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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정용진, SSM, 그리고 단골술집

조회 수 3665 추천 수 0 2010.11.22 06:48:35

논란의 핵심이 된 이가 으레 그렇듯이, 정용진과 이마트 피자가 SSM 관련해서 가장 욕을 먹어야 하는 사람은 아니다. 물론 SSM이 들어서면 주변 자영업자들의 수익은 절반 가량 감소한다는 게 대체적인 목소리이니, 이마트도 서민 등골 빼먹는데 어느 정도 동참한 것인긴 하다. 내가 정용진의 SSM에 대한 시각에 동조할 리도 없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그들이 가장 악랄한 사례는 아니라는 거다.


지난 3년 동안 SSM은 미칠듯이 증가했는데, 그걸 주도한 건 홈플러스와 롯데마트였다. 이 친구들은 점포를 수백개 늘렸다. 이마트는 같은 기간에 십 수개의 점포를 늘리는데 그쳤다. 홈플러스는 삼성과 영국회사의 합작으로 알고 있는데, 한-EU FTA 문제와도 연관이 있다고 한다. 롯데가 악의적인 건 하루이틀 일도 아니다. 재벌기업들이 그 덩치로 국세사회에서 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서민들의 재산을 약취하고 있다.


'피자'라는 아이템 자체도 SSM으로 인한 사회문제를 상징하기에 부족한 것이 아닌가? SSM에서 파는 대부분의 물품은, "알고보면 재래시장 물건보다 싸지도 않다. 약간 쌀 경우엔, 품질이 많이 나쁘다."는 게 정설이다. 이마트 피자는 그렇지 않다. 조선호텔과 제휴하여 기존의 피자체인점 피자보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월등한 물건을 싸게 판다. "소비자를 위한다."고 주장할 수준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이 이익을 침해하게 되는 피자 체인점들은, 내가 이해하는 영세자영업자들과 같은 상황은 아니다. 피자를 빈대떡 부쳐서 팔듯이 장사하는 영세자영업자는 본 적이 없다. 그런 곳에서 피자를 사먹어 본 적도 없고.


피자체인점이나 SSM이나 최저시급받는 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이라는 건 똑같다. 체인점이 망해도 거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그리 큰 손해를 보았다고는 볼 수 없다. 거긴 원래 고용이 불안정한 곳이고, 그 정도 고용조건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은 많으니까. 그래서 난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이마트피자를 사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량이 달리고 11시면 매진된다니 이해타산에 게으른 내가 미리미리 준비해서 사먹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트위터에서 논란이 된 정용진-문용식 논쟁에도 헛웃음이 난다. 나는 아프리카TV의 운영자가 윤리적인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여성BJ들에게 사이버테러를 감행하는 디시인사이드 코미디프로그램 갤러리 유저들에 감정이입하지 않지만, 어쨌든 여성BJ의 선정성과 그녀들을 향한 남성들의 지불행위의 중간에서 마진을 갈취해가는 행위가 이마트 피자보다 더 윤리적인 행위같지는 않다. 나우누리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에 대해서 온갖 향수가 돋을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왕년의 운동권이었고 촛불시위 당시 아프리카TV가 대안매체로 기능했다고 해서 문용식이 자동적으로 정용진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은 아니다. 문용식은 386 운동권이었고, 정용진은 '악의 제국' 삼성의 시조 이병철의 외손주이기 때문에, 혹은 고현정의 전 남편이었기 때문에 전후사정 따지지 않고 한쪽으로 정서를 이입하는 풍조는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깨끗하게 돈을 버는 귀족보다 더럽게 돈을 버는 서민에게 더 감정이입을 하니까 말이다. 영화 <부당거래>를 볼 때, 우리는 적어도 극중에서 훨씬 더 심각한 부정을 저지른 것은 류승범이 아니라 황정민임에도 불구하고 황정민에 감정이입하지 않던가? 그건 '인간적으로 이해할만한 행위'다. 하지만 합리적이지 않다. 그게 합리적이라면, 며칠전부터 대만 친구들이 태극기를 불태우는 것도 합리적이라고 말해야 한다.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친구들의 선조가 부도덕의 화신이었단 건 확실히 찝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의사소통이 된단 전제 하에) 친구로 삼았을 때 거리감이 적을 사람이 이슬람교가 통치하는 중동사람이라기보단 조상들이 참으로 깡패질을 하고 다녔던 유럽인들일 거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정용진은 물려받은게 많아서 나름 제 회사 조직원들에게는 잘 하고 사는 타입인 것 같다. 막 열폭하고 싶은 욕망이 뭉게뭉게 올라오지 않는가?


