 도발수위 강화-> 끊는다 -> 도발수위강화-> 끊는다 -> 도발수위 강화->...(약간의 루프. 필연적으로 이탈책들로 이행.)

*강경책 루프 이탈방법 1 : 북한이 길들여진 여우가 된다.(희망사항. 중국이 지금처럼 하는 한 초호기의 기동확률)

**강경책 루프 이탈방법 2 : 북한이 붕괴한다. (나름 희망사항. 근데 이것도 시ㅋ망ㅋ)

***강경책 루프 이탈방법 3: 북한이 제한된 국지전을 펼친다. 이건 북한에겐 별 타격이 없지만 남한에선 자본이 이탈. 왜냐면 남한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금융시장에 편입된 국가거든. 여기서 햇볕정책으로 '턴'하여 다시 햇볕정책 무한루프 시작 가능. (지금의 상황?)

****강경책 루프 이탈방법 4: 치킨게임에 응한다. 저쪽은 자본이 빠져나갈 일이 없고, 진지의 패배는 내부에서 은폐하면 되고, 민간인은 상관없다. 그래도 도전에 응한다. 여론에 밀리면 패배. 다시 햇볕정책 무한루프 시작 가능.

*****강경책 루프 이탈방법 5: 전면전. 사람죽는건 상수로 두고, 천운빨로 남한 산업시설의 대부분의 살아남지 않는다면... 좆ㅋ망ㅋ


결론 : 프레시안은 북한이 MB에게 "평화냐 전쟁이냐."를 강요했다고 썼던 것 같다. 뭐 대충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말은 바로 해야지. 정교하게 고치자.


북한은 남한에게 "영속적인 조공 혹은 일회적이고 파괴적인 전쟁을 강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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