이것도 서글픈데, 얘기를 SSM으로 돌리면 더 서글프다. 그렇게 윤리적인 사람은 못 되어서, 사당에 살던 시절 롯데마트가 들어섰을 때 애용했었다. 가난한 학생, 자유기고가의 처지로 맥주값이 100-200원쯤 더 싼 유혹을 견딜 수가 없더라. 그리고 가게 되면, 거기서 다른 물건도 사게 되는 거다. 다른 물건들이 미묘하게 더 비싼 것이 있었을 테고 하니, 수지타산이 썩 맞지도 않았으리라. SSM 따위에서 물건을 산다면 더 싼 것만 사겠다고 다짐하고 동네 슈퍼마켓에서 산 물건 영수증과 비교하며 각 물건별로 가격비교를 한 적도 있다. 물론 잘 되지 않았다. 영수증을 모아봤지만, 내가 그리 꼼꼼한 성격이 아니라서. 그리고 가격비교를 해서 공식을 만든다 해도 해당물건이 필요할 때 그걸 기억하고 그곳에 갈 수 있는게 아니라서. 그리고, 무엇보다 롯데마트가 들어선 이후 동네 슈퍼마켓 아줌마에게서 느껴진 인생에 대한 짜증스러움이 내게 전달되는게 너무나 싫었기 때문에.


인간은 참으로 이기적인 동물이다. 나는 롯데마트 들어서기 전 그 동네 슈퍼마켓 주인의 불친절함을 싫어했고, 그래서 롯데마트를 애용했다. 몇번 의지적으로 "시발 내가 SSM 따위를 써선 안 되지!"라고 하면서 다시 그곳으로 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좀 말이 안 되는 승부였다. 나는 애초에 재래시장을 이용하지 않았고, 슈퍼마켓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슈퍼마켓보다 더 편한 곳이 생겼을 때 옮겨가게 되는데에 별로 거부감이 없었다. 롯데마트에는 온갖 야채들이 나처럼 요리를 자주 하지 못할 처지의 자취생에게 필요한 분량으로 나누어져 판매되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SSM이 내게 어필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물건값이 싸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곳에만 가면 모든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SSM 규제법령이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긴 하다. 여기에 추가되는 한가지 요소는, 난 더이상 물건을 살 때 그 판매자와 인격적 관계를 맺기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재래시장과 가까이 살아본 사람이라면, 재래시장의 물건들이 SSM 것보다 훨씬 좋다는 걸 인정한다. 자영업자 아줌마들과 수다떨고 친해지기 시작하면, 위에서 내가 댔던 핑계들, 야채를 작은 단위로 사게 되는 건 일도 아니다. 어쩌면 돈도 안 받고 얹어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문제의 핵심은, 어느 순간부터 내게 그런 종류의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은 너무나 거추장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는 거다.


이게 나 혼자만의 문제일까? 많은 소비자들이 이제는 판매자의 수다를 듣는 일 없이 혼자 물건을 고르고, 인격적 관계를 맺을일 없는 캐셔에게 체크카드를 긁고 쿨하게 떠나면 되는 그런 상황을 꿈꾸지 않는가? 나처럼 돈도 별로 없고 상대적으로 가용시간이 많은 자유기고가 따위가 그러할진대, 직장인들이라면 오죽할까. '소비자의 시대'가 왔다고, 이제 진보도 소비자의 정서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들 한다. 촛불시위에서 그게 보였고 광고주 불매운동에서 그게 보였다는 거다. 물론 옳지만, 그 소비자가 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도 봐야 한다. 하긴 그걸 본다 해서 우리가 그걸 거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생활인으로서 모자랐고 어린 나이에 음주에만 취미가 있었던 나는, 지난 세월 동안 오직 술집에만 '단골'이란 걸 만들었다. '단골'이란 관계가 성립한다는 건, 판매자와 소비자 간에 매우 특별한 경험이다. 돈이 없는 나는 친구들과 만나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술집에서 혼자 술을 사먹을 수는 없었다. 슈퍼에서 술을 사서 집에서 마셔야 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치킨 맥주 집의 단골이었을 때, 나는 그 '사장님들'(부부가 함께 운영하는)의 생계를 정말로 염려했고, "안주와 술 중에 뭐가 마진이 더 남나요?"라고 여쭤봤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 했을 때, "맥주가 마진이 좀 남으면 혼자 집에 들어갈 때 슈퍼 안 가고 여기에서 사서 가려구요."라고 말했다. 그 부부는 가게를 2시면 닫았지만, 내가 친구를 데려와 마시고 있으면 4시까지도 열었다. 그게 그들 벌이에 더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새벽 늦게 자신들이 만들어 먹는 비빔밥을 나한테 나눠준 것, 어느날 아저씨가 나와 함께 맥주를 기울이고 "이건 제가 산거에요."라고 술값을 받지 않은 것을 이해타산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내가 그 부부에게 보통의 일일시간표를 물어보고 소득을 물어보며 한국 자영업자들의 세태를 깨닫게 된 것은 단골이 된지도 일년이 넘어서의 일이었다.


어느 소설가였던가, 단골을 만드는 건 젊은이가 아니라는 증거라고 했다. (나는 그 소설가가 술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성격이 보수적이라서 언제나 단골술집을 만들었다. 아까 말한 치맥집에서 난 외상으로도 술을 먹었다. 내 알바시급이 언제 나오는지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전 일주일쯤 전부터 외상으로 술을 먹는 것에 별로 거리낌이 없었다. 이주일쯤 전부터 외상으로 먹겠다고 하면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난색을 표했다. 이건 인간적 정리를 논하기에 앞서, 지갑이 항상 두둑하지만은 않은 젊은이에게 필요한 관계였다. 물론 내게도 그 집만큼 사이가 돈독했던 집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새내기 시절, 거의 매일 갔던 술집에서, 안주로 오므라이스 1인분을 시킨 우리에게 비빔밥 3인분을 주던 인심좋은 주인아주머니가 기억나지만, 나와의 특정한 관계가 아니었고 마음씨 좋은 학사주점의 어떤 양태였을 뿐이다. 다른 동네에서 학원강의를 하던 시절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 밥집/술집도 기억난다. 동태찌개가 맛있었는데, 나는 서울생장수 막걸리와 그걸 같이 먹었다. 학원강의를 떠나기 전 술이 절실했을 때는, 냄새가 덜 나는 소주를 택했다. 어릴 때 나는 내가 그런 식으로도 평생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지금에 와서는 그게 젊음의 특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3년 가까이 찾아가던 그 단골집이 망해버린 순간을 기억한다. 카드리더기가 없던 그 가게는, 그 가게에서 배달용 오토바이를 탈 필요도 없는 거리에 살았던 내가 심야에 배달주문을 하면 무조건 외상으로 달아놓았더랬다. 그런데 어느날 아주머니가 결산을 봐야 해서 현찰이 없다고 내게 돈을 좀 뽑아다 달라고 했다. 뭔가 사정이 있겠지 싶어서 나는 직접 편의점에 나와 돈을 뽑아 지불하고 닭과 맥주를 내가 직접 들고 갔다. 며칠 후에 나는 그 가게의 간판과 인테리어를 바꾸는 현장을 목격했다. 그때 그 안에 뛰어들어갔다면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어딘가 다른 곳으로 옮겨 장사를 시작할 그들의 다음 영업장소를 알아낼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 그들은 내게 제 자녀의 등록금에 대한 푸념도 늘어놓았고, 자녀의 선택에 대한 대처에 대한 조언도 그들 자녀와 몇살 차이도 나지 않는 내게 요구했었는데 말이다. 나는 그렇게 내 인생의 술집을 작별인사 없이 떠나보냈다.


그후에도 많은 술집을 찾는다. 그리고 많은 가게가 곧 망하고 다른 가게가 들어서는 곳을 본다. 그것은 마치 오늘날의 공장 노동자들이 옆에 있는 노동자들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인지하는 것과 흡사하다.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소비자와 판매자 이상의 특별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기대는 언제나 무리한 것이다. 이제 나는 내가 가던 술집들이 내 나름의 서사를 만들기도 전에 망하는 것을 목격한다. (남들도 다 가는 아주 보편적인 맛집이 아닌 경우에는.) 그건 마치, 스타리그의 올드게이머들이 더 이상 선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과 같이 씁쓸하다. 그리고 나는 SSM에 가게 된다.


근데, 지금 사는 동네에는 SSM도 없고 재래시장도 없ㅋ엉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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